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에 나타난 성령에 대한 연구



1. 서론

로마서에 진술된 성령에 대하여 연구해 볼 만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로마서에 나타난 성령에 관하여 잘 이해하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가 있다.

성경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성령에 관한 말과 글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말과 글들을 살펴보면 몇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1) 현재 성령론의 약점 해결
첫째로 기독교회가 처음부터 주장해 온 삼위일체론 속에서의 성령이해가 크게 약해졌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론을 너무 독립적으로 다루어 마치 성령은 성부와 성자 없이도 존재하며 활동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둘째로 성령의 오순절 강림사건은 다회적인가 계속적인가 하는 논의와 함께 신자의 첫 성령체험은 무엇인가 하는 논쟁에 지나칠 정도로 힘을 낭비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신자의 능력있는 삶을 성취시키는 성령의 현재적인 활동에 관하여 분명하게 정리하는데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셋째로 성령의 활동과 신자의 윤리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별로 좋은 의견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까닭에 신자들은 성령의 은혜를 열심히 구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하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로마서의 성령에 대한 이해는 아마도 이러한 몇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2) 로마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
더 나아가서 로마서의 성령이해는 로마서를 새로운 각도에서 읽게 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로마서는 주로 기독론과 구원론의 결합으로 칭의를 중심으로 하여 이해되고 있다. 로마서에 대한 이같은 편중된 접근으로 말미암아 로마서에 담겨있는 훨씬 더 디양하고 풍부한 내용이 쉽게 간과되고 만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령에 대한 로마서의 진술을 연구하는 것은 로마서를 폭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3) 성령에 대한 새로운 이해
로마서에는 성령에 관하여 대략 29번 정도 언급된다. 그런데 로마서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령의 세례라든가 성령의 충만같은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말하자면 로마서가 은사에 대하여 언급하고는 있지만(롬12:6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를 따라 상이한 은사들을 가지고 있는데"), 고린도전서와는 달리 성령과 관련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전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서로부터 성령에 관하여 색다른 이해를 얻을 수가 있다.


2. 기본적인 이해

로마서에 나오는 성령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선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고찰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1) 성령을 수식하는 단어들
첫째로 성령에 수식어가 붙는 경우에 대한 고찰이다. 형용사적인 수식어로는 주로 "거룩한"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롬5:5 ; 9:1 ; 14:17 ; 15:13,16,19) 성령은 명사적인 수식어와 함게 성결의 영(롬1:4), 생명의 성령(롬8:2), 하나님의 영(롬8:9,14 ; 15:19), 그리스도의 영(롬8:9), 양자의 성령(롬 8:15)이라고 불리운다. 왜 바울은 성령을 이처럼 다양하게 수식하는가? 발신자인 바울 자신과 관련하여 생각할 때 바울에게 아직 성령의 개념이 분명하게 확립이 되어 있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바울이 성령의 다양한 기능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수신자인 로마교회와 관련하여 생각할때 성령의 개념을 아직 확실하게 소유하고 있지 않은 로마교회에게 성령의 명칭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바울이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이처럼 다양한 성령의 명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이미 성령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모든 지역에 보급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령신학은 초대교회에 이미 풍성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사용하는 이같은 다양한 성령의 명칭은 바울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전승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성령이 수식하는 단어들
둘째로 성령이 소유격으로 사용되는 경우에 대한 고찰이다. 예를 들면 성령의 새로움(롬7:6), 성령의 생각(롬8:6,27), 성령의 사랑(롬15:30)등이다. 여기에 사용된 소육격은 모두 주격적 소유격으로 생각해야 한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성령이 소유하는 기능들을 이처럼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것은 성령의 능동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3) 성령의 전치사 용법
셋째로 성령과 함께 사용된 전치사에 대한 고찰이다. 성령과 함께 주로 사용되는 전치사는 세가지 이다. "안에"(?? 롬2:29 ; 7:6 ; 8:9; 9:1 ; 14:17 ; 15:13,16,19) "말미암아"(??? 롬5:5 ; 15:30), "따라"(???? 롬1:4 ;8:4,5), 아마도 이 세가지 전치사는 규범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바울은 성령을 위하여 이러한 전치사들을 사용하여 성령의 규범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려는 듯이 보인다.


3. 신적인격으로서의 성령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성령을 두가지 면에서 신적인 인격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1)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1) 성령과 성부의 관계성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성령이 성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음 무엇보다도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라고 부르는데서 분명하게 나타난다(롬8:9,14) 성령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존재하시거나 하나님 없이 활동하시지 않는다. 성령의 존재는 하나님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되며 성령의 활동은 하나님과의 연계성 속에서 이해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더 나아가서 성령과 하나님의 밀접한 관계는 쌍방간에 이루어지는 깊은 교통으로부터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며", 성령은 "하나님을 따라"행동하신다(롬8:27).

하나님은 성령의 사고를 인지하며, 성령은 하나님의 의지를 표준한다. 사도 바울은 고전 2:10에서 이러한 사상을 역으로 진술한다. "성령은 모든 것 그리고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한다". 성령께서는 일반적인 일들을 인식하실 뿐 만 아니라 구속과 관련된 특별한 일까지도 인식한다. 성령의 인식은 일반적인 것과 특수한 것에 미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인식하시기에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2) 성령은 하나님의 일에 성취한다.
하나님과 성령 사이에 이뤄지는 이러한 상호간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성령은 하나님의 일을 실현해 나간다. 사도 바울은 특히 성령께서 하나님 나라의 문제에 깊이 개입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롬 14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음식윤리("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롬 14:3)에 관하여 말하면서 경구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안에 있는 의와 화평과 희락이다"(롬14:17)고 진술한다.

사도는 여기에서 무조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망치는 결과를 낳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비판하는 먹고 마시는 일이란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의롭게 만들어주신 "형제를 업신여겨"의를 깨뜨리는 것이며(롬4:9,10 ; 참조 롬4:25), "형제를 근신하게"만들어 기쁨을 망가뜨리는 것이며(롬14:15), "화평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뜨리는 것"이다(롬14:19,20). 이러한 먹고 마심은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루지 못한다. 의와 평강과 기쁨을 이루지 못하는 먹고 마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망친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그것은"성령안에 있는 의와 화평과 희락이다". 사실상 의와 화평과 희락은 모두 하나님의 인격을 나타낸다(롬3:28 "이때의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가 의롭다는 것을 보이신다"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충만하게 하신다" 절대적인 의, 절대적인 화평, 절대적인 희락은 오직 하나님의 인격에서만 나타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화평과 희락이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인격과 관련하여 설명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인격으로 표현되며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인격으로 실현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인격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인격의 실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식물로 망케"(롬14:15)하는 인간적인 인격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화평과 희락같은 하나님의 인격으로 형제들을 "세우는 일"(롬14:10)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이같은 하나님의 인격이 "성령안에서"(롬14:17) 실현된다고 말한다. 성령께서 표출시킨 하나님의 인격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성립된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인격이다(갈5:22,23), 하나님의 인격의 삯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니까 성령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문제에 깊이 개입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일을 실현해 나간다. 하나님과 성령 사이에는 이처럼 긴밀한 상호관계가 있다.



2)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그런데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을 정의할때 예수의 부활과 관련하여 정의한다.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다(롬4:24). 칭의는 바로 이 하나님을 믿는자들에게 허락된다(롬4:24). 그래서 성령은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이의 영"(롬8:11)이라고 불리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신데 특히 예수를 부활시키는 일에 관여한다. 예수를 죽은자들로부터 일으키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주관자이시고 성령은 동역자이시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에 관하여 말하면서 롬1:3,4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분명하게 언급한다.

"(그의 아들은) 육체를 따라 다윗의 씨로부터 나셨고(3), 성령을 따라 죽은자들의 부활로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4)"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정의함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이 두 문장을 비교할 때 잘 알 수 있다. 3절과 4절은 정확하게 대칭된다. "성결의 성령을 따라"는 "육체를 따라"에 대칭되며 "다윗의 씨로부터"는 "죽은자들의 부활로부터"에 대칭된다. 사도 바울은 우선 예수께서 어떻게 육체적으로 출생하셨는지를 설명한다. 예수는 "육체를 따라 다윗의 씨로부터 나셨다" (3)여기에서 "육체"는 악한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후론 참조), 출생을 나타내는 자연적이며 물질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육체를 따라"라는 말은 다시 "다윗의 씨로부터"라는 말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이것은 예수에 대한 계보적인 설명이다. 예수의 육체적인 출생이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어떻게 예수께서 "능력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는지를 설명한다. 예수께서는 "성결의 성령을 따라 죽은자들의 부활로부터 능력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4). 여기에서도 윗 문장에서와 마찬가지고 "성령을 따라"라는 말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이것은 예수에 대한 새로운 계보적인 설명이다. 예수의 영적인 출생이다. 성령의 활동과 부활의 성취는 예수께서 능력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는 일에 필요한 상이한 두가지 조건사항이 아니라 분열된 한가지 조건사항이다.

윗 문장에서 "육체를 따라"의 "다윗의 씨로부터"가 결속된 개념이듯이 아랫 문장에서 "성령을 따라"와 "죽은자들의 부활로부터"도 결속된 개념이다. 다윗의 혈통으로부터 태어나신 것이 육체의 문제라면 부활하심으로서 능력적인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것은 성령의 문제이다. 말하자면 예수께서 능력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는 일에 있어서 성령의 활동은 부활의 성취로 표현됐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능력적인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심에 있어서 성령께서 부활로 관련하신다고 밝힌다.

성령을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 선상에 놓듯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인격 선상에 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때문에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 대한 권면의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나란히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한다"(롬15:30)


4. 성도들을 위한 성령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은 성도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신다. 특히 이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로마서 전체에 나오는 성령에 관한 구절중에 로마서 8장에만 삼분의 이정도(19번)가 들어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두가지 일을 하시는 것으로 진술한다. 첫째로 성령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게 하며, 둘째로 성령은 성도들을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한다. 이 사실을 로마서 8장에 나오는 성령에 대한 두가지 수식어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이것은 또한 로마서 8장을 두 부분으로 분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성령은 "생명의 성령" (롬8:2)이며, "양자의 성령"(롬8:15)이다. 생명의 성령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와 관련하게 하며, 양자의 성령은 성도들을 하나님과 관계하게 한다.

1) 생명의 성령(롬8:1-11)
우선 성령은 생명의 성령으로서 사람을 그리스도와 관계시킨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첫째로 성령은 사람을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시키신다"(롬8:2). 죄와 사망의 법은 달리 말하면 육신이다(롬8:3). 왜냐하면 육신은 "죄의 육신"이기 때문이다(롬8:3-개역성경에는 "죄있는 육신", 표준 새번역 성경에는 "죄진 육신"이라고 되어 있음). 말하자면 육신이란 것은 죄를 짓는 인간의 연약한 본성을 가리킨다(롬7:14,25). 죄와 사망의 법이 다스리는 육신에 있을때 인간은 그 정체가 "하나님과 원수"이며(롬8:7), 그 사업이 "육신의 일"이며(롬8:5 ; 참조, 롬7:25), 그 결국이 "사망"이다(롬8:6 ; 참조, 롬6:23). 그런데 생명의 성령께서 바로 이 최후 사망의 법아래 있는 육신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신다.

둘째로 성령은 생명의 성령이시기 때문에 사람을 자유롭게한 후에 무질서에 빠져들게 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게 한다. 생명의 성령이 임하시면 변화가 일어난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사람은 그 사업이 "성령의 일"이 되며(롬8:5). 그 결국이 "부활"이 된다(롬8:11). 왜냐하면 그 정체가 "그리스도의 것"(?????)으로 변하였기 때문이다(롬8:9). 생명의 성령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롬8:2) 성령이며, "그리스도 영"(롬8:9)이시기에 사람을 그리스도의 것으로 만든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는 끈이다(Calvin. Inst. Ⅲ.1, 1)!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효과있게 자신과 결합시키는 끈이시다!.

2) 양자의 성령(롬 8:12-30)
이어서 성령은 양자의 성령으로서 사람을 하나님과 관계시킨다. 이제 더 이상 종이 아니다. 사람은 본래 죄의 종으로서 (롬6:17), 자신을 불법과 부정에 드리고(롬6:19), 부끄러운 열매를 맺으며(롬6:21), 결국은 사망에 이를 존재이다(롬6:23). 그런데 양자의 성령은 바로 이같은 종의 신분으로부터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롬8:14), "너희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 짖는다"(롬8:15).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일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들에 부어졌다"고 표현한다(롬5:5).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죽게 하심으로써 이루시는 구속적인 사랑이다(롬5:8). 우리는 연악하고 죄인된 상태에 있었다(롬5:8). 하나님의 구속적인 사랑과 인간의 범죄한 상태는 단절적이다. 바로 이같은 간격을 성령께서 연결시킨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마음이 이러진다.(참조, 고전2:10).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사랑을 표현하신 하나님과 연약하고 범죄한 인간을 연결시키시는 것은 오직 성령이시다!]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양자의 성령은 이제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하신다.

한편으로는 성령께서 우리 곁에서 증거하신다.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함께 증거하신다"(롬8:15).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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