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과 이집트학(Egyptology) 

 

이집트 역사 속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출애굽 사건을 지금까지 서구의 고고학자들이 현장에서 확인하기 위해서 어떻게 발굴하고 연구했는가?

과정을 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연구를 하면서 출애굽 사건과 직접 연관되지는 않지만, 이집트를 염두하면서 연구했다.

출애굽 사건 자체의 이집트 기록이 미미하기 때문에 역사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모세가 역사적 인물인가?

출애굽이 역사적 사건인가?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종교적 기록은 역사적 핵심이 있기때문에 있는 것이지 사람의 공상적인 생각을 기록한 것은 절대 없다.

입에서 입으로 나오는 전설이라 할지라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사실이 있기때문에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출애굽 연대는 111절에 의거해서 비돔과 라암세스를 세우는데 동원되었다는 것이 성경에 나온다.

라암세스는 라암세스 2세가 세운 곳이다.

 

서기전 13세기로 본다.

 

이집트 역사 3천년중에서 이름이 알려진 파라오가 170여명이 되고, 다른 파라오까지 치면 300명이고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라암세스 2세이다.

67년을 통치했고 10명의 부인을 통해 100명의 자녀를 낳았다.

이집트 현장에서 지상위에 남아 있는 가장 유명한 건물이 라암세스 2세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라암세스의 통치연대는 1년단위로 카운트 할수 있을 정도로 정확히 알수 있다.

서기 1300년경부터 1230년경까지 67년간 통치했다.

통치기간이 67년이고, 그의 나이는 90세쯤 되었다고 본다.

파라오 라암세스 2/

 

모세 하면 모세 무덤이 5군데나 있다.

요르단으로 들어가면 3군데, 이스라엘에 2군데 있다.

모세는 아랍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선지자로 중요하다.

히브리어로는 모세고 아랍사람에게는 무사라고 한다.

시내산- 모세가 하나님으로 부터 십계명을 받은 -제벨무사 -라고 한다.

라암세스 2 시대는 3300년전 인물이다.

 

출애굽기 1장에 근거한 출애굽에 근거한 파라오가 라암세스 2세라면 모세가 대면해서 끌고 가겠다.

못간다 했던 10가지 재앙을 받은 인물 라암세스 2세는 국립 박물관에 있는 이집트 국립 박물관 미이라실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있다.

 

미이라는 헤르도토스의 역사책에 이집트에 방문하고 나서 미이라 만드는 방법을 정리해놓았다.

우리가 생선을 저리는 과정과 같다.

생선을 저릴때 것처럼 내장을 꺼낸다. 부패하니까.

미이라를 만들때 내장을 꺼낸다.

왠쪽 옆구리와 갈비뼈 사이에 쪽을 통해 내장을 제거하고, 내장을 4개의 항아리에 담았다.(, 허파, 위장, 창자)

심장은 뽑지 않았다.

이유는 심장은 영혼이 있고, 부활했을때에 영혼이 심장안에 들어가기때문에 분리하지 않았다.

 

라암세스 2- 얼굴을 그대로알수 있다. 머리카락, 손톱까지. 피부가 온전히 남아있다.

90세의 얼굴을 그대로 볼수 있다.

3300 굉장히 오래된 인물 같지만, 당사자는 피부조차 그대로 남아있다.

라암세스 2세의 미이라가 120년전쯤 발견되고, 박테리아 의해 부식되기 시작되었다.

이집트 기술로 부식을 막기 어려워서 프랑스에서 부패되지 않도록 했다.

파리에 라암세스 2세가 도착할때에 대통령이 오는 것처럼 의장대가 도열을 해서 맞이했다.

 

출애굽을 이야기 할 때 이집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집트올로지를 전공한 학자가 없다.

고고학을 연구하면서 부전공처럼 공부해서 이집트를 가르치고 있지만, 전공한 학자는 없다.

이집트학은 1798 나폴레옹이 처음 시작했다.

그당시 세계 패권은 영국과 프랑스였다.

 

16세기부터 영국은 인도를 점령하고, 식민지로 개발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할수 있었다.

중세 이후 강대국이라는 나라들은 식민지 개발을 통해 부강해졌다.

 

19세기 말에 일본도 서국 강대국과 동등시 하기 위해 식민지 개척하기 위해 목표는 만주여서 한반도를 점령한것이다.

식민지라는 것은 군사적으로 확보하고, 막대한 자원을 가격에 가져가는 것이다.

영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아편을 주고 농산물을 가져간 것이다.

인도를 거쳐간 영국의 고민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수에즈 운하가 없었음으로 많이 돌아가야만 했다.

 

프랑스는 영국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이탈리아를 침공한다. 알프스산맥을 넘어 점령한다.

지중해를 동서를 가로지르는 영국의 무역로를 차단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남쪽으로 이집트까지 내려간다.

1798 어마어마한 군사를 거느리고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이집트를 정령할때 나폴레옹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영국이 순수한 물자를 얻기 위해 침공했다면, 나폴레옹은 물자뿐 아니라, 위대한 문화적 유산도 가져오겠다고 것이다.

175명의 프랑스 당대 최고의 학자들도 데리고 갔다.

 

고고학자와 역사학자와 측령하는자, 스케치하는 사람들, 암석 전문가, 동물 전문가 이런 사람들이 연구하고 결과를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에 돌아와서 20년동안 걸쳐서 답사는 아무나 할수 있지만, 책으로 편집하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다.

나폴레옹에 의해 20년동안 24권의 이집트의 묘사라는 책으로 나온다.

책이 출판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집트에 관한 과학 학문이 시작되었다.

 

이듬해 프랑스가 로제타라는 마을에서 진지를 공사하던 중에 돌판을 찾았다.

돌판에 3가지 문자가 있었다. 상형문자, 흘림문체, 그리스어체가 있었다.

그당시 학교에서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는 누구나 알았다.

그리스어로 알아보니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왕의 전승 기념비이다.

 

같은 내용이 알지 못하는 상형문자로 기록되어 있기때문에 이집트 고대어를 알기 위해서 그리스어를 통해서 알게 된다.

고대에 이집트에서는 왕의 이름은 타원형 테두리에 이름이 있다.

상형문자로 프톨레마이오스라는 단어를 음가로 확인하면서 1822년에 프랑스의 샹폴리옹이라는 학자가 고대 이집트어를 해독하게 된다.

1820년까지는 글짜를 몰랐지만 이후로는 알게 되었다.

내용을 읽음으로서 밝혀지게 되었다.

 

영국의 군사력이 막강했다.

넬슨 제독이 프랑스 함대가 이집트로 간다는 것을 알고 가다가 나중 프랑스의 군함을 함락시킨다.

프랑스의 유물을 영국에게 돌려준다.

유명한 로제타 석비도 프랑스가 발견했지만, 유물 자체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있다.

이집트를 직접 연구한 학자는 프랑스 사람이었다.

영국에서 이집트를 연구하자는 붐이 일어나는데 연구대상이 1장의 비돔과 라암세스를 알아내자고 /

 

지상에 남아있는 유물과 유적을 답사했는데 출애굽에 나오는 고센땅은 이집트 북부지역이다.

카이로 지역이고, 평야지대이고, 아주 비옥한 땅이다.

지금도 3모작이 가능하고 벼농사를 한다.

 

성서 시대에는 벼는 없었다. 동남아시아가 주산지이다.

쌀이라는 곡식이 성경에는 안나온다. , 보리, 기장 수수등만 나온다.

오늘날 이집트는 날씨가 좋고 물이 많아서 사탕수수와 벼농사를 한다.

고고학자의 관점에서는 사람이 많은 곳에 유물이 있으면 비극이다.

사람들이 살면서 석재를 가져다가 이집트의 신전의 것을 쓴다.

이집트의 돌은 석회암이고, 시멘트와 비료의 원료이다.

풍부한 유기물이 고착되어서 만들어졌다.

석회암 조각을 가지고, 부조판을 빻아서 시멘트로 만들고, 가루를 밭으로 비료로 쓴다거나, 한다.

지금도 고센땅에 가면 고대 유적을 찾아볼수 없다.

 

19세기 말에 영국이 고센땅을 관심가졌다.

출애굽의 고센땅에 집중적으로 발굴했다.

비돔이라는 것은 텔엘 마수쿠타으로 불리우는 곳이다./ 우상들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라암세스라는 도시는 이집트 기록에서 라암세스2세가 세운 북쪽 수도이다.

힛타이트 와의 전쟁을 용이하기 위해 세운 도시가 라암세스이다.

1970년대에 발견되었다.

발굴한 사람이 독일의 에드가 푸시라는 사람이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때 자기는 곳이 라암세스라고 확신한다고 한다.

지금도 가보면 아무것도 없다

이집트는 날씨가 덥기때문에 11월부터 2월까지 발굴한다.

다음에는 밭으로 사용하고, 그쯤 발굴한다.

수천년동안 농사를 짓고 살면서 고대유적을 없앴다.

땅속에 파묻힌 몇몇 유물만 나온다.

 

라암세스라는 도시가 발견되면서 출애굽에 대한 이야기가 밝혀지고 있다

문제는 이집트 기록에서 출애굽기에서 나오는 장정 60만의 탈출 기사가 없다.

모든 이집트 기록의 비문, 파피루스 기록을 해독했다.

 

라암세스 2 시대에 수십만, 수백만의 히브리 민족이 떠난 기록이 없다.

기록이 있다면 히브리 민족과 유사한 부류가 시나이 반도에서 와서 이집트 고센에 와서 그들이 어느지역에 정착하도록 인도했다는 내용과 명의 노예가 시나이 반도로 탈출한 기록밖에 없다.

 

부인이 10명되고 아들이 100명된다.

아버지 왕이 죽고난 이후에 13번째 아들이 리비아 군대에 싸우고 나서 전승기념비를 세웠는데 여기에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내용은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파괴되었고 그들의 자손은 없어졌다는 기록이다.

이스라엘의 민족의 기원은 모세의 출애굽이다.

 

아담이 첫번째 하나님의 지은 사람이고, 마태복음에서 아담에서 하지만, 이스라엘이 인종적으로 학문적으로 연구할때 아담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노아의 세아들을 통해 민족이 나누어지는데 셈족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스라엘 이라면, 함족은 이집트쪽이고, 야벳은 지중해 건너편의 그리스 민족이고, 바다민족이다.

오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조상을 찾을때 노아를 찾지도 않는다.

 

아브라함을 히브리어로 아브라함 아베이노, 우리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기원을 찾을때 아브라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땅을 정복한 이후를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추구한다.

 

1956년에 2 중동전쟁이 발생했다.

석유가 없어서 원유를 수입하는데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가 뱃길을 막았다.

자유권 차원에서 시나이 반도로 진격해들어간다.

그짧은 열흘동안 고고학자들이 들어가서 38년간 머물렀다고 하는 가데스 바네아를 조사했다.

 

11년후에 3차전쟁인 6일전쟁 때에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점령했다.

이스라엘이 전쟁 할 때는 심장부를 진격한다.

유엔에 휴전을 요청해서 카이로를 점령당할번 했다.

 

1967년에 이스라엘 군대가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고,

1981년에 단계적으로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내어줄때까지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시나이 반도를 샅샅히 조사했다.

자기 조상들의 기원에 관한 문제이다.

 

결론을 말한다면,유목민이라서 흔적을 발견할수 없다.

38 머물렀다고한 가데스 바네아도 솔로몬 시대에 건설한 남쪽의 요새로 발굴되었다.

 

힉소스 민족 - 영국의 윌킨슨이라는 고고학자가 베니핫산에 고대 이집트의 무덤을 조사했다.

바위굴에 무덤이 뚫려있다. 무덤에 사방에 그림이 있었다.

어떤 무덤에는 두사람이 레슬링 하는 장면도 있다.

동작이 200여가지가 있다.

무덤이 세워진 연대가 서기전 1900년대이다. 이집트 귀족의 무덤이다.

기이한 그림이 있다.

 

힉소스 37명이 화장품을 팔기 위해 이집트에 왔는데 지도자는 아비샤일이다.

이집트 사람의 그림이 있고, 뒤에 팔레스타인의 그림이 있다.

이집트는 치마만 입는다.

힉소스는 턱수염도 길렀고, 통으로 원피스 같은 옷을 입었고, 양털로 짯기때문에 체크무늬도 있고, 아름다운 무늬가 그대로 새겨져있다.

디테일하게 힉소스 사람들의 모습이 새겨져있다.

, 도끼같은 악기까지 나오고, 도끼까지 나온다.

힉소스라는 말은 고대 이집트어로 외국지도자라는 그리스식 발음이다.

 

마네토라는 역사에 힉소스라는 작품이 나온다.

성경에는 요셉의 후예가 고센땅에 정착하고 나서 400년간 지내다가 새로운 왕이 나와 고난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나온다.

마네토의 역사에는 힉소스라는 민족이 북쪽에서 처들어왔다.

심장을 불사르고, 약탈하고, 이집트 사람을 통치했다.

그들이 모든 재산을 가지고 자기 고향으로 가서 예루살렘을 건설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고학자의 발굴이 되기 전에는 이때는 힉소스에 대해 잘몰랐다. 야만인 정도로 생각했다.

고센땅에 본격적인 발굴. 힉소스의 수도 아바리스를 발굴하고 나서. 1920년때부터 발굴하고 나서 힉소스가 누구인가?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나왔다.

 

무덤을 보는데 이집트 무덤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가나안식 무덤이고, 무기도 이스라엘 무기이다.

유명한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을 보면, 1600년경에 이집트 30왕조, 중간이 힉소스 왕이다.

힉소스라는 고센땅에서 이집트를 통치했다.

과도기 때에 여러지역에 여러지역의 왕조가 있었다.

북쪽은 15왕조 힉소스 왕이었고, 북쪽의 왕이 남쪽 세크멘 라에게 편지를 보낸다.

당신의 연못에 하마 울음 소리때문에 잠을 못자니 하마를 처리하십시오.

고센땅과 남쪽사이는 800km 떨어져있다. 남쪽 왕을 조롱한 것이다.

이집트 왕들이 힉소스에 의해 제압당하던 시기이다.

 

파피루스가 떨어져 나가 결론을 알수 없다.

다른데서 찾았다.

 

이집트 왕의 세크멘 라의 미이라에서 였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살아서 호루스라는 신이고, 죽으면 오시리스 신이 됨으로 미이라로 만든다.

천사이사이에 많은 보물과 유물을 관속에 넣는다.

300여개의 미이라 중에 도굴되지 않고 나온 무덤은 2-3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에 1920년의 투탕카문의 무덤이 유명하다.

투탕카문은 그전에는 몰랐다.

 

유명한 소년 왕의 무덤에서 오늘날 이집트 박물관의 반을 채울정도로 많은 분량품이 나왔고, 만들어진 것은 황금이었다.

이집트는 황금의 땅이다.

왕을 매장하는 그날 부터 도굴이 시작된다.

라암세스 2세의 무덤에는 황금이 많았을 것이다.

도굴이 되었을 것이다.

세크멘 라의 미이라를 보니 미이라 상태가 안좋았다.

머리에 도끼자국이 있고, 창으로 맞은 자국도 있고, 얼굴이 형편없이 찌그러졌다.

여기의 도끼 자국과 힉소스의 도끼자국이 일치한다.

당시 도끼가 몇종류가 있다.

전쟁중에 맞은 상처가 아니다.

잡아놓고, 힉소스 왕이 본보기로 자신이 차고 있던 호신용 도끼로 내려친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이렇게 정확하게 내려칠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법의학자들, 해부학자들이 의학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만큼 이집트 왕들이 힉소스에 당했다.

 

힉소스가 누구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것이 1970년대에 밝혀졌다.

북쪽에서 내려온 민족이 통치하고 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성경에서는 요셉이 파라오 다음가는 총리로 했다지만, 역사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100년간 통치했다.

 

힉소스 사람들은 글을 남기지 못했다.

그당시 이스라엘은 문자가 그때는 없었다. 알파벳이 시작되는 초창기이다.

힉소스 왕들의 반지에 있는 도장에 야곱이라는 이름이 밝혀졌다.

야곱은 야콥, 쫓아간다는 뜻이다.

 

구약은 차남 전승이 있다.

가인과 아벨부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대부분이 차남 전승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직접 통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출애굽 사건에 대한 고고학적인 배경이다.

여러편에 걸쳐 논문을 발표했는데 힉소스 민족이 100년간 통치하다가 원주민에 의해 쫓겨났다.

1550년경이다.

 

세크맨 왕이 흥분해서 죽었다고 했는데, 다음왕인 모세라는 왕이 결국 힉소스를 몰아낸다.

모세- 건짐을 받았다는 뜻이라지만 원래 모세는 이집트 이름으로 태어난다는 이름이다.

모세라는 이름은 카가 태어났다. 카는 영혼이라는 뜻이다.

18왕조 아크 모세/ 심장에 저울질을 통해 영생의 존재가 되는 것을 아크라고 하는데 아크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지하세계로 내려가서 천칭에 무게를 단다.

죽은자의 책에 삽화에 나온다.

한쪽에 심장을 달고 깃털을 단다.

죽은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때 타조의 깃털로 정의와 지혜의 마아트의 여신을 상징한다.

마아트의 상징인 마아트가 사람의 과거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타조의 깃털과 죽은자의 심장이 평행을 이룬다.

기울면 아미츠라는 괴물이 잡아 먹는다.

심판을 통과한 것이 아크라는 것이다.

 

토트모세 - 전쟁왕인데, 토트라는 따오기의 학문의 신이다.

라모세- 태양신 / 라암세스가 태양신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1-11세까지 라암세스는 이름이 많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롤 통치하다가 이집트 군에 의해 쫓겨나온 것이 기록이 있는데 모세와 아크모세이다.

쫓아서 가나안땅까지 갔다.

샤로켄이라는 도시- 가자 지구,-까지 가서 파괴시켰다.

그때 여리고라는 도시가 파괴되었다.

 

입에서 입으로 나오는 전설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적인 핵심이 있어서 전해내려온 것이다.

성경책의 위대성은 민족이 야훼 유일신 이라는 이념으로 여러가지 문헌들을 하나의 책으로 나온 것은 유일하다.

구약성서를 가리키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책이 있지만, 그리스나, 로마도 이러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민족의 혼이 담긴 책이다.

성경책에서 말하는 내용은 고고학자들이 발굴하기 전이라 하더라도 심증은 간다.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은 성경책을 가지고 다닌다.

라암세스에 탈출했다는 기록이나, 시나이 반도를 찾아 흔적을 찾아도 찾지 못했지만,

그보다 250년전인 백년동안 이집트롤 통치했다가 탈출했다는 기록은 이집트 기록에도 있고, 고고학적 발굴도 있다.

 

힉소스의 사건-

10가지 재앙중 폭풍우가 몰아치는 내용도 그당시 유명한 거대한 테라섬이 화산폭발로 붕괴되면서,

화산의 후영향으로 지구상의 기온이 떨어지고, 비가 많이 오고, 기상이변으로 문명이 파괴되는 것과 연관된다.

 

불기둥, 구름기둥/ 테라 섬의 화산이 폭발했을때에 근처를 지나가던 배에서 기록한 일지에 보면 낮에는 구름기둥이 올라오고,

밤에는 불기둥이 올라온다는 기록이 있다.

 

힉소스가 쫓겨나갈때 여리고가 붕괴되었고, 테라 섬에 화산폭발이 있었다.

물론 테라섬의 연대가 50-100년정도의 차이가 있자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합법적으로 체류하다가 이집트 사람들에 의해 쫓겨나간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출애굽은 종교적으로 종교고백의 밑바닥에 있는 사건이다.

2천년동의 정체성을 지킬수 있었던 것이 절기 준수이다.

 

안식일 준수, 절기를 지켯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지켰다.

성경에 유월절, 초막절이 출애굽과 관련되어 있다.

 

급하게 나온다고 누룩을 부풀릴 시간이 없었기에 누룩없는 빵을 먹고, 양을 문설주에 바르고, 그것으로 유월절을 지킨다.

40년동안 광야에서 살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집에서 지내냐, 우리도 텐트에 살아야 한다.

유대인들이 초막을 만든다.

 

미쉬나에 의하면 초막을 만들때 별이 보이도록 해야 한다.

별이 안보이면 율법에 맞지 않는 것이다.

 

칠칠절은 성경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지만 유대전승에는 모세가 출애굽 할때 50일째 되는 율법을 받은 날이라고 한다.

3 절기가 출애굽과 연관되어 있다.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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