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예언서와 선지자들


율법서에 뒤이어 나오는 히브리어 성경의 두 번째 큰 구분은 예언서이다.

이 예언서는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라는 두 부류의 책으로 구분된다. 전기 예언서에 들어가는 책들은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이다. 「룻기」와 「역대 상하」는 "성문서"라고 불리는 세 번째 큰 구분에 속한다.


이 해설이 다루고 있는 후기 예언서는 "대" 예언서로 알려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열두 예언서," 곧 "소" 예언서라고도 하는 「호세아」에서 「말라기」에 이르는 책들로 구성되었다. "대" 예언서나 "소" 예언서라는 칭호에서 "대"와 "소"는 책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지 그 중요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70인역본에서나 대부분의 번역 성경에서는 「예레미야애가」와 「다니엘」이 예언서와 함께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은 예언서와는 다른 성격의 책이기에 이 자리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이 책들에 있는 '개론'과 '성경책 각 권의 이름과 순서'에 대한 해설을 보라).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 책들은 성문서에 속해 있다.


선지자란


고고학적 증거나 성경의 자료들(왕하 10:19)은 고대 세계에서 선지자들이 여러 방면에 걸쳐 두루 활약하였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약에 등장하는 선지자만을 다루려고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선지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곧장 미래를 예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머리 속에 떠올린다.

성경의 선지자들도 종종 장래 일을 예고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런 예고가 선지자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선지자"란 낱말은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신의 뜻을 사람에게 해석하는 신의 대변인을 가리킨다.

구약에는 선지자를 일컫는 용어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님의 사람"(왕상 17:18,24)을 포함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왕하 4:9)이나, "선지자"(왕상 13:11)나, "신에 감동하는 자"(호 9:7)나, "선견자"(삼상 9:9-11) 등이 있다. "선견자"란 말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식별할 수 있는 자를 암시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선지자란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히브리어에서 선지자를 가리키는 말('나비')은 분명 "부르다"란 뜻의 아카드어에서 온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수동태인지(그럴 경우 뜻은 "부름 받은 사람"이 된다) 능동태인지는(그럴 경우 뜻은 "누군가를 부르는 사람"이 된다) 확실하지 않다. 성경의 선지자들이 무슨 일을 하였는지를 자세히 알고 싶으면 모세로부터 시작되는 성경 본문 자체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신 34:10-12를 보라).


선지자의 역할


「출애굽기」는 두 구절(4:14-16; 7:1-12)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 앞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 때 모세의 형 아론이 그의 선지자로 활약하고 있다. 모세가 말을 하면 아론이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사람이다. 구약은 여러 곳에서(삼상 3장; 사 6장; 렘 1:2-9; 겔 2-3장; 암 7:14-15) 선지자를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모두 자기들이 하는 말이 자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계시라고 확신하고 있었다(삼상 3:19-21; 왕상 22:19; 렘 1:9,12; 암 1:3; 3:7). 초기에 선지자들은 종종 하나님의 영(민 11:24-29; 삼상 19:19-24)의 힘에 붙들리는 "황홀경"에 취하는 경험을 하였다(삼상 10:10,13). 나중에 선지자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영에 충만하다거나 하나님의 영의 힘에 붙잡혔다고 단호히 선언하였다(겔 2:2; 11:5; 미 3:8).


초기 이스라엘 예언


구약에서 선지자로 불리는 주요 인물 중에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미리암과 드보라와 사무엘과 나단과 엘리야와 엘리사가 포함된다.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선지자로는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와 갓과 실로 사람 아히야와 스마야와 훌다가 있다. 「신명기」는 모세를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간주하면서 예언 운동이 시작되는 뿌리가 모세로부터라고 말한다(18:15; 34:10-12). 모세 이후 중요한 인물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이다(렘 15:1).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한두 세기 가량 지속되었던 느슨한 형태의 지파 조직(「여호수아」와 「사사기」의 개론을 보라)에서부터 사울이 다스리기 시작하던 왕조(약 주전 1030-1010년)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위치하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으로 삼는 기름을 부었던 자가 바로 사무엘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무엘은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들의 요구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경고하기도 하였다(삼상 8:11-18).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을 때(삼상 15:10-34) 사무엘은 다윗을 사울의 후계자로 삼아서 기름을 부었다(삼상 16:1-13).


그 때 이래 선지자들은 왕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때로는 왕의 조력자가 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왕조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그 왕국이 영원히 존속되리라고 약속하기도 했지만(삼하 7:11-17; 대상 17:11-15), 동시에 다윗이 밧세바와 간통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살해한 것을 두고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삼하 12:1-15). 그런 영향력을 활용해서 솔로몬을 다윗의 후계자로 삼는 일에 나서기도 하였다(왕상 1:11-40). 왕국이 분열되어야만 했을 때 실로의 선지자 아히야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첫 번째 통치자에게 기름을 부었다(왕상 11:26-39). 유다 출신으로 이름을 알 수 없던 한 선지자는 바로 그 왕이 벧엘에 금송아지로 만든 우상을 세웠다고 비난하였다(왕상 12:32-13:32).


참으로 「열왕기 상하」는 긴 부분을 할애하여 아합 왕의 통치(주전 874-853년) 때부터 시작된 주전 9세기의 북 왕국에 예언이 꽃을 피웠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사람이 엘리야(왕상 17-19; 21장)와 그 후계자 엘리사(왕하 2-9장; 13:14-21)로 이들은 모두 바알과 아세라 숭배와 그것을 추종하며 이방 신을 섬길 것을 주창하였던 선지자들에게 맞서 대항하였던 선지자들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선지자들이 우상숭배를 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악하다고 판단된 왕조를 개혁시키고자 왕조를 무너뜨리는 일에도 직접 관여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상 생활 속에서는 왕이 남용하는 권력에 맞서서 힘없는 자들을 변호하는 일에 적극 나서기도 하였다. 때로는 주변 여러 나라들의 정치에 깊이 관여하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다. 이들은 "선지자의 제자들"(왕하 2:3,5)이라고 불리는 단체나 모임에 속했던 자들이다. 초기 사무엘 시대에는 선지자들이 무리를 지어서 몰려다니기도 하였다(삼상 10:5-13).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엘리야나 엘리사가 이같은 선지자의 무리들의 동의나 지원을 받았음을 지적하고 있다(왕하 2:3-18; 4:1,38; 5:22; 6:1). 그렇지만 또 다른 경우, 이믈라의 아들 선지자 미가야 같은 사람은 자기 개인에게 닥치는 신상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왕을 섬기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던 선지자의 무리들에 정면으로 맞섰다(왕상 22:1-29; 대하 18:2-27). 이 이야기에서 미가야가 진실을 선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략 400명에 이르는 다른 선지자의 무리들은 거짓을 말했다고 보아야 한다. 곧 선지자의 무리에 속했다는 사실 자체가 예언의 진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다른 신을 좇으라고 강요하거나 마술 행위를 주창하거나 실현되지 않은 예고를 하였다면, 그런 선지자들은 정녕 배척받아야만 하였다(신 13장; 18:9-15).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선지자들이 서로 상반된 메시지를 전할 때 누가 참된 것인지를 식별해야 되는 문제가 있었다.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지는지의 여부를 가지고 참과 거짓을 구별한다는 것은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했다. 선지자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이 그것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되기까지에는 한평생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렘 28장).


정경적인 예언자


주전 8세기 중엽, 그리스에서 호머가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막 써냈던 직후, 이스라엘 예언에서는 새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이 현상은, 등장하자마자 전 지역을 지배하게 된 앗수르 제국의 부상과 동시에 나타났다. 최초로 선지자의 메시지가 책으로 보존되게 된 것이다. 이들 후대의 선지자들을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던 사람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우리는 종종 "문서 예언자", "고전적인 선지자", "정경적인 예언자"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 선지자들은 더 이상 특정 왕이나 그 밖의 개인들의 운명에 대해서만 선포하지 않았다. 대신 이스라엘과 유다 전체를 상대로 선포하였다. 이 점에서도 그들은 초기 선지자들과 구별된다. 그 선지자들이 개인을 상대로 말씀을 선포할 때에는, 그들이 왕이건, 귀족이건, 제사장이건, 다른 선지자이건, 일반 백성이건, 하나님께서 그 당시 국제적인 정세에 깊이 관여하고 계신다는 인식에서 그렇게 하였다. 초기에 등장했던 선지자들마냥 그들도 왕조를 비난하고 왕조의 멸망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왕조에 맞서는 어떤 정치적인 행동에 능동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때때로 왕을 세우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지적하였다(호 1:4; 7:3-7). 그렇지만 일부 선지자들은 남북 왕국에서 둘 중 하나나 두 왕국 모두가 멸망할 것을 선포하는 것을 자기 사명으로 삼기도 하였다.


선지자들은 지도자들과 시민들에게 한 가지 중심되는 본질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으며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보호했으며,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다. 특권에는 책임이 따랐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였고, 자기 주변에 있는 자들을 보호해야 하였다. 선지자들이 지적한 문제는 여러 가지이다. 예배, 사회정의, 말과 행동의 진실, 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선지자들이 선포하였던 특별한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에게 있던 주된 관심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시내 산에서 모세와 함께 맺었던 언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시행하라고 촉구하는 데 있었다.


예언서의 문학적 형태


예언서의 문학적 형태는 참으로 다양하다. 환상이 있고(예를 들어, 암 7:1),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는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가 있으며, 이방 민족에 대한 심판도 있다(렘 46-51장; 겔 25-32장). 재판정에서 이루어지는 다툼이나 법적인 소송 형태로 된 구절도 있으며(미 6:1-5), 장례식의 애도문(암 5:2), 찬양(사 12장), 노래(사 5:1-3)도 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부르시는 기록이나(사 6장; 렘 1장; 겔 1-3장), 상징 행동을 전하는 이야기도 있다(렘 13:1-14; 겔 5:1-4). 예언서 속에서 이런 메시지들이 어떤 원칙을 따라서 배열되었는지 항상 분명하지는 않다. 어떤 때는 이방 민족에 대한 심판 메시지에서 보듯이 공통되는 주제에 따라서 여러 구절들이 하나로 묶인다. 또 어떤 때는 동일한 역사적 상황에 관한 메시지가 하나로 연결되어 나올 경우 연대적인 순서에 따라서 배열되기도 한다(사 7-9장). 그렇지 않은 경우, 시간적으로는 서로 아무 상관이 없는 메시지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예를 들면, 어떤 심판 메시지 뒤에는 동일한 청중에게 선포되었던 구원의 메시지가 뒤따라 나오기도 한다(미 3-4장). 선지자들의 메시지가 서로 다른 때에, 서로 다른 정황 중에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좇지 않을 때 선지자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해 있다고 선포하였다. 백성들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올 때에 선지자는 희망과 위로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역사적 배경


예언서의 내용은 그 역사적인 맥락을 세심하게 주의하면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굿뉴스 스터디바이블에 수록된 각 예언서에 대한 개론은 가능하면 각 예언서가 등장하게 되었던 상황을 개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각 책의 첫머리에 실린 구절은 바로 그런 상황을 알게 해 주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두 구절은 각 책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이며, 누구에게 선포되었고, 언제 선포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사 1:1; 호 1:1). 소 예언서 중 「요엘」, 「오바댜」, 「요나」, 「나훔」, 「하박국」, 「말라기」 여섯 책은 선지자의 이름 외에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책의 역사적 배경은 정확하지 않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예언서의 머리말이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언급하는 경우라도, 선지자가 언제, 무엇 때문에 예언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설정하기 위해서는 책의 특정한 구절들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이 굿뉴스 스터디바이블에 수록된 각 책의 주요 단락에 대한 요약은 이런 특정한 주제까지도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주전 8세기에서 4세기에 이르는 동안 고대 서아시아 지역을 차례로 지배하였던 앗수르, 바벨론, 바사라는 세 제국의 맥락에서 검토될 수 있다.


앗수르 시대


네 명의 선지자들이 8세기 앗수르 시대에 살았다. 초기에는 아모스와 호세아 두 명이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예언을 선포하였다.

나머지 두 사람인 예루살렘의 이사야와 모레셋의 미가는, 남 왕국 유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았다.


바벨론 시대


나훔과 하박국과 스바냐는 주전 7세기에 속한다. 「나훔」은 주전 612년에 파괴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앗수르 시대의 종말을 나타낸다고 말하면서 공박하고 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사람들이 잔악하게 전쟁하는 것을 심판하시지 않고 내버려두셨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정의에 관련된 수수께끼에 대해서 묻고 있다. 그러면서 바벨론 제국의 시작을 표시하고 있다. 스바냐는 아마도 주전 621년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이전에 벌어졌던 유다 사회 내부의 불의를 심각하게 비난하고 있는 듯하다. 예레미야도 7세기 말부터 6세기 초까지 예언하였기에 바벨론 시대에 속한다. 그런 까닭에 예레미야는 주전 586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다의 패망을 증언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속하는 오바댜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바벨론 사람들 편을 들었던 에돔 민족을 비난하고 있다. 6세기에 속하기는 선지자 에스겔도 마찬가지이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자들을 향해서 자기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이사야」 40-55장도 주전 538년 고레스 대왕이 바벨론의 포로였던 유다 사람들을 고향으로 귀환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기 직전에 바벨론의 포로들을 대상으로 선포되었다. 사 56-66장은 주전 515년 제2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려던 시기에 귀환한 포로들에게 선포되었다(이 부분의 저자에 대해서는 이사야서의 개론을 보라).


바사 시대


학개」와 「스가랴」는 바사 시대의 것이다. 주전 520년 그들은 유다 백성들에게 성전을 다시 세울 것을 고무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시작하였다. 「말라기」는 대체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이 있기 바로 얼마 전인 5세기 중반에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슥 9-14장의 배경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을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를 5세기로 짐작하고 있다. 「요나」와 「요엘」의 연대를 결정하는 문제를 놓고서도 해석자들 사이에는 큰 견해 차이가 있다(각 책의 개론을 보라). 예언이 막을 내리게 된 때는 그리스 문명의 "황금기"(주전 500-400년)와 같은 시대이다. 이 때 이후, 예수가 탄생하기 전 대략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서는 더 이상 예언이 들리지 않았다. 신약의 예언에 대해서는 선지자를 보라.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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