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에 대해서 


 
우리말로 은사(恩賜)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GIFT”, 즉 “선물”이다. 하나님의 선물이 바로 은사다.
은사주의가 너무나 팽배한 지금의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에 관심이 많다.
은사에 너무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정작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은 뒷전이 되고 말았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계 3:20).
 
1. “은사”는 성령님께서 각 사람에게 자신의 뜻대로 다양하게 부여하신다.
모든 사람은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 [각 사람(every man)이 받은 은사 대로,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섬기라.]

(벧전 4:10). [그러나 각 사람(every man)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유익을 위함이라.](고전 12:7).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있다.
 
2. 은사는 받은 사람에게 적격이다.
[사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어서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느니라.](고전 7:7).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은사가 있다.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다. 행정을 맡아보는 사람에게는 설교하는 은사가 필요하지 않다. 성령께서는 각 개체에게 그 기능에 따라 적절한 은사를 주신다.
 
3. 은사는 각자가 최고인 것으로 받는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그 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느니라](고전 12:11). 성령께서는 거듭난 사람을 그리스도의 몸 안에 두시어 특별한 임무를 부여하신다. 그 임무를 선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다. 그 분은 위치를 선정하시고 계속해서 형성시키고 또 새로운 조직세포에 맞도록 하신다.
 
4. 은사는 각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신 것은 유익을 위함이라.](고전 12:7). 은사를 주신 것은 몸을 보다 편리하고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은사를 성도들에게 부여함으로써 교회 전체에 커다란 유익을 얻게 된다. 인간의 신체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없다(맹장까지도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몸에도 필요 없는 부분은 없다. 보이지 않는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은 보이는 육신의 몸보다 튼튼해야 한다. 왜냐하면 각 사람이 지체로서 그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사로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5. 은사가 주어진 목적은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너희도 마찬가지라. 너희가 영적인 은사들을 열망한 이상 교회를 세우는 데 풍성하기를 구하라.](고전 14:12). [그가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엡 4:11,12). 만약 이 목적에 어긋나게 은사를 사용한다면 이는 은사를 주신 분에게 죄를 짓는 것이며, 무례히 행하는 것이다.
 
6. 은사는 구하면 더 주신다.
[오히려 너희는 최상의 은사들을 열망하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더 좋은 길을 보여 주리라.](고전 12:31).
은사들 중에 “더 좋은” 은사도 있다.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니라. 사랑을 추구하라...](고전 13:13-14:1)
왜 사랑인가? 사랑이 교회를 세우기 때문이다.[...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세워 주느니라.](고전 8:1).
 
7. 교회들이 오해하고 있는 은사들이 있다.
성경에는 24가지의 은사가 나온다. 고린도전서 12:8-10에서는 은사로서 지혜의 은사, 지식, 믿음, 병 고침, 기적 행함, 예언, 영들 분별, 방언, 방언 통역의 은사를 들고 있으며, 고린도전서 12:28에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사도가 되는 은사를, 그리고 선지자, 교사, 기적을 행하는 은사와 병고치는 은사, 서로 돕는 자, 다스리는 자, 각종 방언하는 자를 들고 있다. 또 에베소서 4:11-16에서는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말씀 전하는 은사를 덧붙여 말하고 있고, 로마서 12:6-8에서는 권면하는 은사와 구제의 은사, 다스리는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덧붙여 말하고 있다.


이 중에 4가지의 은사는 일시적인 은사였다.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안니하나 예언들이라도 끝이 올 것이요, 방언들이라도 그치게 될 것이며 지식도 끝나게 되리라.](고전 13:8).


일시적인 은사에는 기적을 행하는 것, 병을 고치는 것, 방언, 방언 통역이 있다.


이 4가지의 은사는 사도들에게 주어졌으며, 이는 은사인 동시에 “표적”이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은사”를 구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삼지 않으시지만, “표적”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엄히 책망하신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갖고 기도하며, 영적 성장을 이루는 대신 “표적”을 통해 믿음이 자라나기를 바라는 것은 악한 일이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라.)](고후 5:7)고 말씀하셨고,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후 4:18)라고 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도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셨고(마 12:39,16:4), 믿음 없던 도마에게는 “네가 나를 보았으므로 믿는구나.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고 말씀하셨다(요 20: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은사(표적)들을 구하는 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방언과 신유, 방언 통역과 기적을 행하는 것은 사도시대에 “사도의 표적”(고후 12:12)으로 주어졌던 은사란 사실을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부추기는 자들은 거짓 교사들이다.


“방언”은 무엇인가? 방언은 지상의 언어요, 외국어다. 고전 14:21은 이사야 28:11,12을 인용한 것으로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보여 주신 표적이다. 결과는 믿음이 아니라 “불신”이었다.


“병 고침”은 어떠한가? 병 고침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신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적적으로 병의 치유를 경험하고 있다. 병원에서 포기한 병을 하나님이

고치신 예는 지금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결과이지 누가 은사를 받아서 고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병이 다 낫는 것은 아니다(빌 2:26,27, 딤전 5:23, 딤후 4:20).
하나님은 병을 고쳐 주실 수도 있고, 고쳐 주시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이다.
“통역”은 어떠한가? 방언이 없다면 방언 통역은 당연히 필요 없다. 오늘날도 “기적”은 자주 발생한다.  


지상 최대의 기적 가운데 하나는 죄로 물은 인간이 믿음으로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벌금을 물린 것도 아니고, 반쯤 죽도록 때린 것도 아니고, 정신 개조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새 사람”으로 변하는 이 일이 가장 놀라운 기적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기적을 행하지 않고 독사의 독을 마신다든지, 뱀을 집어 든다든지, 물위를 걷는 기적을 행하려 한다면 그 나중 결과는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8. 은사는 꼭 사용되어야 한다.
[....네 안에 있는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딤전 4:14).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은사처럼 빛을 볼걸 같지 않다고 은사를 숨긴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는 은사는 빼앗아 가실 수도 있다. 마태복음 25:14-30절에 보면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은사)를, 다른 사람에겐 두 달란트를, 또 다른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 다섯 개를 받은 사람은 다섯 개를 더 받았고 땅에 숨겨놓은 것까지도 그에게 주었으니(마 25:28) 결국 그는 열 한 개의 은사를 받은 것이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은사는 구하면 더 주신다는 것과 사용하지 않으면 빼앗기게 된다는 것이다.
거듭날 때 우리는 하나 또는 두 개의 은사를 가졌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더 많은 것을 구하고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9. 은사는 향상된다.
[....네 속에 있게 된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듯 일어나게 하려 함이라.](딤후 1:6).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유익을 주기 위해서 은사는 일정한 활용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하늘의 은사에 대한 끊임없는 개선에 관심을 모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A. T 피어슨 목사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첫째, 모든 사람은 은사를 지니고 있다. -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서로 세움을 입어야 한다.
둘째, 아무도 모든 은사를 다 지닌 것은 아니다. -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겸손해야 한다.
셋째, 모든 은사들은 한 몸을 위한 것이다. -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넷째, 모든 은사는 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만족해야 한다.
다섯째, 모든 은사들은 서로 돕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다. -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서로에게 신실해야 한다.
여섯째, 모든 은사는 몸을 건강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 그러므로 어떤 은사도 함부로 허비되어서는 안 된다.
일곱째, 모든 은사는 주님의 충만한 능력 가운데 의지 한다. - 그러므로 모두는 주님과 지속적으로 연합돼야 한다.
이 짧은 글은 성령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서로 돕고 세우는 일에 얼마나 관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은사가 내게 주어졌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 할 수 있다.
은혜를 주시는 만큼 많은 은사를 주실 수도 있다. 그러나 은혜와 은사는 같은 것이 아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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