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사본에 대해
학자들의 성경 원문 복원의 노력의 결과로 나타난 구약 원문 성경이 BHS(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라면, 신약 원문 성경은 네슬레-알란트(Nestle-Aland)의 신약성경 그리스어(NOVUM TESTAMENTUM GRAECE 27판, 1993. 이하 NTG로)와 독일성서공회(Deutsche Bibelgesellschaft)와 연합성서공회(United Bible Societies. 이하 UBS로)가 출간한 그리스어 신약성경(The Greek New Testament 제4판, 1993. 이하 GNT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는 이러한 최첨단의 성경을 원본으로 해서 성경을 번역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번역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 파피루스 사본들
신약 성경 원본은 당시에 흔히 얻을 수 있는 용지인 파피루스(papyrus)에 기록했습니다. 파피루스라는 종이는 애굽 나일 강 가나 습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라는 식물의 내피를, 펴서, 가로 한 겹 세로 한 겹 놓고, 눌러서 말린 것으로, 당시 사람들이 고대로부터 흔히 사용하던 필기 용지였습니다. 파피루스는 이른바 초지(草紙)였기 때문에, 견고하고 내구성이 없어서 쉽게 끊어지고 꺽어지고 부스러지기가 쉬웠습니다.
신약 성경 27권의 글이 파피루스에 기록되었고, 오래지 않아서 그것들의 필사본이 만들어져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원본들은 파피루스의 연약성 때문에 얼마가지 않아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본의 대를 잇는 파피루스 필사본들이 점점 많아져서, 각 교회에서 이러한 사본들이 원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신약 성경의 파피루스 필사본들은 신약 성경 전부를 기록하고 았았으며, 성경 중에서 일부분 또는 몇 책을 함께 필사했습니다(어떤 것은 복음서만, 어떤 것은 바울서신만, 어떤 것은 사도행전만, 어떤 것은 계시록만, 어떤 것은 복음서와 사도행전만 기록됨). 그러나 이러한 사본들 역시 용지의 나약성과 보존 기술의 취약성 때문에, 아깝게도 거의 대부분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파파루스 필사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2세기 상반기(A.D. 125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P52(p는 파피루스를 의미함)입니다. 오늘까지 발견된 98개의 파피루스 사본들 중에는, 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1-2개 정도(P90 ,P98) 더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3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초기의 수많은 교회들은 이러한 파피루스 사본을 성경으로 읽으면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말한 것처럼 파피루스는 수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것을 필사한 필사본들이 만들어지면서 낡은 것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새로운 필사본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현존하는 90여 개의 신약 성경 파피루스 사본들은 내용에 있어서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다소간의 차이와 불일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필사자들이 옮겨쓰면서 여러 가지 실수, 또는 신학적인 견해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 후기의 사본들은 초창기 원본과는 다소 다른 모습으로(사소한 것이지만) 전달되게 되었습니다.
2 대문자 사본(Uncials)
후에 성경의 귀중성을 깨닫는 교회들은 파피루스 사본들의 나약함과 지구성이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지구성이 있고 견고한 가죽 종이로 파피루스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4세기부터는 가죽으로 된 용지를 사용해서 성경을 필사했으며, 따라서 파피루스 사본보다 몇 배의 지구성과 편리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대문자 사본의 수는 약 300개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98개에 불과한 파피루스 신약 사본보다 훨씬 지구성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소문자 사본
그러나 대문자 사본은 용지 값이 비싸서 그것을 만들기가 어려웠을 것이며, 대문자로 쓰게 되면 비싼 용지에 기재할 수 있는 내용이 적기 때문에 비경제적이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대문자 사본의 수가 적은 것도 이러한 이유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에서는 계속해서 값이 싼 파피루스 사본을 사용하고 있었고, 어떤 교회에서는(부유한 교회) 대문자 가죽 사본을 사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7-8세기 동안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본(파피루스, 대문자 사본)이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수가 점점 늘게 되고, 성경을 필요로 하는 교회와 수도원, 또는 개인이 급히 늘게 되면서, 같은 지면에 가능한 많은 글씨를 쓸 수 있는 방법이 요구되었습니다. 이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글씨가 작은 소문자와 필기체를 고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구성을 늘리기 위해서 가죽 종이를 사용하면서, 가능한 같은 지면 안에 많은 내용을 필사하기 위해서 글씨가 작은 소문자와 필기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1450년에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즉 9세기부터 15세기 중엽까지에는 많은 소문자 사본들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회가 많은 지방에서는 수많은 소문자 사본들이 필사되어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 지방이 가지고 있던 사본들이 대량으로 필사되어, 비슷한 종류의 사본이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약 2,800여 개의 소문자 사본들은 대부분 9세기 이후에 생겨난 것들로, 원본부터 따지면 몇 십대 후손인 사본들을 필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본들은 원본과 많은 차이를 나타낼 뿐 아니라, 고대 사본들과 비교하면 많은 변개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신약 성경 사본들의 지방적 특성
기독교 교회는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북 아프리카(칼테지), 로마, 콘스탄티노플, 소아시아(에베소) 등의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기독교 교회는 이러한 도시들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각 지여바다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서 각 지방에서 만들어져서 사용된 사본들도 자연스럽게 그 지방의 특성에 어울리는 성격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학자들은 신약 사본의 본문 형태(text-type)에 따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지역 특성을 가진 사본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1) 애굽 형(알렉산드리아 형)
2) 서방 형(Western)
3) 가이사랴 형
4) 비잔틴 형(Byzantine).
엘돈 제이 엡(Eldon Jay Epp)은 위의 네 지역 문서를 다음과 같이 또 다른 기호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1) A-텍스트(비잔틴형)
2) B-텍스트(Codex B =P75 -B, 이집트(알렉산드리아) 형),
3) C-텍스트(B와 D 중간 =P45 -Codex W(가이사랴 형),
4) D-텍스트(Codex D, 서방 형)
위에서 세 가지 형태의 텍스트들(B(알렉산드리아형),C(가이사랴형),D 텍스트(서방형))은 A.D. 200년 경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이며, 적어도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파피루스 사본들(가장 먼저 기록된 사본들)이 그것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A텍스트(비잔틴형)은 초기에 기록된 파피루스나 대문자 사본이 없고, 후기에 기록된 소문자 사본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1) 초기부터 신약 성경 사본이 지방에 따라 특이한 경향을 갖게 되었으며, 2) B, C, D 형의 본문이 A형 본문보다 먼저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A 형의 본문이 연대적으로 가장 뒤에 형성됨).
사본의 우수성성을 측정하기 위한 원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짧은 읽기(reading)가 긴 읽기보다 우수하다"
후대에 갈수록 점점 더 모호한 부분에 대해 해석을 붙이는 경향이 있으므로
나. "어려운 읽기가 쉬운 읽기보다 우수하다"
난해한 부분은 필사자나 독자가 알기 쉽게 풀이하여 바꾸는 경향이 있으므로
다. 오래된 사본일수록 더 가치가 있다.
오래 된 사본일 수록 변개가 더 적은 사본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러한 비평 원칙들을 적용하여 여러 사본들을 검토한 결과 알렉산드리아 형, 즉 애굽 형의 본문이 가장 권위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 형의 사본을 참고로 해서 현재의 신약 성경 본문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형이라고 해서 모든 부분이 다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서방형과 가이사랴형이 알렉산드리아형에 비해 더 많은 변개와 첨가가 있지만,
이것들도 나름대로 특색을 가지면서 부분적으로 더 원본에 가까운 본문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4세기 후에 생겨난 비잔틴 텍스트도 가장 많은 변개와 첨가를 가지고 있지만,
약 10%정도의 본문은 다른 사본에 비해 더 탁월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형 본문을 원문으로 하고,
다른 세지역의 사본들(서방형, 가이사랴형, 비잔틴형)을 비교해서 가장 원문에 가까운 형태를 찾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5. 공인본문(텍사투스 레셉투스)의 출현
이러한 복잡한 과정과 역사 속에서 17세기 초에 인쇄업자였던 엘제비어(Elzevir) 형제가 신약 원어 성경을 출판했습니다. 그들은 1624년에 초판을 내었고, 1633년에 제2판을 내었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제2판을 선전하면서 자기들이 낸 신약 성경은 "모두가 수락하는 책"(textum …… ab omnibus receptum)이라고 광고를 내었습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그 신약 성경을 '텍스투스 레셉투스(Textus Receptus)'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은 여러 인쇄본 성경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6. 비평판 헬라어 신약 성경들의 출현
약 400년 동안은 비쟌틴형을 기초로 만들어진 공인본문(텍스투스 리셉투스)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생각한 것처럼 비쟌틴 본문은 네 지역의 사본 중에서 가장 후기에 기록된 소문자 사본들(약 5-6개의 변질된 소문자 사본들)을 근거로 해서 만들어진 문서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이 사용되는 동안에 여러 곳에서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많은 귀중한 사본들이 발견되었으며, 본격적으로 과학적인 본문 비평을 시작한 사람은 락흐만(Karl Lachmann, 1831)이었습니다.
티셴도르프(Constantin von Tischendorf)가 시내산 사본을 발견한 후에 여덟 판의 헬라어 신약 성경을 출판하였고, 트레글러스(S. P Tregelles)가 역시 헬라어 성경을 내었으며, 웨스트코트(B.F.Westcott)와 호르트(F.J.A.Hort)가 합작하여 The Greek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이라는 신약 성경을 출판함으로써 비쟌틴 형을 바탕으로 만든 공인본문(텍스투스 레셉투스)의 시대는 종언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신약 성경 본문 비평학은 확고부동한 고지를 점령하였으며, 거의 완벽하다고 할 만한 비평판 원어 신약 성경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의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로 나타난 신약 원문 성경은 1) 네슬레-알란트(Nestle-Aland)의 신약성경 그리스어(NOVUM TESTAMENTUM GRAECE 27판, 1993. 이하 NTG로)와 2) 독일성서공회(Deutsche Bibelgesellschaft), 그리고 3) 연합성서공회(United Bible Societies. 이하 UBS로)가 출간한 그리스어 신약성경(The Greek New Testament 제4판, 1993. 이하 GNT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는 이러한 최첨단의 비평판 성경들을 대본으로 해서 성경을 번역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표준새번역이나 개역 개정판 역시 이러한 성경들을 토대로 해서 번역되었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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