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성령론


글 / 성종현 교수(장신대)

Ⅰ. 시작하는 말

신약의 성령론은 18세기 역사비평학의 대두와 함께 현대 서구성서신학계에서는 소외된 연구주제가 되고 말았다. 20세기 권위있는 학자들의 「신약성서신학」 책에서도 이 주제는 대부분 과소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올바른 성령론의 이해없이는 정당하게 해석되어 질 수 없다.


신약성서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탄생되어 성령의 강한 임재와 역사를 통해서 예배하고, 가르치고, 선교하던 A.D. 1세기의 초대교회에서 형성된 문헌이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역사는 바로 성령의 역사다. 성령에 사로잡힌 예수의 무리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파되었고 신 약성서가 기록되어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약성서의 본문을 중심으로 성령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여 오늘의 우리의 신 앙을 점검하고 재정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 하겠다.

A. 성령에 대한 학자들의 이해

먼저 여기에서는 성령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를 잠깐 들어본 후에 20세기 권위있는 신학자(성서신 학자 중심)들의 입장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이들의 견해가 모든 성서 신학자들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 것 은 아니지만 오늘날 성서신학계의 큰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1.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종교개혁자들의 특징은 이들이 성령의 사역을 주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하 고 있다는 점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는 성령과 대화하는 자”라고 말하고 성령과의 대화 는 곧 기록된 성경을 읽는 것으로 이해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는 성령이 그와 대화하는 자이 다. 성령의 말씀하심은 곧 그의 기록하심과 봉하심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때는 반드시 말씀과 설교 그리고 성례전을 통해서만 주어진다고 말한다. : “하나님은 말씀과 설교 없이는 어떤 사람에게도 성령을 주기를 원치 않으신다.” “오직 성령만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고 믿음의 불을 붙인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성령은 이 일을 외적인 교회 직분이나 성례전의 사용없이는 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루터는 말씀으로부터 오지 않는 영적 경험이나 교만을 경고하고 성령의 모든 지혜와 가르침과 비밀이 말씀(성경) 속에 기록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2. 요한네스 칼빈(Johannes Calvin)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의 사역은 일차적으로 구원론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 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현재화 되는데 성령은 바로 인간과 그리스도를 연결시켜 주시는 분이다. 성령 안에서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와 결합된다.

칼빈 역시 루터처럼 성령의 사역을 하나님의 말씀(성경)과의 관계성 속에서 증시한다. 말씀의 참됨은 어떤 외적 권위에 근거하지 않고 성령의 내적 증거에 기초한다. 성경의 기자들에게 영감을 주신 성령께 서 성경을 읽는 자의 마음과 이성을 비추어 주신다. 그래서 죽었던 문자가 살아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 씀이 된다. 루터는 말씀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칼빈은 말씀을 말씀되게 하는 성령의 역할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요한복음 주석에서 칼빈은 믿음과 거듭남과 새 삶이 성령의 사역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성령이 인간의 마음과 이식을 비추면 인간은 비로서 믿음으로 나아 올 수 있게 된다.

칼빈에 의하면 성령은 또한 성화의 영(spiritus sanctificationis)이기도 하시다.

칼빈은 당시 로마카톨릭교회처럼 성령의 조명없이 이루어지는 교회 권위 중심적인 성경해석도 거부했지 만 또한 당시 재세례파 사람들 중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말씀에서 이탈한 열광적인 성령주의나 내적인 종교적 체험을 최고의 규범으로 내세우는 행위를 동시에 비판한다.

3. 칼 바르트(Karl Barth)와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칼 바르트는 그의 교회 교의학에서 성령이 인간 개인들 속에서 하시는 사역 세 가지를 말하는데 그것 은 믿음(Glaube), 사랑(Liebe) 그리고 소망(Hoffnung)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다.

성령은 또한 교회 안에서도 세가지 중요한 사역을 하시는데 그것은 교회 공동체를 모으고(Sammlung), 공동체를 견고케 하며(Erbauung) 그리고 공동체를 파송하시는 일(Sendung)이다.

루돌프 불트만은 그의 「신약성서 신학」에서 초대교회 케리그마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성령 문제를 언 급하고 있다. 그는 먼저 신약성서는 성령에 관한 진술을 함에 있어서 통일성을 지니지 않고 있음을 지 적한다. 즉, 신약성서는 성령에 관한 진술을 함에 있어서 통일성을 지니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신 약성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성령 이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 성령을 인격적이고 독립적인 주체로 이해하는 아니미즘적인 성령이해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을 비인격적인 힘이나 능력으로 이해하는 역동적 인 성령이해가 있다는 것이다.

불트만은 또한 물침례와 성령침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받은 모든 성 도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신약성서의 입장이라고 밝힌다. 불트만은 사도행전 8장 14 - 17절과 10장 44 - 48절의 본문들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물침례와 성령받음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됨에 있다고 말한다 : “실제에 있어서 이 두 본문은 침례와 성령받음(Geistesempfang)의 불가분의 연관성을 가르치고자 한다. 성령을 공급하지 않는 침례는 진정한 침례가 아니기 때문에 성령받음으로 보완되어야만 한다(행8 : 14 - 17). 또한 하나님을 통한 성령의 부어주심은 그러한 은총을 입은 자에게 침례가 베풀어져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9행10 : 44 - 48)”

불트만은 나아가 초대교회의 성령이해가 당시 주변 헬레니즘 세계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4. 한스 콘첼만(Hans Conzelmann)과 레온하르드 고펠트(Leonhard Goppelt)

불트만의 제자인 콘첼만은 역시 헬레니즘계 교회의 케리그마를 진술하는 과정에서 성령 문제를 취급하 고 있다. 그의 성령관은 불트만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그 역시 신약성서에는 성령을 인격적 존재로 보 는 아니미즘적인 이해와 비인격적인 능력으로 보는 역동적인 이해가 공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러나 아니미즘적인 성령 이해보다는 역동적인 성령이해가 신약성서의 주된 입장이라고 역설한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이하나 사도행전 10장 9절의 본문도 성령을 독립된 인격적인 실체로 이해하고 있 는 것이 아니라 의인화된 표현방식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콘첼만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본문이 전설적으로 채색되었다고 보고 성령문제는 후에 헬 레니즘계 교회에서 전면으로 부각되는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고 말한다.

콘첼만 역시 침례와 성령체험을 동일 사건으로 이해함으로써 전체 불트만 학파의 입장을 대변해 주고 있다.

구속사학파에 속하는 레몬하르트 고펠트는 신약성서의 성령을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현존’(prasenz Christi)으로, 그리고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믿음의 영’(Geistdes Glaubens)으로 이해한다.

허나 그 역시 성령을 비인격적인 하나님의 능력, 혹은 ‘하나님의 말씀의 힘’(Kraft des Wortes Gottes) 으로 정의 하고 있다.

바울은 지혜, 율법, 죄 그리고 죽음등을 의인화(personifizieren)해서 말하는 것처럼 비인격적인 힘 (Kraft)인 성령을 의인화시켜서 성령의 가르침이나 생각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또 고린도전서 12장 4 - 6절이나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서 삼위일체적인 표현 (주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 - 성령)을 쓰고 있지만 바울 자신은 아직 삼위일체적 하나님 이해를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5. 췌르너 게오르그 큄멜(Werner Georh Kummel)과 페터 슈툴마허(Peter stuhlmacher)

큄멜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은 동일시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 “그러나 바울은 부활하신 분을 성령과 동일시하지 않았는가? 그로써 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성령으로 해소되었다 는 것을 보여주었지 않았는가? 바울이 그리스도와 영에 관하여 계속적으로 동일한 진술을 하고 있다는 관찰은 이러한 물음으로 나아가며, ‘주는 영이시다’(고후3 : 17)는 바울의 명제가 거기에 속한다. ..... 그러 나 바울은 오직 성령에 관한 특징적인 진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은 역시 바람직하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영의 동일성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영이 중심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비록 동일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와 영에 관하여 여러 가지 진술을 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 도인은 그의 인격적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마주 서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큄멜 역시 성령의 인격적인 이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만 신약성서는 종종 성령을 의인화(擬人化)시켜 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 “반면에 바울은 영에 관하여 의인화 하면서 말할 수 있다. ....... 그러나 영 을 품격적으로는 이해하지 않는다. 그는 영의 받음과 소유에 관하여 말하고(고전7 : 40, 갈3 : 2) 또한 영의 소멸에 관해서도 말한다(살전5 : 19).

큄멜이 이해하는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이 침례를 통하여 받은 영이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 도와 그리스도인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서의 영이다.

슈툴마허는 그의 최신작 「신약성서신학Ⅰ」에서 바울의 성령이해를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


첫째 성령은 그리스도의 능력(Kraft Christi)으로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들을 때 그리고 침례를 받 을 때 받게 된다(갈3 : 2 - 3, 고전6 : 11, 12 : 13),


둘째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를 보존하고 주관 한다. 그는 믿음(갈2 : 19 - 20)과 그리스도 시민(고전12 : 3, 롬10 : 9)과 하나님 인식과 성경의 바른 이해(고전2 : 6 - 16, 고후3 : 12 - 18) 그리고 기도(갈4 : 6, 롬8 : 15)와 하나님 찬양(골3 : 16 - 17) 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요 능력이다.


셋째 성령은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요 규범이다. 이 삶은 세상 일 상 속에서 드리는 영적 예배요(롬12 : 1 - 2), 성령으로(갈5 : 250, 성령을 좇아(롬8 : 4 - 5)사는 삶이 다.


넷째 성령은 신앙공동체를 여러 가지 은사와 선물로 풍요롭게 한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공동체적 삶과 증인됨의 삶을 건실하게 하는데 그 중 최고의 은사는 사랑이다.

슈틀마허는 성령이 일차적으로 복음과 침례를 통해서 역사한다고 말하고 바울의 성령관은 철저히 기독 론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 “바울은 성령 안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고 교회와 믿는 성 도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본다. 이것이 가장 잘 나타나는 본문들은 고린도후서 3장 17절 이하, 고린도전서 15장 45절 그리고 로마서 8장 9 - 10절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학자들의 입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첫째 이들은 성령을 독자적인 인격 (person)내지 품격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혹은 그리스도의 힘(Kraft)이나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는 점이고, 둘째는 이들이 전반적으로 침례와 성령받음(Geistempfang)을 동일시하거나 불가분의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며, 셋째는 말씀중심내지 그리스도 중심적이지 않은 성령 열광주의나 종교적인 내 적 체험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이들이 전통적인 삼위일체론적인 관점에서 이 문 제에 접근하지 않고 본문의 다양성을 역사 비평학적인 관점에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고, 전체적으로 성령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폭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성서 본문속으로 들어가서 신약성서는 성령에 대해서 어떠한 진술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 펴보고자 한다.



B. 신약성서에서의 ‘프뉴마’ (πνεύμα)용어 사용


'프뉴마'는 신약성서에서 성령의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로서 구약성서의 '루하'와 대등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루하가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영’을 의미하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처럼 신약에서도 중성명사 '프뉴마'만으로 성령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총275회).

‘거룩한 영’, 즉 ‘성령’이란 낱말은 구약성서에서 주로 포로기 이후 시대부터 사용하여 진다.
149회는 다른 단어와는 연결없이 독립적으로 약한 영적 존재를 의미할 때 사용되는 때도 사용됨을 볼 수 있다.

신약성서 전체적으로는 ‘프뉴마’란 낱말이 총 379회 등장하는데 그 사용용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 총 379회 중 가장 많은 275회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 149회는 다른 단어 와의 연결없이 독립적으로 ‘프뉴마’만 사용되고 있고, ‘거룩한 영’ 이란 표현은 92회, ‘하나님의 영’이란 표현 은 18회, 그 외에도 ‘성결의 영’, ‘아버지의 영’, ‘그의 아들의 영’,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등의 표현이 나타난다.

그러나 신약성서은 ‘프뉴마’란 중성명사를 가지고 성령이 아닌 다른 것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47회는 인간 의 영을, 38회는 악한 영을, 9회는 죽은 자의 영이나 천사를 그리고 3회는 바람 혹은 숨결을 의미하고 있 다.

그럼 이제 ‘프뉴마’를 성령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신약성서 본문들을 중심으로 성령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C. 성령의 명칭과 상징

신약성서에서는 ‘프뉴마’가 다른 명사나 고유명사 혹은 형용사등과 결합하여 성령에 대한 다양한 명칭으 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명칭이나 용어사용은 신약성서의 독특한 성령이해를 반영해 주고 있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성령의 명칭들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성령(마3 : 16, 12 : 28, 고전3 : 16, 6 : 11, 고후3 : 3, 빌3 : 3), 주의 성령(눅4 : 18), 너희 아 버지의 성령(마10 : 20),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고후3 : 3), 그리스도의 영(롬8 : 9), 예수의 영(행16 : 7),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빌1 : 19), 주의 영(행5 : 9, 8 : 39), 그 아들의 영(갈4 : 6), 진리의 영(요15 : 26, 16 : 13), 보혜사(요14 : 17), 믿음의 영(고후4 : 13), 은혜의 영(히10 : 29), 성결의 영(롬1 : 4), 생명의 성 령(롬8 : 2), 영광의 영(벧전4 : 14).

신약성서에서는 성령과 그의 임재하심이 여러 상징적인 표현이나 은유를 통해서 묘사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

불(불의 혀 같이, 행2 : 3), 비둘기(비둘기 같이, 마3 : 16), 바람(요3 : 8, 행2 : 2), 물(생수의 강, 요7 : 38), 기름(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눅4 : 18,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 행4 : 27, 우리에게 기름 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고후1 : 21,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요일2 : 20, 너희 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요일2 : 27), 인(印,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1 ; 31,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고후1 : 2).



D. 성령의 인격성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신약성서에서 증거되고 있는 성령의 인격성을 인정하지 않고 성령을 역동적인 하나님의 힘, 혹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의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성령이해는 신약성 서의 일부 본문이 성령을 마치 비인격적인 능력이나 물질적인 성격의 것으로 표현하는데서 기인하기도 한 다. 그러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수 있는 표현들은 ‘성령을 준다’(눅11 : 13), ‘성령을 받아라’(요20 : 22), ‘성 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 : 28), ‘내 영으로 부어주리니’(행2 : 17),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2 : 4), ‘성령 을 마시게 한다’(고전12 : 13)등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신약성서는 성령의 인격성을 전제로 하는 많은 진술들을 하고 있다. 성령은 영원 히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히9 : 14)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행하실 수 있는 전지 전능하신 분 이다(고전2 : 10 - 11, 눅1 : 35, 롬1 : 4, 8 : 11). 성령은 생각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지셨고(마음을 감찰하 신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롬8 : 27),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며(고전2 : 10), 성도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께서 말한 것들을 다시 생각나게 해 주시는 분이다(요14 : 26).

또한 성령은 감정을 지니셨기 때문에 근심할 수 있고(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엡4 : 30), 탄식하며 간구 할 수 있는 분이다(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 : 26).

성령은 또한 의지를 가지신 분이다. 그 분은 자신의 의지로 사도들의 선교계획에 관여하신다(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행16 : 6 - 7), 성령은 예수를 믿는 각 사람에게 은사를 골고루 나누어 주시되 자신의 뜻대로 그 일을 하신다(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12 : 10 - 11).

신약성서가 말하는 성령은 하나님의 창조의 영이실 뿐만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전적인 의지의 일치 속에서 활동하시는 분이고 또한 지(知), 정(精), 의(意)를 지니신 독립된 인격으로서의 하나님 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은 가르치시고(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눅12 : 12,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요14 : 26), 인도하시고(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16 : 13, 롬8 : 14), 말씀하시고(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삶이 너를 찾으리니, 행10 : 19,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딤전4 : 1), 명령하시고(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행11 : 12).

어떤 일을 금지하시고(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행16 : 6), 듣는 것을 말하며 알리시고(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 : 13), 예수를 증거하시고(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15 : 26), 생각나게 하시고(내 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4 : 26), 위로하시고(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9 : 31), 근심하시고(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엡4 : 30), 책망하시고(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 책망하시리라, 요16 : 8), 도우시고(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롬8 : 26), 탄식하 시고(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롬8 : 260, 간구하시고(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 : 26), 또 어떤 일을 구체적으로 임명하기도 하신다.(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행13 : 2).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롬8 : 9 - 11), 혹은 하나님과 나란히(고전3 : 16)언급되기도 하고 또 세분 이 삼위일체론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마28 : 19, 고후13 : 13, 벧전1 : 2, 고전12 : 4 - 6, 마3 : 16 - 17, 계1 : 4 - 5).

그 중에서도 성령을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역사하시는 독립적이고 대등한 위치의 인격적인 구원 사역의 주체로 밝히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본문이 마태복음 28장 19절과 고린도후 서 13장 13절 그리고 베드로전서 1장 2절이다.

마태복음의 선교명령에서 부활예수는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줄 것을 명하신다. 여기에서 세 분은 독립적이고 인격적인 구원 사역의 주체로서 나타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기록 연대면에서 훨씬 앞선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바울의 본문도 마태복음 의 본문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성령의 교통(코이노니아)하심’에서의 속격은 주격적 속격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여기에서도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과 나란히 독립된 인격적 실체로서 그리고 교제와 나눔의 주체로서 나타나고 있다.

베드로전서1장 2절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는 종말론적 구원사역의 주관자로서 나타나고 있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예정하신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구원을 성취하신 분으로 그리고 ‘성령’은 거룩하게 하시는 성화의 성령으로 서술되고 있다.

이러한 신약성서의 진술들은 성령이 하나님의 능력이나 성도와 신앙공동체 안에서 현존하시는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역동적인 힘이라는 진술의 울타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뛰어 넘어 성령이 지, 정, 의 를 소유하신 인격적인 분이면서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 구원의 의지와 사역에서 일 치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성화의 영이심을 말해주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신약성서는 성령을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과 새 창조의 능력, 혹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개인과 교회와 세상 속 에서 역사하시는 현존의 역동적인 힘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을 분명히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영, 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품격으로 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E. 성령의 사역

신약성서에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진술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특별히 예수의 공생애 활동과 관련 하여 그리고 초대교회 탄생과 발전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 되셨고(마1 : 18, 20, 눅1 : 35), 예수의 공생애는 침례요한의 침례를 받은 후 성령충만함을 받으신 때부터 시작된다(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마3 : 16,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눅3 : 22), 그 이후부터 예수의 삶은 성령으로 충만한 삶(눅4 : 14), 성령의 능력과 권 능에 이끌린 삶으로 나타난다. 예수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40일동안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고(마4 : 1, 눅4 : 1),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셔서(눅4 : 14),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다 : 주의 성령이 내 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눅4 : 18).

 
여기에서는 성령이 예수에게 임하신 목적이 분명히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 복음전파, 둘째 포로된 자와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는 일, 셋째 눈먼 자(병자) 치유, 넷째 주의 은혜의 해 전파로 나타난다(눅4 : 18 - 19).

예수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공생애 활동을 통하여 사탄을 결박하고(막3 : 27),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며 (눅10 : 18), 병든 자를 치유하고(마11 : 4 - 5), 귀신들을 내어 쫓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 게 하셨다(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 느니라, 마12 : 28, 눅11 : 20).


예수는 이 성령의 역사가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구원사역이기 때문에 이 성령의 구원 활동을 인정하지 않 고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영원히 용서 받을 수 없게 된다고 경고한다(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 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막3 : 29).

예수는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므로 너희가 구하라고 가르치시고(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눅11 : 13), 또한 성령으로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이 때 에 예수께서 성령을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눅10 : 21).

예수의 공생애를 주관하신 성령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묻힌 예수를 다시 살려내심으로 예수의 공생애를 완성하신다(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롬1 : 4).


예수의 공생애가 성령충만으로 시작하여 성령의 권능과 능력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처럼 초대교회의 역사도 성령 충만 받음으로 시작하여(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 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 : 4 :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4 : 31), 성령의 강한 능력과 권능 아래 전개된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요 예수의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역사이다(행1 : 8).


그 밖에도 신약성서에는 개인과 공동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는데

성 령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시고(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행2 : 43 :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행2 : 22), 옥중에서도 찬양케 하시며(행 16 : 25),


영으로도 찬양케 하시고(고전14 : 15),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갈5 : 22 - 23),


성도들의 몸 속에 내주 하시고(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6 : 19 :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3 : 16, 요일4 : 13, 롬8 : 9),


성도 들의 연약함을 도우시며(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 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10 : 19 - 20, 막13 : 11,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ㄹ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롬8 : 26,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고, 엡3 : 16),


성도들을 가르치시며(요14 : 26), 능력과 권능을 주시고(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행1 : 8,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 여, 고전2 : 4), 죄를 깨닫게 하며 책망하시고(요16 : 8),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장래일을 알 리시고(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 시리라, 요16 : 13),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시고(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 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8 : 16),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케 하시며(엡5 : 19), 각종 은사를 주시고(고전12 : 7 - 11, 롬12 : 6 - 8),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행1 : 8),


예수를 살 리신 것 처럼 성도들의 몸도 다시 살리실 것이며(롬1 : 4, 8 : 11),

각종 병을 고치시고(마4 : 23, 9 : 35, 눅9 : 1 - 2, 10: 17 - 20, 행3 : 6, 5 : 15 - 16, 8 : 5),

성도들을 기도케 하시고(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 도하고, 엡6 : 18,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고전14 : 15),

성도들을 위해서 간구하시며(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8 : 27),

교회를 세우시고 부흥케 하시며(행2 : 42 - 47, 11 : 19 - 26),

교회를 하나되게 하시고(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4 : 3, 4 - 6),

교회를 권면하시고(계2 : 7, 3 : 6),

하나님이 택한 자들을 성령으로 감동케 하시고(다윗이 성령에 감 동하여 친히 말하되, 막12 : 36,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계1 : 10, 4 : 2),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 게 하시고(행23 : 11, 28 : 30 - 31, 고전12 : 8, 행14 : 3),


마귀를 대적케 하고(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 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4 : 1, 눅10 : 17 - 20, 벧전5 : 8 - 9, 엡6 : 10 - 17),


육체의 소욕과 싸우게 하고(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갈5 : 17, 롬8 : 5 8, 13),


성도들을 거룩케 하신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벧전1 : 2,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살후2 : 13,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6 : 11, 성령 안에서 거 룩하게 되어, 롬15 : 16).

성령은 또한 성경의 저자이기도 하시다.

성령은 택하신 자들을 감동, 감화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케 하신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 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1 : 20 -2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 : 16,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6 : 17).


맺는 말

진정한 크리스챤의 삶은 성령의 오심으로 시작된다. 예수님은 성령 충만함을 받으신 후에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예수의 제자들도 성령의 불침례를 받은 후에 역사를 바꾸는 능력의 공동체로 탄생하게 된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초대교회에서 역사하신 성령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도 동일한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성령은 과거에도 역사하셨고 오늘도 역사하시며 미래에도 역사하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창조와 생명의 영이시 요, 우리를 사랑하셔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거하기를 원하시는 부활 예수님의 자유와 사랑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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