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모습!

 

당시 로마유학파 지식인인

요셉푸스라는 고대 사가가 기록한 부분인데,

갈릴리 지역의 군대장관이었으나,

로마군의 포로로 잡히자 죽이기를 아까워 한

베스피아누스 로마사령관이 살려주어서

유대고대사를 역사에 남기게 된 것이다.

 

그리스어(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잘하므로 로마군은

그를 통역관으로 쓰게 된다.

 

그가 전쟁의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긴 것이 바로 "요셉푸스"라는 책이다.

 

(본 글은 미국 하바드대학이 소재한

영어판 번역본 요셉푸스 기록발췌내용입니다.)

 

"한편 유대인들은 모든 출구가 막혀

성밖으로 도망칠 수 있는 모든 희망은 사라져 버렸다.

기근이 점점 더 심해저 가족과 식구들이 죽어갔다.

 

옥상에는 못먹어서 완전히 탈진한 여자와

간난한 아이들로 북적거렸고,

길에는 노인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아이들과 어른, 그리고 청년들은

못먹어서 부은 얼굴로

시장거리를 유령처럼 돌아다녔으며,

아무데나 쓰러져 죽어갔다.

 

'마리아'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너무 못먹어서 자신의 아들을

잡아먹고는 남은 부분을 숨겨두었다.

 

강도들이 구운 구수한 냄새를 맡고는

음식을 달라고 협박했다.

 

나중에 사람의 고기라는 것을 알고는

강도들은 기겁을 하고는 그집을 도망쳐 나왔다.

 

이 부분은 예루살렘 멸망 당시의 일부분이다.

 

도시의 강도들은 칼이 잘드나

시험하기 위해 죽은 시체나

숨이 붙어있는 사람에게 찔러 보았으며,

살려달라고 경멸하는 자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같은 동족인 강도에게

죽은 자가 더 많을 정도였다.

 

시체가 도시안에서 썩어 냄새가 진동하자,

처리하질 못해 강도들은 성밖으로 던져버렸다.

 

성 안 주민들이 금화를 삼키고

탈출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로마군과 강도들은 금을 얻기 위해

산 사람의 배를 갈라서 금화를 끄집어냈다.

 

어떤 때는 하루에 2,000명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로마군의 반란 중, 죽어서 갇힌 성에 탈출을 못하고

성밖으로 운반된 시체는 무려 "115,880명"

 

특히 힘없는 하층민은 죽어서 성밖으로 던져졌는데

그 수가 무려 600,000명이다.

 

시체를 옮기다가 힘들면

큰집에다가 차곡차곡 쌓은 후 문을 잠갔다.

 

그리고 성안의 풀과 소똥도

먹느라고 남아있지 아니했다.

 

이러한 처참함은 로마군의 동정심을 자아냈다.

나머지 17세 이상은 포로가 되어

이집트의 작업장에서 중노동에 평생 붙들렸다.

 

그리고 노예로서 선물로 보내지고...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거나, 검투사가 되어 죽어갔다.

 

포로를 구분하여 노예로 분류하는 하루 동안에

11,000명이 배고파 굶어 죽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주지 않는

로마 간수를 저주하며 죽기도 했고,

음식 먹기를 거절하여 죽기도 했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자

전투 중 포로는 97,000명이었다.

 

도시주민 전체의 총 사망자수는

무려 1백 10만명이었다.

(울산시 인구 전체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됨""")

 

그 당시는 유월절 축제 준비기간이라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과 여행객이 있었는데,

예루살렘에 무려 2백 70십만명 정도가

구름같이 몰려 있었다.

 

그리고 유대인이 로마인에 대한 반란으로

도시에 운집한 인구의 무려 50% 정도가 죽은 것이다.

 

로마군이 어느 지하동굴을 수색하자

2000구의 시신이 나오기도 했다.

 

로마병사들은 악취가 고통스러워 피했고,

다른 로마군은 시신속에서 금은 보화를

찾기 위해 뒤지고 있었다.

 

주후 73년 유대총독 플라비우스 실바는

유대 전체의 반란을 진압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최후의 한곳에서 반란을 저항하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마사다"라는

해발약600미터의 절벽으로된 천연요새였다.

헤롯대왕도 자기의 은신처 왕궁을 건설한 곳이다.


3년 동안 저항하였으나

마침내 로마군은 흙을 부어 토성을 쌓아 점령하였다.

 

1000명이나 되는 유대인은

(정확히 960명이라 함)

포로가 되어 고문을 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가느니 차라리

각자가 제비를 뽑아 죽이는

자살극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예루살렘은 주후 70년 9월 26일에

로마군에게 완전히 함락되었다.

 

하나님은 이때 멸망의 징조도

보여주지 아니하고 가만히 계셨을까?

 

당시의 기록을 보자.

 

1) 수도 도시위에 칼처럼 생긴

별 하나와 혜성이 1년동안 계속 떠있었다고 한다.

2) 주후 70년 3월경 유월절 축제기간 중

아주 밝은 빛이 성전 주변과 동물제사 드리는

제단 주위를 낮과 같이 비쳤다 하며,

3) 유월절 제사에 바치려던 암소가

성전 뜰 한가운데서 새끼양을 낳는

기괴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4) 성전 안뜰 황동문은 어른 20명이

밀어야만 겨우 열리는 문이었는데,

분명히 나사못과 빗장을 치고 했는데도

저절로 열려있는 것이다.

5) 예루살렘 하늘위에 해가 지기 전에

전차와 대 군대가 구름처럼 대부대를 만들어

도시를 포위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들이 많이 있었다.

6) 반란 4년 전 주후 63년,

제수라는 사람이 나타나 7년 5개월동안

밤, 낮, 골목,시장, 거리에서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과 성전아

너를 대적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 우울한 멸망의 저주만 외쳤다고 한다.

 

화가 난 제사장들 지도급 인사가

그를 채찍질함으로 뼈가 부러져

드러나도록 맞았음에도

살려달라 애원도 아니했단다.

자기에게 음식을 주는 자도

축복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로마군의 투석기의 돌대포를 맞고 즉사했는데,
숨이 끊어지면서까지 저주의 말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님을

죽이고도 회개를 아니하자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로마군의 손에 붙이신 것이다.

 

주전 582년, 유대나라 2지파가 바빌로니아에,

주전 722년, 이스라엘 10지파가 앗시리아에 망하듯이,

 

구약 시대 당시엔 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대 나라가 70년만에 돌아오는 조건으로 망했음에도,

하나님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등

대예언가들을 보내주시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의 아들까지도 죽였으니

하나님이 위의 징조를 보여주므로 경고하신 것이다.

 

그러자 최후에는 온 유대 나라가

로마군에 의해 쑥대밭이 되어 망한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이 도시로 세워진지

1468년 6개월만에 완전히 처음으로 멸망한 것이다.

 

그리고 고대 아브라함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보면,

무려 2177년 만에 망한 것이다.

 

로마군 사령관인 티투스는

"성전에는 불을 지르지 말라고 했으나,

흥분한 로마군은 말을 듣지 아니하고

못들은 체하면서, 성문에 불을 놓았다.

그러자 사방에 금과 은이 녹아서

불길은 삽시간에 퍼졌다고 한다.

 

- 요셉푸스 기록 발췌내용 -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