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


임번삼
명지대학교 외래교수
전 대상그룹 식품당당 대표이사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자연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곤 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서 학문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학문은 자연에 대한 해석체계로서 자연계에 내재되어 있는 우주의 법칙을 찾아내려는 합리적이고도 체계적인 활동인 것이다.


우주의 법칙 자체를 신격화한 것이 범신론(pantheism)인데, 기독교를 제외한 여러 종교와 진화론을 포함한 많은 학문이 이에 속한다. 이에 반해 우주법칙을 만든 초월적이며 인격적인 신을 진리의 본체로 믿는 인격신론(personal theism)에는 개신교를 비롯하여 카톨릭, 유대교 및 이슬람교가 있다.


학문은 그리스의 이오니아학파로부터 출발했다. 지금부터 2,70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학문의 주된 관심사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en arche)에 관한 것이었다. 우주와 생명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추구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오늘의 자연, 사회, 인문 분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모든 학문의 공통목표는 우주와 생명의 실체, 즉 진리의 본질을 탐구하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질과 에너지를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만으로는 진리를 찾을 수 없으며, 인문 및 사회과학과 서로 손을 잡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문, 사상 및 종교의 형태로 추구되어 왔다.

학문분야에서는 자연에 대한 해석이 두 가지 시각으로 대립하여 왔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그것이다. 생명과학의 역사는 세 가지 테마에 대한 논쟁사라 할 수 있는데, 이 분야에서도 두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왔다.


첫째는, 태초에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가 하는 기원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절로 태어났다는 자연발생설과 창조주가 무로부터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대립하여 왔다.


둘째는, 오늘의 수많은 동식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나 하는 생물다양성(biodiversity)에 관한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두 설이 극명하게 대립하였다. 무기물에서 단세포가 발생한 후, 지금과 같은 여러 종류의 동식물로 발달했다는 진화론(evolutionism)과 창조주가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한 형태로 만들었다는 창조론(creationism)이 그것이다. 이 밖에 다른 천체로부터 생명의 씨앗이 지구로 날라 와서 부화했다는 우주유입설(panspermia)이 있으나 그 씨앗이 태초에 어떻게 탄생했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므로 결국 모든 문제는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셋째는, 고생물의 흔적인 화석(fossils)과 그것을 품고 있는 지층(geological strata)의 형성에 관한 문제이다. 진화론자들은 지층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이면서 그 시대에 진화되어 살고 있었던 생물군이 화석으로 매몰되었다는 동일과정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대홍수에 의한 격변으로 조산활동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지각이 변동하면서 지층과 화석이 짧은 기간에 생성되었다는 격변설을 주장한다.


어떤 문제이든 과거에 일어난 일이므로 정확한 실상을 알 수 없으며 단회적 사건(?)이었으므로 실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설명하는 해석체계이면서 신념이요 신앙일 뿐이다.


진화론은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 신앙이며 창조론은 목적론적이며 인격신에 대한 신앙이라 할 수 있다. 두 이론은 주장하는 내용이 대립적이므로 물과 기름처럼 타협될 수가 없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학문적 해석체계는 이 두 이론뿐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화될 수 없는 두 이론을 하나로 엮어 놓은 것으니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이다. 말하자면 유신론적 유물론(theistic materialism)이 탄생한 셈이다. 이질적인 요소가 봉합되었으니 여러모로 자가당착(自家撞着)적인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유신진화론은 이론상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주장하는 내용이 산만한 느낌을 준다.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모두 비과학(non-science)이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교육기관에서 오로지 진화론만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이론인 양 가르쳐지고 있다. 반면 창조론은 창세기에 근거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리적인 비과학으로 매도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과학으로 위장된 비과학이며 창조론은 비과학으로 매도되고 있는 초과학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뒤에서 차차로 설명할 것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실시한 어느 여론조사(John Hulley 1995)는 흥미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벨상 수상자들(1900-1990)의 종교 분포에서 개신교가 64%로 수위를 점하였고, 카톨릭(22%), 유대교(11%), 정교회(1.6%)가 그 뒤를 따랐다. 기독교계가 98.6%로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기원'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조사(Gallup poll 1993)에서도 매우 놀랄만한 결과가 나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비율이 47%이었으나 진화론은 9%에 불과하였다. 반면 유신진화론이 40%를 차지했다.


위의 두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사회에서 진화론이 유신진화론으로 급속히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신진화론의 정체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유신진화론은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다윈의 진화론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다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20세기 후반부터는 진화론이 반대로 유신진화론에 영향을 주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이들은 성경의 기적들을 부인하며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진화론적으로 창조했다고 믿는다. 이러한 유신진화론이 오늘날 기독교계로 깊속히 침투하고 있어 우리의 각성이 요구되고 있다. 말세에 교회에 '양의 가죽을 쓴 이리'가 들어온다면 그 중 하나는 이 유신진화론이라고 나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과 교역자들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관심마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유신진화 사상으로 서서히 세뇌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머지 않아 기독교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 같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진전된 것은 창조과학자들의 게으름이 큰 몫을 했음을 자성해야 할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창조과학자들은 기독교계에 유신진화론에 대한 경종을 울리면서 체계적인 대처방안을 모색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논쟁사


앞에서도 기술했듯이, 생명과학의 역사는 생명의 기원과 다양성 및 고생물의 흔적인 화석과 지층의 형성에 대한 논쟁사라 할 수 있다. 진화론에서는 우주와 지구 및 생명체가  저절로 발생하였고, 유인원으로부터 현생인류가 진화했다고 가르친다. 유신진화론에서는 하나님이 창조의 주체라는 사실만 다를 뿐, 진화론의 주장에 거의 동의한다. 즉 하나님이 자연법칙에 따라 진화론적으로 우주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창조론에서는 6일 동안 하나님이 무에서 우주를 창조하셨고 모든 생명체들은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한 형태로 만드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진화라는 용어가 개입할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상(事狀)은 하나인데 해석이 이처럼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우주, 태양, 지구 등의 나이에 대해서도 진화론에서는 긴 연대(각각 120억 년, 50억 년, 46억 년)를 주장하나, 창조론에서는 모두 10만년 이내(7-8천여 년)로 추정한다. 지층형성이나 그 속에 들어 있는 화석의 기원에 대해서도 진화론과 유신진화론에서는 장기간에 서서히 쌓였다는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을 주장하지만 창조론에서는 노아홍수에 의한 천재지변으로 갑자기 만들어졌다는 격변설(catastrophism)을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학설을 예시해 보면 진화론에서는 자연발생설, 화학진화설, 생물진화설, 동일과정설, 빅뱅설등이 있으며 유신진화론에는 다중격변설, 간격설, 날-연대설, 진행적 창조설, 골격가설 등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창조론에는 생명속생설, 세포설, 종의 불변설, 유전법칙, 격변설(노아 홍수에 의한) 등이 있다.

진화론이나 유신진화론의 특징은 모두 예외 없이 추리에서 출발하여 추측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장의 기술방식은 대개 '...라면', '...일 경우', '...로 추측된다', '...일 것이다', '...라 생각된다' 등과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이에 반해 창조론은 대부분 실험에 의해 확인된 확고부동한 사실들이다. 오늘의 생명과학 이론들은 거의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수립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조론과 싸우고 있는 진화론자들이 최근에는 이러한 창조과학적 이론을 진화론을 옹호하는 것처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해석은 사실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세 이론간의 논쟁은 매우 치열하였다. 생물의 진화문제에 대해서는 종의 가변설(evolution of species)을 주장한 뷰퐁-라마르크(1744-1829)팀이 종의 불변설(immutability of species)을 주장한 린네-큐비에팀과 부딪혀 창조론적인 종의 불변설이 승리를 거두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창조론측의 레디(1626-97), 스팔란쨔니(1729-99), 파스퇴르(1822-95), 틴달(1823-93) 등의 생명속생설(biogenesis)이 각각 진화론측의 헬몬트, 뷔퐁1708-88), 니이덤과 푸셰(1800-72), 베스쳔(1837-1915) 등의 자연발생설(abiogenesis)과 격돌했으나 창조론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특히 파리에서 프랑스과학아카데미 주선으로 열렸던 파스퇴르와 푸셰간의 대결은 공개논쟁의 개시를 알리는 첫 신호탄이기도 하였다.


이후, 한동안 생명의 기원논쟁은 잠잠하여진 듯 했으나 20세기초(1936)에 소련의 오파린이 다시 화학진화설(chemical evolutionism)을 들고 나옴으로써 생명발생설에 대한 두번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유물론적 주장은 생명을 단순한 자동기계로 해석하려는 생명기계론으로 연계되어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까지는 창조론이 연속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이 발표되면서 상황은 진화론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인 멘델은 6년간 수도원에서 완두콩과 분꽃을 재배하면서 발견한 '유전법칙'을 오스트리아의 부린학회에서 공식 발표했으나(1866) 그 내용이 다윈의 진화론과 상치되었기 때문에 생물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빛나는 그의 업적은 1900년도에 그의 법칙이 재발견될 때까지 그의 죽음(1884)과 더불어 무덤 속에 들어가 침묵을 강요당하였다.


영국의 런던에서 공개적으로 열렸던 '옥스포드논쟁'(1860)에서는 창조론 측의 윌버포스 주교가 진화론자인 헉슬리에게 판정패를 당하였다. 이 논쟁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첫 번째 공개논쟁이었으므로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그 영향으로 진화론은 영국은 물론 구미제국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싸움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도 계속되었다. 하버드대학에서는 그레이(Asa Grey)와 아가시즈가 격돌하여 유신진화론이 승리한 데 이어 예일대학, 프린스턴대학, 맥길대학 등이 1880년대에 진화사상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고등학교 교과서에 처음으로 진화론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20세기초부터는 창조론이 교과서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추세에 위협을 느낀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변호사는 반진화운동을 전개하여 테네시주(1925), 미시시피주(1926), 아칸소주(1928) 등이 진화론 교육을 금지시키도록 법제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실제로 스코프스 재판이 끝난 직후인 1927년에 13개 주에서 반진화론 입법이 상정되었다.


이에 반발한 진화론 측의 시민자유주의연맹(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이러한 법규들의 실효성을 실험할 목적으로 스코프스(John Thomas Scopes)라는 교사의 협조를 얻어 테네시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내용을 가르친 사건을 연출토록 하였다.


이를 알게 된 한 학부형의 고발로 테네시주의 데이튼이라는 지방 법정에서 '원숭이재판'(1925. 7)이 열리게 된다. 세계 최초로 열린 이 법정재판에서 스코프스의 변호를 맡았던 ACLU측의 대로우(Clarence Darrow)가 제시한 네브라스카인(1922)과 필트다운인(1912)의 자료의 뒷받침으로 진화론측이 승리하였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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