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이집트

 

 

 

김성교수

이스라엘의 강력한 지도자 히브리 족장
창세기 족장 역사적 조명하는 고고학 자료있어
이집트 벽화에서 가나안 출신 유목민 모습 발견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로


태어날 때부터 쌍둥이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야곱은 창세기에서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과 속임수를 이용해 형의 장자권을 차지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야곱은 두 명의 부인과 두 명의 여종으로부터 모두 12명의 아들을 얻었다. 야곱은 열한번 째 아들 요셉 덕분에 이집트에서 가장 비옥한 땅 ‘람세스의 땅’에 정착할 수 있었다(창 47:11). 이 사건을 계기로 천지창조, 에덴동산, 대홍수, 바벨탑, 아브라함 등으로 연상되는 창세기의 메소포타미아적 배경은 이집트적 배경으로 교체되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의 고향 이집트(?)


이집트는 예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피난처로 제공되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의 가족은 가나안 땅에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아 기근이 들었을 때 일년 내내 물이 풍성한 이집트로 내려가서 도움을 요청했고 신약시대 예수의 가족도 헤롯의 박해를 피해서 이집트로 내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노예로 팔려갔다가 총리대신의 지위에까지 오른 요셉이야말로 성서의 이집트적 배경을 가장 잘 나타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중세 이후 이집트를 여행했던 유럽인들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요셉의 곡식창고’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으로부터 흘러나와 저지대인 파윰 오아시스의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을 아랍어로 ‘바흐르 유셉’, 즉 ‘요셉 하천’이라 부르고 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생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집트 역사 전승에서는 정반대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무력으로 점령하여 통치했다는 언급이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신약시대의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한 작품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당시 이집트의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는 매우 번성하였다. 그런데 이를 시기한 아피온(Apion)이라 불리는 한 이집트인은 ‘유대인 반박문’을 통하여 출애굽 당시 유대인들이 나환자들이었기 때문에 이집트로부터 쫓겨났으며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는 금으로 만든 당나귀를 모셔다 놓고 숭배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치욕적인 비난에 대항하여 요세푸스는 ‘아피온 반박문’을 발표했는데 그는 이 글에서 서기전 3세기 이집트의 역사가 마네토를 인용하면서 유대인들이 한 때 이집트를 통치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마네토에 의하면 ‘힉소스’라 불리는 한 민족이 북쪽에서부터 쳐들어와서 도시들을 불사르고 신전을 파괴했으며 이집트 민족을 학살했다고 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멤피스를 점령하여 수도로 삼았다가 아바리스라는 도시를 건설하였고 나중에 이집트로부터 쫓겨날때는 그들의 재산을 모두 가지고 나갔으며 유다 지방에 강력한 요새인 예루살렘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힉소스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 민족의 한 부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베니 하산의 아브라함(?)


1824년 영국의 고고학자 윌킨슨(G.Wilkinson)은 이집트 중부 지방의 한 유적지인 베니 하산에 들러 절벽의 중턱에 만들어진 바위굴 무덤들을 조사하였다. 모두 39개나 되는 이 무덤들 중에서 크눔호텝이라 불리는 한 귀족의 무덤 내부에는 이집트인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턱수염과 화려한 무늬로 짜여진 통치마를 걸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이들의 우두머리는 산양 한 마리를 붙들고 있었으며 그의 이름은 힉소스 ‘아비샤’로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그림의 위쪽에는 ‘37명의 힉소스들이 눈 화장품을 팔기위해 이집트에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윌킨슨은 바로 이들을 통하여 아브라함을 비롯한 창세기에 등장하는 히브리 족장들의 실제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무덤은 서기전 1900년경 건설된 것이어서 어느 정도 연대상으로도 가능한 추론이었다. 비록 이름은 다르게 나타났지만 이집트의 한 무덤벽화에서 히브리 족장들을 연상시키는 가나안 출신의 유목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이집트의 파라오 야곱


히브리 족장들중의 하나인 야곱은 스캐럽이라 불리는 이집트의 도장에서 그 이름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최고신은 태양신 라(Ra)였다. 이른 아침에 짐승의 똥을 공처럼 둥글게 뭉쳐서 굴리고 가는 말똥구리를 그들은 태양신의 운반자로 여겨서 풍뎅이 형상을 부적으로 만들었으며 도장으로 새겨서 반지에 끼고 다녔다.

 

1930년대 예루살렘에서 수집되어 베를린의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된 한 스캐럽에는 ‘야쿱-헤르’라는 이름이 파라오를 의미하는 타원형 테두리로 싸여 있었다.

 

1969년 이스라엘의 항구도시인 하이파 근처 쉬크모나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스캐럽에도 분명하게 상형문자로 ‘야쿱-헤르’가 표기되어 있었으며 베를린의 것과 거의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함께 출토된 토기들을 통하여 이 무덤의 주인공 야곱은 서기전 1750년경의 인물로 밝혀졌다. 또한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른 스캐럽에는 이집트 제 15왕조의 파라오임을 증명하는 표시와 함께 야곱의 이름이 나타난다. 그는 힉소스 왕조의 제 2대 왕으로서 서기전 1600년경 통치했었다.

 

서기전 1900년경 화려한 채색 옷을 입은 아비샤를 비롯한 서른 일곱 명의 힉소스들, 서기전 1750년경 이스라엘 항구도시에서 발견된 한 도시의 왕 야곱, 그리고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로서 군림했던 서기전 1600년경의 파라오 야곱 등은 모두가 창세기 족장들을 역사적으로 조명해주는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들이다.

 

비록 창세기에는 요셉이 총리대신으로 등장하지만 이집트 역사에서 힉소스라 불렸던 히브리 족장들은 파라오로서 약 100여 년 동안 이집트를 식민지로 통치했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도자들로 재평가 될 필요가 있다.

  

 크눔호텝 3세 무덤의 힉소스 벽화
서기전 1900년경 제 12왕조 이 지방의 영주였던 크눔호텝의 무덤벽화에는 37명의 힉소스, 즉 ‘외국의 통치자들’이 눈화장품을 팔러 이집트를 방문했음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가나안 지방 출신으로서 창세기의 요셉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채색옷, 독특한 수염 등으로 이집트인들과는 쉽게 구별된다.

  

야곱(야쿱-헤르)의 스캐럽 도장
왼쪽: 창세기의 야곱과 같은 이름의 ‘야쿱-헤르’가 새겨진 스캐럽 도장이 1969년 이스라엘에서 발견되었고 서기전 1750년경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스라엘 하이파 박물관 소장)


오른쪽: 이와 똑 같은 스캐럽 도장이 1930년대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이집트의 파라오를 표시하는 타원형의 테두리가 둘러져 있다. (베를린 이집트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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