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고고학의 개요
사실상 성경 연대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성공회 대주교였던 제임스 어셔(J. Ussher)가 자신의 가설을 발표한 1605년 이후이다. 당시 어셔는 성경의 연대기를 분석하여 아담이 창조된 연대(B.C. 4004년)까지 계산해 내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연대기적 가설이 성경에 나타나는 초기 역사 인물들의 수명을 계산하여 낸 단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영국 사람들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어서 흠정역 성경(KJV) 뒷부분에 포함되어 인쇄되었고 지금도 인쇄되는 판이 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막연히 성경의 연대에 대한 궁금증에 답한 어셔의 가설에 만족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에 여러 방면의 학문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전문적 학문의 차원이 성서 고고학이 등장하게 되면서 성경의 그 연대 문제에 답할 뿐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인류의 역사에 대한 문제를 풀어줄 실마리를 제공하게 되었다.
인간들이 땅에다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이래 역사적 유물(遺物)들은 거의 모두 땅 속에 보존되어 있고 그것들을 발굴하게 되면서 성경에 기록된 역사도 많은 부분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이제 본 성서 고고학 편에서는 이러한 성서 고고학의 발전과 공헌 등에 관하여 다룰 것인데 그러기에 앞서 여기에서는 고고학 일반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성서 고고학에 관한 예비적 지식을 다루게 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제1장 성서 고고학의 개요를 참고하게 바란다.
Ⅰ. 고고학이란 무엇인가?
Ⅱ. 연대 결정 방법
Ⅲ. 성서 고고학의 정의와 발전
Ⅳ. 고대 근동의 성서 고고학
Ⅴ. 팔레스틴 지역의 일반 고고학적 시대 구분
Ⅵ. 성서 고고학의 유익과 한계
Ⅶ. 성서 고고학의 전망
Ⅰ. 고고학이란 무엇인가?
1. 고고학의 개념
고고학(考古學, Archeology)이란 인간들이 과거에 남겨 놓은 유물, 유적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고고학의 대상은 시간적 대상과 사물적 대상으로 구분될 수 있다. 먼저 시간적 대상은 과거 전체를 의미하며 역사 이전의 선사 시대(先史時代)와 역사 시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선사 시대 고고학은 시대 구분에 있어서 석기 시대를 주로 다루며 역사 시대 고고학은 주로 석기 시대 말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기를 다룬다.
물론 성서 고고학은 역사 시대 고고학에 포함되어 있다.
다음으로 사물적 대상은 유물과 유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물은 인간의 남겨 놓은 물건을 뜻하는데, 유골(遺骨), 생활도구, 도기(陶器), 주화, 비문, 문서 등 인간의 삶을 위한 물품들 전반을 의미한다. 그리고 유적(遺蹟)이란 인간들이 거처하고 생활하던 삶의 터전을 의미하며 원시적 주거형태인 동굴뿐 아니라 집터, 패총, 구릉, 성(城), 무덤 등 주로 거주지와 연관된 전반의 장소들을 가리킨다.
2. 고고학의 발전
위에서 언급한 어셔의 연대기적 관심과 더불어 17세기부터 일어난 과거 시대의 유물과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고고학적 관심'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와 함께 과학적인 제(諸) 학문들이 발달하면서 주변의 다양한 다른 학문들의 도움을 받아 고고학은 독립된 학문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고고학은 그 성격상 역사학에 포함되므로 인문과학의 한 분류이다. 다른 학문들도 대개 그렇지만 특히 고고학은 주변 학문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예를 들면 역사학, 인류학, 지사학(地史學), 지질학, 미술사, 고생물학, 해부학, 물리화학, 건축학, 언어학 등이다.
가장 초기의 고고학은 고대의 벽화 연구를 중심한 미술사(美術史)라고 말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17세기경 역사학을 강의하면서 증거 자료로 미술품을 제시했던 프레드릭에 대한 논평이 고고학의 첫발을 내디딘 구체적 시도였다. 이것을 독일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고고학은 학문으로의 토대를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1836년경에 톰슨이 유물을 수집, 정리하여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로 구분하는 삼시기법(三時期法)을 최초로 언급하였다.
구체적인 발굴 작업은 1870년경부터 그리스의 유적지인 트로이를 발굴하기 시작한 쉴리만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편 이때를 기하여 도굴꾼에 의해 유적지들이 지속적으로 도굴되었으며 그로 인해 고고학자들은 자극을 받아 구체적인 학술 답사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고고학적 학술 탐사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제반 학문간의 협력이 필요했으므로
20세기에 들어와서 국가간, 학자들간에 연합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3. 고고학의 연구 방법
발견물의 형태를 비교하고 지층들을 연구하여 그 발견물의 연대를 확정하고 문화와 생활, 풍습 등 필요한 자료들을 얻는 고고학의 연구 방법으로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방법이 이으나 현재는 거기에 몇 가지 방법이 추가되고 있다.
첫째는, 층위학적(層位學的) 방법이다.
이는 고고학의 연구 방법 중 가장 일반적이며 쉬운 것으로서 말 그대로 유물이 출토되는 지층을 따라서 그 지층의 상하 관계를 고려해 연대의 전후를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고학적 지층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훼손되었거나 후대의 무분별한 도굴 등으로 혼돈된 경우가 많으므로 한 지층에서 발견된 유적을 전후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둘째는, 형식학적 연구 방법이다.
이것은 비슷한 종류의 유물들을 많이 모아서 유사성과 상이점을 고찰하여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층위학적 방법으로 연대를 결정하기 힘든 유물, 유적의 연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셋째는, 토속학적 연구 방법이다.
이 방법은 문화 인류학적 방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현대의 미개 종속에서 사용되는 토속적 도구들과 발견된 유물을 비교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의 전제는 어느 시대에나 모든 민족은 문화의 발전 단계에 있어 공통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민족이나 종족이 똑같은 역사발전 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전제는 항상 적용할 수는 없고 부분적으로만 적용된다. 이러한 방법들이 기본적 연구 방법이며 현대에 들어 몇 가지가 더 추가되고 있다.
첫째는, 연대기적 연구 방법이다. 이 방법은 출토된 유물에 분명한 제작 연대나, 그것을 확증할 만한 자료가 발견될 때 그것을 절대적 연대로 보고 그 유물을 기준으로 유사한 다른 유물들의 신고(新古)를 결정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해양탐색 연구 방법이다. 링크(Link)에 의해 개발된 방법으로 해저에 매장된 자료를 발굴하여 고고학을 연구하기 위한 방법이다.
셋째는, 항공기를 이용한 촬영 방법이다. 이 방법은 최근에 사용된 방법으로 지상측량으로 할 경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데 반하여 유적 전체를 두루 전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방법은 일종의 '거시적(巨視的)인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고고학의 목적
고고학이 인류 문화의 유산을 규명하고 조사하려는 이유는 고고학적 발견을 통하여 과거의 진정한 역사를 재발견하고 조명함으로써 오늘 인류의 현재 모습을 찾고 또 미래를 위해 공헌하게 하려는 것이다. 발견된 과거의 신뢰할 만한 역사적 자료들이 오늘날과 장래의 역사 발전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특별히 성서 고고학의 측면에서 볼 때 성서 고고학은 성경의 역사가 '사실'임을 확인해 준다. 이것은 성경의 확실성과 절대성을 포함하는 '무오성'을 증명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Ⅱ. 연대 결정 방법
1. 자연과학 기술의 기여
고고학이 시작되던 시기에는 연대 측정 방법도 거의 없었고 그 정확도 신뢰할 수 없었지만 금세기에 들어 자연과학의 비약적 성장은 유물, 유적의 분석에 있어 획기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식물학자들은 발견된 고식물들의 분석 및 분류를 통해 연대를 산출하며 동물학자는 동물과 인간의 뼈를 통하여 시대를 분석한다. 또한 지질학자도 유적지의 지질학적 파악을 통하여 고고학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과학적인 분석기술은 고고학적 유물들을 매우 정밀하게 분석한다. 먼저 암석 분석학은 현미경을 통해 도자기 파편이나 조각들을 연구하고 그 결과 도자기를 형성한 광물을 판별해 낸다. 그 다음 중성자 방사능법으로 파편 조각을 원자로에 놓아 토기를 구성하는 점토의 화학적 구성 요소를 판별한다. 또한 분광 사진기(Spectrophotometer)를 사용한 분석 방법도 이용된다. 분석재료를 전기로(電氣爐)에 넣고 그것이 타면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Spectrum)에 따라서, 금속이나 흙의 구성요소를 판별한다. 이러한 방법들을 유용하게 활용한다면 고고학적 연대 결정에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적 기술들은 고고학에 두 가지 중요한 공헌을 했다. 먼저 그 기술들은 유물들의 정확하고 객관적인 연대를 알게 해주며 도기의 경우 점토의 첨가물과 광물질의 요소까지, 금속유물인 경우에는 합금의 구성요소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술들은 그 지역의 특산물과 수입물을 구분해 주어 고대 사회의 교역에 대한 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2. 탄소-14 측정법
이 기술은 연대를 보다 정확하게 측정해 주는 것으로 방사성 탄소(Radiocarbon) 연대 측정법이다. 이 방법은 원자 물리학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생물이 죽으면 탄소-14(C-14)의 흡입이 죽음과 동시에 중지되고 탄소가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비율로 분해되기 때문에 유기물 안에 있는 탄소의 잔량을 측정함으로 합리적으로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이 기술의 기본 가정은 대기 중에 탄소-14의 농도가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동일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의 고대의 자료들을 측정할 때는 꽤 많은 변동요인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큰 오차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나무 나이테의 연대와 주전5000년의 C-14 연대를 비교하면 750년이라는 큰 편차를 보이는데 이것은 그러한 연대측정에 문제점이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C-14 측정법의 불확실성은 방사성 동위원소(Radioisotope)의 반감기와 연관된다. C-14의 반감기의 한계점에 대해 '방사성 탄소'라는 학술지는 5568년이라는 가정 위에서 자료들을 출판했는데 1962년의 제5차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회의에서는 5730년을 기준으로 정했다.
따라서 이 탄소-14 측정 방법은 주전 3000년 이후 유물에 대한 연대 결정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으며 도자기 연대 결정과 더불어 매우 효과적인 연대 측정법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까지 고고학에 알려진 모든 고대 문화의 초기 시대나 그 지역에 대한 연대 측정은 지금까지 언급한 이 탄소-14측정 방법에 의한 것이다.
3. 최근의 연구 방법
그렇게 해도 연대 측정이 불가능한 5000년 이전의 고대 우물들의 연대 결정을 위해서는 최근에 보다 유용한 방법들이 고안되었다.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흑요석 수화율(Obsidian Hydratin Rates), 고고학적 자기법(Archeomagnetism), 열발광법(Themoluminescence), 나이테 연대 결정법, 꽃가루 부유법(Pollen flotation) 등이다. (G.H.Livingston).
Ⅲ. 성서 고고학의 정의와 발전
1. 성서 고고학의 정의
성서 고고학이란 말 그대로 성경에 나타나는 기록을 토대로 한 고고학을 가리킨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고고학자들은 자연적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서로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신학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고고학자들은 성경이라는 진실한 발굴 자료야말로 가장 신빙성 있는 안내서가 될 것이므로 발굴을 통해 정확성과 풍부한 결과를 기대한다. 이런 맥락에서 고고학은 성경 연구에 많은 공헌을 하게 되었고 성경이 배경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150년 전부터 성서 고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2. 성서 고고학의 발전
성서 고고학은 고대 세계의 역사를 밝히려는 욕구와 최초 문명 발상지 중 두 곳에 대한 연구로 시작되었다. 19세기에 접어 들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지역에 대한 유적과 유물의 발굴이 붐을 이루었는데 이때 고대 문자의 많은 부분이 판독되었고, 이것은 점차 힛타이트, 시리아, 아라비아 등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마침내는 팔레스틴 지역까지 발굴과 연구가 계속되어 19세기 후반에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학문의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
20세기 전까지는 성서 고고학적으로 획기적인 발굴이 없었지만 1908년에는 레이즈너와 피셔가 사마리아를 발굴했고 올브라이트가 발굴을 거의 완성하게 되었다. 이후 20세기 들어와서는 사해 사본의 발굴과 여리고 성의 발굴 등 많은 성과가 있었다.
고고학을 통하여 고대 근동언어가 재생되어 보다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 주었으며 성경 본문에 대한 확실한 정보도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고고학의 성경에 대한 공헌은 과거에 대한 친숙감을 유발하여서 성경 연구가 활성화되었다는 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성경 시대의 인물과 사건들에 대하여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정보를 얻어 성경의 세계가 부활됨으로써 성경 연구가 활발해진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사실 성경 스스로 증거하는 것 외에 외부적으로 성경에서 언급되는 '실물 증거'를 제시하는 외증(外證)이 없었기에 비평학적 신학으로 말미암아 난도질당한 성경이 여러 세기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질 수 있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Ⅳ. 고대 근동의 성서 고고학
성서 고고학에서 주로 다루는 지역은 고대 근동(Ancient Near East) 지역으로 메소포타미아와 애굽 그리도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인 레반트(Levant) 지역이다. 이제 이 고대 근동 지역의 구체적인 시대 구분을 논하기 전에 고고학적 연구 방법을 서술하면서 시대 구분의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참조, 본문의 제1장 제2강 “고고학의 시대 구분”).
1. 기준점으로서의 애굽 왕조
고대의 애굽인들은 자신의 왕국에 속한 왕들의 목록과 연대기를 보존하는 데 깊은 관심을 나타냈고 구체적으로 절대 연대의 부여를 위해 큰 게자리인 천랑성(Sothic)의 주기와 일치되게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연대기에 관한 전승이 주전 3세기에는 애굽의 제사장 마네토(Manetho)에 의해 남겨졌다. 그 왕의 목록에는 31개의 왕조들이 제시되어 있고 그것을 통하여 상대적인 연대기를 작성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왕들의 선후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다만 문제는 연대기에 있어 절대적 기준점이 된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와 비교하여 언제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다는 점이지만, 이것을 천랑성의 주기가 해결해 준다.
애굽의 달력은 365일의 주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현대 태양력의 주기인 365.25일 과 비교하면 4년마다 하루씩 뒤진다. 이것을 계산하면 730년 후에는 실제의 겨울이 달력상 여름에 있게 되며 그 다음 730년 후에는 정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천랑성이 매 1460년마다 한 번씩 신년일(新年日)과 일치시킴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가장 가까운 증거가 주후 139년에 발생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는 주전1317년과 2773년에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정보를 통하여 이집트 왕들의 연대에다 절대적 연대를 정할 수 있었고 가장 이른 경우가 주전1872년이다(A. Gardiner). 이 확정된 기준점들(check points)과 왕의 목록을 통하여 팔레스틴의 여러 역사적 연대들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2. 연대 결정의 결정적 지시물로서의 텔(Tell)과 도자기
지층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을 보고 그 순서를 밝히는 일은 고고학자들의 기본적인 작업인데, 이상대적인 연대를 결정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방법은 자신들이 파헤친 토양의 성층(成層)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다. 이 성층들을 살피면 독특한 유형의 도(자)기들이 반복해서 발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성층은 그것에 맞는 유형의 도기를 사용한 사람들의 거주지였다는 점을 발견한다.
이러한 성층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을 1870년에 트로이의 폐허를 발굴했던 독일의 쉴리만이며, 본격적으로 도기와 성층의 연관성에 대해 획기적 발견과 연구를 한 사람은 영국의 플린더스 페트리 경이다. 그는 1890년에 텔 엘 헤시를 발굴함으로 팔레스틴에도 트로이와 같은 성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또한 애굽의 도기와 동일시되는 도기들을 발굴함으로 도기를 통하여 연대를 결정할 열쇠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그의 연구 결과를 올브라이트가 1920년대 이후에 과학적 단서들로 체계화하여 학계에서 공인 받게 되었다.
이러한 성층의 발견이 연대 결정을 위하여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된 이유는 고대 근동의 도시들이 다른 세계의 여타 지역들보다 적당한 크기와 깊이를 가진 작은 언덕(Tell 이라고 부름)을 만들어 내는 옛 폐허 위에 세워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전 시대의 유물들이 묻힌 지역에 다음 세대가 살고 그 이후에 그 세대가 또다시 텔을 이루고 나서 그 다음 세대가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고고학적 발굴은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발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지역에서 계속하여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게 된 것은 팔레스틴 지역이 본래 건조한 땅이므로 삶에 필수적인 물근원이 한정되어 있고 교역에 유리한 지역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텔이 존재하는 것은 고고학자들에게는 매우 이로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한 곳을 발굴하여 한 시대뿐만 아니라 여러 시대를 거치는, 상대적 순서를 가진, 유물들을 발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텔의 발굴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도기들이었다. 어떤 종류의 도기들은 반드시 같은 토양층에서만 발견된다는 사실이 세밀한 분석을 통하여 밝혀졌다. 비록 이 도기들이 그 성층의 존재 기간 같은 것은 알려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시간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는 상대적 연대는 분명하게 해준다. 이 도기를 통한 연대기는 오차가 50년 이내일 정도로 정교해졌다. 이 연대 결정은 탄소-14 방법보다 정확하므로 적어도 팔레스틴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에서는 가장 정확한 연대 측정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많은 고대의 기물들이 있다. 건축물, 사냥도구, 농사도구, 가정용품들, 수공업 도구들, 전쟁무기들, 예술품들, 계량도구들, 비문(碑文) 등 많은 유적 유물들이 성층의 연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여러 고대의 기물들과 도기를 통하여 각 성층의 존재 기간을 산출하고 그 종족의 정체를 규명하게 된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연구된 결과들을 보면 주전 8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기간에 대해서는 거의 확실한 연대를 결정할 수 있고 주전3000년 이전경까지도 상대적인 연대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3. 전승, 비문들과 고고학의 연관 관계
전승들(traditions)은 고대 근동과 연관된 후대의 필사본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구약성경 중에서는 특히 모세오경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모세오경은 저작자인 모세의 시대와 상당히 격(隔)한 시기의 역사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전승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모세오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면서도 그 시대를 반영하는 수많은 비문들이 발견되고 있다. 단순히 성경만이 당시의 세계상을 반영한다고 보는 것은 매우 편협한 사고방식이기에 이러한 비문과 그에 상응하는 자료들도 당시의 고대 근동의 세계상을 반영하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자료들이 모세오경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창조, 인간의 기원, 언어의 혼란, 홍수, 족장들의 결혼, 계약체결의 관습 등 몇몇 부분에서 유사성을 보이는 자료들이 일부 존재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전승들과 비문들은 고고학의 상관관계에 있어 아직 미흡한 측면이 많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어떠한 비문이나 전승에도 창세기나 출애굽기에 나타나는 모세오경의 장소들도 고고학자들에게 발굴이 허락되지 않아서 확인할 수가 없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헤브론에 있는 회교사원 밑에 막벨라 굴이라고 불리는 곳에는 족장들의 뼈와 그 당시의 기물들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나 회교인들에게 지극히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는 그곳은 아직까지 어떤 고고학자들에게도 접근이 허락되지 않고 있다. 그 장소에 대한 신빙성 여부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거기에 첨가하여 위와 같은 제한도 있어서 고고학자들을 애태우고 있는 것이다.
요약한다면 모세오경이 경우만 하더라도 히브리 왕국 시대인 3.000년 이전의 시기나 신약의 시대와 같은 정도의 정확성을 기대하기는 힘든 것이 현대 고고학의 수준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참조, Ⅳ. “성서 고고학의 유익과 한계”).
Ⅴ. 팔레스틴 지역의 일반 고고학적 시대 구분
이 항에서는 구약과 신약성서의 연대기적 구도와 연관되는 팔레스틴 지역을 중심한 고고학적 시대 구분을 제시하려 한다.
현재까지 고고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도표로서 「신성경사전」The New Bible Dictionary)에서 주로 인용하고 여러 학자들의 연대표를 참고한다.
1. 이스라엘을 중심한 고고학 시대 구분표
1) 석기시대
구석기 시대 (B.C. 250000년)
중석기 시대 (B.C. 10000년)
신석기 시대:도자기 발명 이전 시대 (B.C. 7000년)
도자기 시대 (B.C. 5000 혹은 6000년)
2) 동석기 시대(Chalcolithic, Copper Stone Age, B.C. 4000-3200년)
3) 청동기 시대(가나안 시대)
초기 청동기(Early Bronze) 1기=초기 가나안 1기(B.C. 3200-2900년)
초기 청동기 2기 (B.C. 2900-2600년)
초기 청동기 3기 (B.C. 2600-2400년)
초기 청동기 4기 (B.C. 2400-2200년)
중기 청동기(Meddle Bron ze) 1기 = 중기 가나안(B.C. 2200-1900년)
중기 청동기 2a기 (B.C. 1900-1750년)
중기 청동기 2b기 (B.C. 1750-1630년)
중기 청동기 2c기 (B.C. 1630-1550년)
후기 청동기(Late Bronze) 1기 = 후기 가나안(B.C. 1550-1400년)
후기 청동기 2기 (B.C. 1400-1300년)
후기 청동기 3기 (B.C. 1300-1200년)
4) 철기시대(이스라엘/페르시아 시대)
철기 시대 1기:초기 이스라엘 시대 1기 = 이스라엘 1기(B.C. 1200-1050년)
초기 이스라엘 시대 2기 = 이스라엘 2기(B.C. 1050-970년)
철기 시대 2기:중기 이스라엘 시대 1기 = 이스라엘 2기(B.C. 970-840년)
중기 이스라엘 시대 2기 = 이스라엘 3기(B.C. 840-580년)
철기 시대 3기:후기 이스라엘 시대 = 이스라엘 4기 = 페르시아 시대(B.C. 580-330년)
5) 그리스 시대
그리스 시대(B.C. 330-165년)
그리스 시대 2기 = 마카비 시대(B.C.165-63년)
6) 로마 시대(B.C. 163-A.D. 70년)
2. 각 시대 개관
1) 석기 시대
이 시대는 석기를 도구로 사용한 시대를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야금술이 발견되기 이전의 시기를 총칭한다. 제시된 구석기 시대인 주전 25만 년은 진화론적인 가설에 의해 설정된 연대로 이스라엘의 성서 고고학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는 시기이다.
따라서 의미있는 석기 시대는 중석기 시대 이후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식량이 경작에 의해 생산되었고 토기(土器)가 사용된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이시기에 발견되는 유물·유적들을 분석하면 이 시기에도 이미 매우 종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음이 입증된다.
신석기 시대는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유명하며 생산 경제체제가 발전하고 기술이 진보했다. 자연을 이용하게 된 것도 이 시기이며 토기가 아닌 도기(陶器)가 사용된 것도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이다.
2) 동석기 시대
거의 천 년에 걸쳐 있는 이 시기는 동(銅)의 제련 기술이 발명된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이 시기는 다른 시대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시기이긴 하지만 이 시대에 대한 지식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요단 계곡 하부의 여리고와 가술 지방은 많은 유물들이 출토된 지역으로 바로 이 시기의 연대를 증명해 주는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3) 청동기 시대
초기 청동기 시대는 특히 고대 근동 전체에 걸쳐 도시들이 건설된 것이 특기할 만하다.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기록한 최초의 증거가 바로 이 시기에 메소포타미아 계곡과 나일 계곡에서 발견되었다. 이제 선사 시대(先史時代)를 접고 역사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애굽에서 나일 강을 중심으로 정치적 조직이 이루어진 시기도 바로 이때이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도시국가들이 발전하였다. 이 시기는 또한 에블라 제국의 시대이기도 하다. 애굽의 왕조가 이시기인 초기 청동기 2기에 성립되어 제11왕조까지 계속되었다.
중기 청동기 시대는 힉소소인들이 추방되기 시작한 때부터 블레셋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1200년까지에 이른다. 특히 이 시기는 성경의 기록과 연관해 당시 가나안인들의 종교에 관해 밝혀주는 많은 자료들이 있다. 아스다롯 신상이나 라기스, 므깃도에서의 신전(神殿) 발굴, 벧엘에서 발굴된 원통인장(圓筒印章)에 새겨진 바알의 신상들 등이 그것이다.
4) 철기시대
팔레스틴 지방에서 처음으로 철기를 사용한 사람들을 블레셋인들이다. 이들의 침입으로부터 시작되는 철기 시대는 주전330년경에 끝나는 페르시아 시대까지를 포괄한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독점적이며 우월한 철기 문화와 경제권을 빼앗아 내는 일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였다고 성경은 증거한다(삼상13:18-22).
이스라엘의 국력이 번성하던 시기인 왕국 시대가 포함되어 있는 이 시기는 많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그 역사의 신빙성을 밝혀 주고 있다. 신흥 바벨론과 페르시아가 세력을 떨치던 철기 시대3기의 역사 또한 많은 자료들이 발굴되고 있다.
이 시기만 해도 자료의 많음, 시기의 가까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므로 발굴자료의 가치가 큰 점 등으로 인해 상당히 정확한 고고학적 업적을 발견할 수 있다.
5) 그리이스/로마시대
이 시기는 특히 정신 문화적인 변화가 두드러진 시기로서 포로 시대에서 회복된 이스라엘이 자산의 국권과 문화를 정립하기 전에 외래 문화에 의해 길들여진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시기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외국의 지배하에 있는 치욕의 기간이요 고통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이스라엘의 종교와 문화의 독특성은 순수하게 유지되었는데, 그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로 유명한 칠십인역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세계 문화사에 지배적 영향력을 미쳤던 헬레니즘 문호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다수 나타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마레사와 벧술, 사마리아, 세겜, 게셀 등이 발굴 결과를 들 수 있다.
로마 시대가 특히 중요한 것은 신약성경에서 다루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나 그의 죽음, 부활 그리고 초대 교회 당시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던 역사 등에 중요한 자료들이 발굴된다는 점이다. 특히 법체계나 행정체계가 뛰어났던 로마의 영향으로 문서 형태의 고고학적 발굴물도 상당히 발견되어 정확하고 유익한 고고학적 자료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Ⅵ. 성서 고고학의 유익과 한계
1. 성서 고고학의 유익
성서 고고학은 약 150년, 더 엄밀히 말하면 10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학문이지만 그 유익은 대단하다. 그 유익과 가치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성서 고고학은 성경의 역사를 보다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당시의 상황과 역사는 그렇게 자세하지 못하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러한 환경적 성명을 하지 않아도 그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며 또한 성경은 그렇게 자세산 문화적, 환경적 상황들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사 시대의 자세한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는 후기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1기에서 발견되는 고고학적 자료들을 통하여 사사 시대의 팔레스틴의 역사적 고고학적 배경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성서 고고학은 많은 고대 근동의 언어들을 발견케 해주어 성서 신학의 커다란 숙제를 풀어 주었다. 이 공헌이야말로 고고학의 가장 중요한 공헌 중에 하나이다. 비록 발굴만을 고고학에서 담당하고 그 언어들을 해독하는 일은 언어학자들이 담당했다 하더라도 이 일은 성서 고고학이 해낸 일이라고 언급해야 한다.
셋째, 성서 고고학은 성경의 보충자료를 제공해 주며 아울러 성경의 난해 구절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한다. 이 기능은 성경을 연구하는 데 보다 풍부한 학습을 가능하게 하며 커다란 유익을 주기도 한다. 성경은 결코 등장 인물들의 모든 측면의 역사를 기술하지 않는다. 성경 저자의 관점에 따라 필요한 자료들만을 취사 선택하여 역사를 서술한다. 그런데 고고학적 발굴은 그렇게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는 역사들을 발견하게 해줌으로써 유익을 준다.
예를 들면 오므리 왕가를 세운 북이스라엘의 오므리는 성경에는 짧게 그의 악행에 대해서만 신앙적 측면에서 기록되어 있으나 고고학적 발굴은 그의 정치, 외교, 군사적 측면의 대단한 성공을 보여준다. 모압 지역을 포함한 팔레스틴 전역이 '오므리의 집'으로 표현된 고고학적 자료가 발견되며 그의 명성은 앗수르에까지 알려졌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성서 고고학은 성경에서 난제(難題)라고 여겨졌던 많은 부분들을 해결해 준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선교 여행 과정에 나타나는 지명이라든가 행정 관리들의 이름은 소아시아와 고고학적 발굴이 있기 전에는 증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지명, 행정 관리명과 동일한 당시의 자료들을 발굴하여 성경의 난제들을 해결하였다. 이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난제들을 해결한 예를 들 수 있다.
넷째, 성서 고고학은 신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성경의 저작권, 시기, 목적 등에 대하여 비판하는 원문비평은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많은 타격을 입었다. 모세오경 같은 경우 누지서판과 마리서판 등의 발굴로 주전15세기경의 모세 저작권이 인정되었던 것이다. 또한 신학적 난제들이 고고학적 발굴로 해결되기도 하였다. 가나안인들이 하나님에 의해 진멸되어야 한다고 명령되어진 것은 윤리적 기준으로 보면 이해되기 힘들었으나 라스 샤므라에서 서판이 발굴되면서 당시 가나안인들의 우상 숭배와 연관된 극심한 타락상으로 인한 명령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2. 성서 고고학을 통한 역사의 재발견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를 통한 성과들은 고고학자들로 하여금 그런 자료들이 과거 사건들에 대한 신뢰할 만한 역사를 말해 준다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어떤 고대의 사건들을 정확하게 기술하기 위하여 고고학자들과 역사가들은 발견된 증거로부터 누가, 어떻게, 언제, 어디서, 역사적 사실들이 발생했는가 기술한다. 다양한 방법들, 즉 사용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연구를 한 후에는 폭넓은 이해를 위한 발전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델을 가지고 주변의 관계된 모든 자료들을 적용해 보면서 증거들을 축적해 나가는 방법을 통하여 어떤 '신빙성의 하한선'에 도달하면 그것은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구체적 역사는 재구성될 수 있다.
3. 성서 고고학의 한계
고고하이 성경해석이나 신학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고고학은 자료의 결핍에서 오는 지속적 한계를 숙제로 가지고 있다.
인간이 만들고 기록한 것 중 남겨 놓은 것은 극히 일부분으로 10%도 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남은 것이 잘 보존되었는가도 미지수이다.
또 발견된 유적지들 중 단지 일부만이 조사되고 지도에 점으로 표시된다. 또한 문제는 이 발굴 예정지 중 극히 일부분인 2%정도만이 발굴되고 있다.
그러므로 전체 유적지 중에서는 훨씬 적은 비율만이 발굴되는 것이다. 이렇게 발굴된 정보들 중 극히 작은 부분만이 출판된다. 출판되지 않은 것은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학술적 평가도 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종종 발굴과 출판 사이에 40-50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며 이 숙제는 고고학의 한계를 분명히 해주고 있다.
아울러 고고학의 발굴 작업에 대한 개인적인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한 지점을 발굴하면서도 사람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잘못된 정보를 가진 경우에는 그 막대한 재원과 정열을 다해 발굴한 것이 무익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하여 고고학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리고 팔레스틴의 상황에 한하여 살펴보면 팔레스틴에서는 글로 쓰인 비문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 말은 성경의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서 팔레스틴에서는 글로 쓰여진 직접적인 자료들을 성경 밖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당연히 성서 고고학의 제한성을 웅변한다.
또 근본적으로 역사학의 한 분야인 고고학이 가지는 제한성은 고고학이 주로 발굴물이라는 물질적 증거들을 다루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성이라든가, 그리스도의 구속행위와 성육신 등 성경의 기본적 진리나 믿음의 도에 대해서는 확인해 주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점이 바로 성서 고고학이 가지는 명백한 한계점이다.
Ⅶ. 성서 고고학의 전망
1. 발굴 작업의 과학화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굴 작업은 1952-1958년 사이에 여리고에서 사용했던 '휠러-케년'기술, 즉 부스러기층 원형보존 방법이 표준절차로 활용되었다. 이 일반화된 성층적 발굴 작업은 통해 각 시대와 문화를 구분하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발굴 작업은 이러한 비과학적인 발굴 작업보다는 좀더 진보적이며 과학적인 발굴 작업이 요구된다. 즉 자동적이며 차원 높은 분석 방법과 기록 방법을 통해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도기와 유물들을 파악하고 동시에 건축 역대와 층의 연대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발굴 작업이 필요하다. 더욱이 발굴 작업의 전체적인 단면도를 만들어 광범위하고 정확하게 활용하는 문제와 출판을 위해서 발굴 내용들을 기록하는 점진적인 발굴 방법들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성경의 무오성은 더욱 입증되기 때문이다.
2. 발굴 지원자 수준 향상
유물의 발굴 작업을 위해 실제로 동원된 인원은 그 지역의 고용된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팔레스틴 지역의 고고학 발굴 작업에 동원된 사람은 노동자를 대신 외국에서 지원된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발굴 작업과 겸하여 그 동안 배운 교육적 프로그램을 응용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이는 고도로 훈련된 직업적 고고학자들의 새로운 세대가 배출되는 동시에 현대적 현장 고고학에 정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보여 주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1세기의 고고학은 단순히 열성적인 아마추어보다는 보다 전문적이고 직업의식을 가진 발굴 지원자가 필요하다.
3. 기록의 전문화
한 지역에 대한 발굴 작업을 시작할 때 현장일지나 지역 관리자의 작업일지는 아직도 필수적인 항목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단순한 발굴 작업의 일지 기록에만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매일의 목표나 계획, 장소에 따른 상세한 묘사, 단면의 통례적인 스케치, 그리고 도기에 대한 현장에서의 감식 철저한 기록이 요구된다. 또한 발굴진에 포함되어 있는 고고학 전문가들은 지층들의 지질학적 분석을 제공해야 하며, 유물들의 다양한 종류들을 기록해야 하는 전문 기록자도 필요하다.
4. 전문 조사와 출판
이제까지 발굴 자료들을 수집하여 그 자료의 연대성이나 재질 등을 파악하기 위해 파편의 조각을 얇은 카이버런덤(Carvorundum, 탄화규소) 날의 톱으로 잘라서 단면을 만들고 그것의 1:1비율로 그렸다. 이것으로 자료의 성질, 기술, 굽기 들을 알아내었다. 하지만 현대에서 이런 원시적인 방법보다는 컴퓨터 처리방법, 즉 고고학적 유물의 모든 종류를 컴퓨터 안에 입력하여 불가능한 유형의 비교와 극도로 세밀한 분석을 통해 정확한 수치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자료들을 책으로 출판하여 성서 고고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되어야 한다.
성서 고고학은 본격적으로 100-150년의 역사를 비교적 근래의 학문이지만 성경 연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반 학문으로서의 고고학적 도구들을 활용하여 성서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아울러 그 한계성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 한계성이야말로 기독교들이 명심해야 할 점이다. 고고학이 성경의 많은 부분을 변호하고 정당성을 입증한다고 하더라도 성경 본문보다 더 절대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여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성경이 그 신빙성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고고학은 단지 성경의 역사성과 가르침을 분명하게 하기 위한 보조적 학문으로 인식하는 것이 고고학의 올바른 자리매김일 것이다.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성경 그 자체이기 때문이며 그 성경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은 생명에 이르는 구원을 분명하게 제시하셨고 또 앞으로도 변치 않으실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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