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1.종의 기원


  찰스 다윈은 100년도 더 전에 [종의 기원]을 출판함으로써 지속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책에서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어떤  새로운 종(종)의 기원의 실례가 단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 그는  종  내의여러  변이를 관찰하고 상동관계와 함께 여러 기관의 진화 과정을 탐구하였으나  수직적인 진화가 있었다는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변이, 그리고 자연 선택에 의한 우성의  축적이라는 그의 추리적인 이론은 진화의 강력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다윈과 동시대의 사람인 멘델에 의해 다윈설의 변이라는 것도 수학적인유전의 법칙에 따라 제한된 한계 내에서만 일어난다는 사실이 또한 밝혀졌다.


  유전자는 복잡하고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방법으로 생물체의 물리적 특성들을 조절한다. 엄청난 수의 유전자들은 계속적인  결합과정을거쳐 다양한 개체를 낳는데 정확하게 똑같은 두 개의  개체는 존재하지않는다.

이러한 과정은 진화가 아니며 단순한 변이로, 개체성의  중요한현상으로 간주될 뿐 이니라 식물과 동물이 멸종하지 않고 환경의 변화를받아들일 수 있게도 한다.


  아무튼 단순한 변이는 조직적 복잡성과  같은수준에서  발생하는  수평적 변화일 뿐이며, 언제나 일정한 한계 내에서만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제한된 수평적 변화가 종의  변이까지 이어지는 수직적 변화로 발전되었다는 증거는 아무 곳에도 없다.  실제의 물리적 증거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 즉 소진화가 대진화와  연결된예는 없다. 인류의 역사 내에서, 어떤 유기체 보다 복잡한 유기체로  진화하였다거나 같은 수준의 새로운 종이 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반면에수천의 식물과 동물들이 인류 역사기간중에  멸종되었다.  자연주의적인과학자들의 말대로 현재가 과거를 반영한다면,  생물학을 지배하는  법칙은 진화가 아니라 소멸과 퇴보인것이다.


  다윈은 죽은 지 100년이 넘었고, 수많은 과학자들이 수백만 달러를  연구와 실험에 투자했지만, 종의 진화는 실험적으로 증명되지 못했다.  더구나, 진화가 일어나는 역학구조에 관한 지식조차 얻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의미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진화가  과학적진리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과학의  어떤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진화의 역학구조에 대해서는 많은 추론이 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으로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다윈의 자연선택설, 드  프리스의  돌연변이설, 여러 가지의 정향(정향)진화설, 골드슈미츠의 있음직한 괴물이론 같은 돌연 변이설, 그리고 최근의 신다윈주의에서 논의되는 현대 진화적 합성과  보다 최근의 이론인 단속 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등이  있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진화론들을 상세히 다룰 지면도 없고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점은 그 이론의 다양성과 그 제안자들사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내부적 논쟁들이다. 이것은 누구도 진화가 실제로  어떻게일어나는지에 관해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동식물에 있어서는 돌연변이 현상에 의해 현저하게 새로운  특성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변이란 이미 존재하는 유전적  인자들의 단순한 재결합을 나타낸다. 반면에 돌연변이는 전적으로 새로운 유전인자가 포함되는 것이다. 적자생존에 의해 여러 세대  동안  간직되어온 유리한 돌연변이의 축적으로 새로운 종이 진화된다고  주장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유리한 돌연변이는 없다는 것이다. 알려진 모든  돌연변이는 치명적이거나 해롭거나 중성(중성)이거나 가역적인 것이었다. 유전자 암호에 있어서 돌연변이란, DNA분자 구조의 임의의 변화에 의하여 유전  정보가 실수로 전달된 것을 의미한다. 실험실에서의 돌연변이는 화학약품,  열, 방사선 등의 인위적인 충격에 의해 발생되었다.


  반면에  자연계에서의 돌연변이는 매우 드물고, 돌연변이가 일어나도  생존 경쟁 세계에서 우성적 존재이기보다는 병적이거나 중성적인 것으로 빨리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설령 살아남는다 해도 유전적인  부담을  주게  되어 전체적인 생존도는 낮아진다. 진화론자들은 진화를 믿기 위해 유익한  돌연변이를 계속해서 믿으려 하나, 유익한 돌연변이는 하나도 없었다. 종종  인용되어지는 유럽 자벌레 나방의 색깔 변화나 어떤 곤충의 DDT에 대한  저항력은 진화가 아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유전자적 특성들의 단순한  재조합임이 유전학자들에 의해 오래전에 알려졌다. 어떤 돌연변이라 불리는  것들은 예측이 가능하고 또 가역적(가역적)인데 이것들은 재조합의 한  형태로  밖에는 생각되어질수 없다.


  실제의 돌연변이가 해로운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돌연변이는 매우 복잡하고 대단히 조직화된 세포의 조직이 멋대로  재구성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떤 복잡한 조직이 임의의 변화를 하면 그 조직의 조직성  및 기능이 떨어진다. 조직성이 증가하려면 조직적인 정보의 입력이  필요하며  고물 수집장의 회오리바람같이 외부로부터 오는 힘의 유입에 의해  임의로  재결합 되는 것은 아니다.



2. 종의 주변적 증거들


  많은 부정적인 실험 결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 진화를 믿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진화를 주장하기 위해 제시하고 있는 주변적 증거들 때문일 것이다.


  생물들 사이의 유사성(상동기관)이 그 중 하나이다. 서로  다른   종사이의 유사성은 비교해부학, 비교발생학,  비교생화학,  비교행동학등에  의해 분석되어지고 있는데 조상관계의 가설적인 근접성을  측정하는  데  이용된다. 예를 들어 사람과 원숭이가 공통되는 성질을 가졌다는 점은 두  생물체가 공통의 조상을 가졌다고 추론하게 한다. 일반적인 분류체제(종, 속, 과, 목, 강, 문, 계)는 식물과 동물들의 서로다른 종류를 구분하고자  만들어졌고, 모든 생물의 진화적인  선조를나타내는 계통수와 거의 부합된다고 가정되어진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일은 폐차장이나 기계상에서도 행해질 수 있다. 실제로는 생물들 사이의 구조적, 생리학적 차이가 유사성보다 더  중요하다. 만약에 모든 생물이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다면, 그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아니라 연속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분류계를 배열하는 것 조차 불가능할 것이다.고양이와 개의 중간적인 것들이 연속된다면 어디까지가 고양이고 어디부터가 개인지 누구도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그러한  차이가  생겨났을까?이러한 차이는 창조론에 의해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유사성과상동기관은  동일한  선조로부터의 진화로 설명할 수도 있으나, 공통의설계자에 의한 창조로 설명하면 보다 분명하다.  그러므로 유사성과상이점은 전지한 창조자가, 같은  구조는  같은 기능을,  다른  구조는다른 기능을 하도록 창조하였다는, 창조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모든생물의 정상 구조들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으며 우연으로 설명되어질 수 없다.


  흔적기관에 관한 케케묵은 논의가 아직도 진화론 교과서에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 생각에 따르면, 사람에게 필요없다고   생각되어지는기관들(편도선, 충양 돌기, 꼬리뼈 등)은 인간의 조상인 동물에게 필요했던 기관들이 퇴화된 흔적이라 한다. 한때는 인간의 흔적기관으로여겨지던 기관들이 생리학적으로 필수적 역할을 하는 것임이  밝혀져그 대부분이 제외됨으로써  흔적기관의 목록 자체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논의는  단속적평형개념을 주장하는 현대 진화론자들에 의해 진전되고있다. 진화는 자연에 대한  적응보다는  자연의불완전성에 의해, 보다 잘 증명된다는 것이다. 즉 자연기관은  원래설계된 것만큼 잘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의 논의는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선택이라는 점진적  진화의 역할을 축소 평가하고, 자연의 불연속성에 의한 보다 급진적인  변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고울드(S.J.Gould)와 다른 단속적  평형론자들에의해 발전되어 왔다. 어쨌든 불완전성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흔적기관에 관한 논의와  마찬가지로, 진짜 기능을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게다가 만약 흔적기관이나 자연에의 불완전한적응이 있다면 그것은  돌연변이의 경우처럼 진보가 아니라 퇴보의 증거로 제시되는 것이 보다 사실에 가깝다.


  발생 반복설--어떤 생물의 발생학적 발전은 그 생물의 진화론적   발전들의 축약된 반복이라는--은 그 이론이 현대적 형태로  발표되었을때만  해도 진화를 증거하는 주변적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핵켈(그의철학은  히틀러에게 받아들여져 범신론, 인종주의, 제국주의 등을  낳았다)에 의해 독일에서 처음으로 주장되었던 이 이론은 현대의  발생학자들에 의해 과학적으로  불신되고 있으나 아직도 널리 믿어지고 있다. 과학은 그것을 적용함으로써 백년 이상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를입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동물들의 진화론적 역사를  세우려는   목적으로 많은 발생학적 연구가 있었고, 그 후에는 그것들로부터 지질학의  근간을 형성할 화석의 순서를 결정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고생물학적현장  증거로부터가 아니라 비교발생학과 형태학에 관한  연구로부터만들어진 화석기록들은  때때로 진화의 주된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발생반복이론은 인종주의와 낙태에 과학적 정당성으로 이용된   나쁜결과를 초래했다. 인간의 발생은 액체 상태의 환경에서 단세포  기관으로  출발하여 다세포 무척추동물과 아가미를 가진 물고기 그리고 꼬리를 가진  원숭이를 거쳐 마침내 인간이 되는 조상들의 유전적인  역사를  되풀이  한다고 핵켈(Emst Haeckel)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저급한 인종이라고 부르는 코카서스의 아이들이 보다 저급한 단계의 발생학적 과정을 거쳐 태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이것 역시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된다.


  이런 기괴한 사상들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는데  19세기의 진화론적 과학자들에게는 보편적이었다. 핵켈 뿐  아니라  다윈과그의 충실한 추종자 헉슬리(Thomas Huxley)를 포함한 지난 세기의 과학자들은 백인 인종주의자들이었는데, 그들은 진화론을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했다. 이러한 논리는 낙태에 대해서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데, 태아는 아직 사람으로 발전되지  않았기때문에 물고기나 원숭이를 죽이는  것처럼 낙태는 큰 죄가 아니라는것이다. 사실상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의  생명보다 원숭이나 다른 동물들의 생명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렇게 연구되어진 모든 태아의 각 발생 단계는 바로 그  피조물의 발전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모든 생명체의 각 단계에서 나타나는 경이로운 발생적 성장은 진화를 증명하기보다 설계자나 창조자의존재를 증거하고  있다.


자료원 : 헨리 M.모리스'박사 창조연구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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