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랍비


1. 랍비 힐렐

 

랍비 힐렐은 약 2000년전 바벨로니아에서 태어난 20세기가 되던 해에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두 사람의 랍비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당시는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어 유대인들의 생활이란 고통스럽기가 그지 없었다. 그래서 힐렐은 우선 생활하기 위해 돈벌이에 나섰으나 하루에 동전 한잎 벌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그는 운좋게 번 동전 의 절반은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수업료에 충당했다. 어떤 때는 가느마 일거기가 없어 단 한잎의 동전도 벌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힐렐은 학교에서 청강하는 강의 는 빼지 않고 다 들어야 했다. 그는 생각 끝에 남몰래 한쪽 지붕으로 올라가 굴뚝에다 귀를 대고 밤늦도록 강의를 들었다. 그러던 중 피곤에 지처 그만 잠이 들었다. 추위가 극성스러운 한 겨울이라 때마침 눈이 내려 잠이 빠진 그의 몸을 덮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 다시 공부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다른 날과 달리 교실안이 어두웠다. 모두들 천정을 쳐다보았는데 지중에 난 창을 누군가가 가리고 있는 것이었다.


서둘러 힐렐를 끌어내려 간호하자 그는 다시 깨어났다. 그때부터 힐렐은 수업료를 면제 받고 공부하게 되었다. 또 그것이 계기가 되어 유대인 학교에서 수업료가 없어졌다. 힐렌에 환한 언행은 가장 많은 칭송속에 전해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에도 적지 않게 인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힐렐은 천재였고 거기에다 중후하고 예의 바른 인물이었다.

 

어느 날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찾아와 힐렐에게 강조 하듯 말했다.

내가 한쪽 다리로 서있는 동안에 유대 민족이 배우는 학문을 모두 말해 보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힐렐은 당신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시오라고 태연스럽게 대답하였다 .짖궂은 또 다름 무리들이 힐렐은 화나게 할 수 있는 가 없는 가를 놓고 내기를 걸었다. 마침 안식일을 앞두고 힐렐이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청결히 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찾아왔다. 힐렐은 젖은 몸을 대충 딲고는 그를 만났다. 찾아온 그 남자는 엉뚱한 것을 물어 왔다. ‘ 랍비님 인간의 머리는 왜 동그랗게 생겼습니까? “ 힐렐은 성의 것 대답해 주고 다시 목욕탕에 들어 왔는데, 그 남자가 또 문을 두드렸다. 힐렐이 다시 나오자 왜 흑인의 피부가 검습니까? ” 라고 엉뚱한 질문은 하는 것이었다. 힐렐은 그러나 화를 내지 않고 차근차근 그 이유를 말해주고 는 목욕탕으로 돌아왔다. ’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또 노크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번이나 계속되었다. 결국 그 남자는 랍비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야 좋았을 것이오 나는 랍비님 때문에 내기에 실패해 돈을 잃었소?“ 라고 솟을 털어 놓았다.


힐렐은 내가 인내심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당신이 돈을 손해 보는 것이 더 낫지요. 라고 대답하였다. 어느 날 힐렐이 급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학생들이 달려와 선생님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때 힐렐은 나는 지금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바쁘게 가고 있단다라고 대답했다. 학생들은 이를 궁금하게 생각해 힐렐을 따라 가 보니,그는 대중목욕탕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학생들은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닦는 선생에게 몸을 닦는 일도 선행입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자기 자신을 깨끗이 하는 일은 아주 값진 선행의 하나이다. 로마사람들을 보아라 . 그들은 거리에 있는 수많은 동상들을 깨끗이 닦아 내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란 동상을 닦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닦아 깨끗이 하는 것이 선행이지! 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힐렐은 음미하면 할수록 맛이 새로운 훌륭한 말을 많이 남겼다.


그 가운데 몇 가지가 있다.


* 당신이 지식을 늘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당신의 지식을 줄여가고 있는 결과이다.

*자기의 지위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는 사람을 의미 스스로의 인격에 상처를 입고 있다.

* 상대편의 경우에 서보지 않고는 남을 나단하지 말라.

*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부끄러워하지 말라.

*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

* 만약 당신 주변에 뛰어난 인물이 없다면, 당신 스스로가 특출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 스스로 자신을 생각하니 않는다면, 누가 자기를 생각해 주겠는가?

* 지금 당장 그것을 서둘러 하지 않으면, 언제 할수 있는 기회가 있겠는가

* 인생의 최대의 목표는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해 그것을 가져오는 것이다.

* 자기 자신의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조차 될 자격이 없다.

   

 

2. 랍비 요한 벤 자카이


랍비 요한 벤 자카이는 유대 민족의 역사상 최대의 정신적 위기에 처했던 시기에 가장 크게 활약했던 인물 중의 한사람이다. 주후70년에 포악한 로마인들이 유대인 성전을 가리지 않고 파괴시키고 유대 민족을 멸족시키려고 했을 때 벤 자카이 는 비둘기 파였다. 그래서 반대파인 매파에서 벤 자카이의 행동을 항상 감시하는 형편이었다.


벤 자카이는 그때 유대 인목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는 길을 깊이 생각한 끝에 마침내 로마의 유력한 장군과 협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안에 모두 감금당한 상태였던 탓으로 바깥 출입조자 어려웠다. 그러나 벤 자카이는 환자를 가장하여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벤 자카이는 널리 알려진 랍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문안차 몰려들었다. 며칠 된 벤자카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을 때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끝내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제자들을 그를 관속에 넣은 뒤 성 밖의 묘지에 매장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다. 성안에 는 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파는 벤 자카이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며 칼로 찔러 죽었나를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런 짓은 죽은 사람을 모독하는 행위하고 하여 크게 반발했다. 유대인 들을 시체를 눈으로 보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없겠다는 것이다. 제자들은만일 로마 황제가 죽었다면, 당신들은 그때로 칼로 관을 찌를 것인가 하고 항의했다. 또한 무장도 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마침내 로마 병사들의 전선을 통과할 있었다.

 

그 벤 자카이는 당황하지 않고 말고 있었다. 그 관속에서 나와 로마 사령관에서 가서 면담을 요청했다. 면담이 이루어져 사령관앞에 앉게 되자, 그는 사령관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장군에게 로마황제에게 표하는 경의를 보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장군은 황제 폐하를 모독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벤쟈민은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 아닙니다. 장군은 반드시 로마의 황제가 될 것입니다 확신에 찬 랍비의 말에 장군은 얼른 입을 막았다. ’ 그런 이야기는 그만 둡시다. 나를 찾아 온 목적이나 말해 보시오,‘ 벤 사카이는 오직 한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것 무엇이냐라고 베스파니안 황제가 묻자 벤 자카이는 얼른 대답을 했다. ’방 한 칸의 교실이라도 좋으니 공부하는 것만 없애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이 로마에 점령되어 곧 파괴되고 말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만 유지하고 있으면 유대 민족의 전통은 이어져 갈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장군은 랍비의 청이 별로 대단치 않아 좋다고 약속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 황제가 죽고 그 장군이 황제의 자리에 앉았다. 그는 하나의 작은 학교를 없애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지켰다. 그리고 학교를 지어서 말씀운동을 했다. 그후 20년이 되어 유대인들은 신앙의 정통성을 위해 히브리어로 성경을 기록하여 그들의 정통성을 확보했다. 그성경이 바로 구약 성경이요. 기독교에서 인정하여 얌니아에서 주후90년에 공포한 히브리어로 기록한 구약성경이다

 


3. 아킵바


랍비 아킵바는 탈무드 에 등장하는 랍비들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며 유대 민족의 영웅이다. 한때 그는 큰 부자 집에서 양치기 일을 할 때가 있었다. 그때 그 부자집 딸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 집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기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아킵바는 남의 집에서 일할 만큼 생활이 어려워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글을 읽지 못하엿다. 그래서 그의 부인은 당신이 공부하며 지식을 갖추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래서 아킵바는 나이가 들어 아이들 속에 섞여 공부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그가 공부를 마치고 귀가 했을때는 이미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 널리 알려 져 있었다. 그 후 그는 최초로 탈무드를 편집한 인물이 되었으며 , 또 의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외국어 까지 능통해 유태 민족의 사절로 로마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주후 132년에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유대인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그는 유대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이 반란이 가까스로 진정되자, 로마인들은 학문하는 유대인은 누구라도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공포하게 되었다. 이때 아킵바는 여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 여우가 냇가를 거닐고 있는데, 물속에서 물고기들이 바쁘게 헤엄쳐 다니고 있는게 보였다. 그래서 여우는왜 그렇게 바쁘게 다니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물고기는 우리를 낚으러 달려드는 그물이 무서워서 그런다고 대답하였다. 여유는 친절한 척 거름, 땅으로 나오렴 내가 너희들을 지켜 줄테니까?“ 라고 말했다. 물고기는 여우의 말에 여우들은 꽤냐 영리하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도 않군 우리도 살고 있는 물속에서도 이렇게 무서워 떨고 있는데, 땅위로 올라가 무슨 변을 당할려고 올라가는가라고 말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를 테면 유대인들에게는 학문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으므로 물고기가 물을 떠나 잠시도 살수 없듯이 유태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뒤 아킵바는 로마인들에게 붙잡혀 로마로 끌려간 뒤에 처형당하게 되었다. 그때 로마 사람들은 아킵바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을 형벌로는 너무 가볍다하며 숫불에 달군 이두고 지져 죽이기로 하였다.


아키바를 처형하는 현장에는 유대인의 지도자라는 것 때문에 로마 병사의 사령관이 나와있었다. 마침 아침기도가 시작되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때 불을 빨갛게 달군 인두가 아킵바의 등에 있고, 아킵바는 아침기도를 시작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놀란 사령관은 아킵바에게 말했다. ‘ 당신은 이런 참혹한 고통속에서도 기도를 할 수 있는가? “ 아킵바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 지금과 같이 이렇게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나 자신으로서 진실로 신을 사랑하는 나를 발견하는 기쁨뿐이다.


아킵바는 조용히 말을 마치자 그의 찬연했던 생명이 등불이 서서히 꺼져갔던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기독교 이야기 > 기독신앙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   (0) 2018.02.18
이삭의 생애(生涯)  (0) 2018.02.18
다윗 주변의 여인들  (0) 2018.02.09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0) 2018.02.07
다윗의 주변 사람들   (0) 2018.01.3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