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후 영혼의 상태


1.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① 마태복음 10장은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핍박에 대한 말씀이다. 핍박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육체적 고통을 가할 수는 있으나 신앙심은 빼앗을 수 없다.

② 그렇다면, 위의 말씀에서 ‘영혼’【프쉬케, ψυχή】이라는 말은 ‘마음’ 혹은 ‘정신’으로 번역되어야 타당하다.

③ 사도행전 14:2에서는【프쉬케】라는 말을 ‘마음’으로 제대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2.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마 27:50)

이 절에서의 ‘영혼’의 원어는【프뉴마, πνεύμα】로서 ‘숨’이나 바람’이라는 뜻이다.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숨을 거두셨다’로 올바르게 번역해 놓았다.


3.  영혼(영)으로 사용되는 신구약의 원어들 및 의미

낱 말

구약(히브리어)

네페쉬(שׁ??)

루아흐(?וֹר)

신약(헬라어)

프쉬케(ψυχή)

프뉴마(πνεύμα)

사전의 의미

, 생명, 감정, 욕구

, 생명력, 영, 바람

종합적인 의미

개체, 개인, 영혼

생명의 기운


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 23:43)

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옆에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가 예수께 구원을 요청했을 때 하신 말씀이다.

마치 강도가 그날 당장 낙원(παράδεισος, 파라데이소스)에 간 것처럼 보이는 말씀이다.


② ‘오늘’(σήμερον, 세메론)이라는 부사는 원래 ‘내가 오늘 네게 말하노니’ 라고 했어야 한다.

헬라어 문장 자체에는 쉼표(,)라는 것이 없다.

그런데 편견을 가진 번역자들이 ‘오늘’의 해석을 뒤에 함으로서 문장의 의미가 와전되어 버린 것이다.


③ 우선 강도의 요청 내용을 정확하게 살펴보자.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

공동번역 성경은 이 성경 절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 하여 주십시오”로 되어 있다.

강도의 요청은 당장  원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자기를 구원하여 줄 것을 요청한 것이었다.


④ 사실 예수님 자신도, 돌아가신 그날 하늘에 가지 않으셨고 무덤에서 죽음을 통해 쉬심으로 안식일을 보내셨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후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직접 증거 하셨다.

왜냐하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서의 원형이신 예수님은, 그의 희생을 받으셨다는 것과

또 그의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그의 속죄가 충분하고 넉넉하여서 그의 피 공로를 힘입어 그들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보증을

아버지께로부터 직접 받으실 때까지 그의 백성들이 경배를 받으려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곧 흠 없는 제물로써 아버지께서 가납하셨는지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⑤ 또한 스가랴 9:12에 같은 원문이 있지만 여기서는 “내가 오늘날에 이르노라”라고 바르게 번역되어 있다.


5.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

① ‘신’은 히브리어로【루아흐 ?וֹר】인데 본래 ‘바람’이라는 뜻이고 의미하는 것은 ‘호흡’이나 생명’이다.

② 현대어 성경(성서교재간행사 1991년)에서는 “그 때가 되면 흙에서 온 네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네 생명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번역하였다.

③ 만일 ‘루아흐’를 영혼으로 번역한다면 욥기 27:3 “나의 생명이 아직 내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루아흐】이 내 코에 있느리라”는 말씀에서 영혼이

   코에 있다는 우스운 말이 되고 만다.


6.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 4:14)

① 만약에 예수께서 구원받은 영혼들을 데리고 오신다면 하늘에서 영혼들이 자고 있다는 말이 되어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게 된다.

② ‘데리고 오시리라’는 말은 헬라어로 ἄξει(악쎄이) 인데 사전에서 이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가다’ ‘데리고 가다’ ‘인도하다’ ‘안내하다’ 등의 미래 직설법 능동태 3인칭 단수형이다.

③ 현대어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미 죽어서 세상을 떠난 모든 그리스도인도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을 믿습니다”


7.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 3:21)

① ‘혼’은【루아흐】인데 공동번역에는 ‘숨’으로 되어있다.

② 만일 죽은 사람의 혼이라면 짐승도 혼이 있다는 말이 되고 땅 속에는 짐승의 혼이 가득하다는 말이 되어 어리둥절하게 된다.

③ 문맥을 잘 살펴보면 18절에서 사람이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하심이라” 고 하였고,

    20절에는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라고 한 후 위의 성경 절이 나온다.

    이것은 사람과 짐승의 숨이 각기 다른 곳으로 간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죽기는 일반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8.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

①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하신 말씀이며 그 때에 제자들이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하니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었느니라”하셨다.

성경에는 죽음을 잠들었다고 말한 데가 53곳이나 되는데, 부활하는 날까지 자는 잠이다.

몇 천 년이 될지라도 아무 의식이 없기 때문에 당사자에게는 잠깐 동안 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곧 죽자마자 예수님의 재림인 것이다.


나사로는 4일 동안 죽어 있다가 부활한 후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영광스러운 천국의 문턱에서 그리고 천사들과의 만남으로부터 다시 끌어내려 이 어두운 세상으로

데리고 왔다고 고백하지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그것은 하나의 유치한 사기극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또한 나사로는 고통스런 지옥 불이나 연옥의 불쾌함에서 자신을 구해주신 일에 대해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지도 않았다.


만일 이러한 부활 사건이 오늘날 일어난다면 기자들이 수많은 마이크를 그의 얼굴에 들이대고 하는 첫 질문이 “죽은 후에 무엇을 보았습니까?”가 될 것이다.

놀랍게도 나사로는 사후 경험에 관하여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죽음을 꿈 없는 잠, 곧 고통의 끝에 이르러 오는 휴식의 형태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어린 소녀를 부활시키실 때도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막 5:39)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죽은 인간의 무의식 상태에 관하여 매우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② 죽어 곧 천국(ἡ βασιλεία τών οὐραν,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에 갔다면 구태여 다시 부활시키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요 부활시키신다 해도

 “나사로야 나오너라(Λάζαρε δεύρο ἔξω, 라자레 듀로 엑소 11:43)” 하시지 않고 “나사로야 내려오너라” 하셨을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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