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식법 (제 153-165 계명)
(구약시대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먹은 음식)
유대인의 식법(구약의 식법)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식법의 준수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려면 그가 무엇을 먹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 식법을 준수하는 것을 중요시한 것은,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거룩"에 이르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 식법을 준수했기 까닭에 역사를 통해 그들에게 적대감을 보인 이방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식법을 통해 그들은 스스로를 다른 이방 세계로부터 구별시켰으며, 이교도들의 종교와 문화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상, 식법은 다른 어떤 계명보다도 유대인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안식일은 주간 행사이며 다른 절기들은 연간 행사인 반면, 식법은 매일매일 지켜야 하는 계명이었다. 우선 어떤 음식을 만들기 전에 먼저 유대인들은 식법을 먼저 생각을 해야 했다.
또한 무엇을 먹기 전에도 항상 먼저 그들은 그것이 먹도록 허락된 것인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이렇게 매일마다 그리고 매끼마다 유대인들은 식탁에서 하나님의 게명을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잊지 않을 수가 있었으며, 식탁에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함을 통해서 일상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식법의 준수는 유대인들의 경건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식법의 일반적인 원칙은 아래와 같다.
1) 피나 기름기 있는 부분은 먹지 말아야 한다.
2) 맹수에게 찢겨 죽거나 떨어져 죽은 짐승은 먹지 말아야 한다.
3) 썩은 고기를 먹는 짐승이나 새, 물고기는 먹지 말아야 한다.
4) 육식 동물은 먹지 말아야 한다.
5) 초식 동물이나 곡식을 먹는 새는 먹을 수 있지만, 굽이 갈라진 것이어야 한다.
6) 메뚜기 종류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곤충류는 먹지 못한다(참조. 마 3:4).
7) 과일이나 곡물, 채소, 알, 그리고 야채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도 하고 있지 않다.
8) 죽은 사람이 누워 있는 방 안에 있는 음식들 중 덮어놓지 않은 것들은 먹어서는 안된다(민 19:14, 15).
9) 고기를 우유에 삶아 먹어서는 안된다.
10) 법으로는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야곱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환도뼈(엉덩이뼈)의 힘줄은 먹지 않는다(참조. 창 32:32).
11) 포도주는 먹을 수 있다.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율법으로 규정한 것은 건강에 대한 관심에서라기보다는 종교적인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이러한 "별난" 식법 때문에 많은 조롱을 받아 왔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식법을 옹호하려는 사람들은 과학적이며 의학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식법의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부분 이러한 식법은 건강 유지를 위해서 매우 유익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한 예로, 유대인들은 돼지 고기를 먹지 않는데, 의학 보고서에 따르면, 돼지 고기 속에는 200여가지의 세균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다 없앨 수 없다고 한다. 지방질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또한 고기를 우유로 삶거나 같이 먹는 것이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러한 예를 일일이 다 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이 식법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제정되어 진 것이다. 한 마디로 율법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정한 것"으로,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부정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어떤 것을 먹지 못하도록 한 것은 그것이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서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정한 것과 부정한 것,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의 기준은 분명하지 않다. 어떤 것은 왜 먹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또 다른 어떤 것은 먹지 못하도록 하였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먹지 못하도록 금지된 것들은 이교도들이 그들의 제의에서 사용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같은 짐승은 이교도들의 제의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이 식법은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다루고 있지 않다. 곡식이나 음료, 알, 채소, 또는 풀같은 것에 대한 규정은 율법에 나타나지 않는다. 한 예로, 독초 같은 것은 분명히 먹을 수 없도록 규정되었을 것이나, 그러한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어떤 계명들은 분명하게 그것을 준수해야 하는 이유가 제시되어 있으나, 어떤 계명들은 그렇지 않고 그 이유가 모호한 것이 많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계명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계명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며, 따라서 왜 지켜야 되는 지 잘 알 수 없는 계명들도(대부분의 식법처럼) 모두 우리를 위해서 주어진 것임으로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한편 유대인들은 우리의 몸과 영혼이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부정한 것으로 분류된 것을 먹으면(비록 의학적으로는 우리의 몸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먹는 사람의 영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믿었다. 그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이 식법을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또한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히 택함 받은 백성임으로, 특별히 택함받은 백성처럼 살아가야 하며, 그런 것은 그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히 관련된 식법, 즉 음식 문화 속에서도 발견된다고 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들은 식법을 대체적으로 철저하게 지켰을 것으로 보인다. 한 예를 들면, 식법이 금지하는 바에 따라 돼지를 치는 사람이 없었다. 만일 누군가가 돼지를 친다고 한다면, 그는 주목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고, 그것을 잡아먹는 날에는 그 사실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그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이방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디아스포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식법을 준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는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이 로마 의회에 요청을 해서 그들이 먹을 것을 그들이 관리하도록 허락 받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Josephus, Jewish Antiquities, 14:245). 또한 사르디스는 푸주간에서 유대인들이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준비하여 팔도록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이는 당시에 시장에서 팔던 대부분의 고기들이 이방신들을 위한 희생제사에 바쳐졌던 것이었는데, 유대인들은 이러한 고기들을 먹지 않는데서 취하여진 조치였다(Josephus, Jewish Antiquities, 14:259-261). 특별히 이방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이교도들의 음식을 먹는 것을 꺼렸다. 만일 그들이 이방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경우에는 야채 종류나 전혀 요리되지 않은 것, 그리고 물만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약성서는 구약의 식법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신약 성서에서도 식법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나 권면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베드로는 그가 환상을 보기 전까지 이러한 유대인들의 고유한 식법을 그대로 준수하고 있었다. 그는 부정한 것은 먹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환상 가운데서 부정한 것들로 여겨진 짐승들을 보았으며, 그것들을 잡아먹으라는 천사의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율법의 규례에 따라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환상 가운데서 깨어났다. 어떤 사람은 이 환상을, 신약 시대에 와서 하나님께서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구분을 없애셨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환상은 베드로를 이방인인 고넬료의 가정에 가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지, 식법의 폐기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 환상의 의미를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정하나 이방인들은 부정(common)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도 정하게 여기셨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하였다(행 10:15). 이 환상은 먹을 수 없는 짐승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이방인에 대한 환상이었다는 것이다. 즉, 베드로가 본 환상은 식법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에 관한 환상이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의 상태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치셨다(마 15:10 이하). 즉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던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에 드문 것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진보적인 유대인들은 율법의 규정대로 식법을 다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었다. 그러나 이들은 보수적인 유대인들에 의하여 비난을 면치 못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적어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는 것보다 마음의 생각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가르침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예수께서 이 가르침을 통해 당시에 지켜지던 식법의 폐기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식법은 지키면서, 즉 정결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자신들의 내면의 부정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이지, 식법의 폐기에 대한 가르침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깨우치시려 이 가르침을 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 식법을 지킬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식법을 폐기하거나 반대할 정당한 이유는 하나도 없다.
식법에 대한 상세한 규정들
제 153 계명
땅에서 사는 짐승들 가운데 새김질을 하면서 동시에 굽이 갈라진 것만 먹을 수 있다(레 11:2-4, 7).
예를 들면, 소, 양, 염소, 사슴, 노루, 꽃사슴, 들염소, 산염소, 들양, 산양 등(신 14:5)을 먹을 수 있다.
희생 제물로 대개가 소나 양, 염소를 바치게 한 것은 그것들이 집에서 기르는 것이며, 정결한 짐승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제 154 계명
낙타, 오소리, 토끼, 돼지 등과 같이 새김질을 하지 않거나 굽이 갈라지지 않은 짐승은 먹지 못한다(레 11:4).
랍비들은 여기에 특별히 열거된 짐승들을 유대인들을 정복했던 나라들에 상징적으로 비유를 하였다.
느부갓네살은 그의 부드럽고 그럴듯한 말과는 달리 난폭한 왕이었음으로 해서 낙타에 비유를 하였고, 페르시아와 그리스는 토끼에, 그리고 로마는 돼지에 비유를 하였다. 그래서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하는 뜻으로 이해를 하기도 한다(마 7:6).
제 155, 156 계명
물 속에서 사는 동물 중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먹을 수 있다(제 155 계명; 레 11:9, 12).
그러나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제 156 계명; 레 11:12).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물 위로 뛰어 올라올 수 없으며, 물 밑에 거하는 경향이 있음으로 사람의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이 물고기 속에 많이 들어 있어, 우리에게 먹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Nachmanides). 그러나 비늘과 지느러미가 없는 물고기가 물 밑에 거하는 경향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 이러한 물고기들을 부정한 것으로 여긴 이유는, 물고기의 특징인 비늘과 지느러미를 결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제 157 계명
새 가운데서 먹지 말아야 할 것(레 11:13).
이 계명은 새 가운데 먹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하여 24종류에 이르는 새들을 열거하고 있다. 이 규정에 의하면, 다른 것들을 잡아먹는 새는 먹지 못하도록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새들 가운데서 발가락 하나가 다른 것들보다 더 큰 새, 멀떠구니를 가진 새, 모래 주머니를 가진 새는 먹을 수 있다고 유대인들은 가르쳤다.
제 158 계명
곤충 가운데서 네 발로 걷는 날개 달린 것들은 먹지 못한다(레 11:21).
이 계명은 네발로 걷는 날개 달린 곤충들은 먹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로 그런 곤충 가운데서도 땅에서 뛸 수 있는 것들은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메뚜기가 그 중의 하나이다. 또한 먹지 못하도록 금지된 짐승들이 만든 것, 이를테면 꿀 같은 것들은 먹을 수 있다고 유대인들은 가르쳤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던 것이다(마 3:4).
제 159 계명
길짐승에 대한 규정(레 11:29 이하)
토라는 부정한 길짐승(땅에 기어다니는 짐승)에 관하여 자세한 규례를 가지고 있다(레 11:29 이하). 어떤 것들은 단순히 먹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죽은 것을 만지는 것조차도 금지된 것들이 있다(쥐, 족제비, 도마뱀, 악어 등). 이런 길짐승들의 사체는 매우 부정된 것으로 여겼으며(이를 유대인들은 av tumah라 불렀으며 그 의미를 직역하면 "대 오염"이다), 따라서 이것들을 만진 사람이나 물건은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유대법에 의하면, 먹을 수는 없지만 죽은 것을 만지는 것은 괜찮도록 허락되어진 것들도 있다(뱀, 전갈, 벌레 등).
나크마니데스(Nachmanides)는 이러한 기어다니는 짐승들을 먹지 못하도록 한 것은 그것들이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브라바넬(Abrabanel)은 이 금지된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몸에 해롭지 않은 것들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의학적인 근거에서 그렇게 규정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여기에서 금지된 짐승들은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것들로서, 그러한 것을 먹을 때 그들의 영혼에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먹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짐승들은 영혼의 거룩성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금지했다는 것이다. 한편 유대인들은 이 규정을 어기는 사람들에게 매질을 하였다.
제 160 계명
요리가 된 젖은 음식에 죽은 길짐승이 닿으면 그것은 먹어서는 안된다(레 11:34).
죽은 길짐승은 부정하게 여겼다. 따라서 그것에 닿는 모든 것들도 다 부정하게 된다. 그것이 옷이나 가죽에나 나무로 만든 그릇 등에 닿으면, 물에 씻어야 하며, 그것들은 그 날 저녁 때까지 부정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오지 그릇이나 가마, 화로 같은데 닿으면 그것은 깨뜨려 버리도록 했다. 오지 그릇 안에 들어 있는 젖은 음식에 그 죽은 것이 닿으면, 그것은 버려야 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이 부정을 타는 일이 없도록 했다. 여기에서 기본적인 사상은 부정한 것에 닿으면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주검에 접촉한 자는 부정한 사람으로 여겼던 것이다.
제 161 계명
먹을 수 있는 짐승이라도, 그 주검을 만진 자는 저녁 때까지 부정하다(레 11:39).
여기에서 언급하는 짐승은 유대인들은 두 가지 종류로 보고 있다.
첫째는 제의를 위해서 죽였으나 흠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어 제의에 사용하지 않은 짐승과, 또 하나는 자연사 (自然死)한 짐승이 그것이다.
자연사한 짐승의 경우는 감염되어 죽었을 가능성도 있음으로 이러한 것들과 접촉하는 것을 금하였던 것이라고 아브라바넬(Abrabanel)은 보고 있다.
유대법은 자연사한 짐승에 접촉된 사람이나 기물은 그날 저녁까지 부정한 것으로 여겼으며, 특별히 그러한 사람은 "제1차 감염원"(rishon le-tumah; first source of defilement)으로 불려졌다.
제 162 - 165 계명
먹지 말아야 할 것들
땅에 기어다니는 길짐승은 먹지 말아야 한다(제 162 계명; 레 11:41-42).
과일이나 채소에 붙어사는 벌레는 먹지 알아야 한다(제 163 계명; 레 11:41-42).
물 속에 기어다니는 것들도 먹어서는 안된다(제 164 계명; 레 11:46).
흙에서 생긴 벌레는 먹지 말아야 한다(제 165 계명; 레 11:44).
위의 계명들에 대해서는 "식법"에 대한 설명을 참조하라. 제 165 계명은 율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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