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창조한 목적

 

성경을 읽다보면(특히 구약) 하나님이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물론 직접 칼을 휘둘러 죽인건 아니지만)

대표적인 사건이 물의 심판이다.

도대체 얼마나 악하였는지 구체적으론 알수 없지만 땅까지 부패했다는 것으로 보아 상상을 초월했을 정도로 예측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동물들과 어린아이까지 수장시켰다는것은  정말 끔찍하다하지 않을수 없다.

이런 잔인한 사건 때문에 하나님을 혐오하고 기독인들을 배척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나님은 악한 신 이라고 결론을 내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인간과 동물은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순수하게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있다.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없는 영원한 분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상대적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영원이란 개념은 오감으로 느낄수가 없기에 상상력을 동원할 수 밖에 없지만 깊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상대적(물리적?) 개념은 창조후에 시간과 공간의 물질세계가 존재하면서 생겨났다.
창조세계가 영원전 세계에서 나왔으므로 피조세계가 영원세계보다 앞설수 없다.
창조의 파편이 영원전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뛰어넘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있다,없다. 크다,작다. 많다,적다. 선하다,악하다. 이런 상대적 개념들은 오직 시간과 공간의 물질세계에서만 존재한다.

(영원세계는 시간과공간을 초월함)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냄새도 없고 만질수도 없으며 시집,장가 가는 것도 없다고 예수님은 말하였다.
하나님은 수를 셀 수가 없는데 하나님은 몇 명 이냐고 질문하면 뭐라고 답해야 하는가? 
과연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규정지어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정 할수 있다.
하나님이 "나는 전능하다"하면 전능자가 되는것이고 '나는 질투의 하나님이다" 하면 질투의 하나님이 되는것이다.
하나님이 '나는 악하다'하면 악한 것이고, "나는 선하다"하면 선한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정 할 수있으며 인간의 상대적 개념으로 판단할 수 없다.
하나님이 나는 악하다 한적이 없는데 인간이 하나님은 악하다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아직도 절대적이란 말의 뜻을 모르고 비교대상이 없는 하나님이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누구보다 악하다는 것인가?  설마 자신보다 악하다는 것인가?
그러면 어리석은 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상대적인 개념으로 설명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어느날 김모씨가 자신의집 처마밑의 말벌집을 발견하고 일꾼을 시켜 벌떼를 가스불로 죽이고 벌집을 제거하게 한다.
물론 무서운 말벌로 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김씨는 악한사람 인가? 선한사람 인가? 혐오 받아야 할 사람 일까?
물론 말벌 입장에선 악한행위라고 반문 하겠지만 말벌도 객관적으론 생존을위해 다른 벌을 공격해서 죽이기 때문에 그럴수 없다.
어차피 이해하기 쉽도록 설정한 가설이니 자신을 말벌이나 인간으로 생각지 말아야 이해하기 쉽다.


만일 김씨를 악한 사람으로 혐오하려면 자신은 바퀴벌레뿐 아니라 각종세균도 죽여선 안된다.(같은 피조물이기 때문)
정말 살생을 하지 않는 성인들이야 하나님을 잔인하다 욕 할 수있지만 일반인이 악하다 욕하면 자신도 악인임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가히 누워서 침뱉는 겪이라 할 수 있겠다.
K씨가 강도짓한 L씨를 강도라고 욕을 하려면 자신은 강도짓을 한 적이 없어야 한다.
사람을 죽인 사람이 다른 살인자를 악한 놈 이라고 혐오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아직도 자신은 선하고 하나님은 악하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기적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인간보다 200억배(?)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어리석게 자신의 피조물을 이유없이 막 죽이겠는가?
인간도 목적이 있어야만(물론 일부 막 죽일때도 있음) 살생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겠는가?
전쟁과 자연재해의 재앙으로 인간을 고통스러워도 관여하지 않는것은 어떤 목적이나 이유가 있지 않을까?
부족한 인간도 목적을 위해서 살생을 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이유없이 힘들게 창조한 피조물을 태어나고 죽게하진 않을것이다.


하나님은 왜 좀더 살기좋은 환경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모르고서는 의문의 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한가지 영원한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선 윤리나 도덕적 고정관념에서 얽메이지 않는 우주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인간의 삶과 죽음도 억울하게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면 정말 티끌만도 못한것이다. 

하루살이를 생각해 보면 그들의 기준에서 단 1초를 사는것과 10시간을 사는것은 엄청 큰 차이 이겠지만 우리의 기준에선 어떠한가?
하루를 사는 인간과 백년을 사는 인간의 차이는 우리에겐 엄청난 차이지만 하나님의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떠할까?
정말 영원세계와 비교하면 수백억년의 피조세계의 시간은 순간 일 수 밖에 없다.


청소년기에는 세월이 느리게 느껴지지만 청년기를 지나 중년만 되어도 지나온 세월이 순간임을 알게된다.
이 세상 역사도 진행중이라 길게 느껴지는 것이지 세상 끝날때는 한 순간이고 찰라임을 모든 피조물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시간속의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악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죽게 한다고해서 악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며 모순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떠했는가?
인간을 고통받고 죽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도 인간의 죄를 위하여 지독한 고통의 죽임을 당했다.
해아래 어떠한 죽음이 저주를 덮어 씌움받고 나무에 달려 죽은것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도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사랑의 확증이라고 선언하였다.


이제 서론을 마치고 하나님의 뜻과 세상을 창조한 목적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다.
참고로 본인은 신학자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교인도 아님을 밝힌다.
물론 변변한 성경지식도 없고 대학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부끄러운 사실을 밝히는 이유는 어쩌면 거부감을 느낄만한 내용이 있기에 그것을 최소화 하기위함 일 것이다.

(문장력이 많이 부족하여 글을 읽을 때 불편한 점도 많을 것이기에 미리 사과 드립니다)


신기한 것은 이런 하나님의 목적을 주변에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유명한 목사들이나 성경을 수 십번 읽고 성경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 조차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니 성경진리는 사라지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충격과 공포의 시대를 살고있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단순 무식한 사람도 이해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성경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모르는 것일까?
이것도 성경에 예언된 하나님의 뜻 이었을까?


각설하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다음과 같다.
태초에 하나님은 하나님의나라(천국)를 계획 하였다.
그리고 말씀으로 창조 하셨는데 이 세상은 천국에 대한 모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를 건립하기 위해선 크게 3가지의 주요 요소가 있는데 통치자와 영토 그리고 백성이 그것이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백성이 될 피조물을 로봇이나 단순한 일차원적 생물을 원치 않으셨다.
수준 높은 백성을 원하셨던 것이다. (세상 독재자 같았으면 다스리기 쉬운 동식물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 대상이 바로 우리 사람이다.

하나님은 무슨이유인지 자신의 형상(여기서 형상은 육체나 외형이 아님)대로 동물보다 우월한 사람을 만드셨던 것이다.


그런대 아쉽게도 이 인간의 본성이 교만하여서 천국 백성으로 적합하지가 않았다.
문제가 많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백성을 원하셨는데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질 할게 뻔했다.
이 상태에서 천국에 가면 하나님은 무시 당하고 인간들은 자기 자랑으로 난장판이 될 것임은 저능아도 예측 할 수있다.
교만이 숨겨져 있을땐 아니라고 우길수 있지만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면 사실이기 때문에 변명할 수 없다.

곧, 창조 되자 말자 바로 사실로 증명이 되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령한 선악과를 뱀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아 진다고 꾀자 주저하지 않고 먹어 버렸다.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말에 넘어간 것이다.


창조주와 같은 위치가 되려는 것은 왕권시대의 반역죄와 비교될 수 있는데 능지처참의 대죄임을 역사로 알수있다.
숨겨져 있던 최초의 인간의 본성이 현실로 나타난 최초의 사건 이었다.
만일 인간의 본성이 선하고 겸손 했다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에 선과 악을 알게된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쫒겨나 쾌락과 고통이 공존하는 험난한 길을 걷게 된다.

반려견들이 교육이 없을때 사람으로 착각하는 경우를 흔히 볼수 있는데 적당한 교육(훈련)이 필요하며

원석도 마찬 가지로 잘 가공해야 귀한 보석이 된다.
인간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과정이 필요했고 훈련장소가 바로 창조된 현재의 피조세계라 할 수있다.

이 현실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살게 해주려고 창조한 세상이 아님을 깨닫아야한다.
이 계획을 못 깨닫으면 인간은 자신의 고통을 좌절하며 하나님을 원망 할 수 밖에 없을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인간세상을 고통스럽게 방치 한것이 아니였다.


니체의 말대로 신은 죽은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멋대로 착각했을 뿐이다.
니체의 유한한 지상낙원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훨씬 우월함은 두 번 말 할 필요가 없다.
이 세상을 창조하고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인간이 원했던 지상낙원을 건설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사도바울은 인생을 죄의 종 노릇으로 비유했다.

하나님은 백성될 인간을 죄의 고통속에서 겸손한 사람 즉,

죄의 권세에 가두어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백성으로 만드시려는 계획이 이미 창세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육신이 되어 저주받은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으시므로 인간을 구원하여 은혜를 찬양케 하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역사를 주관하고 섭리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친히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쳤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피조세계에는 하나님의 나라 보다 더 우월한 것은 없다고 감히 말할수 있겠다.


그래서 잘 생각해 보면 인간의 죄는 하나님나라를 이루는데 꼭 필요하므로 악한것도 아니고 선한것도 아니다.
죄는 단지 훈련에 필요했을 뿐이며(어리석은 자는 죄를 지으라는 말로 왜곡함)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죄는 천국건립의 중요한 요소이니 좀 더 깊이 생각 할 필요가 있다.


이 사회에서 죄가 성립 되려면 법(절대자가 없기 때문에 보편적 다수의 상대적 존재인 인간의뜻)이 기준점이 된다.

즉, 법이 하지 말라는 것을 어겼을 때 범죄가 성립 되어진다.

(실제 성추행이나 아동학대, 동물보호등 법이 없을땐 성추행을 해도 처벌 할 수 없었음)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선 절대자의 뜻이나 명령이 죄의 기준점이라 할 수있다.
강력한 권력의 왕국에서 왕의 명령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겠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된 것이고 그 형벌로 죽게 되었다.
만일 하나님이 따먹으라고 명령했거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면 범죄가 성립되지 않았고 지금도 살아있을지 모른다.
아담으로 시작된 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선악을 알게 되었고 죄중에 잉태되어 죄아래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다른 피조물과 달리 곧 우리 인간에게는 죄를 지을수 있는 능력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생겨났다.
선악을 모르는 다른 동물들은 무슨짓을 하더라도 죄가 성립되지 않기에 심판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을 때가 되서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진다.
(이것은 인간의 특권이며 동물은 죄를 지을수도 없을 뿐더러 깨닫을수도 없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그죄를 깨달음으로(회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구속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반드시 존재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정말 깨끗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빛을 비추시지 않아서 어둠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둠속에서는 결코 자신의 얼굴에 묻어 있는 더러움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계명의 빛이 아직 비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깨끗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던 바리새인에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는 새로운 계명을 주셨다.
모세의 율법보다 우월한 예수의 새 계명은 인간의 죄를 깨닫케하는 거울이요 빛이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계명의 빛이 비추어 어둠속에 숨겨져 있었던 자신의 죄가 드러났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영광이고 우리에겐 축복인 것이다.
자신이 죄인 인 사실을 알고 부끄러워졌을 때야 비로서 하나님을 알게되고 사랑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는 예수의 완전한율법 앞에서 과연 의롭다 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다른 사람에게 이 계명을 요구하고 자신은 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선 두가지 방법밖에 없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모든 율법이 여기에 포함)해서 의로워 지거나 아니면 예수를 메시야(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것.
이 계명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영원히 깨닫을수 없을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