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이 1000명에 이르던 솔로몬왕의 영화, 아들의 오판으로...


고세진의 근동(近東)고고학 산책⑦

 

르호보암은 흔들리는 말안장 위에서 차일이 만들어 주는 그늘을 즐기며 기분이 들떴다. 그는 전국을 호령하는 왕이 된 자신이 자랑스러워 못내 기꺼웠다. 개울을 따라 흐르는 길의 양쪽으로 산들이 높이 솟아 있는데, 수행원들의 행렬이 길게 따랐다. 강렬한 태양이 산비탈과 수행단의 깃발들을 찬란하게 반사시키고 있었다. 솔개들이 하늘 높이 떴다가 먹잇감을 보고 직각으로 내려꽂히곤 하였다.

예루살렘 홈 그라운드를 버린 불길한 회담

솔로몬을 섬겼던 중신들은 조정회의에서 왕조의 본거지(홈 그라운드)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적진이라고 할 수 있는 북쪽의 셰켐 성(城)에서 회담을 하는 것은 불리하다고 극구 만류하였다. 그러나 젊은 왕은 자신이 있었다.
예루살렘을 떠난 행렬이 170리 길을 사나흘 걸려서 이스라엘 북부지방의 중심 도시인 셰켐에 도착하니 히브리 열 부족들의 대표들과 백성들이 길가를 메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왕을 위하여 임시로 지은 연회장에서 환영연이 열렸다. 히브리 민족의 영산인 그리심산과 에발산 중간에 있는 셰켐 성에서 풍악소리가 치솟아올랐다.

남쪽(왼쪽)의 그리심 산과 북쪽의 에발 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셰켐 성. 역사적으로 예루살렘보다 더 민족적 뿌리가 있는 곳이어서 국가대사를 논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이라는 홈 그라운드를 떠나서 여기서 회담을 하다가 낭패를 당했다. 지금은 그 곳에 집이 가득차 있다. 비가 내리는 겨울의 풍경이다.
남쪽(왼쪽)의 그리심 산과 북쪽의 에발 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셰켐 성. 역사적으로 예루살렘보다 더 민족적 뿌리가 있는 곳이어서 국가대사를 논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이라는 홈 그라운드를 떠나서 여기서 회담을 하다가 낭패를 당했다. 지금은 그 곳에 집이 가득차 있다. 비가 내리는 겨울의 풍경이다.
국내정세에 대한 치명적 오판

해가 지면 하루가 시작되는 히브리 관습에 따라. 연회가 잦아들고 사방이 어두워지는데, 부족들의 대표들과 왕실 신료들은 복장을 단정히 하고 르호보암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의관을 정제하고 위엄을 갖춘 젊은 왕이 불그스레 상기된 얼굴로 들어섰다.

“선대 다비드 왕과 솔로몬 왕이 태평성대를 이루어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평안하며 주변의 나라들도 우리 이스라엘을 우러르니 이제 짐이 할 일이 별로 없을 정도요. 짐은 북쪽 부족들과 함께 이 나라를 더욱 번영하게 할 계책을 듣고 싶소.”

부족장 중에서 연장자가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 지금이 태평성대라고 하오나, 말씀과 달리 백성들의 마음은 조정을 떠났사옵니다. 다비드 왕은 슬기로운 왕이셨으나 주변의 작은 나라들과 전쟁이 잦았고, 조정에서 치른 반란도 많아 백성들의 생활과 마음에 상처가 많습니다. 솔로몬 왕께서는 국가 창업이념인 성전(聖殿)을 무시하고 그 가까이에 첩들을 천 명이나 두며 이방신들을 같이 섬겨 국론이 분열되고 도덕이 문란하게 되어 국가의 기강이 주저앉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 왕께서는 성전을 짓는데 7년, 왕궁을 짓는데 8년 동안 백성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였고 국고가 탕진되니 세금을 과중하게 부과하여 민심이 조정을 버렸습니다. 전하께서는 이 점을 명심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위무하여 주옵소서.”

르호보암은 근엄한 얼굴로 그 부족장을 내려다보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역사는 강물 같은 것이요. 그 안에는 온갖 좋은 것들과 잡동사니들이 다 있소. 그러나 강이 유구히 흐르듯이 한 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요.”
그 때 무리의 뒤쪽에서 젊고 건장한 남자가 소리치듯 말하였다. “전하, 폭우가 내려 강이 범람하면 강의 방향이 바뀌듯이, 주변 강대국들이 벼락이 되고 민심이 폭풍이 되면 나라의 역사도 길이 달라질 수 있사옵니다.”

르호보암은 그 남자를 향하여 말하였다. “그대는 누군고? 부족장은 아니겠고······.”
늙은 부족장이 대신 대답하였다. “저 사람은 선왕 솔로몬 때에 백성들의 노역을 징발하는 책임자였는데, 노역을 경감시켜 백성들의 짐을 덜어 달라는 상소를 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이집트로 피신하였사옵고 근래에 귀국했사옵는 바, 국제정세에 밝아 저희들이 불렀사옵니다.”
르호보암의 얼굴 근육이 씰룩거렸다. “그렇다면, 그대는 여로보암이렸다.”

“그렇사옵니다. 소인은 다만 솔로몬 왕의 국정을 위하여 진언하였으나 역도로 몰려 목숨을 보전코자 망명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제 전하께옵서는 안으로는 고통을 앓는 백성의 마음을 살피시고 밖으로는 일어나고 있는 강대국들, 북으로는 아씨리아와 바빌론, 남으로는 이집트의 향방을 살펴 나라를 보위하시옵소서. 나라가 강과 같다면, 범람하지 않게 치수를 하시는 것이 순리인 줄로 아옵니다.”

르호보암이 대답을 하려고 손을 드는 순간, 열 부족장들이 합창을 했다. “전하, 세금을 줄이고 강제노역을 파하여 백성의 고통을 줄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 부족들이 다비드와 솔로몬을 섬겼듯이 조정에 충성하겠나이다. 그렇게 아니하시면, 북쪽의 저희들은 전하를 따르지 않겠나이다.”
르호보암은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그들에게 삼일 후에 답을 하겠노라 하고 돌려보냈다.

폐허가 된 셰켐 성 유적에 구경꾼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중앙은 신전 터이고, 뒤로 보이는 배경은 에발 산이다.
폐허가 된 셰켐 성 유적에 구경꾼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중앙은 신전 터이고, 뒤로 보이는 배경은 에발 산이다.
잘못된 선택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에서 함께 온 조정신료들과 어떻게 답을 하면 좋을지 이틀 동안 숙의하였다. 솔로몬 때의 충신들은, 시대가 달라졌으니 백성들을 다독여 마음을 풀어줌으로서 몸 안의 병을 치료하고,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여 몸 밖의 환란을 방지하라고 진언하였다.

그러나 르호보암과 같이 자라고 득세한 젊은 관료들은 “두 선왕들이 80년을 이어 온 정치를 폄하하는 자들에게는 벌을 내려 전하의 왕권이 천하를 호령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소서. 강대국들이 이제 긴 잠에서 깨는 것 같긴 하나, 우리의 국력과 부가 막강하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르호보암이 젊은 관료들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짐이 그들에게 뭐라고 답을 하면 좋겠소?”
그들이 말하기를, “‘내 아버지 솔로몬이 정한 세금을 내리고 노역을 중지하라고 하나, 나의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 보다 굵으니, 이제 나는 세금을 더 걷고 노역을 더 부과하리라. 솔로몬은 채찍으로 너희를 때렸으나 나는 독이 있는 전갈로 너희를 치리하겠노라’라고 말하소서”라고 부추겼다.

르호보암은 어깨를 으쓱 추켜올리고 또 물었다. “수십 년 동안 각자의 국내문제로 잠잠하던 강대국들이 내부를 정리하고 다시 팽창정책을 쓴다고 걱정들을 하며 우리의 미래가 어둡다고 하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들의 말로는 할아버지 다비드의 통일왕국 건설도 강대국들의 침체기간 동안에 득을 본 것이라고 하지 않소?”

“전하, 미물들의 소리에 괘념치 마소서.” 한 젊은 신하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다비드 왕은 하나님이 사랑한 사람으로 통치술이 신묘한 경지에 이르렀고, 솔로몬 왕은 이집트가 왕녀를 비(妃)로 줄 정도로 외교력이 출중한 인물이었습니다. 두 분의 피를 받은 전하는 하나님의 인도와 사람의 추종을 받아 승승장구하실 것이오니 집권 초에 강하게 밀어붙이시고 북부 부족들을 장악하소서.”

젊은 신하들이 절하며 합창하였다. “전하, 강대국들은 멀리 있사옵니다.”
늙은 신하들은 절규하였다. “전하, 그리하면 아니 되옵니다. 선정을 베푸소서.”
르호보암이 손을 들어 말했다. “자, 새 시대에는 새로운 활력과 능력이 필요하오. 짐은 짐과 고락을 같이 해 온 신예 신료들의 말대로 할 것이니 그리들 아시오.”

쪼개지는 통일왕국

사흘 째 되는 날, 회담장 주변에는 북부 부족들의 백성들이 인산인해로 몰려들었다. 여로보암은 이집트 군부와 계획한 대로 비밀리에 북부 부족들에게서 선발한 젊은이들로 구성하여 훈련시킨 민병대들을 그리심 산 비탈에 매복시켰다. 비탈에 서 있는 키가 크지 않고 입이 무성한 도토리나무 마다 서너 명씩의 민병대원들이 숨어 있었다.
갑자기 회담장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샤이의 아들 다비드가 누구며, 솔로몬이 누구냐?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가자!”
“북부 부족들이여, 각자의 마을로 돌아가라! 우리는 새 나라를 건설하자!”

밖에서는 함성과 소란이 나 어지러운데, 회담장 안에서 르호보암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의 얼굴에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백성의 선의를 저버리고 국제정세도 모르는 너의 오판 때문에 다비드 왕조는 멸망할 것이다! 우리는 새 나라를 건설할 것이며, 나라가 쪼개진 책임은 르호보암 너의 것이다!”
여로보암은 순식간에 옆에 서 있던 근위대원의 칼을 뽑아 들고 외쳤다. “르호보암을 쳐라!”
여로보암의 민병대가 산비탈을 내리닫는 동안 근위대는 혼비백산하여 왕과 조정신료들을 옹위하여 셰켐 성을 간신히 빠져 나왔다. 민병대는 20여리 정도 추격하다 돌아갔다. 셰켐 성 안에 있는 중앙정부의 관공서들은 모조리 파괴되고 세관원들과 노역감독 총책임자 하도람이 피살되고 그들의 가족들도 도륙되었다. 서기전 927년의 일이었다.

찬란한 통일왕국의 파멸

여로보암은 이집트가 준 군자금으로 군대를 조직하고 왕궁을 건축하고 국호를 ‘이스라엘’이라고 선포하였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예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영토의 북쪽 끝인 단 성에 바알 신전을 건립하였다. 남쪽 르호보암의 유다 왕국과 가까운 곳 벧엘 성에도 바알 신전을 건축하며 백성들을 이끌었다. 작은 소리였던 여로보암은 이집트를 등에 업고 불만에 가득찬 부족들을 선동하여 인구 약 8할을 자기편으로 만들며, 왕위를 쪼개서 차지하고 국호를 찬탈하였고 국가이념인 종교도 변질시켰고 히브리 민족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기초를 놓았다. 그가 세운 왕조는 북쪽의 강대국 아씨리아가 서기전 721년에 멸망시켰다.

강대국들의 침체기에 작은 나라를 큰 나라로 만든 다비드의 손자 르호보암은 호의호식하며 자라 어려움을 몰랐고, 자기들이 큰 나라이고 세상의 중심으로 착각했던 동료들의 어리석은 계책을 택하여, 여로보암의 성공을 돕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백성의 2할만 거느리게 된 그는 국호를 빼앗기고 ‘유다’라는 국호로 예루살렘에서 국가를 경영하려 하였으나, 집권 5년 만에 그의 국력이 허약해지기를 기다렸던 이집트의 대군을 맞아 온 땅이 유린되고 조정과 성전의 재정을 다 빼앗겼다. 결국 선대가 이룩한 찬란한 업적은 그의 오판으로 쇠퇴하다가 서기전 587년에 바빌론의 침공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나라가 망하며 무로 돌아가고 말았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가 겪는 공식
아씨리아와 바빌론과 이집트는 작은 나라에 인접한 대국들은 결코 영토적 야욕을 접지 않는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 주며 히브리 민족의 두 왕국들을 지도에서 지워버렸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라 본 예루살렘의 풍경. 오른 쪽으로 감람산이 있고 키드론 골짜기를 건너 왼쪽에 옛 도성이 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 아니라, '살렘의 기초'라는 뜻이다. 살렘은 이곳에서 섬기던 신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본다. 다비드가 도읍으로 정한 이곳에서 국가 분열과 멸망과 성전 파괴라는 참혹한 비운을 겪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라 본 예루살렘의 풍경. 오른 쪽으로 감람산이 있고 키드론 골짜기를 건너 왼쪽에 옛 도성이 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 아니라, '살렘의 기초'라는 뜻이다. 살렘은 이곳에서 섬기던 신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본다. 다비드가 도읍으로 정한 이곳에서 국가 분열과 멸망과 성전 파괴라는 참혹한 비운을 겪었다.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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