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교회의 기원



1. 재침례에 관하여

장로교회 다니다가 침례교회로 옮기면 침례를 다시 받아야 하나요?

아닙니다.

재침례파라면 모를까 기독교한국침례회에서는 장로교회에서 받는 세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2. 침례교와 예정설

침례교도 장로교처럼 예정설을 믿나요?

침례교에서는 보편적으로 예정설을 인정하시는 분들이 많으나, 예정설 중에서도 타락 후 선택 쪽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제한적 구속 보다는 보편적 구속을 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3. 침례교의 기원

침례교의 시작과 침례교 교리를 정립한 사람은 누구인지 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침례교회의 기원에 대한 학설은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합니다.

 

그리스도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➀계승설과 16세기 이후 유럽 지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재침례교도들에게서 영적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는

➁재침례교 영혈설, 그리고 회중 정체를 실천하며 신자의 침례만이 성서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인지하였던

➂영국 분리주의 후계설입니다.


1) 계승설(Successionist Theory)

계승설이란 그리스도때부터 현재까지 침례교회의 원리가 존속해 왔다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는 안수의 연속을 뜻하는 사도전승, 침례의 연속을 뜻하는 침례전승, 교회의 참된 표식을 간직한 개교회의 연속을 뜻하는 교회전승 등이 그리스도때부터 현재까지 전시대에 걸쳐 존속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시대나 초대교회들에게서 오늘날 침례교회의 영적 이상이나 정신적 배경을 찾을 수 있으며 침례교의 원리와 의식적, 교리적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에서는 역사적인 실재로서의 침례교인이라 호칭된 사람들의 역사적 출현은 없었으며 확실한 역사적 증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2) 재침례교 영혈설(Anabaptist Spiritual Kinship Theory)

이 학설에 의하면 침례교회는 16세기 이후 유럽지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재침례교도(Anabaptists)에게서 정신적 영향을 받았으며 영적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즉 재침례교도들이 침례교회의 사상과 행습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16세기 재침례교도가 제시한 원리들이 침례교회의 운동으로 계승되었다는 이론입니다.

스위스 형제단의 지도자가 된 콘라드 그레벨(Conrad Grebel)과 펠릭스 만쯔(Felix Manz)는 본래 개혁자 쯔빙글리(Zwingli)와 함께 개혁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1525년경 쯔빙글리가 본래의 신앙적 주장을 변경하여 유아세례를 인정하고 스위스 정부와 타협하는 방향으로 나가자 쯔빙글리와 결별하고 유아세례 반대, 신자의 침례, 신앙양심의 자유, 정교분리 등을 주장했습니다.

이상과 같은 재침례교도들의 주장은 침례교회의 주장과 유사한 점이 많으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그들의 교리 - 평화주의자로써 전쟁과 무기사용 거부, 세속정부의 참여 거부, 일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소시니안 기독론(Socinianism), 일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호프만 기독론(Hoffmannite Christology) - 들은 침례교회가 주장하는 내용과 상당히 다르다는 측면에서 침례교회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마련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3) 영국 분리주의 후계설(English Separatist Descent Theory)

이 학설에 의하면 침례교회의 교회정체는 회중제도를 실시하며 신자의 침례(Belivers Baptism)만이 성서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인지하였던 영국 분리주의자들과 더불어 기원한 것입니다.


- 영국 일반침례교회의 발생

1606년 런던의 게인스보로우에 있던 비국교도의 지도자 John Smith(1554-1612)와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국교회의 비성서적인 신앙행습에 반대하여 복음적 신앙생활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혹심해지는 영국 국교회의 박해를 피하여 1608년 화란의 암스텔담으로 이주하여 화란의 재침례교도 멘노파와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멘노파와의 접촉을 통해 이들은 신자의 침례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유아세례가 비성서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1611년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토마스 휄위즈(Thomas Helwys)를 지도자로 런던의 스피탈필드(Spital field)에 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속죄는 온 인류를 위한 것이라는 일반 속죄설을 믿었기 때문에 일반침례교회(General Baptist)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 영국 특수침례교회의 발생

특수침례교회는 1616년 영국 국교회에서 탈퇴하여 런던의 사우스워크(Southwark)에 독립교회를 세운 헨리 제이콥(Henry Jacob)의 무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독립교회로 전전하던 이들은 1638년 신자의 침례를 주장하는 수명의 교인들이 단합하여 "중생한 자에게 침례를 베풀며 침례의식은 전신을 물속에 잠그는 것이다"라는 주장에 따라 특수침례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속죄는 오직 택함 받은 소수의 무리들만을 위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칼빈주의적 신앙을 지닌 침례교인들 이었으므로 특수침례교회라 칭했습니다.


- 일반침례교회와 특수침례교회의 공통된 주장

첫째, 국교회에 맞서서 종교와 인간양심의 자유를 주장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양심사이에는 국가나 왕 또는 사제가 끼어들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둘째, 국가교회를 반대하고 유아세례는 국가교회의 무기가 될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의지적 능력이 없으므로 유아세례를 철저하게 배격한다.

셋째, 신자의 침례를 주장하며 중생한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는 민주적 자치제로서의 회중정체를 해야 한다.


4) 침례교회의 기원설에 대한 견해

지금까지 침례교회의 기원에 대한 학설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 보았습니다.


첫째, 계승설은 그리스도의 시대와 초대교회 가운데서 침례교회의 원리와 의식적, 교리적 기원은 찾을 수 있으나 역사적으로 전시대에 걸쳐서 침례교인이라 호칭된 사람들이 출현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영적 유산은 연관을 맺고 있으나 역사적 자료가 불분명합니다.


둘째, 재침례교 영혈설은 신자의 침례, 정교분리의 원칙 등의 교리는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교리들을 주장했던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오늘날 침례교회의 기원을 찾는다는 것은 교리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셋째, 영국분리주의 후계설은 영국의 일반침례교회와 특수침례교회의 교리와 주장을 고찰해 볼 때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보아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설의 논지도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신약성서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오늘날 침례교회의 이상과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재침례교도 가운데 멘노파의 침례에 대한 견해는 영국 일반침례교회의 태동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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