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료하는 방법


숨겨진 상처가 치유되기 원하십니까?


시편 147 : 3 

시편 147장  3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오늘 저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살펴보면 그 분께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을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질병들을 치유하시는 모습을 볼수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대하고 병을 치유하시는 일에는 일정한 유형과 원칙들이 있는것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원리를 5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우리 속에 있는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 번째 단계는 내면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우리의 상처를 인정하고 드러낼 때 비로소 치료가 시작됩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상처를 계속해서 내면 깊은 곳으로 숨겨두고 말하지 않는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편 39편 2-3절을 보면.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시편기자의 말은 상처를 마음속에 담아 두는 것은 마치 뜨거운 숯불을 가슴에 담아두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상처를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두면 결코 치료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면에 깊이 가두면 가둘수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폭발력은 더욱 증가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32편 3절에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속에 담아두어서는 안될것들을 담아두고 쏟아 내어야 할것들을 그대로 품고 있기 때문에 종일 신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잊기 위한 방편으로 술에 잔득취하고 마약에 취하며, 모르는 사람과 잠자리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무관심으로 일관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헐뜻고 비난합니다. 어떤 사람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마치 부풀어 오른 콜라병과 같은 것입니다. 어느날 뚜껑이 열리면 터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도 내적인 상처를 치유할수 없습니다. 

치유를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고통에 대하여, 두려움에 대하여, 분함에 대하여,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대한 복수심을 버리고, 죄의식에 대한 느낌에 대하여 솔직해 지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내놓는 것입니다. 치유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상처에 대하여 정직해 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구 앞에서 정직해 져야 하는 것입니까? 스스로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 상처에 대하여 인정하고 자백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이것이 솔직한 나의 감정과 느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상처를 내게서 사라지게 도와주옵소서!’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에 대하여 이미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상처받을 때 하나님은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 받은 상처들과 부끄러운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고백한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을 놀라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분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다만 우리들이 정직히 그분 앞에 고백하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2.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적개심을 가슴에 품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건강을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똑같이 갚아주겠다는 복수하는 마음을 반드시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복수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만큼의 감정적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은 우리가 상처로부터 회복되고 벋어 날것인가 아니면 똑같이 대항해서 복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상처를 치유받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복수하기를 원하십니까? 

한 가지 알아야할 비밀은 복수는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이 한을 품고 똑같이 보복을 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더 고통 가운데 빠져 있는것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으로부터 아픔상처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용서입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들은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실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들은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용서함을 받은 우리는 남을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용서받을 가치가 있기에 용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 그들을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내 자신이 분함과 복수심에 사로잡혀 가지고는 결코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장 17-19절을 보면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고통당하고 복수심에 불타며 정신적 감정적 혼란 상태에서 회복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처받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보셨다는 사실을 잊을 때,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나의 책임이며 내가 반드시 해결 하여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내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께 모두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상처와 아픔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때가되어 갚아주시고 공의를 실행하실 것입니다. 


시편 56편 8절을 보면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물, 우리가 학대 받은 것, 우리가 부당한 대우와 고통받은 것을 하나님은 모두 기록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적개심을 가슴속에 담아 두려하십니까? 상처를 품고 있으면 오히려 자신만이 괴로울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기억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래서 마음속에서 아픈 과거를 생각도 하지말고 지워버리십시요 과거에 매여있는것은 감정적 에너지만 낭비할 뿐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땅에 오셔서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 분은 피박을 받을 때, 똑같이 복수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머리, 얼굴,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삶 가운데 가장 깊은 상처는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내적상처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배신을 당하셨으며, 거절을 당하셨으며, 미움을 받으셨고, 불공정한 재판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번에 대적자들을 심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저들이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상처로부터 치유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5절에서는 이러한 상처가 끼치는 영향력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분개함과 복수심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독소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쓴뿌리를 품을때 우리 주변에 있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가까이에 있는 식구들에게까지 계속 전가되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슬을 끊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녀들에게까지 전가되어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불행을 멈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는 마치 녹음기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는 오감을 통하여 느끼는 모든 경험들을 기록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놀라운 녹음기와 같은 것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옳은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진리든 거짓이든 우리의 머리는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입력이 되는 곳입니다. 스폰치가 물을 빨아들이듯 모두 흡수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의 머리는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짓된 것도 사실로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으면, 믿는 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 어떤 가정환경과 어떤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느냐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린시절 부정적인 말과 엽기적인 가정에서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면 그 모습이 여러분이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었어도 내면 깊은 곳에 그대로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을 치유할 수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그분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까? 

먼저 생각하는 방법을 바꾸심으로 우리를 변 화시키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나의 상처를 치유해 주십시오. 

아픔으로 남아있는 그래서 지금도 상처를 주는 과거의 기억을 치유해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워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면 채울수록 우리 가운데 남아있는 과거의 아픈 기억들은 더 많이 지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공부에 참석하는 것이 필요하며, 큐티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목장이나 그룹 성경공부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더 가까이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더 많이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우리의 아픈 기억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체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죄많은 우리가 죄사함받고 의롭게 될 수 있는것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공로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4. 미래에 초점을 맞춰야만 합니다. 

관심을 과거에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돌리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성행하고 있는 많은 상담치료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문제와 그와 관련된 것들을 주로 다룬다는 것입니다. 만약 상담자가 기독교인이 아니거나 그들의 치료를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성경적 원리를 적용하지 않는 치유상담에 참여하게 되면 오히려 지금 이 순간보다 더 힘든 처지에 처하게 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방법을 멀리하십시오. 과거에 초점을 맞춤으로 우리를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곤 합니다. 만약에 당신이 뒤로만 간다면, 그래서 과거에 대한 기억만을 떠올리게 한다면 당신은 그것에 붙잡히고 말것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과거로부터 멀어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미래에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데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단계를 우리는 

욥기 11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이 지나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라는 것입니다. 같이 대항하고 복수하려는 마음을 포기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놓아주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옳거나 그른 것에 상관없이 우리는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이 치유받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임재하도록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주님이 숨겨진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악한 일로부터 해방이 되도록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로 모든 상처에서 회복되기를 원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상처를 보지 말고 우리의 치료자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상처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분을 품지 마시고. 우리의 치료자인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라파! “나는 너를 고치는 하나님이라.” 그 분이 우리의 유일한 해답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우리로 하여금 이 상처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어질 것입니다.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자신을 달팽이 모냥 껍질 속으로 숨거나 감추지 마십시오. 용기를 가지고 삶을 다시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희생자야”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앞을 바라보십시오. 두려움을 버리고 당당히 서십시오. 내 기억 속에서 모든 환난과 아픔들이 사라지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생각을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는다고 말하고 다짐한다고 과거를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 하는 다짐은 전혀 효과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계획과 목적에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획과 목적을 위하여 당신의 시간을 쓰고 헌신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미래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다.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는 현재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매여 있어서도 안되거니와 과거에 매여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나일뿐이지 지금의 내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랬을런지 모르지만 미래의 나는 그와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반복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마음속에 숨어있는 온갖 상처들이 나로부터 떠나게 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단계들을 따라 행동으로 옮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깊은 곳에 있는 상처를 인정하고 주님앞에 드러내십시오. 
*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십시오. 
* 하나님의 말씀으로 상처를 채우십시오. 
* 미래에 초점을 두십시오. 

우리가 이것을 실행으로 옮길 때, 우리는 잠언 4장 15절 말씀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피라” 
우리는 절대로 혼자 힘으로 회복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교회는 이런 분들을 돕기 위해 항상 준비되어있습니다. 대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상처를 받으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술과, 마약, 자기 학대, 다른 사람을 향한 비난이나 독설을 퍼붑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방법도 상처로부터 우리들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은 고통을 해소하도록 일시적인 진통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진통제들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중독성을 가집니다. 절대로 그것들이 문제들을 해결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것들이 주는 환상과 일시적인 기쁨으로부터 깨어나면 사람들은 오히려 외로움 가운데 있게되고, 더 부끄러움과 허탈한 가운데 절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시방편적인 방법들은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삶자체를 그리스도에게 드리시기 바랍니다.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라” 하나님만이 해답입니다. 


5. 다른 사람들을 도우십시오. 

과거의 상처로부터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다섯 번째 과정은 다른 사람을 도웁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고통을 극복하셨다면 그리고 여러분을 얽매었던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면 그 경험을 다른 사람을 돕는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다른 사람을 돕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은 선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의 고통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장 4절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바로 교회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이 행해야할 사역입니다. 삶에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아무도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분과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 상처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데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오히려 그상처를 통하여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이전에는 상처가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것이였지만 이제는 이 상처가 나를 주님앞으로 더 가까이 올라가게하는 돌계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상처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임받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와같은 상처를 안고 고통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시기 바람니다. 

히틀러 정권에 의하여 강제로 추방당한 독일의 신학자 폴틸리히가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로 부임을 오게 되었습니다. 

폴틸리히교수는 그당시 철학과 신학 심리학 부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런 폴틸리히 교수에게도 약점이 있었습니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억센 독일식 액쎈트가 그대로 튀어나오는 우스광스러운 영어발음을 하였습니다. 그의 강의 시간내내 학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한학기 내내 이런일이 계속되자 폴틸리히 교수는 강의에 점점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사랑하는 조국으로부터 추방을 당한 망명객 이였습니다. 

낮선땅에서 본의 아니게 망명생활을 해야하는 어려움속의 학생들의 비웃음은 견딜수가 없었고 평생 쌓아온 학문적 업적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것 같았습니다. 그는 한없는 좌절 속에 모든 의욕을 잃게 되었습니다. 2학기가 되자 강의실 앞에 서기만하면 두렵기만하고 벌벌 떨렸습니다. 강의는 안할 수 없고 하자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기분 이였습니다.

 이로인하여 틸리히 마음에는 병이 생겼고 한참 절망속에 헤메고 있었는데 우편함에 롤로메이라는 학생에게 옆서가 한 장 날라왔습니다. 선생님 힘을 내세요 우리가 웃는것은 선생님의 발음때문이지 강의 때문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너무나도 휼륭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웃더라도 힘을 내십시요 우리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날 저녁 카드를 다읽은 틸리히 교수는 눈물을 펑펑쏟으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한사람이 한사람의 아품을 알아주는것도 이렇게 놀라운데 죄인된 인류의 아품을 치유하러오신 주님의 역사는 얼마나 놀라운것인가? 그날 폴틸리히 교수가 뜨거운 가슴으로 써내려간 책이 그유명한 조직신학 2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학생과 폴틸리히 교수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아직도 자신의 상처를 내놓지 못한분이 게십니까? 여러분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까? 머릿속에 있는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체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옛사람의 습관에 붙들려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용기를 가지고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오늘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기독교 이야기 > 영성.치유.회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격을 읽는 기술  (0) 2018.02.12
자아에 관한 이해의 핵심  (0) 2018.02.06
인간관계 갈등을 유발하는 10가지 사례  (0) 2018.02.02
영성훈련의 종류   (0) 2018.01.24
열등의식의 치유  (0) 2018.01.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