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번창 이유는?

 

 어거스틴은 '악'을 '선의 결핍'이라는 형태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과 많은 수의 신자들도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이해'를 답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악에 대한 태도는 악을 매우 형이상학적으로 다룸으로써 악의 현저한 능력을 무시하는 감이 있다. 성서적으로 볼 때, 악의 기원은 타락한 천사인 사탄과 그의 어둠의 세력들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타락 이후에 악은 세상에 관영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기다린다.


그 종말적 흐름 속에서 선택된 의인들은 하나님의 의의 통치를 체험하며, 영원한 평화의 나라를 대망한다. 이러한 개념을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작품 속에서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궁극적 심판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악이 관영하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속한 많은 사람들은 악한 구조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악한 세상에서 악인이 번창하는 것은 오히려 그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외쳤던 것처럼 그들의 때는 길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악인의 후손들이 패망하는 것을 눈여겨 본다. 악인은 그 짧은 생애 동안 번창하는 듯하나, 결국에는 영원한 심판을 면치 못한다.  


  악인의 번창, 의인의 고난, 재난의 발생 등은 바로 신정론(Theodicy)에 관한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세계의 모든 것들을 섭리하신다면 전쟁과 질병, 기근 등 악과 고난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 이 세계의 악의 현실을 볼 때 하나님께서 전능하지 못하든지, 아니면 전념하시되 선하지 못한 하나님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즉 악과 고난 때문에 하나님의 개념에 대해 새로운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신앙이 없는 자에게 이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없었다면 악의 문제도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약성서 중 욥기는 바로 이 신정론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신약성서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서 이 문제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1. 학자들의 견해

 

 1) 루터
 이러한 신정의 문제에 대하여 루터는 명백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루터는 악이 선을 위하여 있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악을 통하여 선을 요구하며 죄를 통하여 의를 완성한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하여 우리가 이웃에 대한 죄를 미워하고 벗어버리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들로 하여금 의를 간절히 바라보게 하며 불의에 대하여 반항심과 혐오감을 갖게 한다. 이에 루터는 하나님이 인간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 잎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2) 헤겔
 전체적으로 볼 때 헤겔의 역사철학은 신정의 문제를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기 소외로부터 오며 하나님의 활동이다. 그러나 세계의 유한한 것은 그 속에 부정적인 것, 악한 것, 불완전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도 악한 것을 부정함으로 세계를 보다 높은 진리의 세계로 발전시킨다. 세계의 모든 것은 신적 정신인 하나님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변증법적 운동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악은 정신의 변증법적 자기 활동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요소이며 정신에 의해 부정되고 고양된다. 이와 같은 헤겔의 견해에 의하면 악은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정립된 것이다. 선과 악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악은 선으로 가는 과정 속에 있으며 악의요소가 전혀 없는 완전한 선이라 유한한 세계에 있을 수 없다.

 

 3) 틸리히
 틸리히는 악을 비존재로 생각한다. 모든 존재자들은 비존재 곧 무(無)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유한한 존재로 실존한다. 실존하는 모든 것은 존재의 힘에 참여하기 있는 동시에 비존재와 혼합되어 있다. 따라서 실존하는 모든 존재자들은 비존재, 고다 악의 위협과 존재의 힘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 있다. 존재로서의 존재는 선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완전히 악하게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모든 것과 사귐을 나누고 있으며 모든 것의 운명에 참여한다. 따라서 악한 것도 하나님에게 참여되어 있다. 그것은 선한 것으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에 있으며 일시적으로 악할 뿐이다. 그러므로 틸리히에게 있어서 세계는 구원사이며 신정이다.

 

2. 욥의 친구들의 견해

 

 1) 죄의 결과
 환난 가운데 있는 욥에게 그의 친구들은 그러한 환난은 죄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선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고 악하면 벌을 받을 것이다(욥4:7,8; 욥8:20; 욥20:5).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욥의 상태를 설명하지 못한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으로서 번영이 아니라 엄청난 환난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이런 문제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이 언제나 이 세상에서 잘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2) 교육적 의도
 친구들은 또한 하나님은 인간들의 성장을 위해 환난을 주신다고 한다. 환난은 좋은 것이다.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우리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난은 인간을 시험하거나 훈련시켜서 인간이 악을 행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욥5:17). 이러한 견해는 성경에서도 가르치는 바이다(잠2:12; 히12:7). 그러나 이것도 모든 문제에 잘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3. 성경적 견해

 

 1) 예언자들
 예레미야 선지자는 악인의 형통함과 패역한 자의 안락함의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께 물었다(렘 12: 1).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이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고 악인이 의로운 자를 삼키는 것을 그대로 두시는 이유를 물었다(합1:13). 이들은 자기 민족의 환난을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살폈으며 미혹에서 일깨우려고 환난을 주시는 것으로 보았다 악한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제시하시면서 기다리라고 하신다. 이상적인 좋은 시절이 오면 의로움이 진실이라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지금도 진실이 패하는 것 같지만 끝내는 하나님의 목적과 의로움이 승리할 것이다(합2:2-4).

 

 2) 욥과 시편 기자
 환난의 이유를 몰라 하나님께 항의하던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신비를 말하는 질문을 하시면서 욥에게 나타났다(욥38:4).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미미한 일부인 욥이 무엄하게 창조주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항거하기 어려운 질문에 지쳐 욥은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회개하나이다"(욥42:2-6). 욥은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체험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다. 욥이 가지고 있던 문제는 하나님을 체험함으로써 완전히 해소된 것이다. 시편 73편의 기자도 악인의 형통함에 대한 문제를 안고 씨름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성소에서 주를 뵙고 해결을 본다(시73:17). 이러한 답변은 명쾌한 논리가 없고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악인의 번창, 의인의 고난, 악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은 없다. 구약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문제 제기가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합리적인 답변을 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질문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구원주이신 하나님을 만나도록 지시해 준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악에 대해 승리하신 하나님의 종말론적 미래 세계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자만이 문제의 해결을 본다.
 


 1. 악에 대한 이해

 

 철학은 악의 문제에 있어 이원론과 단일론 사이에서 방황하는데 어떠한 철학을 택하느냐에 따라 신학적 해석도 천양지차로 나타날 수 있다.


 1) 형이상학적 이원론의 관점이 이론은 신학사와 철학사 사이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서 악이란 근본적으로 '선의 결여' (the omission of good)로 인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런 전통에 서 있는 철학자들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하이데거, 야스퍼스, 화이트 헤드 등과 같은 인물들이다. 신학자들로는 어거스틴, 토마스 아퀴나스, 쉴라이에르마허, 폴 틸리히와 칼 바르트 등은 꼽힌다. 플라톤에 의하면 악은 혼잡한 물질이 형상이나 구조 등에 대해 저항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었으며, 여기서 악은 노골적인 반항이 아닌 다루기 힘든 것이나 단순한 결여로 여겨졌다. 이러한 플라톤의 견해는 그와 같은 이원론자들에 의해 널리 수용되어졌다. 근세에 와서 헤겔도 플라톤적인 관점에서 악을 이해하였다. 그에 의하면 "악이란 영적인 것이 아닌 물질적인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절대 정신이 자신을 분리시킬 때 결여가 생겨나는데 이것이 세상에서의 부조와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신학자 중에서 어거스틴도 위와 같은 이해와 분리되지 않았으며, 토마스 아퀴나스 또한 악은 선의 결여로부터 기인한다고 여겼다.


 현대에서 와서 바르트에게서도 플라톤적 이해가 나타난다.

그에 의하면 악이란 하나님에 의해 배제되었고 이 배제가 악을 부정적인 실제화한다고 생각되었다.


 2) 안일론적 관점
 이러한 관점에 선 사람들의 견해에 의하면 악은 어떤 객관적 실재를 가지지 아니한다. 이 이론에 있어서 악은 무지나 개별적 성질 또는 성격에 의해 발생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일론에 있어서 유한과 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잇다. 유한한 것이 극복된다면 악은 사라지는 것이다. 위와 같은 관념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아주 명백하게 나타나며 헬라 철학이나 초기 스토아철학에 있어서도 나타났었던 경향이다. 스피노자에게 이르러 이러한 관념은 매우 체계화되어 졌는데 그의 철학에 의하면 악의 실재는 무척 모호한 것이다. 그에게 선과 악은 객관적인 실재가 아닌 주관적 개념일 뿐이었다. 악은 부적절하며 혼란된 개념들에 의해 나타난 것일 뿐이다.


 

2. 신정론에 대한 고대인들의 태도


 고대인들도 악한 자의 형통과 안락에 대해 신의 섭리는 어떠한 것인가? 에 대한 연구와 질문이 있었다.

그들은 선하신 신이 존재하는데 왜 악이 용인될까? 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1) 이집트 문학적 태도
 이집트 문학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깊이 있고 예리한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전혀 그러한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사회에는 신이 왕을 통해 통치하신다는 관념이 있었기에 신이 통치하는 세상에 왜 어려운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질문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책임이 신에게 있지 않고 인간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2) 메소보다미아와 히브리 문학적 태도
 성경을 제외한 메소보다미아와 히브리 문학에 있어서 악한 세상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매우 예리하게 질문되어지며, 때로는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띠기도 한다.

그러나 뚜렷한 결론이나 해답에 접근하지는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성경에서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해 "세상을 심판 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18:25)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이는 매우 공격적인 문구이며 항변하는 듯이 들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후에 아브라함의 요구들을 여러번 수용하신 하나님을 볼 때 하나님은 결코 악을 행하실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 은연중 암시되고 잇는 것이 성경의 뜻이다.

 

3. 신정론에 대한 식학자들의 견해

 

 1) 어거스틴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분이시다.

단지 악의 근원은 선을 저버린 타락한 천사와 인간들에게 있다.

선정론에 있어 어거스틴의 한계는 실제로 죄가 어떠한 이유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용납되었는가에 대해 침묵함에 있다.


 2)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을 힘입어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개념을 보다 일관성 있고 존재론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악이 하나님의 허락에서 기인된 것으로 여겼다.


 3) 루터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은 악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


 4) 칼빈
 칼빈의 예정론은 악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나님은 그의 작성하신 일들을 이루시고자 악을 잠시 허락하시고 계신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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