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시대 고고학

 

찌포리 문화설

 

예수님은하나님의 아들로서 태어나신 분이어서 12살에 성전에 가셨을때 율법학자와 논쟁을 벌이시기도 하셨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첨단적인 비유의 말씀과 상대방을 꽤뚫는 해학과 정통파 유대인들에게 논리적으로 대항할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들이 과연 어떤 배경에서 나왔을까?

 

배경을 보여줄수 있는 배경이 고고학적으로 발견되었다.

1931년에 미국의 워터맨 교수가 요세푸스의 1세기 유대인 역사가의 글을 통해서 찌포리라는 나사렛 근처의 마을을 발견했다.

새가 한마리 앉은 같다고 해서 찌포리라는 말이 붙었다.

 

중세 십자군 시대에 건설한 성채가 언덕 꼭대기에 있다.

이곳을 발굴했을때 4-5천명을 수용할수 있는 극장을 발견했다.

 

나사렛은 보잘 것없는 시골이었지만,

근처에는 갈릴리 왕국의 수도였던 찌포리라는 거대한 도시가 있었고 어떤 형태로든지 예수님은 도시의 교육적 문화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찌포리 문화설을 발표하였다.

 

1930년대에 가설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찌포리를 본격적으로 발굴했다.

그리고, 이것이 요세푸스의 기록과 마찬가지로 인위적으로 대규모로 만든 것을 확인했다.

 

복음서에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로 나와있다.

목수라는 직책자체는 테크노스라는 그리스어로 분업화된 나무만 다루는 기술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건설 노동자로 여겨진다.

 

서기전 4년에 헤롯이 죽고나서 아들이 도시를 물려받는다.

첫째 아들 헤옷 아킬레오가 예루살렘, 유다, 둘째 헤롯 안티파스가 갈릴리 지역을 상속받는다.

셋째, 헤롯 빌립은 요단강 북쪽 건너편 골란고원지역을 상속받는다.

 

갈릴리를 호수를 연상하는데 지역이름이다.

갈은 파도, 물결라는 뜻으로 갈릴리 산악지대는 산악지대가 물결치듯이 있다라는 물결 모양의 갈릴리라는 뜻이다.

갈릴리 지방에 있는 호수라고 해서 갈릴리 호수라고 했다.

그당시 사람은 기네렛 호수라고 불렀다.

 

기네렛은 하프를 키노르, 하프모양이라고 해서 키네렛,이라 불렀다.

헤롯대왕이 죽고나서 헤롯 안티파스가 갈릴리 왕국을 건설했을때 수도가 필요했다.

교통이 편리하고 물이 있고, 농사할 땅이 있고, 약간 주변지역보다 높은 지역으로 찌포리를 건설했다.

서기전 4년쯤이여서 건설하였다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쯔음이고, 아버지 요셉이 건축 노동자로 참여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어린 시절에 어디서 교육을 받았다는 구절은 없다.

사복음서에는 어린시절은 알수 없다.

 

하지만, 나사렛 근처에 찌포리에 어떤 형태로든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위선자라는 뜻이 그리스어로 히포크리테스라고 한다.

 

예수님의 비유에 자주 나오면서 겉과 속이 다른 사람, 회칠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단어는 연극배우라는 단어이다.

 

예수께서 연극을 구경하셨다는 것이다.

나사렛은 극장이 없지만, 찌포리에서 연극을 구경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에 가면 극장이 두가지가 있다.

 

첫째, 연극을 구경하는 극장은 객석이 반원으로 되어 있다.

둘째, 로마시대에 들어와서 반원으로 극장외에 원형극장이 생긴다.

 

원형극장은 격투기장으로 사용되었다.

동물과 동물이 싸우고, 사람이 짐승과 싸우는 검투사들이 싸우는 격투기 장으로서 나중에 스페인에서 투우장으로 발전한다.

배우라는 뜻이 히포크리테스라는 것인데 신약시대에 연극배우인데 라틴어 번역에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라는 뜻이 된것이다.

 

예수께서 사두개파 사람들을 위선자라고 비난했을때는 정확하게 번역하면 사두개파 사람은 배우같은 사람들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 것이다.

 

해가 무렵에 연극을 시작한다.

이스라엘 가장 유명한 극장이 가이사랴에 있는데 해가 떨어지면 구름이 생긴다.

 

바다로부터 구름이 생겨 노을이 생긴다.

그때 막이 올라간다.

자연스럽게 연극의 배경이 된다.

로마시대의 극장은 뒤에 배경이 있었다.

사람들은 바다를 보면서 석양을 보면서 연극을 한다.

연극배우는 나사렛을 비롯해서 갈릴리에 누군가나 이름만 대도 알수 있는 사람들이다.

대본에 따라 연극할때는 주인공을 하느라 가면을 쓸때도 있고,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로 연극배우를 사용하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예수님은 연극을 보셨을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중에 나사렛의 시골분위기와 다른 왕궁의 분위기의 것들이 나온다.

화려한 옷을 입은 왕궁 사람들, 빚진 종을 용서하는 , 혼인잔치를 벌이는 , 왕과 왕이 전투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헤롯 아켈레오 같은 사람을 연상하지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때는 왕이 없었다.

 

왜냐하면 첫째 아들이 서기전 왕이 되고 나서 10년정도밖에 통치하지 못한다.

하루에 수백명을 십자가에 죽였다.

그래서 로마 입장에서는 정치를 못한다고 해서 헤롯 아켈레오를 폐위시키고, 로마가 파견한 총독이 통치하게 되었다.

 

왕궁에 대한 비유를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생각하지만, 그당시에는 총독이 있었지 왕이 없었다.

로마를 방문하셔서 로마의 황제를 것도 아닐 것이다.

예상할수 있는 것이 찌포리 왕궁의 왕과 귀족들의 일상삶을 인용하셨을 것이다.

 

예수를 따라다니던 사람들 헤롯와의 재무장관의 부인인 요한나가 있다.

헤롯이 헤롯 안티파스이다.

 

예수님께서 비유속에서 왕궁 이야기를 것자체가 찌포리 왕궁을 염두해 것을 볼때 언제까지 수도로 있었는가?

서기 20년경에 찌포리에서 갈릴리 호수의 티베리아스로 옮겨간다.

 

복음서에 티베리아스라는 도시 이름은 안나오고 티베리아스 바다라고 나온다.

그당시 호수나 바다를 얌으로 표기했다.

갈릴리 지역의 갈릴리 호수인것처럼, 티베리아스 지역이어서 티베리아스 바다라고 부른 것이다.

 

오늘날 갈릴리 지역의 숙박을 하는 곳이 티베리아스이다.

서기 20년경 티베리아스로 수도로 옮겨간다.

 

예수님 청년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찌포리를 갔다면 청년이 된다음 건축노동자로 생활하셨다면 갈릴리의 티베리아스로 가서 일하셨을 것이다.

성경에는 도시가 나오지 않는데 이유는 유대인들이 도시를 배척했기때문이다.

 

원래 그지역에 유대인의 묘지가 있었는데 헤롯왕이 묘지를 쓸어버리고 건물을 지었다.

유대인은 율법에 따라 묘지지역을 다닐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역을 배척했고, 성경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예수님도 선교 중심지를 자기 고향쪽인 나사렛쪽에 두지 않고, 티베리아스 중심지로 갈릴리 호수로 옮겼다.

왜냐하면 수도를 옮겼다는 것은 갈릴리 왕국의 중심지가 옮겨졌다는 것이다.

같은 호숫가인 가버나움, 베드로의 장모의 집에 있던 곳을 선교의 중심지로 것이다.

 

오늘날 찌포리는 개발된 발굴지이다.

여기서 유명한 것은 갈릴리의 모나리자라 불리우는 1887 찌포리에서 발굴된 서기 3세기에 건설된 귀족 저택의 모자이크이다.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의 모습인데 색색의 돌로 부드러운 얼굴을 표현했다.

 

모자이크는 바닥에서 떼지않고, 위에 건물을 만들어서 볼수 있도록 했다.

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남북으로 이어지는 카르도라는 도로가 있고, 동서로 갈라지면서 블럭으로 계획된 도시를 이뤘다.

찌포리도 발굴지역을 높여가면서 돌판으로 카르도가 발견되고 있다.

 

찌포리는 유대인에 있어서 경전 기록의 중요한 현장이다.

서기 200년경 미쉬나가 찌포리에서 최종적으로 편집된다.

탈무드는 명심보감처럼 여기고, 교육의 텍스트로 여기는데 탈무드는 복잡한 문헌이다.

탈무드는 주된 텍스트인 미쉬나의 구절 구절에 대한 후대 랍비들의 해석이 집약된 작품이 탈무드이다.

 

미쉬나는 무엇인가?

 

일종의 육법전서이다.

6개분야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날수 있는 6개분야의 법적인 내용, 민법, 상법, 종교, 가족에 관한 것들중 랍비들로 구성된 산헤드린에서 재판했던 판례집이 미쉬나이다.

신약시대부터 서기 200년까지의 산헤드린의 랍비들의 판결문, 판례들을 집약해놓은 것이다.

탈무드라는 것은 미쉬나의 한구절 한구절을 두고 주위에 랍비들의 해석이 있다.

탈무드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한학기에 2-3페이지밖에 연구할수 없는데 탈무드는 4000페이지를 넘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탈무드는 몇가지 교훈적인 것을 요약한 책이다.

법집행에 대한 해설집이 탈무드다.

탈무드의 기본 텍스트인 미쉬나가 최종 편집된 곳이 찌포리이다.

수도가 티베리아스로 옮기고 후에 유대인의 종교적, 학문적인 중심지로 된다.

 

찌포리 지역에 십자군 시대의 전승이 있다.

마리아의 부모님인 어머니 안나를 기념하는 교회가 있다.

카톨릭 전승에서 마리아가 중요하기때문에 족보를 따라 여러 전승이 있다.

 

예루살렘에 마리아가 살았다고 한다.

예루살렘에 성안에 가면 베데스다 연못에 십자군시대에 건설된 안나 교회가 있다.

그곳에서 마리아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찌포리 발굴을 통해 나사렛은 시골이지만 근처에 왕국의 수도가 있었기에 예수님이 공생애 하시기 30년동안 예수님이 건축 노동자로서 찌포리, 티베리아스 건설에 참여하심으로서 , 나사렛에서 하룻길 -아침에 가서 볼일보고 해지기전에 돌아올수 있는 - 되는 찌포리에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예수님의 비유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본다.

 

예수님 당시의

 

1986년에 가뭄이 들었을때 배가 발견하게 된다.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움직이셨다.

1986년까지 신약시대의 배를 알수 없었다.

1천년전 배도 몰랐다.

가뭄이 나서 갈릴리 호수에 물이 많이 빠졌을때에 배의 윤곽을 발견한다.

 

고고학자들이 배를 발굴하기 되어 이것을 해저 고고학이라고 한다.

해저는 아니지만, 바닷속에서 발굴된 것을 해저고고학이라 한다.

배가 진흙뻘 속에 묻혀있기때문에 바로 떼어낼수 없어서 유리 섬유를 쏟아서 거품을 만들어 스티로폼처럼 붙여서 자체를 물에 띄어 가져 연구했다.

 

예수님의 시대의 배라고 해서 갈리리 호수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근처에 발견된 등잔과 항아리, 동전종류로 그시대를 알수 있었다.

동전이 시대 사람들이 동전이라고 할수 없지만, 바로 근처에서 발굴되었다.

배를 만드는 방식 자체가 나무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판과 나무판을 정교하게 끼워맞추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러한 배는 중세 이전의 배이다.

나무조각에 대한 탄소동의원소 측정을 통해 나무는 생명체이므로 살아있을때에 탄소를 몸에 비축하고, 죽은후에 탄소가 빠져나가는데 측정후 예수님 당시의 배라고 추정된다.

 

요세푸스기록에 갈릴리 지역에 로마의 항거해서 유대전쟁이 났을때 로마 군대가 진압하고, 갈릴리 지역 사람들이 건너편으로 도망간다.

북쪽과 서쪽에 많이 살았다.

북쪽과 가버나움, 기네사렛, 티베리아스의 막달라, 북쪽과 서쪽이 유대인이 살았다.

동쪽 지역은 데카볼리 -10개도시라는 - 이방인 지역이다.

 

유대인들이 당시 로마군인의 침입을 건너 편으로 도망가려 할때 로마군인이 뗏목을 만들어 몰살시켰고, 그당시 기록에 6700명이 죽었고, 갈릴리 호수가 피빛으로 물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서기 67년경 유대전쟁 당시에 침몰된 배로 보인다.

풍랑에 의해 침목될때 바다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재활용될수 있는 목재를 구하도록 해채가 된다.

바닷가에 있는 것으로 볼때 인위적으로 파손된 것으로 보인다.

 

갈릴리 호수의 경제 문제

 

12제자중 어업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그당시 어업이 어느정도인가?

우선 어부들이 어떤 층에 속한 사람인가?

흔히 하면 어부하면 밑바닥으로 알지만 실제적으로 다른 기록을 통해 중류층 이상으로 예측한다.

이유가 생선이 가격이 비싸다.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민이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있어서 생선을 모른다.

 

레위기에 있어서 제물은 물고기는 한마리도 없다.

예루살렘의 최대 시장인데 가까운 지중해에서 고기를 잡아 파는 사람이 있다.

예루살렘 성문 하나가 어문이라고 있다.

고기문이라는 것이다.

거기는 어시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은 철두철저하게 코셔라는 레위기의 음식율법을 지켜야 한다.

이방인이 잡아주는 음식은 먹을수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고, 예수께서도 이방인과 식사하는 것에 오해를 받았고, 사도바울도 이방인과의 식사문제를 많이 거론한다.

밥을 많이 먹은 것은 유대인에게 굉장히 문제이다.

 

율법에 금지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돼지고기, 비늘없는 생선,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도살한 부정한 고기를 먹는다든지 그렇게 한다.

이스라엘 사람과 소풍을 가면 한국 사람이 김밥을 싸오면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

김밥에 쏘세지가 들어갔다.

김이 있다. 유대인은 김을 못먹게 되어 있다.

 

여기의 유대인은 500만중 철두철미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150만이다.

고기 제품과 유제품을 싱크대도 분리해서 사용한다.

나머지 세속적 유대인은 주면 먹는다.

하지만, 이방인이서 가위를 가지고 고기를 자르면 꺼려한다.

 

이방인 집에 있는 가위가 돼지고기를 썰었는지 치즈를 같이 썰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레위기에서 나오는 코셔라는 율법때문이다.

접시도 못가져 간다.

이방인 집에서 담았는지 모르기때문이다.

다음부터는 포도주나 음료수만 사가지고 가면 된다.

지금도 한국에 있는 유대인이 어려운 문제가 식사 문제이다.

한국에서 이스라엘 독립 기념일에 하이얏트에서 식사를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서 초청한 요리사가 율법에 맞게 요리하도록 하이얏트와 계약이 되어 있기때문이다.

생선이 비싼 이유가 갈릴리 사람들이 잡은 고기가 민물고기라 하더라도 율법을 지킨 사람들이 율법에 따라 가져온 것이기때문에 갈릴리 호수것을 원하는 것이다.

운반하는데 4일이 걸린다. 부패할수 있다. 그래서 가격이 비싼 것이다.

 

예수님의 천국의 비유에서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린다고 한다할때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시장에 팔것과 먹을 것을 구분한것처럼 보지만, 율법에 어긋나는 것과 율법에 합당한 것을 가리는 것이다.

 

갈릴리 호수는 18 물고기가 있는데 경제성 있는 물고기는 3가지이다.

베드로 물고기라는 베스처럼 생긴 물고기가 있고, 민물에서 자라는 정어리 종류가 있고, 잉어 종류가 있다.

 

정어리는 신약시대에도 젓을 담았다.

오늘날에도 정어리를 몇톤씩 잡히는데 젓을 담근다.

우리나라처럼 생선을 저리는데 샐러리를 만들때 사용한다.

오늘날 아침식사때 소금에 절인 생선을 먹는 습관이 있다.

 

이스라엘 지역의 생선은 비싼 이유가 바다가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율법에 따라 합당하게 만든 갈릴리 사람의 생선을 기다리기때문에 비싼 것이다.

 

막달라 근처에서 물고기를 가공했다.

소금을 치거나, 훈제로 만든 것이 전해진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자기 수제자 베드로가 벳세다 출신임에도 자기 장모집 가버나움쪽에 옮겼다.

 

이유가 벳세다보다는 가버나움이 크기도 하지만, 실제적으로 어부에게 생업이 달린 일이기때문이다.

벳세다는 갈릴리 동쪽에 있는 헤롯 빌립의 왕국의 도시이고, 가버나움은 갈릴리 왕국이다.

벳세다 사람이 고기를 잡아서 갈릴리의 막달라 공장에 가져가는 것이다.

나라에서 나라로 움직이면 국경을 이동하기 때문에 세금을 내야한다.

관세가 붙는다.

어쩔수 없이 효율적으로 생선을 가공하기 위해 어업의 중심지를 가버나움으로 옮긴것이다.

세금을 줄였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어업을 하고 있다.

그물을 이용해 잡는다.

베드로 물고기가 유명한데 뼈가 두껍고 베스라 불리우는 민물고기이다.

성지순례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다.

 

고린도의 이스트니아 축제

 

사도바울이 3차례에 거쳐 섬지역과 소아시아, 그리스 본토,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에 가면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고린도라는 곳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반씩이나 머물렀는가?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 남부의 최대의 도시이다.

오늘날 발굴한 유적지는 크지 않다.

 

오늘날 신고린도라고 해서 고린도 마을이 있고, 근처에 고린도 유적을 발굴했는데, 신전도 있고, 사도바울이 설교를 연단터도 있다.

발굴된 유적은 원래 고린도 왕국의 1/100 안된다.

 

아크로 폴리스라 불리우는 500m지역의 돌산이 있다.

아크로 폴리스는 그리스 도시들이 마지막으로 방어할수 있는 요새이다.

 

그리스 시대의 도시중 아크로 폴리스가 높은 곳에 있는 곳이 고린도이다.

서너겹으로 성벽이 쌓여져있고, 100년전까지는 군사적 요새로 사용될 정도로 군사적 요충지이다.

 

바다쪽으로 항구를 지닌 도시다.

항구까지도 도시가 포함한다.

 

성벽이 항구에서 고린도 중심을 지나서 뒷쪽에 아크로 폴리스 바위산까지 성벽이 이어져있다.

사도바울이 상업의 중심지,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에 오래 있었는가?

 

바로 생업인 텐트 메이킹 비즈니스때문이라는 해석이 제기되었다.

사도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사람이다.

 

천막을 만드는 것은 어떤 일인가?

천막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사용할수 있는 장소도 되지만, 천막이 가장 필요한 것은 축제나 운동경기였다.

 

반도에는 올림피아라는 도시가 있었고 4년에 한번씩 축제가 있었다.

그곳에는 제우스 신을 위한 축제인데, 축제 순서중에 남자들의 축제경기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남자들만 있었다.

이유가 원래 그리스식 로마식 도시에는 김나지움이라는 스포츠 센터가 있었고, 남자들의 사교클럽이 있었다.

 

그곳에는 남자들이 옷을 벗고 올리브 기름을 바르고 레슬링이라든지 격투기, 육상, 신체 단련하는 일종의 스포츠 센터이다.

옆에 목욕탕이 있다.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이 아니라, 그곳에는 탈의실이 있고, 다음방에는 맛사지실, 온탕이 있다. 자체가 따뜻하다.

옆에는 냉탕이 있다.

 

마지막으로 열탕이 있다.

이러한 로마 사람들이 김나지움 스포츠 클럽의 목욕탕에서 활동한다.

 

2년이나 4년마다 신들에 대한 축제를 하면서 운동경기가 열리는 것이 올림픽 경기의 출발이다.

서기전 776년부터 천년이상 지속된 것이다.

 

올림픽경기가 폐쇄된 것은 390년에 테오도시우스 비잔틴 로마의 황제가 로마네의 이교도적인 경기를 금지시켰다.

단순히 운동경기가 아니라, 제우스 신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하는 이교도적인 축제의식이어서 폐지시킨 것이다.

 

고린도에는 올림픽 경기에 필적하는 경기가 있었다.

이스트니아 지역에는 포세이돈과 소년신 팔리이몬에게 받치는 헌정축제이다.

 

서기1세기에 디오크리소스톰의 기록에 의해 이스트니아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세히 알수 있다.

축제가 시작되면 포세이돈 신전에 소피스트 철학자들이 모이고 시를 낭송하며 자신의 지식을 과시했다.

 

마술사들과 점쟁이들은 신기한 요술로 손님을 끌어모았고, 장사꾼들이 온갖 물건을 팔았다.

돼지기름을 바른 선수들이 있었고 경기의 우승자에게는 샐러리로 만든 면류관이 주어졌다.

 

이것이 이스트니아 경기를 보고 경기이다.

육상경기로 달리기, 높이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격투기 경기로 권투와 레슬링이 있었다.

 

2년에 한번 열리는 이스트니아 축제는 바울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바울은 천막업자이다.

 

근처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온다.

경기는 일주일 정도 되지만, 앞뒤로 2-3개월씩 몰려들어 준비를 하고 장터가 서고 여러 행사가 된다.

 

자연히 수백개의 천막이 필요하다.

바울은 이곳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굴라와 같이 지내는데 둘다 천막을 만드는 사람이다.

 

이곳에 바울이 많이 보낸 것은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오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천막을 만드는 일은 고된 일이다.

 

로마식 경기장에 반원으로 된경기장이나, 원형 경기장에 천막을 친다.

밧줄로 연결해서 밧줄 사이사이에 천막을 친다.

 

천막은 수요가 많은 좋은 직업이다.

서기 50-51 고린도에 있었다면 50년에 있었던 이스트니아 경기를 관전했을 것이다.

디모데 후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고백문이 육상경기가 끝나고 나서 경기의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관경을 연상한 것으로 보인다.

 

사역)

 

나는 운동경기를 참여하여 정당하게 경쟁했고, 이제 달리기를 끝냈다.

나는 경기의 서약을 준수했다.

 

이제 남은 것은 나를 위해 준비된 의의 면류관이며, 경기의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수여할 것입니다.

자신을 우승한 경기의 운동선수로 비유했다.

 

이스트니아 경기를 자신과 비교했다.

샐러리로 만들었는데, 대부분의 관이 시들어 있었다.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어서 시들은 것을 준다.

그래서 썩지않는 면류관을 준다고 주님께서 바울은 이야기한다.

 

1년반이나 머물렀던 이스트니아 경기에서 받은 감동을 회고한 것으로 보인다.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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