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음악의 토착화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을 1884년 또는 1885년으로 잡아 1985년을 기독교 선교 100 주년으로 기념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1885년 4월5일 Appenzeller와 Underwood가 입국한 것을 공식적으로 한국 기독교 선교의 시초로 보는가 하면 이보다 한 해 전인 1884년 9월 20일 중국의 선교사로 있던 의사 Allen이 주한 미국영사관의 의무관 자격으로 입국하여 갑신정변 때 민병익(당시 고종황제의 자문역)의 생명을 구해주고 고종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아 광혜원을 열고 비공식적인 선교활동을 해온 것을 처음으로 잡기도 한다.

 

그러나 Allen이나 Appenzeller, Underwood가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훨씬 전에 의주 사람으로 1878년 만주에 건너가 봉천, 영구 등지에서 홍삼 행상을 하던 서상륜이 봉천에 와 있던 Scotland 장로교 선교사 Ross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성경번역과 출판을 돕다가 귀국하여 1884년 동생 서경조와 함께 황해도 장연군 송천(솔내)에 한국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서경조는 한국 최초의 장로교 7인 목사 중 한 사람임) 이보다 앞서 한국인으로 맨처음 기독교인이 된 것은 역시 의주 사람들로 이응찬, 이성하, 백홍준, 김진기, 이익세 등으로 만주에 와 있던 Ross와 McIntire에게서 세례를 받고 이응찬은 누가복음 번역을 도왔으며 이성하와 백홍준은 권서인으로 성경을 반포하는 일에 봉사하였다.  이들에 의하여 전도를 받아 세례를 받기 원하는 사람이 1884년에 이미 600 여명이나 되었다고 하며  서상륜의 2년간의 전도를 통하여 70명 이상이 세례 받기를 원했고, 서울 서쪽에 교당을 개설 했을 때 그곳에 18명,  서울 남쪽에 20명이 있다고 Ross 목사의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에 첫 선교사로 왔던 Underwood는 “복음의 씨를 뿌리러(한국에) 왔으나 복음의 열매를 거두기에 바쁘다”고 본국 보고서에 고백한 것을 보아도 이 땅 위의 첫 복음선교는 분명 Underwood, Appenzeller가 아니라고 바로 우리 조상들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선교 초창기에 미국 선교사들의 활동이 대단히 컸던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그 영향이 엄청났던 것을 부인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역사가 선교사 중심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우리 조상의 업적이 소홀히 취급되어졌고 따라서 한국교회사가 한국 중심의 역사가 되지 못하고 선교사 중심의 역사가 된 것은 우리가 앞으로 바로 잡아야 할 점이다.  이것이 토착화의 정신이다.


 1. 한국 교회음악의 시작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 오면서 찬송가라고 하는 서양음악이 함께 들어 왔다.  초창기 교회에서 처음으로 불려진 찬송가는 중국에서 들어온 중국어 찬송가였기 때문에 교인들은 뜻도 모르면서 찬송을 불렀다.  후에 중국어 찬송을 일부 한국어로 번역하여 부르긴 했으나 1893년까지 번역되지 않은 중국어 찬송이 계속 불리 졌었다.  Underwood가 한국말로 된 첫번 찬송가 책을 출판한 것은 1893년이었다.  그러나 이 찬송은 번역에 문제가 많아서 교회측에서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되지 못하였다.  다음에 나온 것이 Jones 목사가 출판한 1896년의 감리교 찬송가였다.  장로교 찬송가는 1893년에 출판되었다.

 

培材와 梨花뿐 아니라 그 뒤를 이어 계속 설립된 기독교 학교에서는 창가시간을 두어 이 시간에 주로 찬송가를 불렀다.  1890년에서 1903년까지의 貞信여학교 음악교육 과정을 보면 “예배에서 사용하는 찬송가를 주로 창가시간에 불렀고.... 찬송가 책에는 악보가 없어서 음악시간에는 악보를 오선지에 사보하여 찬송가를 배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찬송가가 교회와 학교에서 불려짐에 따라 교회 밖에까지 가창운동이 번졌으며, 교회 밖에서는 이 가창운동이 19세기말과 20세기초 구한말의 근대운동 뿐 아니라 애국심과 독립운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시대에는 또한 새로운 형식의 시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 새로운 시와 함께 새로운 멜로디의 새 음악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노래 중에는 망국을 한탄하는 슬픈 노래도 있고, 젊은이들에게 촌음을 아껴 공부하라고 타이르는 “권학가”도 있었으며, 또 근대화를 주제로한 노래, 국가재건을 호소하는 노래, 독립가, 애국가 등이 많았다.  이러한 노래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랑, 이념, 사고, 애국심등을 고취시켰을 뿐아니라  한국민족의 의식 개혁을 위해서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36년 총독부의 장학관은 기독교 학교에서 창가 시간에 노래를 통하여 독립정신과 일본정부에 항거하는 투쟁의식을 고취 시키고 있다고 보고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이와같은 양상은 그 시대 그 나름대로 일종의 토착화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대에 쓰여진 토착화 찬송으로 유일하게 찬송가에 남아있는 것이  남궁억의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371)”이다.   이 노래는 Donizetti의 선율에 불려졌었는데 개편찬송에서 이동훈이 우리 선율을 만들어 부쳤다.  그 후 다시 통일 찬송가에는 Donizetti의 선율로 돌아 갔는데 이는 토착화의 역행이다. 

 

그 시대 찬송가가 우리 선율로 불려지지  않은 것은 우리 고유의 음악이 유흥과 기생 등 타락한 것과 보다 가깝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감히 찬송가에 끼어 들 수 없었던 둣하다.  한국에서 유치원 교육을 처음 시도한 허길래 (Clara Howard) 선교사에게 “왜 초창기 유치원에서 한국음악과 한국악기(장구)로 장단을 치면서 음악을 가르치지 않았느냐? ”고 물으니 그는 “어린이들에게 장구를 가르치고 창을 가르치면 기생을 만든다고 보내지 않음으로 한국음악을 절대로 가르칠 수 없었다"고 회고하는 말을 들었다.  이 시대에는 우리의 음악이 교회음악으로 될 수 있었던 시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교회음악의 토착화를 제일 먼저 부르짖고 시도한 사람은 아마 나운영 교수일 것이다.   나운영 교수는 교회음악뿐 아니라 그의 모든 작곡 활동에서 토착화를 주장해 온 분이다.  그의 토착와 운동은 연세대학교 종교음악과에서 교수하는 동안  제자들을 통하여 널리 파급 되었다.  1950년대의 “다윗의 노래”와 칸타타 “골고다의 언덕” 등은 대단히 좋은 가락과 장단을 가진 토착화된 음악이다. 

 

이와같은 음악을 통해서 그는 한국가사의 리듬과 엑센트를 잘 살리고 한국말의 개성을 조금도 손상하지 않으면서 거기에다 독특한 (토착화한?) 화성을 첨가하여 한국적인 표현을 썩 잘 해 냈다고 본다.  음악의 기교적인 면에서나 그동안 쌓아온 업적 면에서 아무도 이 분을 따라 갈만한 사람이 없다.  그의 “주기도문”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또한 80년대 부터 시작하여 매달 신작 찬송가 발표회를 가져 지금까지 100여곡 작곡해 놓았다.  대단한 교회음악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의 작품 몇몇을 제외하고는 별로 애창되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 자신이 이미 서양화 되어 버린 탓일까?  나운영교수가 연세대학교를 떠난 뒤 연대 안에 토착화 운동의 물결이 약화된 것은 참으로 섭섭한 일이다.

 

이 외에도 박태준,박재훈의 최근 작품이 대부분 한국적인 음악으로 되어 있고 이동훈의 찬송가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본다.  나운영의 제자 나인용과 이문승이 한국적 합창음악을 많이 작곡하였고 이건용 역시 좋은 작품을 발표해 주었다.


 2. 교회음악의 위험성


구약시대와 초대교회 그리고 중세에 이르기까지 찬송가는 예배에서 불려지지 않았다고 이미 언급하였다.   이때까지 예배에서 불려진 찬양은 시편 뿐이었고 차츰 미사의 통상문과 특정문이 노래로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시편이 노래로 불려질 때엔 8개의 시편창 선율(Psalm tones)에 의하여 가창 되었었다.  구약시대와 초대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시편가 뿐이었는데,  시편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찬양이다.  성령의 역사로 다윗을 통해서 쓰여진 시편이야말로 이 세상의 어느 노래 보다도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가장 적합한 노래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시편은 모든 예배에서 반드시 불려질 수 있도록 하여야만 한다.

 

시편이 노래로 불려지지 않고 교독되어 지는 것은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음악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탓이다.  Martin Luther는 신학교 졸업생이 시편창을 비롯한 음악시험에 낙제하면 목사의 안수를 주지 않았다.  목사와 사제들이 학업과정에서 음악수업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시편을 가창할 능력이 없어 결국 교회 예배에서 노래로 시편을 찬양하지 못하고 읽게 되었고 읽으므로 해서 교인들의 머리 속에 시편이 찬양이라고 하는 개념을 갖지 못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시편교독이 찬양의 개념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시편아닌 성경구절을 발췌하여 교독하게 하여 마치 성경구절 명상시간처럼 되어진 것은 잘못된 것이며  이러한 잘못을 바로 잡는 일도 토착화 작업의 한 과제라고 본다.

 

음악의 힘과 영향력을 믿은 철인, 신학자, 목사들은 많았다.  역대의 유명한 부흥사 치고 음악가를 동반하지 않은 부흥사는 없었다.  John Wesley는  Charles Wesley를, Moody는 Sankey를, 그리고 Billy Graham은 Beverly Shea를  각각 동반하고 집회를 가진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Charles Wesley에 의하여 영국 찬송가가 발달(토착화) 하였고, Sankey에 의하여 미국의 복음찬송가가 성행하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복음찬송은 그 시대의 토착화된 교회음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요즈음 미국에 새로운 토착화 음악이 대 유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을 복음찬송이라고 하여 Sanky시대의 복음찬송과 구별 없이 부르는데, 미국에서는 폭송(folk song)이라고 부른다.  미국 민요노래에 종교가사를 붙인 것이므로 새로운 형태의 미국 토착화음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TV에서 데모주동자와 인터뷰 하는 자리에서 “어떻게 데모를 선동하느냐?”고 묻는말에 “처음엔 농악으로 꽹과리, 장구, 북, 징으로 사람을 불러 모은다. 그러나 그것으로 데모의 사기를 높이지는 못한다.  군중의 심리를 크게 선동할 수 있고 데모의 열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군중들이 의식화 노래를 합창할 때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런 것을 보아도 Calvin이 왜 음악을 그토록 두려워 했는지 알 수 있다.  Calvin이 교회음악을 철저히 시편가로 규제하려고 했던 것은 이해할 수 있다.  Calvin은 교회음악을 가장 단순한 멜로디로 고집하여 교인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면 토착화를 주장한 것이라고 본다.

 

찬송가 뿐만 아니라 교회음악이 부흥회 용도 또는 전도 및 선교의 용도를 위하여, 즉 인간의 이익과 용도만을 위하여 쓰여질 때 교회에 큰 위험이 닥칠 수가 있다.  교회사에서 보면 2세기의 그노시스의 이단 운동이 찬송가로 시작되었고 4세기의 아리언의 이단운동도 찬송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당국에서는 찬송가를 부르지 못하도록 금지한 적이 여러 번 있었던 것이다.  361년의 라오디케아 공의회에서 찬송가 사용을 완전 폐기시키도록 결정한 것은 찬송가가 가져오는 교회의 분열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찬송가가 끝내 교회 예배에 침투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은 찬송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그것은 가사와 음악이 대중적이었다는 것, 음악적으로는 단순하였으며 한 음절에 한 음으로 되어 있고, 각 절이 같은 선율로 노래하도록 유절형식으로 되어 있고, 회중이 함께 부를 목적으로 쓰여졌으며 누구나 찬송가 가사를 쓸 수 있었다는 점이다.  누구나 쓸 수 있기 때문에 신학적인 문제, 교리적인 문제, 신앙적인 문제가 따르게 마련이다.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가 무수히 많은 교파로 갈라져 있고, 교리와 신앙적인 면에 있어서도 무당적. 기복적, 내세 지향적, 개인적이라 하여 일부 신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데, 이는   물론 목사들의 신앙적인 지도에 잘못도 있겠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의 영향이 더 큰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 찬송가(gospel hymns)는 교육적인 것, 이웃에게 구원 받기를 권고하는 전도적인 것, 자기 개인의 놀라운 은혜의 체험을 감상적으로 노래한 개인적인 것, 현세의 고통을 잊기 위하여 현세를 포기하고 내세에 희망을 두는 내세적인 것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기복적이고 내세적이고 개인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예: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257)- 전도,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 (258)- 전도,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259)- 전도,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260)- 신앙생활의 기쁨, 나 속죄함을 받은 후 (183)- 개인적인 경험, 나의 죄를 씻기는 (184)- 개인적, 불같은 성신이여 (173)- 기복적, 신랑되신 예수 다시 오실 때 (162)- 교육적, 나 가나안 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221)- 내세적, 보아라 즐거운 우리집 밝고도 거룩한 천당에 (222)- 내세적, 등).

 

그러나 복음찬송가가 우리 교계에 크게 공헌한 점이 있으니 그것은 전도와 교육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점 때문에 한국교회는 복음찬송가를 통해서 오늘날과 같이 양적으로 급성장을 했고, 복음찬송가의 이와같은 공로는 인정 해야 한다.  교회음악가 중에는 복음찬송의 부정적인 면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복음찬송가 자체를 죄악시 한다든가 부정한 것으로 말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복음 찬송가가 전도에 큰 역할을 한 것과 또 많은 교인들에게 은혜를 끼친 것만은 사실이다. 

 

 이 점은 인정해야만 한다.  교인의 신앙과 교파 분열에까지 미치는 교회음악의 영향이 이토록 크다고 하면 교회음악 토착화 과정에서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교인들의 신앙 양상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는 목사들과 교파분열에 고심하는 신학자들은 특별히 교회음악에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오늘 교계의 이와같은 양상은 목사양성의 교육기관인 신학교에서 교회음악에 대한 교육이 소홀히 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Calvin은 이와같은 경우를 위하여 우리에게 적절한 말을 남겨 주었다.  “음악을 순전히 우리의 이익과 용도만을 위하여 남용하게 되면 음악이 더럽혀지고 오염될 우려가 있고, 오염되게 되면 그 음악을 저주하게 됨으로 남용하지 않도록 세심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음악의 토착화는 단순히 교회음악의 가사와 음악을 우리의 것으로 바꾸어 놓자는 것만의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의 것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3. 찬송 가사의 내용


찬송 가사의 내용에는 하나님 지향적인 것과 인간 지향적인 것,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범인간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세계적인 것과 국소적인 것, 찬양적인 것과 기복적인 것, 현세 지향적인 것과 내세지향적인 것, 협동적인 것과 권유적인 것, 예배적인 것과 교육적인 것, 고백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 성서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 등의 내용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내용 중에서 어떤 내용이 바람직한 찬송가사의 내용이 되어야할 것인지는 우리가 깊히 생각해야 할점이다.  “면류관 씌우자”의 가사 내용을 보면 1절 “보좌위의 어린양께 면류관 씌우자” 2절은 “사랑의 주님께 면류관 씌우자”  3절은 “평화의 주님께 면류관 씌우자”로 되어 있다.  영어가사에는 4절까지 있는데 “생명의 주님께 면류관 씌우자”라는 주제가 각절의 내용이 되고 있다.  우주적이고, 교리적이고, 신앙고백적인 가사로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잘 찬양한 가사라고 본다.

 

찬송가사의 내용이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 둘중 어느 것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성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대답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찬송가 가사가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힘이 없을 때 사람들은 진정한 마음으로 영적인 찬양을 드릴 수 없게 된다.  성서적이고 문학적인 것 중 어느 것이냐 할때 성서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대답 하겠지만 문학적인 가치가 없으면 그것도 좋은 찬송가사라고는 볼 수 없다. 

 

19세기에 미국 교회에서 크게 유행이 되어 오늘날 한국교회에 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복음찬송가(gospel hymns)를 예로 들수 있다.  복음찬송가를 분석해 보면 독단적인 신앙과 감상적인 표현으로 비록 그 가사의 내용이 구원에 관한 성서적인 복음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해도 예술적인 가치가 희박하고, 은총으로 구원이 온다는 교리적 풀이도 신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그 표현이 대단히 유치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복음 찬송가를 예배에서 부르지 말라고 해도 모든 교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애창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간과해 넘길 수 없는 사실이다.  바로 이점이 찬송가의 발생에서 언급했던 찬송가의 본래적인 요소 였던것을 밝히고 싶다.  이와같은 요소가 우리의 신앙을 잘못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초대교회에서 찬송가의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문학적인 가치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학적인 가치가 높은 가사만이 훌륭한 찬송가가 된다고는 또한 생각지 않는다.  문학적인 가치가 높으면 높을 수록 기독교적인 가치가 반비례로 낮아진다고는 할 수 없으나 문학적인 가치가 높은 작품은 대개의 경우 범인간적이 못되고 전체적이 못되어 그로 인해 기독교 예배의 핵심인 공동적 또는 협동적 예배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공동적예배(Corperative Worship)가 되기 위해서는 그 예배에서 사용하는 모든 언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언어여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쓴 가사는(찬송가란 개념 없이 쓴 것이기 때문이겠지만) 시어가 너무 많아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많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역대의 찬송가사 작가중 세계적인 시인은 거의 없고 대개 목사들, 그리고 은혜받은 평신도들이 많다.  은혜를 받은 감격적인 상태에서 쓰여진 시는 다른 사람에게도 쉽게 감격적일 수 있으나 고도의 지식을 종합해서 각고의 정신적인 노동작업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가사와 음악은 쉽게 대중에게 불려지지 않게 되고 마침내 작품의 탄생과 함께  사장되고 만다.   대중성과 예술성 그 사이 어디엔가 우리가 차지할 땅이 있는데 그 위치 선정이 또한 대단히 어려운 작업인 것이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논하기 전에 더 근본적인 것은 찬송가의 ‘맥’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의 흐름’이다.  영혼의 흐름이 없는 찬송가는 예술 가곡은 될 수 있어도 찬송가는 되지 못한다.  이러한 영혼의 흐름은 영적인 체험 없이 이루워지지 않는다.  영적인 체험에서 쓰여지는 찬송가만이 영원한 찬송가가 될 수 있다.

 

가사의 토착화 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문제가 또 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할렐루야(히브리어) 또는 알렐루야(라틴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실상 우리교인들은 이 뜻을 모르고 노래한다.   이 말의 본래의 뜻은 “주를 찬양하라”는 뜻인데 기쁜 마음으로 주를 찬양하고자 할때 후세인들은 “할렐루야”란 말로 노래하였다.  따라서 “할렐루야”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쓰는 말이란 새로운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  

 

성경에서 “기쁜 마음으로 주를 찬양하라”라고 말한 것을 많이 읽을 수 있는데 우리가 이때 “할렐루야”란 말 대신에 우리말로 어떻게 토착화 시킬 수 있겠는가하고 곰곰히 생각해 본적이 있다.  이떄 생각해 낸 것이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다.  주님을 찬양하세”란 말이다.   이건용의 작품에 “에헤이야 디어 상사디어”란 말을 써 놓고 그 밑에 괄호를 열어 “할렐루야 할렐루야”로 대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에헤이야 디어, 상사디어”가 용납되지 않을 경우 “할렐루야”로 대치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에헤이야 디어 상사디어”가 실지로  발표됬을때  연세 높으신 목사님들이 반대 한적이 있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다”도 즐겁고 기쁜 표현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자칫 술먹고 흥청거리며 주정하는 기분을 불러 일으킬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좋은 토착화 가사라고 볼 수 없다.   그러면 어떤 가사로 하나님을 탄양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Calvin은  “이 세상의 아무도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 이외의 것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찬양을 드릴 수는 없다”라고 말한 성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하여 해답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다윗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로 쓰여진 시편보다도 우리의 목적에 더 적합하고도 더 좋은 노래를 찾을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리하여 Calvin은 시편가만을 부르게 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찬송가는 모든 교인들이 공동으로 취할 수 있는 찬양과 기도와 신앙고백의 내용이 있어야 하고 이것을 체험적이고 신비적이고, 고백적으로 기술한 내용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 신앙의 올바른 모습을 찾기 위하여 시편 찬양을 부활시키고 훌륭한 예배 찬송가를 펴내기 위한 작업은 교회 음악가들에게 맡겨진 중요한 작업이라고 본다.


 4. 찬송가의 음악적 형태


찬송가의 가사는 시이다.   찬송가의 시는 교육정도가 낮은 교인들도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는 시가 되어야 한다.  찬송가는 또한 노래요, 가곡이다.  이 노래는 예술가곡이나 다른 노래와는 다르다.  찬송가는 음악적인 지식과 교육이 전연 없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부르기 위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찬송가의 시는 음악의 선율을 타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 든다.  만약 그 시가 음악의 선율이 감당하기 힘들만치 지나치게 무거운 가사라면, 멜로디가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와는 반대로 음악이 가사를 정복하고도 남을 만치 강력하고 아름다운 선율일 경우에는 가사의 내용이 아무리 시시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정서에 강력한 호소력을 갖게 된다.

 

찬송가는 많은 교인이 함께 부르는 노래로써 민요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민요를 부르면서 그것이 누구에 의하여 작곡 되었고, 어느때 노래인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감흥을 주는 것이 민요이다.  많은 훌륭한 음악가들도 민요를 대단히 아름다운 노래로 인정하고 있고 자신들의 음악에 끌어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독일 가곡이나 한국 예술가곡은 음악적 교육이 잘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좋은 노래이지만 민요는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이다.  세속적인 민요의 가사는 공동체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경험할 수 있고,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을 가사로 하고 있다.  그들의 기본적인 내용은 사랑과 노동과 죽음이다.  민요는 이와같은 인간의 경험을 일반화 시킨것이다.

 

“찬송가사의 내용”에서 언급한 시에다 민요와 같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선율을 붙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작곡자의 음악적인 영감이 토착화라는 개념에만 사로잡히게 되면 그는 영감적인 찬송가를 작곡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기능과 작곡학적인 지식을 작곡이라고 하는 노동을 통하여 하나의 찬송가를 조작해 내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이렇게 지식과 작곡기능에 의하여 조작된 찬송은 그것이 비록 토착화된 찬송이라 할지라도 교인들로부터 애창되지 못하고, 그 찬송은 작곡이 끝난 날로 부터 사장 되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찬송가는 기독교인의 민요이여야 한다.

 

토착화된 음악이 어떤것이냐에 대해 모든사람이 다 납득 할 수 있도록 정의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국악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한국 교회음악의 토착화는  국악화 하는 것으로 정의 하려고 한다.  “국악기로 연주 되어야 하고 창으로 연주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서양음악에 오랫동안 종사 한 사람들은  ”작곡자의 마음에서 울어나오는 신앙고백적인 선율이면 되는 것이지 구태여 국악과 한국민요의 선율과 리듬을 빌려와야만 토착화가 되느냐?“ 하고 반문한다.  그런데 1984년 2월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국악 작곡가와 서양음악 작곡가들에게 각기 찬송가 작곡을 의뢰 했었던 바 국악인은 서양식으로, 서양 음악인은 국악식으로 작곡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국악인은 서양음악 쪽으로 돌아 서려고 하는 의식이 있었고, 서양음악 작곡가들은 국악쪽으로 돌아 갈려고 하는 의식이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상에서 본것처럼 한국 교회음악의 토착화의 과정에서 음악이 가지는 범위는 극단적으로 서양적인 것과 극단적으로 국악적인 양극 사이에 서양음악의 국악적인 경향과 국악의 서양적인 경향까지 합쳐서 다양함을 발견하였고  그중 어느것 하나가 옳다는 결론은 내릴 수가 없었다.  민요는 평범한 시민들에 의하여 불려질 수 있고 계속 불려지기만 하면 민요가 되듯이 토착화된 찬송가가 어떤 것인지는 교인들이 계속 불러 주는 것으로 결정지어질 것 같고 거기에 의해서만 토착화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찬송가는 다른말로 기독교인들이 부르는 민요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나친 민요화는 삼가 해야 할 것이다.  민요는 공동체 안의 사람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을 노래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순자가 한나라의 정치를 알고져 할때는 그 나라 국민의 음악을 보면 알수 있다고 한것과 같이 어느 교회에서 어느 찬송가를 가장 좋아하느냐를 알게된다든가, 또는 어떤 특별한 찬송에 물들어 있느냐를 알게되면 그 교회와 그 교회목사가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추리해 낼 수 있다.  이와같이 추리해서 얻어진 결론은 추측이 아니라 정확한 판단이다.   그러므로 찬송가 작곡가의 책임은 교인들을 선도할 수 있도록 찬송가를 작곡 하여야만 한다는 점이다.  즉 자기가 작곡하는 음악 뿐만 아니라 찬송가사의 선택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할 책임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중에는 민요의 기준에 도달한 찬송가가 있다.  부흥회에서  자주 부르는 복음찬송가 중의 몇개는 세속 민요와 같이 되고  말아서 그 찬송가사가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태에서 그대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은 스스로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알기도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찬송가를 부를때 일반적으로 가사에 관심을 갖지않고 가사보다는 선율에 만족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사랑 하심은 ”은 10여년전만 해도 주일학교에서 너무 많이 불려져 민요화 되었고, 그러므로 이 찬송은 완전히 손상을 입은 찬송가가 되었다. (특별히 “예배당에 갔더니...” contrafactum)  그러므로 찬송가의 지나친 민요화는 작곡자 뿐만 아니라 교인들도 삼가 해야 한다고 본다.  찬송가의 지나친 민요화라든지 극단적인 국악화는 교인들에 의하여 환영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음악이나 유교음악을 예배에서 쓸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그와같은 음악을 사용했을때 교인들이 어떤 기분에 젖게 되느냐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 음악을 통해서 기독교 보다도 불교나 유교를 더 생각하게 된다고 하면 그러한 토착화는 교회의 비판으로 부터 살아 남을 가능성이 없을 것이고, 따라서 토착화는 이루워 지지 않을 것이다.  교회음악 역사를 보면 이와같은 예를 찾아 볼수 있다.  즉 유대교와 초대 기독교에서 예배중 기악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 했는데 그 이유는 각 악기가 사용되어온 용도에 따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이 있는 데 어떤 악기는 전통적으로 이교도들이 사용했기 때문에 그것이 기독교 예배에서 사용되어지면 이교도가 갖는 예배의 의미를 교인들에게 부각 시켜준다 하여 악기 사용을 반대해 왔었다.  오늘날 우리가 섹스폰의 음색을 들을때 캬바레의 춤이나  술집을 연상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악기를 예배에서 사용하는 것을 꺼린다.   기독교에서 목탁을 가지고 예배를 볼 수 없는 것도 이와같은 이치이다.

 

이와는 반대로 세속적인 사랑의 음악을 그대로 가사만 종교가사로 바꾸어 교회음악으로 만든 경우도 많이 있다.  독일 chorale 찬송이 거의 다 그런 것들이다.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 시대에는 contrafactum 이라고 해서 이미 있는 노래에 새로운 가사를 써 넣어 부르는 습관이 유행 했었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 찬송가에 “내 모든 죄 나를 얽어 맺으나”, “하늘 가는 밝은 길”,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등은 모두 contrafactum 으로 되어진 찬송가이다.

 

이와같이 교회음악 토착화의 생존 여부는 그것을 수용할 기독교 문화와의  상관 관계에서 결정 지어 진다고 본다.  이와같은 맥락에서 예배가 토착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토착화된 음악은 오히려 어색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주변이 토착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만이 토착화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의 토착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예배의 토착화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5. 토착화의 원칙


토착화는 한 마디로 우리 것을 다시 찾는 작업이다.  우리의 것을 다시 찾는 과정에서 가사의 내용은 성서에 근거를 둔 것으로써  신학과 교리에 바탕을 둔 예배적이고 하나님 찬양 중심적인 것이어야 하겠다.  이와같은 내용의 모범적인 찬양은 시편 이외에도 누가복음 1장 46-55절의 마리아의 노래와 1장 68-79절의 사가리아 노래, 그리고 역시 누가복음 2장 29-31절에 있는 시몬의 노래를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두개의 모세의 노래, 예레미야의 노래, 다니엘의 노래 등이 있고 계시록에도 많은 노래가 포함되어 있다.  성경에서 직접 나오지 않은 찬양으로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미사 중에 나오는 영광송과 대축제 때 부르는 Te Deum이 있다.

 

가사의 내용은 성서에 근거를 둠과 동시에 하나님 지향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복음 찬송은 대체로 인간 지향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즉 누구를 향햐여 노래를 부르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찬송이 예배에서 불려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그 노래가 하나님께 향한 것이냐 혹은  인간에게 향한 것이냐 로  구분 될 수 있다. (설교후에 결단을 촉구하는 찬송은 예외) “주 예수 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102)는 매우 은혜스러운 찬송이고 많이 애창되는 노래이나 그 가사는 자기의 놀라운 신앙적 경험을 인간을 향해 부르는 노래이지 하나님을 향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찬송가사를 쓸 때 일반적으로 택하게 되는 내용이 이와같은 것이다.

 

이호운의 “부름받아 나선 이 몸”은 대단히 훌륭한 자기 신앙 고백의 시이다.  이 시를 읽으면 가슴이 아파오고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찬송을 노래하고 나면 우리 머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남는 것이 아니라 아골 골짝과 소돔의 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의로운 전도자의 모습만 남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찬송은 예배 찬송이라기 보다 신앙 결단의 좋은 복음 찬송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에 성서적인 단어를 골라쓰고 세속적인 단어는 피해야 한다.  너무 세속적인 것은 찬송가 가사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하나에 성서적인 내용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그리고 인간의 감사의 표시가 풍부하고 진하게 있어야 한다.  시인들이 너무 자기의 주관적인 느낌을 문학적으로만 표현하려다 보면  결과적으로 세속적인 노래가 되고말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의 찬송으로 가장 모범적인 예배찬송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53장의 김정준시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주) 하나님” 일 것이다.   이 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고 감상적이고 개인적인 내용이 없고  우주적이면서 하나님 이외 다른 것을 생각 할 수 없는 모범적인 내용의 찬송이다.

 

그외에 감상적인 것보다는 이상적인 것, 주관적인 것보다는 객관적인 것, 개인적인 것 보다는 범인간적이고 우주적인 것, 그러면서 기복적인 것이면 좋겠다.  또 가사의 내용에 있어서 충분히 이성적이면서 감상적이어야 하고 성서적이면서 동시에 문학적이어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심중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는 영적인 노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이는 심중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노래는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힘이 있어 저절로 영적인 찬양이 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또 성 어거스틴은 심중에서 나오는 노래는 반드시 지적인(이성적인) 것이어야만 한다고 하면서 새의 노래는 아름답지만 그 노래를 이해하고 부르는 이성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성적이고 지적인 가사라고 해도 감성적인 호소력이 약하면 사람들에게 결국 애창되지 못한다.  감동적인 시는 듣는 이와 부르는 이에게도 감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찬송가 가사가 성서적이고 문학적이어야 한다고 해서 지적인 작업과 노동으로 냉냉(dry)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시어만으로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토착화 작업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단순한 시어로도 구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의 형태에 있어서는 8,7,8,7 이니, 6,6,4,4  7,7,7,7 또는 10,9,10,9 등등의 정형시만을 구태여 고집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형시를 배제하지도 않는다.   고집하지 않는 이유는 정형시만 허용할 경우 오늘 우리 찬송가와 꼭같게 되기 때문에 작곡자와 시인 모두에게 지나친 고정 관념을 줌으로 창작적인 기능을 마비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자유시 만을 쓰게 되면 유절형식의 찬송가를 못만들고 영창(Aria)식 또는 챈트식의 곡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곡이 길어지고 교인들을 위한 예배음악이 못되는 경향이 있다.   양쪽 다 일장일단이 있다.

 

음악적인 형태에 있어서는 찬송가와 같이 4부도 좋고, 다른 형태의 것도 좋을 것이다.   자유형의 시를 택할 때는 자연히 찬송가의 형태를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때에도 우리가 염두에 둘 것은 대중이 부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말 가사의 리듬과 액센트를 잘 살리고 우리 특유의 화성을 고안하여 음악을 만들면 훨씬 토착화된 (한국적인) 음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 교회음악의 선구자 나운영이 자작 한국 찬송가 100곡선 제 1집에서 교회음악 토착화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음악은 학교음악, 사회음악에 비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너무도 뒤떨어 졌다.”

.“교회음악인들이여! 마땅히 자다 깰때가 되었다.”

.“이미 체질화된 3도화성에서 탈피해야 한다.”

.“선 토착화 후 현대화를 해야한다.”

.“찬송가의 토착화는 리듬과 멜로디에서 찾아야 하고 현대화는 화성에서 찾아야 한다.”

.“장구장단 (세마치, 타령, 굿거리, 도도리등)이 적혀있는 곡은 장구(또는 북)를 치면서 부르거나 혹은 장단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불러야 한다.”

.“서양음악의 수용, 모방단계에서 과감히 벗어날 때가 되었다.”

.“우선 우리의 뿌리를 찾고 이를 발전시키므로써 우리의 현대적 어법으로 주를 찬양하여라!”

.“우리나라는 결코 서양 교회음악의 식민지가 될수 없다.”

.“리듬, 멜로디, 하모니에 있어서 우리의 맛과 멋이 물씬 풍기는 오라토리오나 칸타타를 우리 손으로 작곡하고, 연주하고 출판함으로써 선교 100주년

  을 떳떳이 맞이하자!

 

이상의 주장이 교회음악 토착화를 말하는 우리의 주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되어 인용 하였다.

 

지금까지 교회음악의 토착화에 관한 테크닉칼한 원칙을 열거하였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이미 언급한 대로 교회음악의 ‘맥’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영혼의 흐름이 없는 음악은 교회음악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영혼의 흐름은 영적인 체험과 은혜를 받은 감격적인 상태에서만 이루워진다.   영적인 체험에서 쓰여진 찬송가만이 영원한 찬송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의 흐름을 잡을 수 있는 영적인 체험과 은혜를 받는 일이 테크닉칼한 원칙을 습득하는 일보다 우선하는 일이다.   이와같은 은혜의 체험을 위한 기도 없이 토착화를 작업하는 일은 사상의 누각이 될 우려가 크다.

 

기독교를 한국의 문화속에 토착화 시켜야 한다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 이면서도 토착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게 되면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만치 복잡한 문제로 번져갈 우려 또한  있다.  토착화란 말이 기독교 사회에서 표면화 되어 있지 않았던 오래 전에도 소수의 선각자들에 의하여 기독교 문화의 토착화는 교회의 한 모퉁이에서 서서히 진행되어 온것을 알수 있다.  기독교의 토착화는 서서히 진화(evolution)해 가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혁명으로(revolution)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 기독교 백년의 역사를 통해서 기독교가 한국의 문화와 사회를 극단적으로 서양화 시켜온데에 대한 반작용으로 토착화를 의식하게 되는 것은 역사의 당연한 흐름이요, 당연한 요구라고 보아진다.  한국의 기독교가 한 민족 4천만의 종교가 되기 위하여는 기독교의 문화와 한 민족의 문화가 얽히고 섥혀서 참된 우리의 기독교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기독교 문화를 우리 문화화 하고 우리문화를 기독교 문화화하며, 한국문화의 그릇속에 기독교의 문화를 담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과, 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적 사고를 배격하고 우리 문화를 존중하는 정신과 우리 문화를 한국 기독교 문화의 핵심으로 하려는 정신이 토착화의 근본정신이라고 본다.  교회음악에서는 물론이려니와 교회건축, 교회미술, 예배의식 등 모든 문화예술 분야에서 토착화의 작업은 이루어져야 하고 따라서 이 작업은 신학자와 목사님들의 일이라고 보기 보다는 음악 목회자들을 포함한 문화 예술인들이  담당해야 할 일 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토착화 된 찬송가 가사는 성서적인 한국어를 사용하여야 하고 그중에서도 찬양적인 언어를 사용 해야 한다.   그 언어와 내용은 시편과 Canticle 그리고 성서의 다른 곳을 모범으로 해서 쓸 수 있다.  모든 찬송가사는 그것이 비록 시편과 Canticle을 모범으로 해서 쓰여진다 하더라도 반드시 영혼의 흐름 위에 쓰여져야 할 뿐더러, 모든 사람에게 용납될 수 있는 우주적인 내용이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가사에 시적인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살려 미학적인 가치가 높은 찬송가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이상이라고 본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St.Ephraem과 St.Ambrose가 대중적인 선율 (Popular melodies)과 민요의 선율로 찬송가를 크게 보급 시켰고, Luther가 민요인 chorale을 독일교회 찬송가로 썼고, Calvin이 가장 단순한 멜로디로 시편가를 만든 것처럼 우리의 토착화 음악도 이 범주 안에서 결정 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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