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兆 '쩐의 大이동' 은행들이 떨고 있다

['계좌 이동제' 2년 뒤 시작… "고객 붙잡아라" 은행들 무한경쟁]

고객이 은행 '주 거래 계좌' 바꾸면 공과금 등 자동이체 한꺼번에 변경돼… 지금처럼 일일이 바꿀 필요 없어
이동할 수 있는 돈 222兆원 달해

편하게 수수료 벌던 은행들… 수수료 인하 등 서비스 개선 예고
대출 금리 올리는 부작용도 우려
금융위원회가 작년 11월 발표한 '금융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가 '계좌 이동제'다. 계좌 이동제란 고객이 주 거래 계좌를 다른 은행으로 옮기면 기존 계좌에 연결된 카드 대금이나 각종 공과금 자동이체 등을 은행이 책임지고 새 계좌로 이전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금융위는 2016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할 예정인데, 고객들이 계좌를 편하게 이동하게 되면 은행들이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제까지는 주 거래 은행을 바꾸기가 어려워 고객이 한 번 거래하기 시작하면 변화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고객이 은행 간 상품이나 서비스를 비교해서 쉽게 거래 은행을 바꿀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은행들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현재보다 한 차원 높은 경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계좌 이동 대상 예금 222조원

계좌 이동제의 세부적인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아 대상 예금의 범위가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면 보통예금, 저축예금 등 개인고객의 결제성 예금이 계좌 이동제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2013년 6월 말 현재 국내은행의 보통예금은 71조7000억원, 저축예금은 150조1000억원으로 총 221조8000억원 규모다. 총예금의 22%를 차지하고 있으며 2008년 이후 매년 11.6%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개인 결제성 예금에 대한 은행 간 시장점유율의 변화는 같은 기간 1%포인트 내외에 그쳐 매우 비(非)경쟁적인 시장이라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결제성 예금 시장이 비경쟁적인 이유는 주 거래 계좌 이동을 위해서는 고객이 직접 이체 대상기관에 개별적으로 접촉해야 하는 불편함, 다시 말하면 전환비용이 많이 든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결제성 예금에 연동된 이체는 지로 등 대량지급과 자동계좌이체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추정한 바로는 계좌당 자동 이체 건수는 월별로 7.5건에 달한다. 즉 주 거래 계좌 이동을 위해 고객이 개별 접촉해야 하는 이체 대상기관이 약 7.5개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국민 1인당 연간 계좌이체 이용건수. 개인 결제성 예금 시장 성장.
/그래픽=김성규 기자
한편 계좌 이동제를 도입해도 될 만큼 은행 시장이 성숙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미 계좌 이동제를 도입한 나라들과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계좌이체 이용건수를 비교해 보았다.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평균 계좌이체 이용건수는 88.5건으로 네덜란드(180.9건), 스웨덴(118.4건), 영국(104건), 호주(102.5건) 등 이미 계좌 이동제를 도입한 국가들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예금 금리 올라가게 될 듯

계좌 이동제의 대상이 되는 결제성 예금은 개별 계좌별로는 금리가 낮고 수시입출금이 가능하여 인출 위험이 큰 예금상품이다. 하지만 앞서 본 것과 같이 결제성 예금의 시장점유율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은 결제성 예금이 은행으로 볼 때는 안정적인 저(低)원가 자금을 조달하는 원천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결제성 예금은 은행의 경쟁력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계좌 이동제가 도입돼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지면 은행의 저원가 핵심예금으로서 결제성 예금의 안정성이 저하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다각적인 대응책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은행 간 금리 경쟁이 과열될 수 있다. 금리 경쟁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결제성 예금 자체의 금리 인상, 경쟁 은행의 대출 고객을 끌어와 간접적으로 결제성 계좌를 유치하기 위한 대출 금리 인하, 수시입출식 계좌 보유고객에 대한 정기예금이나 적금 등 장기예금의 금리 인상, 장기 거래고객에 대한 우대금리 적용 등이 그것이다.

이런 금리 경쟁은 결국 은행의 조달비용 증가와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것이다. 단순하게 봐서 221조8000억원에 달하는 개인 결제성 예금의 금리가 1% 포인트 인상될 경우, 국내은행의 조달비용은 연간 약 2조원 증대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충성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비가격 경쟁도 심화할 것이다. 충성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객별 자산규모, 가입상품, 이용실적뿐만 아니라 금융소비 행태 분석 등에 기반을 둔 고객별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은행 수익성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결제성 예금의 유출입 변동성이 확대되면 은행의 유동성 관리비용이 증대될 수 있다. 대규모 예금 이탈에 대비하여 지금보다 많은 초과 유동성을 유지할 경우에는 유휴자금 확대로 인한 기회비용이 증가한다.

결제성 예금의 이동으로 예상치 못한 유동성 부족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콜(하루짜리 단기 자금), CD(양도성예금), RP(환매조건부 거래) 등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시장성 수신에 대한 의존이 높아져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은행 간 경쟁 확대는 소비자 효익 측면에서는 이중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금리 경쟁이나 충성고객 확보 경쟁이 기본적으로는 소비자 효익을 증대시킬 것으로 예상하지만, 경쟁이 일정 한계를 벗어날 경우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은행들이 증가한 비용을 대출 고객 등에게 전가하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정책 당국, 세심한 준비 필요

계좌 이동제의 영향을 고려해 보면 정책 당국과 은행의 세심한 준비가 없으면 그렇지 않아도 저수익, 저성장 상황에 있는 국내 은행들의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결국은 대출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소비자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책 당국은 해외사례와 국내 환경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바탕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은행간 경쟁환경을 조성하고 소비자 효익 증대라는 제도 도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세심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은행들의 과도한 금리 경쟁을 억제하면서, 상품과 서비스 개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2014.01.08 

 

임재호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송치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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