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교회의 찬송타락


1. 찬송에 사탄의 역사


주후150년경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Alexandria of Clement)는

초기 기독교와 중세 기독교에까지 교회안에서 불려지는 찬송에 지대한 영향을 기친 사람이다.


1) 찬송을 금지시켰으며,

2) 악기의 사용을 금지시켰으며,

3) 음악과 관련된 것을 불살라 버렸다.

 

그의 찬송에 대한 편견으로 인하여 찬송의 역사가 침체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사단의 방해공작은;

1) 성도들이 믿음 없는 찬송을 부르게 되며,

2) 세속적 형태의 음악을 부르게 하며,

3) 음악 위주로 찬송을 부르게 하고,

4) 결국은 교회에서 찬송소리가 끊어지게 되며,

5) 사단의 찬송을 부르는 격이 되게 하였다.


 

2. 찬송의 암흑기(주후 363-1517년)


1) 라오디게아 종교회의(The Council of Lodigea) (주후 363년)

교회에서 정규적인 임명자 외에는 일반인은 어떤 형태로든 찬송을 작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작곡도 못 하며, 찬송도 부를 수 없도록 결의하였다.


2) 브라가(Braga) 종교회의(주후 563년)

라오디게아 종교회의 내용을 재차 확인한것으로 교회가 임명한 신부들,

그리고 깨끗하다고 판단되는 어린이들만 찬송을 부를 수 있게 했다.

이로서 평신도에 의한 찬송의 길이 막혀 버렸다. (빈 소년합창단, 파리 나무합창단 등장)


3) 유익한 영향; (1) 성가학교를 세워 음악이론 정립,

                         (2) 아름답고 신비한 단선율 성가인 그레고리안찬트 창작.


4) 불유익한 영향; (1) 회중의 자유로운 찬송이 금지되고 성도들의 찬송이 떠나게 됨,

                             (2) 신부나 죄없는 어린이들만 찬송을 부르게 되어 찬송의 대중화 길이 막혔다.


5) 카스트라토(Castrato)제도 등장

18세기 바로크 시대에 유럽에 있었던 성악가제도로서

주로 남성소프라노 가수가 되기 위해 변성기가 되기 전에 남근(男根)을 제거하여

고음을 폭넓게 구사하게 하는 끔찍한 제도이다.

당시에는 이탈리아에만도 1년에 4천여 어린이들이 남근제거를 하였다.


6) 신부들과 깨끗한 어린이들에게만 찬송이 허용됨으로

여자는 무대에 나가서 찬송을 부를 수 없는 상황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광복목사의 교회음악세미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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