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누구신가


믿는 자로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아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제각기 많은 신들을 숭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참 하나님은 오로지 한 분이심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우리들이 막연히 부르는 하느님이 아니요, 구체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란 우리가 부모님의 이름이 있는데도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듯이 하나님은 그분의 단순한 칭호이고,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혹은 야훼라고 합니다.



1. 살아 계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그분의 섭리 가운데 우리를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 계신 것을 압니까?

첫째, 우주의 인과법칙을 보아도 살아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이 우주가 생긴 것도 누군가가 창조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연히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연치고는 너무 오묘합니다.

우연이라면 우연임을 증명할 것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으로도 증명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우연이라면 가끔은 오묘한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도 생겨야 하는데 그런 일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고작해야 70-80평생 사는 인간이 어찌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무신론을 내세웁니다만 이는 한갓 증명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나름대로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합리화하려는 데 불과합니다.


그럼, 우주를 창조한 이가 누구이겠습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 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3장 4절에는 '집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은이가 하나님이시라.' 했고,

로마서 1장 20절에서는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주를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로1:19) 한 것처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한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보여 알게 만드셨습니다.

둘째, 자연의 오묘한 법칙과 질서를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주의 모습을 보면 신비하고 오묘하기 그지없습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가면 어김없이 가을이 옵니다.

봄이 되면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여름이면 열매 맺고, 가을이 되면 열매가 익습니다.

사과나무에서는 사과가 열리지 배가 열리지 않습니다.

음양의 조화는 더욱 신비합니다.

한 송이의 꽃은 그 향기로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 수정을 합니다.

어떤 암펄은 수십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수펄을 불러들인다고 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크던, 작던, 강하던, 약하던 간에 그 나름대로 자신들을 보호하면서 종족을 퍼뜨리며 살아갑니다.

이런 것을 보면 자연의 질서는 참으로 오묘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생김새 하나만 보아도 그 오묘함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머리털은 열을 차단하기 위해서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눈이 깜박거리지 않는다면 먼지가 들어가 금방 상하고 말 것입니다.

눈썹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빗물이 떨어지면 흘러서 모두 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콧구멍은 밑으로 뚫어져 있습니다.

위로 뚫어져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비가 오면 감당을 못할 것입니다.

귓바퀴는 소리를 모으기 위해 오그라져 있습니다.

옆 얼굴과 귀바퀴 사이에는 물이 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볼록 튀어 나와 있습니다.

혹 잘못해서 물이 귀로 들어갔다 하더라도 밖으로 흘러나오도록 귀밑으로 홈이 나 있습니다.

이것을 어찌 우연이라 하겠습니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도 그저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반드시 일정한 조직과 일정한 배열 속에서 일정한 법칙대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물질의 구성을 보면, 어느 물질이든 원자들로 되어 있고, 이는 다시 양자와 전자로 나누어져 있어 소우주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창조도 그렇습니다.

어찌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태어날 뿐입니다.

위장에 병이 들어 죽게 되어도, 심장이 말을 안 들어도 똑같은 위장, 똑같은 심장을 못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하물며 영혼이 깃든 인간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이런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볼 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찬송가 40장에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숲 속이나 험한 골짝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그렇습니다.

오묘한 우주의 질서를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인간의 도덕성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도덕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도덕성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소위 무신론을 주장하는 분들도 죄짓는 것은 싫어합니다.

또, 죄를 지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덕적 양심을 부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양심은 곧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양심은 선과 악을 구분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게 합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인간의 종교성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게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종교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 자신을 의지하며 살도록 만드셨고, 우리의 마음 속에 종교성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도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찾으려는 종교성이 잠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미약한 인간의 존재를 살펴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좀더 겸손한 생각으로 되돌아보면 인간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대로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없이 오래오래 살 수도 없습니다.

이 불가항력적인 힘 앞에 인간은 꼼짝도 못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보다 숙연해 지게 되고, 보다 겸손해 지게 되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느끼게 됩니다.

여섯째, 개인의여섯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 수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적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어 보여주실 때가 더러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심으로써 하나님의 권능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오늘날도 놀라운 기도의 능력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신비로운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곱째, 성경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일 점 일 획도 거짓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면 남는 것은 겉장뿐입니다. 성경은 여러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에 의해 썼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썼어도 신약과 구약을 통해서 볼 때 하나도 어긋남이 없이 연결된 것을 보면 오묘하기 그지없습니다.



2. 영이신 하나님

성서는 '하나님이 영이시라' 했습니다. ( 요 4 : 24 )

영은 우리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물질로 된 것이 아닙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 창 1 : 1 ) 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영은 만물의 창조주로서 다른 만물보다 먼저 계셨고,

또 시작도 없으시고, 끝도 없으신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십니다.



3. 유일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가 있는 자니라.'( 출 3 : 14 )라 했습니다.

유일하신 분은 오로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출 20 : 3 )고 했습니다.

오로지 한 분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에 다른 신을 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다른 신을 둔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큰 죄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 : 1 )

이 말씀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신 분인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우주 만물들은 모두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은 우주 만물들을 섭리하고 계십니다.


시편 104편 24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또 지혜의 근본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물론, 우리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생각까지도 눈동자같이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라.'( 마 6 : 31-32 )라 했고,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 4 : 13)라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무엇을 감히 감출 수 있겠으며 감추려 들겠습니까? 하나님은 참으로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5.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과 사랑의 영적 교제를 위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한없는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이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 요 3 : 16 )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요, 사랑이요, 보배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나를 더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못된 짓을 하는 자식을 다른 자식보다 더 염려하고 사랑하듯,

내가 더 못된 죄인이기 때문에 나를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집 떠난 못된 탕자를 우리의 아버지가 주무시지도 않고 기다리시듯,

하나님은 우리 곁을 떠난 나를 이제나 돌아올까 저제나 돌아올까 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6. 거룩하시고, 선하시고, 공의로우시고, 신실하신 하나님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사 6 : 3 )라고 성경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불의를 멀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악을 싫어하시고, 거짓을 원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나 여호와는 변역치 아니 하나니' ( 말 3 : 6 )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네 여호와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 신 7 : 9 )라고 했습니다.

'거짓 증거하지 말라.'( 잠 19 : 5 )고 했고,

'속여 취하지 말라.'( 잠 21 : 6 )고 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 : 1)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참으로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신실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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