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운명을 바꾼 기후 급변
 

글 / 고세진 (대한성서고고학회 회장)
 
지중해에 면한 이집트의 북부 해안에 적의 함대가 군사들을 토해 놓았다. 바다를 건너 온 군대는 나일강 하류가 만든 비옥한 삼각주에서 배수진을 치고 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이집트군은 사생결단의 접전을 벌여 침략자들을 굴복시켰다. B.C. 12세기의 혈전이었다. 이집트군의 사령관은 파라오 람세스 3세(B.C. 1198-1166년)였다. 지중해를 건너온 군대는 그리스의 남부와 크레테 섬에서 온 ‘펠레스티’와 ‘셰르덴’과 ‘쳬커’ 부족들 이었다. ‘윗 이집트’에 있는 메디네트 하부(Medinet Habu) 신전의 벽에는 그 때의 전투 모습이 생생하게 부조되어 있는데, 머리에 깃털모자를 쓰고 둥근 방패와 긴 창을 들고 싸우는 펠레스티 군사들이 보인다. 이 펠레스티 사람들이 구약성경에는 ‘불레셋’이라고 되어 있다.

펠레스티(불레셋) 부족을 포함하여 배를 타고 온 해양 부족들이 이짚트 앞 바다에서 이집트 군과 벌인 해전 (기원전 12세기. 메디네트 하부 신전의 벽에 부조되어 있음). 
(출처: Trude Dothan, The Philistines and their Material Culture, Jerusalem: IEJ, 1982, fig. 7.)
펠레스티(불레셋) 부족을 포함하여 배를 타고 온 해양 부족들이 이짚트 앞 바다에서 이집트 군과 벌인 해전 (기원전 12세기. 메디네트 하부 신전의 벽에 부조되어 있음). (출처: Trude Dothan, The Philistines and their Material Culture, Jerusalem: IEJ, 1982, fig. 7.)

깃털모자를 쓰고 둥근 방패와 창을 들고 마차를 타고 상륙하여 싸우는 펠레스티(불레셋) 군대. 왼쪽에 사각형 방패를 든 이짚트 군사들이 보인다 (기원전 12세기. 메디네트 하부 신전의 벽에 부조되어 있음).
(출처: Trude Dothan, 같은 책, fig. 6.)
깃털모자를 쓰고 둥근 방패와 창을 들고 마차를 타고 상륙하여 싸우는 펠레스티(불레셋) 군대. 왼쪽에 사각형 방패를 든 이짚트 군사들이 보인다 (기원전 12세기. 메디네트 하부 신전의 벽에 부조되어 있음). (출처: Trude Dothan, 같은 책, fig. 6.)

기후변화로 인한 고대 지중해 연안의 이민행렬

근동과 이집트의 고대문서에 해양부족들(Sea Peoples)로 기록된 이들은 많은 이민자들 중의 일부이었다. 그들은 바다를 건너서 이집트로 향했고, 다른 부족들은 해안 길을 따라서 터키와 시리아와 페니시아(레바논)의 도시들을 석권하며 남진하였다. B.C. 12세기에 지중해의 북부, 동부, 남부 해안의 도시들은 그들 때문에 혼란과 소동에 휩싸였다.

5
5

고고학자들은 오랫동안 터키의 해안과 레반트(지중해 동부 연안; 현재의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의 유적지들을 조사하여 이런 소동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에게 해(海)가 둘러 싸고 있는 그리스와 크레테 섬과 터키의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지중해 연안에서 청동기시대가 끝나가던 B.C. 13세기에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격렬하고 파괴적인 기후변화들 중의 하나가 발생하였다. 대기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오르거나 내렸고,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었으며 수십 년에 걸쳐서 지진들이 발생하였다. 농업생태계는 무너지고 문화도 붕괴되고 살기 위한 침략과 응전으로 재앙들이 겹쳤기 때문에 그들은 거주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지진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생활터전의 일부인 바다에서도 지진으로 인한 태풍과 수자원의 파동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 근동의 청동기시대 인류는 아직 기후변화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방법도 몰랐다.

불레셋과 이스라엘의 전투

람세스 3세는 적군의 일부를 용병으로 고용하였고, 나머지는 케나안 땅(현재 이스라엘 땅)의 남쪽 해안에 있는 도시 가자(Gaza) 주변에 정착시켰고, 그곳은 펠레스티(불레셋) 부족이 산다는 뜻으로 ‘펠레스티나’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케나안 땅의 산악지방에 살던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펠레스티(불레셋)와 치열하게 싸웠고 고고학 현장에서는 그 증거들이 계속 출토되고 있다. 불레셋의 창녀 딜라일라에게 배신당한 저 유명한 이스라엘 장군 삼손과 불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계기를 잡은 청년 다윗의 이야기도 이렇게 기후변화와 관계된 역사적 배경에서 일어 난 사건들 이었다. 불레셋은 차차로 케나안의 원주민들과 동화되어 사라졌다. 이스라엘 해안의 불레셋 유적지들은 그들이 아름답고 진보한 철기문화를 누렸음을 증거하고 있다.

나중에 로마제국은 고대 이스라엘을 정복하였고, 하드리안 황제는 A.D. 135년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아내고 아예 이스라엘 땅을 이미 사라진 펠레스티(불레셋) 이름을 빌려서 ‘팔레스타인’이라고 바꾸어 버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은 공터가 된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서 살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자처했고, 20세기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이 정치적 용어로 변질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후손이 1948년에 현대 국가를 수립한 이래 둘은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 지금, 이스라엘 안팎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은 불레셋의 후예이기 때문에 그 땅에 살 권리가 있다고 강변 한다. 이스라엘의 기득권 주장에 대항하려고 지어 낸 말인 것이다. 고대 기후변화의 결과가 고대 이스라엘과 불레셋 사이의 싸움에 원인을 제공하였고, 그리고 현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현실적 생존투쟁에 간접적인 배경이 되는 셈이다.

한반도 기후 대변화 때 우리는 어디로?

현대 지구 기후변화의 주범은 인류라고 하며, 한반도는 이미 아열대권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예를 보면, 기후변화는 청정환경인 고대에도 있었고 자연의 균형잡기 운동인 것이다. 다만 기후변화의 주기를 가속시키고 정상궤도에서 이탈하는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인류는 국가적 정책으로 그리고 개개인이 지혜롭게 자원을 관리하고 오염을 최소로 줄이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해야만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악화된 기후 때문에 우리는 한반도에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가 갈 곳은 어디일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