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만난 죽은 사무엘의 정체(삼상 28:8-19)에 대하여

 

글 / 송영찬 목사(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1. 이 사건의 배경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수넴에 진을 치자(삼상 28:4) 사울은 두려움에 빠지고 말았다. 사울은 유독 블레셋 군대에 대해서만은 심리적으로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 받았을 때 벌어진 첫 번째 전쟁 때문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의 세력이 커지기 전에 정복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왔었다. 처음 전쟁을 치러야 했던 사울은 블레셋 군대의 막강한 위용 앞에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사무엘 대신에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 일로 사무엘로부터 호된 꾸중을 들었던 일이 있었다(삼상 13장). 이때부터 사울은 지금까지 블레셋 군대만 보면 위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이미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가져야 할 모든 특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오히려 사울은 제사장 나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의 군대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의로운 군대라는 개념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사실 사울의 군대는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보다는 다윗을 뒤쫓는 일에 더 익숙해 있었다. 때문에 다시 블레셋 군대 앞에 서게 된 사울은 그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초월적인 힘의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삼상 28:5).

이미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닌 세속 국가의 왕과 같이 힘의 우위에 따른 절대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다. 사울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보다는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군사력을 의존하고자 했으나 사울의 군대는 블레셋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약체였다.

사울은 여호와께 의지하고자 하였으나 여호와는 사울에게 이미 등을 돌린 뒤였다(삼상 28:6). 사울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들리지 않았다. 사울은 급박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스스로 추방한 신접한 자들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2. 이 사건의 전개


마침 사울의 눈을 피해 엔돌에 피하고 있던 신접한 여인을 찾아 낸 사울은 황급히 찾아가서 술법으로 사무엘을 불러내게 하였다. 신접한 여인은 이스라엘 왕의 준엄한 법령을 두려워하며 술법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사울은 그녀를 안심시켰다.

신접한 여인은 그 사람이 이스라엘 왕 사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술법으로 사무엘을 불러 낸 후에 그가 사울임을 알게 된 것처럼 행동했다.

사울은 신접한 여인이 불러 낸 사무엘의 음성을 통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일로 여호와로부터 버림을 당하였고 블레셋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고 기력을 잃고 말았다. 이것은 사울의 종말이 가까웠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3. 사울이 만난 죽은 사무엘의 정체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통해 만난 인물이 과연 사무엘이었는지 본문은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 신접한 여인이 사울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가 사무엘을 불러낸 후에야 갑자기 사울의 정체를 안 것처럼 놀라워 한 것(삼상 28:12)과 이 여인이 땅에서 올라 온 신을 사무엘이라고 단정한 것은 사울이 마치 극적으로 사무엘을 만나게 된 것처럼 착각하기에 충분했다.

사실 사울은 그의 정체뿐 아니라 그 존재조차도 전혀 볼 수 없었다. 오직 신접한 여인의 설명을 통해 그 존재가 사무엘이라고 믿고 있었을 뿐이었다. 성경은 그 어느 곳에서도 죽은 사람이 이 땅에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죽은 나사로의 비유일 것이다. 예수님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한 번 죽었던 사람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갈 수도 없고 지옥에서 천국으로도 갈 수 없다고 가르치셨다(눅 16:26).

죽은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세상에 나가 지옥의 실상을 친척들에게 알리게 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한 것에 대하여 예수님은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31)고 말씀을 하셨다. 이것은 사람을 구원케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죽은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모세와 선지자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죽은 나사로가 세상에 나갈 필요가 없다고 단정지은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비유는 아무리 사울이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사울의 장래를 보여주기 위해 구태여 죽은 사무엘이 다시 이 세상에 와서 사울 앞에 나타날 필요성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증거해 준다.

또한 사울의 장래에 대해서는 이미 사무엘이 살아 있을 때 구체적으로 예언한 바 있다(삼상 13:13-14; 15:22-26). 또한 사울은 의로운 다윗을 핍박한 일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친히 보복하시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경고를 받은 바 있다(삼상 24:12). 그리고 사울의 행위로 인하여 여호와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기도 하였다(삼상 26:19). 따라서 사울은 신접한 여인의 술법을 통하지 않고서도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 술법을 통해 사무엘을 만나고자 한 것은 블레셋 군대를 보는 사울이 극도로 나약한 심적 상태에 빠져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울은 자신이 사무엘의 존재를 확인한 것도 아니며 사무엘의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사울은 오로지 신접한 여인의 말에만 의지하여 그 존재가 사무엘이라고만 여겼던 것이다. 사울은 이미 신체적으로 매우 쇠약해 있었기 때문에 신접한 여인의 묘사한 내용을 판단할 기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삼상 28:20).

그렇다면 신접한 여인이 불러내었다고 주장하는 ‘죽은 사무엘’의 정체는 결코 죽은 사무엘이 아니라 그녀가 평소 접신의 상태에서 만날 수 있었던 귀신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녀가 사울에게 한 말들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울뿐 아니라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리 새로운 내용도 아니었다. 이처럼 신접한 여인뿐 아니라 귀신까지라도 사울의 종말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사울을 버리신 하나님의 계획이 이제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4. 이 사건을 기록한 기자의 의도


이 사건에 대하여 사무엘서 기자가 장황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은 사울의 반신국적인 행위와 여호와에 대한 불신앙이 극도에 달하였음을 보여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더불어 사무엘서 기자는 심지어 신접한 여인의 입을 빌어서라도 사울이 버림을 받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사무엘서 기자는 사울의 죽음과 더불어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시점이 가까웠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결코 죽었던 사무엘이 신접한 여인의 술법을 통해 이 세상에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죽은 사람은 그 어떤 형체와 방법으로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날 수 없다.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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