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방법

  1. 원근법으로 보기
  2. 지도의 제작
    1. 현실 세계에서 다시 수학으로  
                           

      그리스 수학자들의 이론적인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수학은 현실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들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현실과 동떨어진 논리학에 대한 관심으로 수학이 발달하기 시작했지만, 수학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에서 예술 및 과학과 접목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또다시 새로운 수학적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은 수세기 동안 기하학자들에게 흥미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이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빛이 어떻게 작용해 우리 눈이 보이는지 설명하고, 그 모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타난 어려움들은 기하학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원근 기하학은 물체들 사이의 관계, 물체가 어떻게 배열되고 나타나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것은 물체의 그림자와 눈에 포착되는 물건의 원근감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연구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원근법으로 보기

      아랍의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알하이삼은 광학에 관한 생각을 공식으로 만들기 위해 기하학을 활용했다. 그는 평행선을 재정의해서 유클리드의 연구를 발전시켰고 원뿔 곡선을 사용해서 빛의 굴절과 반사를 연구했다. 그는 ‘빛은 물건을 보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체로부터 발산된 것이다.’라는 정확한 광선 모델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당시의 일부 과학자들만이 이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물체에서 나오는 피라미드 모양의 빛에 대해 설명하면서 일부 광선만이 사람의 눈에 도달한다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원뿔 곡선을 이용해 평면이나 곡면에서 반사가 이루어지는 지점을 밝혀내려고 했다.


      알하이삼의 연구는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양으로 전파되었고 예술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사건, 즉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서 직선 원근법의 발견을 이끌었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는 서양 예술에서 원근법을 적용한 초창기의 뛰어난 예이다.


      직선 원근법을 발견한 사람은 피렌체의 건축가이자 엔지니어인 필리포 브루넬레스코(1377~1446년)였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에 알려져 있던 직선 원근법의 건축 원칙을 발견했다. 브루넬레스코는 두 개의 판을 이용해 원근법의 기본 원칙들을 증명했다. 두 개의 판은 분실되었지만, 1435년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브루넬레스코의 연구 내용을 반영해서 《그림에 대하여(Della Pittura)》라는 책을 썼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은 브루넬레스코의 연구 성과가 절정을 이룬 것이다. 목재의 무게로 인한 압력이 돔을 지탱시킨다.



      알베르티는 그림이란 물체(피라미드의 정점)와 관찰자의 눈 사이에 있는 빛의 피라미드를 어떤 시점에서 잘라 그 이미지를 수직면에 투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그림은 그림 안의 평행선이 서로 만나게 되는 소실점을 갖게 된다.

      지도의 제작

      거대한 이미지인 세계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기하학을 응용해야 했다. 측량사들은 삼각측량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위해 삼각법을 활용했고 이로써 최초로 정확한 지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삼각측량은 1533년 플랑드르 지방의 수학자인 젬마 프리시우스(1508~1555년)가 유럽에서 최초로 제안했다.


      1874년 지리 측량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미국 콜로라도 술탄산의 정상에서 삼각측량을 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도 미숙하긴 했지만 삼각측량법이 사용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은 1세기에 원시적인 형태의 경위의각주1) 에 대해 설명했다.

      기준선의 끝과 끝에서 멀리 있는 물체의 시야각을 경위의를 이용해 측정한다. 그리고 삼각측량법을 이용해 그 물체와의 거리를 구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삼각법으로 측량되거나 계산된 모든 지역을 지도로 나타낼 수 있었다.


      최초의 대규모 지도 제작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사람은 스넬 교수(1581~1626년)였다. 그는 네덜란드 지역에서 130킬로미터에 달하는 곳을 33개의 삼각형을 이용하여 측량했다.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전체를 측량하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이 지도를 완성하는 데에는 100년이 넘게 걸렸다. 영국은 1800년과 1912년 사이에 인도의 전 지역을 측량했으며 이 과정에서 에베레스트산을 발견했다.


      15세기 중반부터 시작해서 탐험가들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그 땅의 지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활동은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해안을 탐험하면서 시작되었다. 측량은 직선을 다루는 일이지만, 새로 발견된 광대한 땅을 기록하고자 했던 지도 제작자들은 구로 이루어진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2차원 지형을 나타내야 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에 근거한 르네상스 시대의 세계 지도


      지도 제작 기술은 발견의 시대(15~17세기)에 극적으로 발달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자신의 책인 《지리학(Geography)》(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재발견됨)에서 사용했던 방법은 넓은 세계를 기록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지도 제작자들은 이 방법 대신, 천문학자들이 하늘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던 평사도법(平射圖法)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방법이 반구의 내부 모습을 그려내기 위한 것인 반면, 지도 제작자들은 지구의 바깥 표면을 나타내고 싶어 했다(평사도법은 지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투영점으로부터 구를 평면(원)에 투영한다. 그 결과 투영점에 가까운 지역은 평면에 왜곡되어 나타난다)

      메르카토르가 자신의 지구를 들고 있다.


      가장 효과적으로 변형된 방법은 메르카토르 지도 투영법이다. 이것은 플랑드르의 지도 제작자인 게르하르두스 메르카토르(1512~1594년)가 최초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적도와 맞닿아 있는 원통에 지구가 투영돼 있는 것처럼 지구를 그렸다. 위도와 경도의 정확한 비를 나타내기 위해 위도선과 자오선을 일정한 간격의 직선으로 그렸다. 원통을 펼치면 평면의 지도가 나타난다. 이 투영법은 항해를 하는 데에는 편리했지만, 극지방으로 갈수록 땅의 면적이 왜곡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메르카토르 투영법에 따르면 그린란드가 아프리카와 거의 비슷한 넓이로 나타나지만 실제로 아프리카의 면적은 그린란드보다 14배가 크다.


      메르카토르 투영법을 이용한 세계 지도는 구가 어떻게 원통에 투영되어 지도가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메리카


      프톨레마이오스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알마게스트》이지만 그가 집필한 또 다른 책인 《지리학》 또한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두 개의 지도 투영법을 개발했고 위도선과 경도선을 최초로 사용했다. 하지만 측량이 부정확했기 때문에 그가 계산한 경도에는 상당한 오류가 있었다. 또한 그리스가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가 계산한 지구의 크기는 실제보다 작았다.

      중세 시대부터 지금까지 보존된 오래된 유럽의 지도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기하학에 크게 의존했다. 항해사들이 인도로 가기 위해 서쪽을 향해 항해할 계획을 세웠을 때, 그들은 실제보다 훨씬 짧은 거리를 예상했을 것이다. 결국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를 발견했지만, 애초에 그 일이 어떤 규모인지 알았더라면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콜럼버스가 1492년에 아메리카에 도착한 것을 작가는 낭만적으로 그렸다. 예상보다 길어진 여정 끝에 육지에 닿은 콜럼버스는 분명히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다시 수학으로

      원근법과 투영법에 관한 열광적인 논의는 다시 수학으로 이어져 전반적인 원근법의 특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는 지라르 데자르그(1591~1661년)의 연구였고, 이것은 결과적으로는 19세기에 발전된 형태의 사영 기하학으로 이어졌다.


      데자르그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건축가, 예술가였으며 그 당시 최고의 수학자인 데카르트와 페르마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는 사물의 원근감을 살려 그릴 수 있는 기하학적인 방법을 개발했고, 1636년에는 원근감을 만들어내는 기하학을 설명한 매우 이론적인 책을 써냈다.


      판화가 아브라앙 보세는 1648년에 데자르그의 정리를 제시하면서 좀 더 접근하기 쉬운 형태로 다시 진술했다. 보세에 따르면, 하나의 점에서 보았을 때 원근을 형성할 수 있게 두 개의 삼각형을 3차원 공간에 놓고 서로 교차할 때까지 이 두 삼각형의 대응변을 연장했을 때, 두 삼각형의 교차점들은 모두 하나의 직선 위에 놓인다. 두 개의 대응변이 서로 평행을 이루지 않는다면 보세의 말이 맞다. 이것은 데자르그의 정리를 수정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보는 관점 V에서 삼각형들은 원근의 위치에 있다. 삼각형의 대응변(BC와 B′C′, AC와 A′C′ 등)들이 서로 만날 때까지 연장된다면 교차점 P1, P2, P3는 하나의 직선 위에 놓인다.


      데자르그의 연구는 약 50년 동안 인기를 끌었고 이 내용을 파스칼(컴퓨터의 등장 항목 참조)과 라이프니츠도 읽었지만, 1864년에 그의 연구가 재발견되어 다시 출판되기 전까지 데자르그의 연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데자르그와 파스칼 모두 다양한 방법의 투영법에 의해 왜곡되는 도형의 특성을 연구했다. 예를 들어 구로 이루어진 세계를 평면에 나타내면 거리와 형태 둘 다 실제와는 달라진다.


      사영 기하학의 기본 원칙은 19세기 초에 장 빅토르 퐁슬레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서 전투 후에 원정군이 떠나면서 퐁슬레는 1812년 러시아의 크라스노이에 남겨졌고, 이후 체포되어 사라토프에 있는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동안 원근법과 원뿔에 관해 연구했다.


      그는 평행면의 경우에 데자르그의 정리를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의 해결책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었다. 퐁슬레는 각각의 선이 소실점을 가지고 있고 평행한 직선은 공통된 소실점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다. 이것은 사영 기하학의 토대를 이루었다.


      퐁슬레는 투영되었을 때는 다양하게 나타나지 않는 도형의 또 다른 특성을 찾아내기 위해 기하학적인 거리와 각도는 무시했다. 이것은 같은 선 위에 있는 점과 거리 간의 특수한 비를 활용한 것이다. 실제로 한 선 위에 있는 점들은 투영했을 때도 한 선 위에 있다. 사영 기하학은 원뿔 곡선에 관한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었다(원을 투영해서 모든 원뿔 곡선을 만들 수 있다).


      사영 기하학에 대한 연구 말고도 퐁슬레는 일-운동 에너지 정리를 증명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공학자로 인정받는다.



      사영 기하학


      사영 기하학(projective geometry)은 ‘무한을 나타내는 한 점(소실점)에서 평행선이 만나는 것을 보여주는 미술의 직선 원근법’의 중심이 되는 원리이다.

      사영 기하학은 유클리드의 다섯 번째 공리(평행선의 공리)를 인정하지 않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다.

      데자르그는 원근감을 표시하는 편리한 기술을 활용해 예술적인 면모는 빼버리고 평행선이 실제로 무한에서 만나는 비유클리드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 투영법을 원뿔 곡선을 포함한 기하학적 도형들을 연구하는 데 사용했다.


      출처 수학 오디세이 | 저자앤 루니 | cp명돋을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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