역사에서 본 [통일 찬송가]


 

+ 글쓴이의 단상



아래의 글, ‘역사에서 본 [통일 찬송가]”는 글쓴이가 1984년 봄, 계간지 “교회음악”에 기고하였던 글이다.

 

[통일 찬송가]가 1983년 발행되고 2차례의 개정이 있었으며 이제 34년이 지났다. 한국의 찬송가는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다.

한국교회 찬송가 역사에서 최악의 찬송가 가운데 하나인 이 [통일 찬송가]가 장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한국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라 한다.

그러나 개신교의 여러 교파가 하나의 찬송가, 우리와 같은 [통일 찬송가]를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 교회가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아닐까 추측한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염원이다.

남 태평양 작은 섬나라 사모아, 아니 한 부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로 나라라 하기에 너무 작은 나라도 교파마다 다른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으며

어떤 교파의 찬송가는 그 수준이 높은 데 놀란 적이 있다.



[통일 찬송가] 발행 당시, 어느 유명 대학교의 신학교 노 교수는 말하기를 “에큐메니칼(교회통합)운동이 활발한 기독교 선진국에서도 이룩하지 못한 찬송가 통일의 업적을 한국교회가 이룩하였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 '왜 그들은 찬송가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고, 그 시도 마저 하지않았나'에 대한 대답을 그에게 듣고 싶다.

개신교는 교파마다 신학과 교리의 차이가 있으며 찬송의 전통과 문화 유산이 달라, 일반적이고 공통의 교회 찬송에 각 교파에 내려오는 찬송들로 엮은 찬송가를 사용한다. 이런 이유에서 교파마다 그들의 찬송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오래 전, 신문 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지금 사용하는 [통일 찬송가]의 편집을 마치고,

그 찬송가를 들고 캐나다에 계신 교회음악 원로인 박재훈목사를 찾아가 평가를 받고 왔다는 것이다.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덕담 외에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교회음악 선배에게 결례가 될지는 모르나, 박재훈 목사는 여러 편의 찬송가를 작곡하고 그 가운데 몇 곡이 애창되고 있다.

그러나 이분은 찬송가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전문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찬송가 편집 위원들이 어떤 사람들인 지 궁금하다. 아마추어들이 운전석에 앉아 자신들이 운전자임을 자인하는 것은 아닌가 궁금하다.


우리 농담 가운데 제일 무서운 사람은 “지식이 없는 사람이 여기에 더하여 열심과 열정을 가진 것이라 한다.”

 

I. 글을 시작하며

 

개신교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1983년 11월 20일 [통일 찬송가]를 발행하여 한국교회에 보급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한국 개신교 찬송가의 역사를 중심으로 [통일 찬송가]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찬송가는 개신교회의 상징이며 모든 교회음악의 기초가 됨은 물론 예배와 예배음악에 깊이 관계가 있다.

찬송가의 발전은 찬송가 그 자체는 물론 예배와 예배 음악의 발전을 의미하며 한편, 보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 할 수 있는 동력인 것이다.

찬송가의 편집과 발행은 신학과 찬송에 대한 학문을 바탕으로 하여야 하며 한편, 교인들과 목회자에게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찬송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필자는 한국 개신교 찬송가의 역사를 통하여[통일 찬송가]의 내용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평가하고자 한다.

 

+ 일러두기

한국 개신교에서 발행한 찬송가들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찬송가’라는 이름의 찬송가는 앞에 그 때에 붙여진 이름(별칭)을 붙여 구분한다.

 

1. 찬양가(1895) : 장로교(서울을 중심으로 한 남쪽)

2. 찬셩시(1895) : 장로교(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쪽

3. 찬미가(1896) : 감리교

4. 복음찬미(1900) : 침례교

5. 찬숑가(1908) : 최초의 장로교와 감리교가 함께 발행한 통합찬송가

6. 복음가(1911) : 성결교

7. 구세 군가(1912) : 구세군

8. 신정 복음가(1919) : 성결교

9. 부흥성가(1930) : 성결교

10. 신정 찬송가(1931) : 감리교

11. 신편 찬송가(1935) : 장로교

12. 합동 찬송가(1949) : 최초의 통합 찬송가

13. 새 찬송가(1962) : 장로교(합동과 고려파)

14. 개편 찬송가(1967) :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회등

15. 통일 찬송가(1983) : 한국 개신교회



II. 본론

 

1. [통일 찬송가]


한국 교회가 교파와 교회에 따라 [합동 찬송가], [새 찬송가], [개편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통일을 위하여 한국교계는 1974년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여 찬송가 통일 작업을 위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 후 여러 어려운 여건 속에서1981년 한국 찬송가 공회를 구성하였으며, 여기에서 [통일 찬송가의 편찬 원칙을 합의하였다.

 

편찬원칙은 다음과 같다.


1) [개편 찬송가와 [합동 찬송가] 그리고 [새 찬송가]를 하나로 편찬한다.

2) 이미 애창되고 있는 가사는 곡이 다르다 할지라도 수록하고, 또한 한 곡에 여러 가사로 애창되고 있는 것도 수록하기로 한다.

3) 번역 가사의 교정은 성격과 신학적인 관점에서 검토하여 교정하되 이미 한국화 되어있는 가사는 가급적 교정을 피하도록 한다.

4) 총 985장 중에서 사용빈도수를 고려하여 500장에서 550장이내로 엄선하여 편찬한다.

5) 교독문은 한글 개혁판 성경을 기준으로하여 문장을 정리한다.

 

위와 같은 원칙 아래 [통일 찬송가]는 1982년 발행을 예정으로 하였으나 예정보다 늦은 1983년 11월 20일에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통일 찬송가]가 발행되었다.

 

[통일 찬송가]의 내용은 [합동, 새, 개편 찬송가]를 합본하는 형식으로 하여 사용 빈도 등에 중점을 두어 편집되었으며, 결과, [새 찬송가], [개편 찬송가]에 있는 많은 수의 표준 찬송이 삭제되었고, 대신 사용 빈도가 높은 많은 수의 복음가가 채택되었다.

이 복음가들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미국에서 유행하던 복음가이다. 미국 찬송가에는 처음부터 실리지 않았고 부록 형식으로 발행되어 불려지던 것이다. 이제 여러 세대가 지나 흘러간 노래로 집회에서 가끔 불러져 지난 세대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정도이다.

 

찬송가 통합의 결과, [통일 찬송가]는 전에 사용하던 수준 높았던 [새 찬송가]나 [개편 찬송가]에 비하여 현저히 그 수준이 낮아졌고 [합동 찬송가] 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2. 한국 찬송가의 개편과 통합의 특징

 

한국 교회의 찬송가는 초기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편집, 발행되었으며 [신정 찬송가] 때부터 몇몇의 한국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그 뒤에 우리 손으로 찬송가가 편집, 발행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 개신교 찬송가의 통합의 변천 과정을 정리하여 보자.

처음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찬송가의 통합을 시도하여 1908년 [찬양가]와 [찬셩시], [찬미가]를 통합한 [찬숑가]가 발행되었다. [찬숑가]는 최초의 통합 찬송가인 것이다.


이 [찬숑가]의 내용을 보완, 증보키 위하여1931년 [신정 찬송가]를 발행하였으나 장로교가 이 찬송의 사용을 거부하고 [신편 찬송가]를 발행하였다. 이 결과 감리교와 장로교의 찬송가 통합은 깨지게 되었다.


그 뒤, 해방 후 1949년 당시 주요 교단인 장로교와 감리교, 성결교가 [합동 찬송가]를 발행하여 찬송가 통합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당시 부산을 중심으로 한 장로교 고려파가 [신편 찬송가]의 사용을 고집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찬송가 통합을 말하기 어렵다.

 

장로교 보수파인 합동측을 중심으로 [합동 찬송가]를 개편한 [새 찬송가]를 발행하고, 이에 자극을 받아 장로교 통합, 기독교 장로회, 감리교, 성결교가 역시 [합동 찬송가]를 보완하여 개정 한 [개편 찬송가]를 발행하였다. 그리하여 장로교 보수 진영에서는 [새 찬송가]를, 진보, 중도적인 장로교와 감리교, 성결교는 [개편 찬송가]를 사용하고 집회적 성격의 예배를 드리던 침례교와 순복음교는 [합동 찬송가]를 사용하였다.


[새 찬송가]와 [개편 찬송가}는 학문적 연구를 바탕으로 편찬된 찬송가로 그 수준과 내용이 뛰어나며, 특히 [개편 찬송가]는 한국 찬송가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찬송가로 평가된다.

 

한국 교회 통합된 찬송가 가운데 그 수준과 내용에서 발전을 이룬 찬송가는 1908년 발행된 [찬숑가]가 유일하며 그 뒤에 발행된 통합 찬송가인 1949년 [합동 찬송가]와 1983년 [통일 찬송가]는 수준과 내용이 크게 떨어지는 찬송가들이라 할 수 있다.


[합동 찬송가]는 이전에 사용하던 [신정 찬송가]와 [신편 찬송가]에 비하여 크게 수준이 미치지 못하며, [통일 찬송가] 역시 전에 사용하던 [새 찬송가]와 [개편 찬송가]의 내용과 수준에 크게 뒤지는 찬송가라 하겠다.

 

[신정 찬송가], [신편 찬송가] 그리고 [새 찬송가]와 [개편 찬송가]는 개편 당시, 찬송가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여러 면에서 개편 원칙을 제시하였다.

반면에. [합동 찬송가]나 [통일 찬송가]의 공통점은 사용하던 찬송가들을 단순히 하나로 묶고 많이 불려지는, 다시 말하여, 애창되는 것들을 중심으로 편찬한다는 실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들 찬송가 편집에 참여한 사람들은 찬송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거나 방관자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열심은 있으나 학문적인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각 교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선에서 발행한 찬송가인 것이다.


그 증거로 개편된 찬송가들에는 개편에 참여한 각 분야의 사람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으나 통합된 찬송가는 통합에 참여한 어느 누구의 이름도 없는 것이다.

 

찬송가 편집에서 개편된 찬송가 가운데 [신정 찬송가]는 서문, 제목, 목차, 첫 줄 목차(한글 가사 첫 줄), 영문 머릿말,(Preface), 영문 제목 목차(Index of Subjects), 곡명 찾기(Index of tunes), 영문 가사 첫 줄(First Line and Title), 곡조운율 찾기(Metrical Index of Tunes)와 같은 것이 포함되어 찬송가 편집에 충실하였다.

이와는 달리 통합된 찬송가들은 기본적인 편집의 구성 요소들이 없거나 소홀히 하여 찬송가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불편하게 하고 있다.


 

3. [통일 찬송가]의 문제점 및 제언

 

1970년 이후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경제는 물론 문화의 수준이 높아 졌고 교회도 크게 부흥하였다. 한국 사회는 아시아 경기 대회와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공통의 문화인 교향악단을 비롯한 연주 단체 육성에 힘쓰고 있다. 전국에 많은 음악대학에서 많은 음악인들이 배출되고 있어 개화기 때에 선교사들이 찬송가를 가지고 음악교육을 시작 할 때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교회음악의 기초인 찬송가는 발전과 퇴보의 순환 가운데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외국의 찬송가와 비교하지 않아도 지금의 [통일 찬송가]는 1908년 발행된 [찬숑가]나 1931년 발행된 [신정 찬송가]에 비하여 내용과 수준에서 발전보다는 크게 퇴보하였다.

통합된 찬송가들은 우수한 찬송가를 만들려는 의지 보다는 쉽고 편리한 찬송가를 만든 것이다. 여러 교파나 교회가 만족 할 수 있는 찬송가란 만들기가 불 가능함에도 이를 무시하고 찬송가의 통일을 강행한 결과인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진보, 중도의 교회와 보수적인 교회 그리고 집회형식의 예배를 드리는 복음주의 성향의 교회로 나눌 수 있다.

진보, 중도의 교회는 장로교 통합, 기독교 장로회, 감리교가 대체로 이에 속한다. 이들 교회는 예배의식과 회중 찬송 그리고 예배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수적인 교회는 장로교 합동, 고려파로 대표되며 이들은 설교 중심의 교회로 진보, 중도 교회에 비하여 찬송에 대한 관심은 적으나 그런대로 보수적인 입장이다.

복음주의 교회는 순복음 교회가 대표적이나 침례교와 같은 일부 교회나 장로교, 감리교에서도 목회자의 성향에 따라 집회적인 복음주의 교회의 성향을 보인다. 이들 교회는 이해하기 쉽고 부르기 쉬운 열렬한 복음가를 선호한다.

어찌 하나의 찬송가로 성향이 다른 교회 모두에게 만족 할 수 있는 찬송가를 만들 수 있을 까? 이는 불 가능한 것이다!

[통일 찬송가] 발행 이전에 진보, 중도적인 교회가 표준 찬송이 많은 [개편 찬송가]를, 보수적인 교회가 비교적 장로교적 성향의 [새 찬송가]를 사용하였고,

집회적인 복음주의 교회는 복음가가 많은 [합동 찬송가]를 사용한 것은 매우 자연스런 것이었다.

이 모두에게 하나로 통합된 [통일 찬송가]를 강요하는 자체가 올바른 생각이 아니다.

여의도 집회와 같은 옥외의 초 교파 집회에서 다른 찬송가를 사용하는 데서 오는 불편을 없애자는 생각이 사실은 [통합 찬송가] 발상의 시작으로 추측된다.

 

III. 글을 마치며

 

찬송가의 통합 운동은 한국교회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초기 한국교회에서 장로교와 감리교가 찬송가 통합을 시도 한 이유로 나는 몇 가지 추론하여 본다.

당시, 장로교와 감리교는 서로 경쟁적인 선교와 선교 지역을 놓고 교단의 선교사들이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의 해소를 위해 대화가 필요하여 친교의 수단이 아니었나 생각 할 수 있다.

다음은 작은 교세와 적은 교인 수로 비용이나 노력이 큰 찬송 발행을 나누어 감당하기 위함은 아니었나 생각하나 이는 나의 단순한 추측일 뿐이다.

 

통일 된 찬송가를 만드는 데에는 신학과 학문적인 면 보다는 과거 자신들이 사용하던 찬송가의 찬송들이 얼마나 많이 채택되는가에 관심이 더 크다.

한 예로, [개편 찬송가]에 참여 한 성결 교회는 찬송가 발행 뒤에 그들이 선호하고, 그들 찬송가 –부흥성가-에 많이 있던 미국의 복음가가 많이 제외 되자

[개편 찬송가]의 사용을 거부한다고 하였다. 그 결과, 개편 찬송가 뒤에 20개의 복음가를 부록 형식으로 추가하여 발행하기도 하였다.

각 교단이 합의하고 정치력이 발휘되는 찬송가 편집에서 좋은 찬송가의 발행은 기대 할 수 없는 것이다.

 

찬송가의 발전은 각 교회들이 자신의 성향과 기호 맞는 찬송가를 발행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각 교단이 서로 좋은 찬송가를 만들려는 경쟁 의식을 갖게 되어 찬송가 발전에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예는, 장로교 통합 측에서 [새 찬송가]를 편찬 한데 이어 장로교 합동과 감리교가 [개편 찬송가]를 발행한 것이다.

자연히 뒤에 발행되는 찬송가는 발전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쟁의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찬송은 성서의 권위에는 미치지 못하나, 성서 다음으로 찬송은 예배와 신앙 생활에서 신자들에게 그 영향이 큰 것이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