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유대인이라 하는가? 

이브리트


고대(古代) 유대인을 ‘히브리 인(人)’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창세기 14장 13절에 처음 나오는데 아브라함을 가리킨다. 히브리어로 히브리 인을 ‘이브리트’라고 하는데 창세기 10장 24-25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조상 ‘에벨’에서 이 단어가 비롯되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건너 왔다’란 뜻을 가진 ‘에베르’ 동사(動詞)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참고로 히브리어 동사 원형은 과거형이다. 아브라함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정착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남달리 거룩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에베르 동사를 의역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대인을 ‘이스라엘 백성’ 또는 ‘이스라엘 자손(子孫)’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유대인이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다른 이름이다. 이스라엘은 아들을 열 둘이나 낳았는데 네 번째 아들의 이름이 ‘예후다’다. 이것을 우리 말로는 유다라 발음한다. 참고로 ‘예후다’의 복수(複數)는 ‘예후딤’이다. 이스라엘의 열 두 아들은 대개 한 지파(支派, tribe)씩 이루었는데 유다는 유다 지파를 이루었다. 본디 유대인은 이 유다 지파 사람들을 일컬는 말이었다. 하지만 훗날 유다 지파 이외 다른 지파들은 제 이름들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유다가 히브리 민족 또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에스더 2장 5절은 모르드개를 유대인이요 벤야민 지파 사람이라 한다. 본디 벤야민은 유다와 마찬가지로 한 지파의 이름이었다.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유대인이다


누구를 유대인이라 하느냐고 질문하면 유대인들은 보편적 원칙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무조건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둘째, 유대교 신자가 된 사람도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비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유대교 신자가 되지 않고 정통파 유대인의 신앙을 따르며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산다고 하자. 그렇다 해서 그가 유대인이 되는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유대 율법을 지키기는 커녕 신이 없다고 해도 그(녀)가 유대인 여자에게서 태어 났다면 그(녀)는 유대인이다.

이 두 가지 보편적인 원칙에 대하여 모든 유대인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성향의 유대인들은 아버지가 유대인이면 아이도 유대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남자에게 왜 성 차별을 하느냐고 분노 하면서…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유대인 아버지와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유대인이 된다. 하지만 정통파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는 유대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정통파는 만약 그 아이를 유대인이 되게 하고 싶으면 유대교가 정한 개종 절차를 밟으라고 요구할 것이다. 정통파에 따르면 아버지가 기독교인이라 해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아이는 유대교 신자가 되는 개종 절차를 밟지 않아도 유대인이 된다. 참고로 정통파는 유대교 율법을 오늘날에도 대부분 글자 그대로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교의 한 파벌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유대인들 대부분은 정통파나 보수파에 속한다. 반면 미국의 유대인들 가운데는 자유파에 속한 사람들이 많다.

유대인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모세 5경 즉 토라에는 분명히 나와 있지 않다. 그런데 토라에는 유대인 여자와 비 유대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유대인이라고 판정할 수 있는 기록이 있는 반면, 비 유대인 여자와 유대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유대인이 될 수 없다고 볼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 신명기 7장 1-5절, 레위기 24장 10절, 에스라 10장 2-3절을 참고하라. 그렇다면 다윗 왕의 할머니였던 이방 여인 룻은 유대인인가 이방인인가? 유대인들은 룻은 유대인이었다고 주장한다. 룻기 1장 16절을 근거로 룻은 보아스와 혼인하기 전에 유대교 신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전설에 따르면 시내 광야에서 아론이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을 때 이스라엘의 여자들은 거기에 머리 숙여 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혈통을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맡기셨다는 것이다.

개종을 통한 유대인


유대인들은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인,” “합법적인 개종자” 또는 “의로운 이방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유대인 공동체 안에 들어와 함께 살아 가고 있는 비 유대인들을 일컫는 말들인 것이다. 토라는 이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유대인처럼 대우하라고 한다. 그래서 유대교는 비 유대인들이 유대교 신자가 될 수 있는 소정의 절차를 마련해 두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라도 이 절차를 밟으면 유대교 신자가 될 수 있다. 유대교 신자인 사람은 유대인으로 태어난 사람과 똑 같은 대우를 받는다.

유대인은 본디 셈족으로 생김새가 아랍인과 구분되지 않는다. 머리가 검고 눈은 밤색이다. 금발이나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 없다. 그런데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외관상 서구의 백인과 같이 생겼다. 그래서 팔레스틴의 아랍인들은 오늘날 유대인은 민족적으로는 셈족이 아니므로 이스라엘 연고를 주장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서기 630-640년에 볼가 강 하류에서 창건된 카자르 왕국 때문이다. 카자르의 구성 민족은 코카서스 계 부족들인 사비르, 사라구르스,자벤더, 발란자르였다. 서기 740년, 유대교에 심취한 불란 왕이 유대교로 개종하자 카자르의 모든 백성은 유대교로 개종하여 사상 초유의 비 유대인의 유대 국가를 이루었다. 그래서 이 카자르 왕국을 열 세 번째 지파라고도 한다.

카자르 왕국은 9세기부터 쇠약 해 져서 결국 965년 우크라이나의 스비아토슬라프 왕의 침략으로 급속히 몰락했고 13세기 타르타르인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다. 이후 카자르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보헤미야 및 모라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로 흩어졌으나 그들의 유대교 신앙은 더욱 강화되었다. 19세기 초 유럽 전역에서 조사된 유대인은 350 만 명이었는데 1881년에 일어난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 때는 650만 명이었고 홀로코스트 직전인 1939년에는 850만 명이 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의 인구 성장률은 아주 저조하다고 한다. 오늘날 유럽 유대인들은 15세기에 지중해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1492년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추방된 유대인 수는 30만 명 미만이다. 이들 가운데 10만 명 정도만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로 이주했고 나머지는 북아프리카로 갔다. 따라서 오늘날 1400만에 이르는 유대인 인구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의문이다.

유대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가나안 출신의 셈 족이 아니라 종교만 유대교를 택한 터키계 백인 왕국이었던 카자르의 후손들이라 주장하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의 유대인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정확하게 대답을 하지않는다. 만약 자신들이 카자르 출신이라하면 셈족에 바탕을 둔 유대인의 인종적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미국 유대인들은 종교적 유대인을 강조하고 있다.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 간 이스라엘 민족의 수는 고작 70명. 그런데 400년 후 출애굽 할 때 그들의 인구는 장정만 60만 명. 남녀노소 모두 따지면 200만 명을 넘을 것이다. 이게 모두 야곱의 후손이었을까?

오늘날 유대교는 개종(改宗) 문제를 개방시켜 가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통파 조차도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을 기본적 요건을 구비하면 유대교 신자로 인정한다. 유대교는 어떤 특정한 교리의 고백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개방은 혼란을 빚기도 한다. 그리하여 유대인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 각 파벌의 견해 차이가 심각하다. 이런 이유에서 정통파 랍비들은 개종 문제에 관한 한 보수파, 개혁파, 재건파 랍비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서 살아 가고 있는 유대인들 보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더 많다. 유대인의 역사는 흩어짐 즉 디아스포라의 역사였다. 유대인들은 세계 전역에 들어가 살고 있는데 중국에도 주후 1-2세기에 유대인들이 들어 온 증거가 있다. 주후 6세기 당(唐) 나라에 들어 온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서 카이펑에서 살아 가고 있던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서방 세계에 전해 졌다고 한다. 이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 율법을 지키며 살아 갔다. 예루살렘에 있는 어떤 랍비는 한국에 있을 지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열심이라 한다. 그들의 이런 노력은 필자의 눈에도 가상할정도다.

이 세상에 유대인들은 얼마나 있을까? 유대인을 핍박하고 있는 나라들은 유대인 인구 수를 공개하지 않아서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렵다. 최대한 1천 4백 만 명의 유대인들이 이 세상에 있지 않을까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각각 500만 명, 유럽에 250만 이하, 라틴 아메리카에 1백만, 캐나다에 30만, 아프리카에 16만 5천, 이 가운데 대부분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합쳐 10만 명이 있다고 본다.

아쉬케나짐, 스파르딤, 기타


아쉬케나짐은 프랑스, 독일, 동유럽 출신의 유대인들을 말한다. 스파르딤은 스페인, 포르투갈,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 출신의 유대인들을 말한다. ‘아쉬케나즈’는 독일을, ‘스파르드’는 스페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이다. 오늘날 미국의 유대인들 대부분은 아쉬케나짐으로 독일과 동 유럽으로부터 1800 년 대 중엽에 이민 와서 정착한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그 이전에 미국에 이주한 유대인들은 스파르딤이었다. 미국의 첫번째 유대인 공동체는 필라델피아에 세워진 ‘콩그리게이션 미크베 이스라엘’인데 스파르딤이 세운 것이다. 스파르딤의 유대교는 정통파 유대교를 답습했다. 하지만 스파르딤은 유대 율법의 시행세칙이라 할 수 있는 할라카를 아쉬케나짐과 다르게 해석한다. 스파르딤 개인은 비교적 할라카를 잘 지키지 않고 또 어떤 스파르딤은 전통적 유대교의 가르침에 모두 동의하지 않기도 한다. 역사를 보면 스파르딤은 아쉬케나짐보다 더 많이 현지인들과 동화되었다. 아쉬케나짐이 살았던 기독교 국가들에서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갈등은 컸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비유대인 이웃들과 격리 되어 게토라는 특정한 구역에서 주목을  받으며 살았다. 하지만 스파르딤이 살았던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그런 격리가 없었다. 기독교를 의식한 이슬람교는 유대인들을 환대하기도 했다. 스파르딤의 철학과 문화는 아랍과 그리이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스파르딤의 히브리어 발음은 아쉬케나짐의 발음과 약간 다르다. 오늘날 스파르딤은 아쉬케나짐 처럼 발음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아쉬케나짐의 발음을 표준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파르딤의 기도문이나 찬양의 멜로디나 절기나 전통적인 음식들은 아쉬케나짐의 것들과 많이 다르다. 유대인들의 국제적 언어로 잘 알려진 ‘이디쉬’라는 언어는 아쉬케나짐의 언어였다. 스파르딤은 나름의 국제어를 사용했는데 ‘라디노’라고 한다. 이디쉬가 독일어와 히브리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라디노는 스페인어와 히브리어가 바탕이 된 것이다. 이디쉬와 라디노의 히브리어를 중세 히브리어라 해서 고대 히브리어와 구분한다. 그리하여 성경을 읽을 때는 성서 히브리어인 고대 히브리어를 해득해야 하지만, 탈무드를 읽을 때는 중세 히브리어를 해득해야 한다. 중세 히브리어 해득도 방대한 양의 사전을 필요로 한다.

현대 히브리어는 이 모든 전통을 합친 것으로 풍부한 어휘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현대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공화국의 국어(國語)이다.

아쉬케나짐이나 스파르딤에 속하지 않는 유대인들도 있다. 예멘과 이디오피아의 유대인들이다. 이디오피아 유대인들은 ‘베타 이스라엘,’또는 ‘팔라샤스’로 알려져 있다. 베타 이스라엘의 얼굴은 흑인이며 나름의 관습과 전통을 지니고 있다. 예루살렘 성묘 교회 옆에 이들의 회당이 있어 항상 그곳에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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