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본질 (The Nature of God)


1. 성경적 견해


"하나님은 영원 무궁토록 불변하는 무한한 영이요 그의 존재 속에 지혜와 능력과 성격과 의와 선과 진리가 거한다."

하나님의 명칭에 관하여 연구하여 보면 성서적 정의를 명확히 계통을 세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명칭은 다만 문자의 결합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된 인격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선포하여 나타냄으로써 자신을 계시하신다 (출6:3,33:19,34:5,6).

하나님을 예배함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요 (창12:8)


그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요 (신28:58).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요(삼하22:50).


그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는 것이다. (시68:9).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나 (출20:7)


욕되게 하는 것은 (레18:21, 24:16) 악한 것이다.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은 곧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마6:9).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백성을 높이 드시며 (시20:1)


그의 이름을 인하여 그는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삼상12:22).


1) 엘로힘 (Elohim)

이 명칭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전능성이 기술되거나 암시되어질 곳에 사용되었다.

엘로힘은 창조의 신 (the Creator-God)이다 복수형은 능력의 충만과 삼위 일체성을 암시해 주고 있다.


2) 여호와 (Jehovah)

창조의 신이신 엘로힘은 그의 피조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피조물의 필요를 아시고 내려오셔서 그들을 도와주시고 구원해 주신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그는 그 자신을 언약의 신 (the Covenant God) 이신 여호와로 계시하신다. 여호와라는 명칭은 존재 (To be) 를 나타내는 동사에서 온 것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세가지 시제(the three tenese)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명칭은 존재하였던 분, 존재하고 계신 분, 존재할 분 곧 다시 말하면 영원하신 분을 의미한다. 여호와는 자기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는 신이므로 그 명칭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나는 나 자신을 나타내었고 또 나타내고 있으며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시는 바 그 일은 그의 명칭에 의하여 나타난다. 그리고 그의 백성들이 그의 은혜를 체험할 때에 "그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는 여호와의 언약의 명칭들 속에 요약되여 있다. 병들어 누워 있는 자들에게는 "병을 치료해주시는 신" 이신 여호와_ 라파 (Jehovah-rapha) 로 알려져 있다.(출 15:26). 원수들에게 압제를 당하였을 때에 그의 백성들은, 우리들의 깃발이신" 여호와 -닛시 (Jehovah-nissi)라고 그를 불렀다.(출17:8-15). 근심에 싸여었을 때에 그들은 그가 "우리들의 평화"이신 여호와 살롬(Jehovah-shalom)임을 깨달았다. (삿6:24). 이 세상에서 나그


네 되었을 때에 그들은 "목자"이신 여호와-라하 (Jehovah-ra''''ah)의 필요성을 느꼈다.(시23:1).


정죄를 지각하고 의의 필요서을 의식하였을 때에 그들은 "우리들의 의의신 여호와 -지드 (Jehovah-Tsidkenu)에 게 소망을 걸고 부르짖었다.(렘23:6).

궁핍 할 때에 그들은 그가 "궁핍을 채워 주시는 신"이신 여호와-이레(Jehovah-Jireh)인 줄을 깨달았다 (창22:14).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 임할 때에 그는 여호와 -샤마(Jehovah-Shammah)로서 알려질 것이다(겔44:35).


3) 엘 (EL)(하나님) 은 복합어로서 사용되어 진다.

엘엘이 하나님은 신들이라고 불리워지는 다른 존재들보다는 훨씬 우월한 분이시다.

엘샤-다이(EL-Shaddai)는 "그의 백성의 궁핍을 채워주는 신"이다(출6:3),

엘-올암(EL-Olam)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다(창21:33).


4) 아도나이 (Adonai)는 글자 그대로 "주" (Locd)또는 "선생" (Master)을 의미한다.

이 명칭은 통치권과 주권의 개념을 갖고 있다. (출 23:17,사10:16,13).

그는 그의 인격과 행위 때문에 그의 백성의 봉사와 충성을 요구한다.

신약에서 이 명칭은 영화럽게 된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다.


5) 아버지(Father) 라는 명칭은 구약과 신약에 모두 사용되었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아버지라는 명칭은 만믈의 생산자와 인간의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창조적 의미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손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다.(행17:28).

그러나 이와 같은 관계가 인간의 구원을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요1:12,13).



2. 잘못된 신관(神觀)


성경을 도외시한 그릇된 다른 신관들이 있다. 이 신관들 중에 어떤 것은 진리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한다. 어떤 신관은 부적당하고 또 다른 신관들은 악용되어졌거나 타락된 것이다. 이러한 그릇된 신관을 살펴 볼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완전히 설명하는 일은 매우 힘들기 때문에 그릇된 신관을 살펴 봄으로써 올바른 신관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1) 불가 지론 (Agnosticism)

불가 지론 (헬라어로 "알지 못한다"를 의미한다.) 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부인한다. 불가지론자들은 "유한한 인간 정신을 무한을 이해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불가 지론자들은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인식하는 것과하나님에 관하여 약간의 것을 인식하는 것과는 구별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곧 다시 말하면 그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를 이해 할 수 있다. 즉 그에 관해서 알 수 있다.


" 우리들은 하나님에 관하여 온갖 것을 알지는 못하드래도 그가 계시다는 것을 알 수는 있다. 비록 우리들이 우리들의 팔로 온 지구 덩어리를 얼싸안을 수는 없을지라도 지구를 만져 볼 수는 있다. 철학자가 전능자를 완전히 찾아낼 수는 없을지라도 어린아이도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클라크(D.S.Clarke)씨는 말하였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편 성경은 우리들에게 "부분적으로 그를 알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해 주고 있다.

(출33:20,욥11:7 롬11:33,34,고전13:9-12).


2) 다신론 (Polytheism)

다신론은 (많은 신들을 섬기는 것) 고대 종교의 특징으로서 오늘날도 아직 이교도의 나라 안에는 존속하고 있다. 이 다신론은 우주가 단 하나의 세력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세력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다는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수신과 화신과 산신과 전쟁의 신 등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다신론은 이교 신앙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유한한 대상물을 신들로 만들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게 되는 것이다"(롬1:25).


3) 범신론 (Pantheism)

범신론 ("모든 것이 신이다"라는 뜻을 나타내 주는 헬라어에서 왔다.) 은 하나님과 우주를 동일시하는 사상 체계이다. 나무와 돌과 새와 동물과 땅과 물,파충류와 인간, 이 모든 것은 신의 일부분이며 마치 영혼이 육체를 통하여 표현되듯 이 신은 이 모든 물질과 힘을 통하여 살고 잇으며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와 같은 사상 체계는 어떻게 되었을가? 롬1:20-23 은 여기에 대하여 사색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아득히 먼 과거에 이방인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들 속으로부터 하나님을 추방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신할 것이 있다


면 그것은 하나님 만큼 큰 것이 아니면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내버려 두고 멀리 떠났기 때문에 이 세상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이와 같이 논리적으로 추리하여 산과 나무와 사람들과 짐승과 그밖에 모든 자연의 힘을 숭배하기 시작하였다.


처음 볼 대 자연 숭배는 매우 아름다운듯이 보이나 불합리한 결론을 내포하고 있다. 만일 나무와 꽃과 별들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면 버러지와 세균과 범과 비열관 죄인들도 하나님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니 불합리하다.


범신론은 하나님과 자연을 혼동하고 잇다. 그러나 시가 시인이 아닌 것처럼 예수이 예술가가 아닌 것처럼 음악이 음악가가 아닌 것처럼 피조물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유대 민족의 아름다운 전설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피조물과 하나님을 구별하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전해 주고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본질에 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에 그는 아름다운 광채 때문에 별들을 하나님을 잘못 보았었다. 그러나 별들의 빛 보다 달빛이 더 뛰어나게 밝은 것을 보고 달을 하나님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태양빛에 비할 때 달빛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태양을 신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태양도 밤에는 사라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모든 성좌들보다 훨씬 위대한 무엇이 있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라고 아브라함은 생각했다. 이렇게 하여 틀림 없을 것이다"라고 아브라함은 생각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자연숭배로부터 자연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성경은 범신론의 잘못된 견해를 바로 잡아주고 있다. 성경은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시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면서 하나님과 자연을 구별하고 있다. 범신론자들은 하나님이 곧 우주라고 말하고 있는데 반하여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범신론은 오늘날 어디에서 신앙되고 있는가?


첫재로 자연을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는 시인들 사이에 신앙되고 있다.

둘째로 범신론은 대부분의 인도의 종교 속에 침투하여 우상 숭배를 정당화 시키고 있다.

셋째로 크리스챤 사이언스 (Christian - Science)는 범신론의 일 형태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들의 근본 교리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은 하나님이다" (God is all and all is God).

크리스챤 사이언스는 관념론적 범신론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 교파는 모든 것은 마음 또는 "아이디어"(idea)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질은 비 실재적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4) 물질주의 (Materialism)

물질주의는 물질과 정신의 구별을 부인하고 생명과 정신과 그리고 모든 힘의 현상은 다만 물질의 특성이라고 단언한다.

" 간장이 담즙은 분비하듯이 두뇌는 생각을 산출한다." "인간은 기계이다."

물질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인간의 고상한 생각가 신성을 말살해 버리기 위하여 "인간은 단순히 동물에 불과하다."고 선언한다.


이 물질주의는 너무도 조잡하고 불합리하기 때문에 논박할 가치도 거이 없다.

그러나 수 많은 대학 안에서 또 수많은 소설 안에서와 기타 여러모로 물질주의가 논의되어지고 있으며 또 신봉되고 있다.

즉 사람이한 짐승이 아니면 기계이다.

또 사람이란 자기에 행도에 대하여 책임을 질수 없으면 선도 악도 없다고 믿고 있다.


5) 자연신교 (Deism)

자연신교는 이 세상을 창조한 인격적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나 창조 후에 그는 이 세상을 자연 법칙의 지배 아래 두고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버리고 말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마치 시계의 태엽을 감아놓았듯이 이 세상이란 시계의 태엽을 감아놓고 다 풀릴 때까지 아무 간섭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하든가 혹은 기적같은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사상 체계를 종종 이성주의라고 부르는데 그 까닭은 이성을 종교에 있어서 최고의 길잡이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계시 종교의 반대로서 자연 종교라고도 한다.


이 사상 체계는 성경의 영감의 증거와 역사 중의 하나님의 역사의 증거와 모순 된다.

자연 신교를 믿는 사람들의 신관은 편역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세계와의 관계에 관하여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 사실은 그의 초월성이다.

곧 세계와 인간을 초월하여 따로 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사6:1).


둘째 사실은 그의 내재성이다.

곧 세계와 인간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행17:28,엡4:6)


자연 신교가

첫째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데 반하여 범신론은

둘째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데 반하여 범신론은 둘째 사실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성경이야말로 균형이 잡힌 참다운 신관을 보여주고 있다.


곧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은 이 세계를 초월하여 계시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 그는 이 세계 속에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같이 계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고 아들은 또한 우리들 속에 성령을 보내 주셨다.


그러므로 삼위 일체의 교리는 이 두 가지 극단을 피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이 세계 밖에 계신가 또는 세계 안에 계신가는 질문에 대하여 성경은 두 가지가 다 옳다는 긍정적 답을 주고 있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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