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

 

글 / 박형용 박사

 

 

그리스도의 身分

Ⅰ. 槪觀과 先在

1. 그리스도 身分의 敎理槪觀


1) 그리스도의 품위와 사역의 관계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에 있어서 그의 품위와 그의 사역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로서의 사역에 그 자신을 나타내시는 때문에 그의 사역과 그의 감화의 최소한 추상적 관념들이라도 즉시 그의 사역의 참된 본질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품위의 격리된 고찰은 불가능하고 불합법함은 그가 그의 사역과의 연락에서만 충분한 알려기시기 때문이다.

2. 역사상의 그리스도의 신분의 교리

1) 17세기 루터파에서 開始. 그리스도의 신분의 관념은 이미 근본과 원리로 사도신경에 있고 고대 교회의 신앙과 전도의 실행에 있었다. 이 관념의 자취가 어떤 고대 교부들에게서와 개혁자들의 저서들 중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것이 교리로서 정식적인 논의를 받는 일은 실로 17세기에 루터파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교리는 오래지 않아서 개혁파 신학자들에게 다른 중요한 신경적 차이들에 불구하고 수납되었다. 이 두파는 신분의 진정한 [主體]에 관하여 의견을 달리하였으니 루터파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개혁파는 그의 位를 身分의 主體로 보았다. 전자의 입장은 그들의 특성에 투입하고 감염한 신적 속성들의 사용을 자제함으로, 그의 승귀는 그 신적 속성들을 공연사용함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후자의 견지에서 그리스도의 卑下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永遠聖子가 자기를 비어 人性을 입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실현되었고 그의 昇貴는 그의 新人的 位가 律法 아래서 벗어나 하나님의 총애에 들어가서 尊貴와 榮光을 얻으심으로 된 것이다.

2) 근대신학에서 소실. 前세기에 슐라이어막허의 예리한 비평이 있은 이후로 중보의 신분의 교리는 포기를 당하여 근대신학에서 점차 소실되었다.

3. 聖經에 의한 그리스도의 신분

비하와 승귀의 구별은 그리스도의 행적이 수난을 통하여 영광에 달한 역사적 진행에 관한 성경의 증언을 정당히 인정함을 의미한다. 두신분의 교리는 지금 그리스도의 행적을 두개의 판연한 국면들과 기간들로 나누려는 계획적 시도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니라, 이 구별에 우리의 주의를 재촉하는 명백한 성경 교훈에 따른 것이라 함이다. 빌립보 2장에 있는 바울의 진술은 신분교리의 성경적 기초로서 比類 적게 솔직하고 명확하나 유일기초는 아닌 것이다. 비하를 통하여 승귀에 달한 그리스도의 행적의 진행은 이 성구에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수난을 통하여 영광에 이르는 것을 구원의 길로 전도하는 사도적 사신의 항상 반복되는 주제다(행 2:36, 2:22 - 24, 32, 36, 4:10, 28, 17:3, 26:23).

4. 身分의 關係

1)인과관계의 강조
빌립보서에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사이에 [이러므로]가 연락을 지은 것은(2:8,9) 전자와 후자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강조함이다. 사 53:11,12 눅 24:26

2) 십자가와 부활의 관계
그리스도의 비하의 극치는 그의 십자가에 죽으심이요 승귀에 첫 계단은 그의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이었다. 그는 신분의 성경적 묘사는 그 두 사건의 인과관계에 표시한다.

3) 관계의 성질 모든 시대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의 관계의 성질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5. 身分의 性質

[신분]이란 [상태(condition)]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설명됨에 신분이란 사람의 생애서의 처지혹은 지위, 특수적으로 법률에 대한 재판적 관계를 의미하고 상태란 사람의 존재의 양상, 특별히 생의 사정들에 의하여 결정되는 양상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成肉身하시어 땅 위에서 통과하신 모든 고난은 그가 비하한 처지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니 그의 그 신분에 속한 상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것은 그가 승귀한 처지에서 응당 누리실 특권이니 그의 그 신분에 속하는 상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6. 身分의 數

세 身分 영원한 신적 실유의 선재적 신분, 시간적 인적 존재의 지상신분, 승귀 영화한 신인적 位의 천상신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신인으로서의 중보에관하여 오직 그의 비하와 승귀만을 말할수 있은즉 두 신분을 논함이 최선일 것이다.


Ⅱ. 그리스도의 先在

1.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영원한 과거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그 때는 [창세 전이었다(요17:5). 그를 [말씀]이라 칭한 것은 어떤 이가 말한 바와 같은 [말씀은 현현의 매개, 전달의 방편, 계시의 방법이기]때문이다.

2. 創造의 參與

요한은 선언하되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요1:3,10), 바울은 말하되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8: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골1:16 창1:26)라고 하였다.

3. 舊約啓示에 活動

구약 역사에 [여호와의 사자]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천사는 여호와와 동일시 되기도 하고 그로부터 구별되기도하여 三位의 제 2위의 출현으로 인정되어 온다(창 16:7-13, 18:1-21, 19:1-28, 말 3:1).

4. 聖經的 證明

그리스도의 선재의 성경적 증명으로는 그가 세계있기 전에 성부와 함께 계셨다는 것, 영화와 부요를 소유하셨다는 것을 직접 선언하는 구절들과, 그가 세계의 창조에 참여하셨다고 말하는 구절들과, 그가 세상에 오셨다. 하늘에서 내려 오셨다고 선언하는 구절들이 있다. 요 3:13, 31, 13:3, 16:28, 고전 15:47.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

5. 異議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선재의 부정이 그의 신성에 대한 이의와 동행한다는 것은 놀랠만한 일이 아니다. 두 가지는 동일한 부정의 국면들이다. 반면에 성경에서는 둘이 적극적으로 긍정되고 연락되어 있어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이심을 믿는 신념에 그의 선재의 신념이 반드시 따른다.


Ⅲ. 卑下의 身分

개혁파 신학자들은 빌 2:7,8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비하에 두 요소를 구별하나니 즉 [게노시스(exinanitio)]는 그가 우주의 대주재의 신적 위엄을 둘러 놓으시고 종의 형체로 인성을 취하신 것이요, [타페이노시스(humiliatio)]는 그가 율법의 요구와 저주에 굴복하여 그 전생애에서 순종의 행위를 하시고 수치스러운 사망의 한도에까지 수난하신 것이다.

1. 成肉身과 천한 地位

1) 성육신의 중요성.
(1) 구속사의 중심.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은 모든 역사위에 가장 크게 기발한 사실이며 [경건의 비밀]이다. 이것은 구속역사의 중심이다.
(2) 모든 교리와 밀접. 성육신의 진리는 신앙 전체계의 모든 교리에 본질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3) 성경의 명확한 증언.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라]고 선언함에서 성육신 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요일

     4:2,3) 사 7:14, 9:6, 렘 23:6, 미 5:2.

2) 成肉身의 動機
툼츠의 루펄트(Rupert of Deutz)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와 관계없이 성육신 되었으리라고 명백히 또는 적극적으로 단언한 최초 사람이었다. 그의 견해는 해일스 사람 알렉산더와 떤스, 스코터스가 참여하였으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육신의 이유는 죄가 세상에 들어온 데 있다고 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입장에 참여하였고 종교개혁의 교회들은 성육신은 사람의 타락 때문에 필요하였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소시너스, 오시앤덜, 로데, 또르너, 랭게, 밴 오스털제, 말텐센, 에쁘라드, 웨스트칼 같은 어떤 루터파와 개혁파 학자들은 반대의 의견을 품었다.

3) 成肉身의 必然性
(1) 죄를 떠난 필요성- ① 홍대한 사실. 성육신 같은 홍대한 사실은 우발적이기 불능하니 사람의 불의적 전횡적 행동인 죄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없다. ②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의 영원한 계획. 종교는 타락 이전에나 이후에나 본질적으로 서로 다를 수 없다. 만일 중보가 지금 필요하다면 타락 이전에도 필요하였을 것이다. ③ 그리스도의 우주적 의미. 그리스도의 사역은 속죄가 그의 구원 공작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는 중보이시나 또한 머리이시며 만물의 [알케]일 뿐 아니라 또한 [텔로스]이시다(고전 15:45-47, 엡1:10, 21-23, 5:31,32, 골 1:15-17). 그리스도의 우주적 의의란 것은 [세계 완성의 관념], [인류는 하나님으로더불어 연합되리라는 것](말텐센). [본래 사람은 하나님과 같아 지기로 예정되었다는것](밴 오스털제)을 뜻하여 죄없는 성육신에 지향한다. ④ 신경을 떠난 철학적 이사상. [죄없는 성육신]의 관념은 교회의 고대 신앙고백으로부터 멀리 떠난 어떤 신학적 철학적 연락들에서 자주 발견된다.

(2) 죄로 인한 필요성 - ① 성경의 제시- 성경에서 성육신은 유독 사람의 죄를 조건으로 하였다는 것이변통없이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눅19:10 요3:16 갈4:4 빌2:5-11 ②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의 신적 계획이있고 그 계획은 처음부터 죄와 성육신을 아울러 포함하였다. ③ 우주적 의의와의 관계- 성경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는 일보다 앞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음이 지적되었다(엡1:7,10).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는]일과 함께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는 사실이 거론되었다(엡1:22).

4) 成肉身에 救贖

(1) 하나되는 것이 구속?- 성육신에서 신성이 인성을 들어올리어 자체와 연합하며 교통하게 하였다.

(2) 이해하기 어렵다 - 만일 예수께서 인성을 취하여 입으시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표현하신 것 뿐이라면 우리가 어찌 능히 하나님과의 교제에 들어가서 그와 화목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3) 성경은 다른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 되시어 모든 일에우리와 같으시되 죄는 없으시고 종의 형상을 취하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게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7:8 그는 그의 의를 성취하셨고(마3:15)수난에 의하여자신을 성화하셨다(히2:10).

5) 成肉身의 主體
(1) 삼위의 제 이위- 말씀(로고스)이 육신되셨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성육신에서 삼위의 각위가 다 동작하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곧 성부께서는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롬8:3)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하신 것]이다(갈4:4). 성자께서는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2:7)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요1:14). 성령께서는 성모에게 [임하시어](눅1:35)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었다(마1:20). 이것은 또한 성육신은 로고스에게 우발한 무엇이 아니라 그가 능동적으로 수행하신 일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선재의 로고스- 선재하시던 신적 로고스가 인성을 취하시어 그 자신의 살과 피를 가지심은 우리의 유일한 이해를 초월하는 이적이다.

(3) 비초월적인 하나님의 아들- 성육신은 하나님이 능히 또는 현실적으로 피조물과 관계를 가지시는 이요 초연신론자들의 흠석신이 아니시라는 것을 예상한다.

6) 生起한 變動
그 변동은 그가 그의 본체적 실유에 인성을 취해 입으신 사실에 있을 뿐이다.

7) 人類의 일원화
성육신은 그리스도를 인류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8) 처녀성탄
(1) 현금의 부정적 경향. 성육신은 처녀성탄에 의하여 수행되었다. 현금에이것을 부정하려는 경향은 성경적 증거의 부족이나 교회적 재가의 흠결로 인한 것이 아니라 초자연에 대한 유행적 반동의 소치다.

(2) 성경의 증언. 처녀성탄의 기록은 제일 복음과 제삼 복음에서 발견된다. 마태의 보도(마1:18-25)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누가의 보도(눅1:26-38 2:1-7)는 마리아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3) 성령의 이중역사. 성령이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된 일의 동력인 이었고 사람의 동력적 요인은 제외되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그 시초에서부터 성화하시어 죄의 오염을 면케 하셨다.

(4) 교리적 중요성.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탄생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의 요건이며 제 2아담의 나타나심에 예기 되는 일이며 그의 무죄성의 이적과 확보에 적합하였다.

9) 成肉身의 卑下性
성육신의 자체가 비하의 일부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연약한 인성을 취해 입으신 것은 확실히 비하의 행위였다.

(1) 루터파의 이견해의 부당. 루터파는 성육신과 허기를 구별하면서 그리스도의 비하는 그의 지상존재에 국한되었고 그의 인성은 천상에서 계속된다는 이유로 성육신자체가 비하의 일부라는 단언에 반대한다. 로고스가 [육신]을 즉 타락한 후에 약화하고 수난과 사망에 굴복하는 그 인성을 취해 입으심은 확실히 비하였다.

(2) 신인 동등관의 무리. 이 가설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은 인류의 정악과 구속에 대한관계는 우연적일 뿐이라 한다. 죄가 도무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도 성육신은 의례히 도달되었으리라 한다. 이것은 전연성경 이외에 있는 철학적 이론 뿐이어서 기독론에 정당히 영향을 가지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10) 지상 심리상태
(1) 유년기의 발전. 성경기록은 예수의 영아기, 유년기, 청년기 모든 점에서 인생발전의 정상적 진정을 밟은 것을 제시한다.(눅2:40)
(2) 장년기의 심리. 이상히 여기셨고(마 6:6) 기이히 여기셨을 뿐 아니라(마 8:10)
(3) 역사적 유추. 성육신의 부분적 유추를 공급하는 사실 들이 역사에 있다.

11) 성육신의 합리성
역사적 기독교는 성육신을 신비로 인식하고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자가모순의 교리로 보지 아니하였다. 성경적 보도들은 도무지 성육신을 모순되거나 역리적인 것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자종 예수님의 답변은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하시어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은 참된 사실이요, 모순이나 역리가 아니라는 것을 표시하셨다(요 10:30-39).

바울의 해명- 빌립보 2장 성육신의 합리성, 히브리서의 해명 - 히2:9-18

12) 천한 지위
로고스의 인성을 취할 입으심에는 [종의 형체를 가져] 천한 지위에 처하는 일이중요한 특성으로 따랐다. 종의 형체를 가지는 것에 명령에 응하여 순종을 행할 굴복자의 신분을 가짐이다.

2. 수법, 수난, 사망, 장사, 지옥

1) 율법에 복종
그리스도의 비하의 둘째 계단의 율법에 복종이었다

(1) 율법 아래나심-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갈4:4), 그의 성부의 정명과 그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율법에 복종하시어 그것을 전부 또는 완전히 지키시고 전 인류의 범법한 형벌을 충분히 받기로 되신 것이었다.

(2) 복종하신 율법- 그리스도께서 복종하신 율법은 아담에게 행위언약으로 주어진 율법이니 완전한 순종을 생명의 조건으로 규정한 것이었다. 택한 백성을 속박한 모세의 율법이니 구체적으로 제정되고 공포되어 도덕적, 의식적, 국가적 율법들을 포함하였다. 의무의 규칙으로서의 도덕적 율법이니 사람의 본성의 소질에 신적 의지의 표현으로 계시되었고 보다 더 충분히 또는 명백히 하나님의 성문말씀에서 계시되었다.

(3) 자원적 복종-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복종의 배경에는 성부의 정명이 있었다. 그러나 영원한 구속언약에서 정해진 구원의 계획이 성부와 성자사이의 협정이었으니 성육신과 그것에 포함되고 뒤따르는 모든 일이 성자의 자유동작을 제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율법에 복종이 자원적이었음은 그의 성육신이 자원적 행위였고 따라서 그것의 모든 결과가 그의 자유의지의소산이었다는 의미에서였다.

(4) 대리적 복종- 그는 우리의 대신이었고 우리의 이익을 위하시었다. 그가 율법 아래 있는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함이었다(갈 4:4,5).

2) 수난과 하나님의 진노
그리스도의 비하의 세째 수난과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심이었다.

(1) 전 생애의 수난- 구주는 그의 전생애에 수난 하셨다. ① 장기의 수난. 그의 전 생애가 수난의 생애였다 ② 말기의 수난. 그의 수난은 집중적 진보적 수난이어서 종말이 가까와 올 수록 그 가혹도가 점점 증가였다.

(2) 전인의 수난- 그리스도는 신체와 영혼을 포함하는 전인으로 수난하셨다.

(3) 독특한 수난- ① 통상수난의 다수와 가열. 그의 수난은 가장 광대한 범위에 퍼지고 가장 다수한 종류를 포함한 수난이었다. 그 뿐 아니라 이런 통상한 수난들도 그의 경우에는 비류없는 가열성을 가지고 엄습하여 온고로 독늑하였다. ② 비상수난의 무비한 참혹. 하나님이 우리의 불의를 그리스도에게 돌리신 사실로 말미암은 그의 비상수난들은 무비하게 참혹하였다.

(4) 시험에 수난. 그리스도께서 수난의 도중에서 만나신 시험들은 그의 수난의 중요 부분이었다 [마 4:1-11 (또 그 병행구절들), 눅 22:28 요 12:27, 히 4:15 5:7,8]

(5) 신적 계획과 행동에 의한 수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수난하셔야 된다는 말로써 이 필연성을 표현한다. 그리스도의 전 수난에 신비한[반드시]가 있다. 그가 반드시 수난하셔야 한다는 것(눅 9:22, 17:2, 5, 24:7, 26 행 17:3, 마 16:21, 막 8:31, 요 3:14)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그리스도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할 것이었다(눅 24:44). 성경예언들과 수난의 [반드시]사이의 연락이 보여지는 때에 성경예언의 배후에 하나 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이 명백하여 진다.

(6)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심. 震怒라는 말은 罪에 대항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불유쾌를 표현하는 성경적 명사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거룩하시되 우리의 죄를 지시고 죄로 삼으신 바 되어 죄인의 대우를 삼으셨다(고후 5:21). 그는 사람의 판단에서만 아니라 하나님의 처우에도 범죄한 자로 헤아림을 입었다(사 53:10).

3) 救主의 死亡
(1) 그의 사망 사실- 복음서의 진실성을 믿는 신자로서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사망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없다.

(2) 그의 사망의 내포- 성경은 사망의 삼중구별을 가르치나니 즉 육체적 사망은 영혼과 신체의 분리요 영적 사망은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양심의 고통과 평화의 상실과 영의 슬픔을 결과함이요 영원적 사망은 하나님 자신과 함께 모든 생의 행복 및 희락의 철수를 당하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아래 놀라움이다. 이 가운데 제일과 제삼은 범죄에 대하여 재판적으로 부과된 형벌의 성질을 본격적으로 가지고 제이는 범죄의 자연적 결과로 오는 형벌의 의미를 특별히 내포한다.

(3) 그 육체적 사망의 성질- ① 법정적 신고. 구주께서는 법정적 선고의 보상을 요구하는 조건 아래 죽으셨다, ② 수육, 고통, 저주의 죽음. 그리스도가 목베이거나 돌로 맞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도 의미심장하였다. ③ 극한 수욕과 고통.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유대식 형벌이 아니라로마식으로서 극히 불명예스럽고 치욕적인 사형으로 간주되었다. 극한 저주. 그리스도의죽음은 또한 극히 저주된 죽음이어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신 사실을 증거하였다(갈 3:13, 신 21:23). ④ 성경예시의성취. 중보의 십자가 위에 죽음은 성경의 예시를 성취하기 위하여 필요하였다. 그의 죽음은 반드시 피흘리는 죽음이라야 될 것이며(히9:22) 뼈의 꺾이움이 없어야 될 것이며(요19:36) 매장이 따라야될 것이었다(사53:9).

4) 救主의 葬事
그리스도의 비하의 다섯째 또 마지막의 계단은 그의 장사였다.

(1) 장사의 비하성 ① 비하성의 이유 - 사람이 자기가 유래하였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죄의 형벌의 한 부분이다(창3:19) 예수께서 무덤 속에 계실때에 그의 영혼과 신체가 분리되어 있는 것은 전연 변태적 정상이요 죄의 결과다. 성경의 몇 구절은 구주의 무덤속에 계신일은 비하였다는 것을 명백히 함의한다(시 16:10, 행 2:27, 31, 13:34, 35). 매장은 내려가는 것임에서 일종의 비하니 시체들의 매장이 죄인들의 비하를 상징하기로 하나님이 정명하셨다. 구속의 객관적 사역의 계단들과 그리스도의 사역의 주관적 적용의 순서와의 사이에 일정한 동의가 있다. ② 권위자들의 동의- [그것에 의해 그가 참으로 죽으신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라 한다. 그의 죽음의 증명, 무덤 수치에로 깊은 비하, 우리의 무덤들의 성화라 하였다.

(2) 장사의 사실


(3) 참 죽으심과 썪지 않으심- 장사를 예수께서 참으로 죽으셨다는 증거로 볼 수 있음은 십자가 위에 죽음은 사형의 일종인고로 그 신체를 위해 내려 매장할 허가는 그가 참으로 죽었다는 것이 확인되기 전에는 결코 있을 수 있었던 때문이다(막 15:44, 요 19:33, 34).

(4) 승귀의 전비- 구주의 장사의 상세에 승귀의 전조가 나타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모든 힐난, 조소, 학대는 끝났다. 날이 저물어 대적은 헤어지고 사랑하는 자들만이 십자가 아래남아 있었다. 십자가와 그의 죽음에서 그리스도는 악인들과 동렬에 하여 그들과 같은 무덤에 들어갈 사세였으나 그의 실제적 장사에서는 예기 되지 아니했던 새 일이 생겼으니 곧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들어가심이었다.

5) 구주의 지옥에 내려가심
우리는 [지옥에 내려가심]을 구주의 비하의 한 계단으로 보지 않는다.

(1) 사도신경에 표현 - 이 교리는 서양교회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에 표현되었다. 서양교회의 사도신경은 주의 수난, 죽음, 장사를 진술한 다음에 [그가 지옥(hades)에 내려 가셨다]라는 말로 계속한다. 이 말들은 성경에 발견되지 않으며 이 신경의 다른 조항들 같이 성경의 직접 진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2) 이 표현의 성경적 기초 - 시 16:8-10 (행2:25-27,30,31 비교). 10절이 이 말씀은 단순히 하나님이 시인을 사망의 권세아래 내어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그의 신념을 표현한다. 엡4:9. 딤전3:16 벧전 3:18,19 벧전 4:6

(3) 이 신경적 표현의 다양해석 

① 고대신경에 의한 해석 :어떤 사람들은 [지옥]이란 말을 무덤의 의미로 취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 표현은 단순히 매장을 가리킬 뿐일 것이다. 교회전체 회의 신경들 가운데 니케야신경은 [장사되고]만을 말하고 아다나시어스신경은 [지옥에 내려가셨다]만을 말하는 고로 둘은 다 무덤에 내려감을 가리킨 줄로 볼 만도 하다.

 

② 로마교회의 해석: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 내려가신 곳은 지옥의 악한 영들의 처소가아니라, 구약성도들이 그의 구속의 계시와 적용을 고대하고 있는 림보지옥이니 그는 곳으로 가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그들을 이끌어내어 천당을 들여 보내셨다고 한다. 아담 타락 후에 봉쇄되어 있던 천당문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다시 열렸고 림보지옥에 내려가셔 구약성도들을 천당영광계에 인도하여 울리셨다고 한다.

 

③ 루터파의 해석: 루터파는 지옥에 내려가심을 그리스도의 승귀의 제일 계단으로 본다.

 

④ 영국 교회의 해석: 영국 교회는 주장하되 그리스도의 신체가 무덤에 있는 동안에 그의 영혼은 음부에, 더욱 특별히 의로운 영혼들의 주소인 낙원에 가서 그들에게 진리의 보다 더 충분한 강해를 하셨다고 한다.

 

⑤ 개혁파의 해석. 칼빈은 이 어구를 비유로 보아,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지옥고와 같은 고초를 가리킨다고 해석하였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44는 이와 유사한 진술을 가진다.

통상적 개혁파입장에 의하면 이 어구는 십자가 위의 수난만 아니라 또한 특수하게 겟세마네의 고민에 언급하는 것이라 한다(뻘콮).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27)에 [사망의 권세 아래 얼마 동안 거하심]이라 한 것과 그 신도게요서에 [죽은 자의 상태중에 계속하셨다]한 것이 고대신경의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의미한 바를 표현하기로 의도 되었다고 하지씨 부자는 인정하였다. [지옥에 내려 가심]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상태의 가장 깊은 비하에 들어가 그 권세 아래 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Ⅳ. 昇貴의 身分

1. 승귀의 주체와 성질

1) 루터파 견해. 루터파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그의 비하의 주체로 봄과 같이 또한 그의 승귀의 주체로 본다. 그리고 그들은 비하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인격적 연합에서 얻은 신적위엄의 완전한 행사를 한 때 포기하고 하나의 미천한 사람으로서 신적 위엄 이하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인내하신 것으로 구성된다하고 성육신은 비하에서 제외한다. 따라서 승귀는 인성이, 일찍 성육신에서 전달되었으되 오직 이따금 혹은 비밀히만 사용되던 신적 속성들의 완전한 행사를얻은 것으로 구성된다고 주장된다.

2) 개혁파 견해. 개혁파 신학은 중보의 품위 곧 神人을 승귀의 주체로 보는 동시에 특별히 인성에 승귀가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신인 예수 그리스도는 언약론적 형벌적 방면의 율법 아래서 벗어나시고 따라서 행위언약의 조건으로서의 율법의 무거운 짐 아래서 또는 율법의 저주 아래서 떠나셨으며, 율법에 대한 형벌적 관계로써 그것에 대한 의적 관계로 교환하시고 중보로서 죄인들을 위하여 공을 세워 얻으신 구원의 행복들을 소유하시며, 적응하는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쓰셨다. 죄의 저주가 제거된 그의 상태에서도 그의 승귀가 나타났다.

2. 승귀의 양면적 증명

1)성경적 증명. 빌2:9-11 (2) 합리적 증명 빌2:9-11 비하와 승귀의 일과 관계를 보여준다. 두 신분 사이에는 밀접한 연락이 있어 승귀는 비하의 재판적 결과다. 눅24:2 (3) 현대자유신학에 승귀의신분.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에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승귀의 신분이 알려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법적 신분의 관념이 전연 무시되고 그의 생애에 모든 초자연적 요소들인 다 제외된다. (4) 사계단과 삼중의의. 개혁파 신학은 그리스도의 승귀에 4계단을 구별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8) 은 말하되 [그리스도의 높아지신 것은 삼일만에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으시고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신 것과 및 마지막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일이다.

전기계단들의 각자는 그리스도가 율법의 요구에 응수하시고 따라서 그의 상을 받기에 적당하셨다는 하나님의 실질적 선언이었다. 그 첫 두계단은 또한 모법적 의의를 가졌으니 그것들은 신자들의 생활에 실현될 바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종으로, 4계단이 모두 신자들의 완전한 영화에 기구적이다. 즉 그리스도의 승귀에 4계단이 있은 결과로 신자들의 완전한 영화가 있을 것이다.


1. 그리스도의 復活

1) 부활의 사실
(1) 구약의 예언 시 16:10 행 2:24-31, 13:35
(2) 그리스도 자신의 예언 마 16:21 20:19 요 10:18 막 8:32
(3) 열한 사도의 증언 행 1:3 행 1:8
(4) 바울의 증언 고전 15:8 갈 1:12 행 9:3-8 9,22,26 갈 1:17,18
(5)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셨음 마 28:1,9 눅 24:13 야고보 (주의 동생 갈 1:19) 고전 15:6,7 눅 24:17 마 26:32 28:7,10
(6) 오순절에 증언 행 2:32
(7) 안식일의 변경 안식일이 주간의 제 7일에서 제 1일로 변경된 것은 사도들과 그들의 지도 아래 있는 제 1세기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믿은

     사실에 향한 합동적 증거의 기념비다.
(8) 이적과 권능. 사도들이 행한 이적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한 그들의 증언에 하나님의 날인이었다(히2:4)

2) 부활의 성질
(1)신체적 변화 고전 15:42-44
(2)정신적 변화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는 정신적 변화도 있었다.
(3) 삼중의의

  ① 선언. 죽음을 이기시고 죄를 속하시며 율법을 이기시고 죄를 속하시며 율법을 지키시는 사역이 완성되었다는 것이 포고되었다.

  ② 상징. 신비적 신체의 지체들의 칭의, 영적출생, 장래 부활에 생길 바를 상징

  ③ 기구. 칭의, 중생, 최종부활과 기구적으로 관련됨

3) 부활에 동작자
(1) 성부 시 2편 16편 롬 6:4
(2) 성자 요 11:25 요 10:17,18 요 2:19-21
(3) 성령 롬 8:11
(4) 신적 권능

4) 부활교리의 이의
(1) 사체의 미분자의 해산. 육체부활에 대한 큰 이의는 사후에 신체의 미분자들이 해산되어 동, 식, 인물 불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체와 본래의 신체와의 동일성이 꼭 동일분자들로 구성됨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신체의 구성분은 끊임없이 개변되나 그 동일성은 보존되는 것이다.

(2) 초자연성. 그리스도의 부활은 초자연성을 가진 큰 이적이므로 자유사상의 강한 반항을 받고 있다. 부활은 이적이므로 과학적 증명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바울은 부활논증을 전혀 하나님의 의지와 권능에 귀결시켰다(고전 15:37, 38-42).

5) 부활이 사실을 다르게 설명하여 버티려는 시도
(1) 빈 무덤에 관하여 - ① 기절설 ② 도적해 갔다는 설과 옮겨갔다는 설 ③ 다른 무덤설과 빈 굴설
(2) 주의 나타나심에 관하여- ① 환상설 ② 착각설(Optical Illusion Theory 과 환각설(Hallucination Theory) ③ 강령설(Spiritualistic Theory).
(3) 일반적 반대설- ① 사기설 ② 신화설

6) 주 부활의 교리적 중요성
(1)성경의 권위에 관계. 성경 저자들은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사실로 제시하였으니 그들의 진실성을 의문함 없이는 그 부활을 부인하지 못한다.

(2) 증거적 가치. 그리스도의 부활은 중요한 증거적 가치를 가진 줄로 성경에서 제시되었다.

  ① 그리스도의 품위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생이었다는 것과 (요나의 표적 마 12:39) 하나님의 아들이시었다는 것(롬1:4)의 최고 증명이었

      다.

  ② 부활, 영생의 신념에 관하여 신자의 부활의 전제며 신자의 영육을 겸비한 영생을 확증하는 것이다(요14:19 벧전 1:3-5 고전 15:12, 13 54:57)

(3) 구속사역의 구성분 

  ① 속죄 사업의 수행에 필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속죄사업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

  ② 구속의 본질에 광명.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의 본질을 밝히 가르쳐주는 큰 광명이다.

7)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
(1) 마음의 고안인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이 도무지 예기하지 아니하였고 많은 의심을 품은 후에 확신을 얻어 세계에 증거하기를 시작한 것이니 그들의 마음의 고안과는 전연 반대되는 사건이었다.

(2) 빈무덤 없이 살아계신 주의 관념이 가능한가? 그리스도의 부활은 큰 구원론적 사실로서 빈무덤과 나눌 수 없이 연락되어 있어 그것 없이는 생각될 수 없다.

(3) 물질주의 인가? 복음서 자체들은 부활하신 주의 그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에서, 도마에게 상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심에서 육체의 의의를 우리에게 전시한다.

(4) 십자가와 같은 하나님의사랑의 표적인가? 육체부활은 죄의 권세를 깨치기 위한 특수한 의의를 가진 사건이다. 교회의 신앙고백의 배경인 사도적 전도에 십자가와 부활은 나눌 수없이 연결되었다.

2. 그리스도의 승천

사도신경에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다음에 [하늘에 오르사]라고 진술되어 승천이 그리스도의 승귀의 제 2계단임을 명시한다.

1) 승천의 성경적 증언
(1) 충족한 증언 눅 24:50- 53 행 1:6-11 베드로는 연속하는 몇 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행2:32), 높아지심(33), 성령 부어주심(33) 을 요약하면서 승천을 특별히 강조하였

     다(34)

(2) 승천의 광경. 그리스도는 부활하신지 40일 후에 베다니촌 가까운 감람산의 한 부분에서 열한 사도들과 기타 제자들에게 축복하시다가 그들의 눈 앞에서 도는 그들의

     주목하여 보는 중에 승천하셨다.

2) 승천의 성질
(1) 여러 방면의 성격을 가진 과도. 승천은 신인 그리스도께서 부활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을 끝내시고 유형한 임재에 관한 한 그들을 떠나 다른 세계로 옮겨 가셔서 거기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시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행3:21)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 신인 전위의 과도였으니 하나님 아들이 인성을 입어 참 신체와 지각있는 영혼을 가지신 자 전위의 올라가심이었다. 진정이요 문자적이었으니 [하늘로 올리우신]것이며(행1:11) [위로 올라가신 ]것이다. (엡4:8) 유형적이었으니 제자들의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천사들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고 물었다(행1:9,10) 경영적이었으니 이것은 한 곳 (땅)으로부터 다른 곳(하늘)에 옮겨간 경역적 과도였다. 주 자신이 이것을 가리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고 말씀하셨다 (요16:28). 이것은 물론 하늘도 땅과 같이 처소라는 것을 함의한다. 그러나 예수의 승천은 다만 한 처소로부터 다른 처소에의 과도만이 아니라 도한 그의 인성에 또 한 층의 변화를 포함하였다. 천당이 우주의 어느 부분인지는 계시되지 아니하였다.

(2) 이견해와 증명 - (1) 과학적 이견해 앞에 증명. 피조실유들의 거처. 하늘과 당의 병렬. 성경에서 하늘과 땅은 반복적으로 병렬배치되니 그 하나(땅)가 첫면 다른 하나(하늘)도 처소이리라 추측된다. 천당과 지옥의 방향. 성경은 천당을 처소로 생각할 것을 가르친다. 승천의 묘사. 예수의 승천이 올라가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2) 성경석의적 이견해 앞에 증명 - 승천에 대한 바울의 신념 엡4:10. 올리워 가셨음. 그리스도의 승천을 판이한 역사적 사건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경이 그의 더나가심을 말한 것에 있다.

3) 루터파의 승천관
(1) 땅 위에 남아 있음- 루터파의 승천관은 경역적 과도로 보지 않고 상태의 변화로 인정한다.

2) 하나님 우편과 편재-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기 시작하셨다는 관념에 관하여 그들은 이우편(권세의 상징 뿐인것)은 도처에 있다고 주장한다.

4) 승천의 교리적 의의
(1) 하늘의 본향-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오셨으니 하늘은 그의 본향이다.
(2) 구속사역의 인정- 중보로서 구속의 큰 사역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는 하늘 보좌에 접근하시어 그 사역에 성부의 열납하는 인정을 받으심이 의의있는 일이었다.
(3) 왕국의 참 성질의 실증- 승천은 또한 중보의 왕국은 유대인의 왕국이 아니라 보편적 왕국이라는 사실의 실증이었다.
(4) 대제사장직의 수행-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는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후에 천계에 올라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심이 필요하였다.
(5) 구속의 실시- 그리스도가 떠나가시는 것은 유익하였으니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

     고 그 자신이 말씀하셨다(요16;7). 구속은 조성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실시됨이 필요하였다.
(6) 신도의 승천과 영장권 회복의 예조- 주의 승천은 그의 백성의 장래에 있을 유사한 영복의 예조요, 예증이었다.
(7) 거처의준비- 승천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의 거소를 준비함에 기구적이었다.

3. 하나님 우편에 임재

그리스도의 승귀에 셋째 계단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일이니 신학상 재위라 칭하는 것이다. 그 계단의 첫째는 부활이요, 제 2단계가 승천이고, 제 3단계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일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승귀의 마지막 계단은 그의 有形하게 돌아오심이다. 昇貴의 제 3단계, 즉 하나님 우편에 在位하심을 神學上 在位(session)라 칭한다.

1) 在位의 根據와 意味
(1) 聖經的 論據

  ① 예수님의 예언 (마 26:64- ).

  ② 베드로 사도의 증언 (행 2:35, 5:31, 벧전 3:22).

  ③ 바울 사도의 증언 (엡 1:20).

  ④ 사도 요한의 증언 (계 22:1).

(2) 昇天과의 구별과 意味
그리스도의 昇天(Ascensio)과 在位(Sessio) 사이에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승천과 재위가 같은 사건의 두 局面같이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히 1:3에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을 말한 다음에 승천을 말함없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심을 말한 것은 승천과 재위를 동일시함이라고 여길 수도 있으나 베드로는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라고 말하여 (벧전 3:22), 승천과 재위를 구별하였다.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은 모두 이 둘을 서로 다른 사건들로 구별하여 말하였다. 빠빙크나 카이퍼도 두 사이에 현저한 구별이 있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우편]이라는 표현은 神人同形主義的이어서 문자적으로 이해될 것이 아니다. 이 관련에서 사용된 이 표현의 문자적인 배경은 시 110:1이다. 왕자의 우편에 앉는 것은 단순히 敬待의 표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으나(왕상2:19) 또한 정치에 참여함과 따라서 존귀와 영광을 표시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은 그가 교회와 우주의 통치권을 받으시고 그것에 該當하는 榮光에 참여하시는 사실의 상징적 지시임에 틀림없었다. 그리스도는 본래 시온의 王이시었으나 그가 지금은 神人으로서 公的으로 卽位하시어 敎會와 天地의 政權을 받아 實際的 行政에 엄숙히 착수하신 것이다. 칼빈도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고 하는 진술은 그는 하늘과 땅의 통치자로 임명되시고 그에게 위임된 통치권을 정식으로 허락받으시되 그가 심판하러 오시기까지 계속하기로 되신 것"이라고 하였다. 성경이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말한 사실로부터 부활하신 주께서 취하신 사실은 안식의 생활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그 생활은 실로 끊임없는 활동의 생활이다. 이에 대한 성경의 진술은 여러 모양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제시되었을 뿐 아니라 단순히 그의 우편에 계신다고도 표시되었고 (롬8:34, 벧전3:22), 혹은 거기서 계신다고도 묘사되었으며 (행7:56),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신다고까지 말하였다(계2:12,2:1). 또 그리스도의 군왕적 위엄과 정치에 치중한 표현들로부터 그의 하나님 우편에 재위하시는 동안의 사역은 배타적으로 정치였고 선지적이나 제사적이 아니었다고 推論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일 것이다. 성경은 그 사역에 3職이 다 포함되었음을 말한다.

2) 在位의 이유와 主體
그리스도가 昇貴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재위하시게 된 근거로서의 이유는 二重인데 그것은 그의 神的 屬性들의 所有와 仲保的 事役의 遂行이었다.

이 두가지는 히1:3에서연결되어 있으니 그가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이 우편에 앉으셨음]은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때문이요, 둘째로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신] 때문이라 한 것이다. 빌 2:6-11도 가르치기를 본래 하나님의 형체도 존재하시어 하나님과 동등이시던 그가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고로, 이 두가지 이유로 인하여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한다.

엡1:20, 히2:8,고전15:27,마28:18,벧전3:22의 여러 구절은 승귀하신 그리스도의 권위와 영광을 묘사함에 강조로써 한다. 이같은 권세와 영화가 어느 피조물 뿐인 존재에게 위임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이치이다. 天上天下의 모든 질서위에 효과적이며 공의적인 정치를 시행하시며 자기 백성에게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으로서의 큰 사역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에는 그의 모든 신적 속성들의 행사가 요구되는 동시에 그의 모든 신적 속성들의 행사가 요구되는 동시에 그의 지상에서 중보로서 성취하여 놓으신 구속사역의 큰 공로를 적용함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우주와 교회위에 통치와 구속의 큰 사역을 시행하시는 그리스도는 神人 그리스도시다. 그는 특별히 로고스만도 아니요, 특별히 인생만도 아니라 두 性을 한 位에 연합하여 계시는 神人이시다. 이 하나님 우편에 재위하시는 대주재의 신성과 인성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論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우리의 영혼과 신체는 우리가 글을 쓰거나 말할 때에 자원적으로 동작하는 동작자들이나 그 두 사이의 관계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동작들은 독점적으로 정신적도 아니요, 독점적으로 육체적도 아니라는 것을 아나, 그 두 요소들이 어떻게 연락을 짓는지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다. 그러므로 우리 승귀하신 주의 품위에 신성과 인성의 연락관계를 우리의 미약한 이해력으로 고찰하려는 것은 무리한 노력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이 우주의 대주재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시라는 것, 그는 오히려 인생적 동정과 애정을 가지시어 우리의 軟弱한 모습을 간과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신격의 모든 충만이 그 안에 머물러 있고 사랑, 자비, 긍훌, 온유, 오래참음의 모든 완전한 덕이 충만한 그 신인이 천지의 모든 권세를 손에 가지시고 우리로부터 멀리 계시지 않으신다는 것은 그의 백성된 우리 모든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3) 在位 기간의 그리스도 事役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되 단순히 신적 권세, 위엄, 영광을 被動的으로 받아 누리시는 자가 아니라 能動的으로 그의 중보적 사역을 계속하신다. 그 사역은 선지, 제사,왕의 三職이다.

(1) 선지자의 사역
하늘 위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자기의 선지적 사역을 땅위에서 계속하신다. 그는 자기의 제자들을 떠나시기 전에 그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보내시어 그들의 기억력을 보조하시며 그들에게 새 진리를 가르치시며 그들을 모든 진리의 이해에서 인도하시며 그들을 그리스도 자신의 충만에 의하여 풍부케 하신 것이었다(요14:26,16:7-15). 그 약속이 성취된 오순절날부터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큰 선지자의 활동을 여러 모양으로 행하셨으니, 성경의 영감에서, 사도들과 교역자들의 전도에서, 교회를 인도하여 진리의 기둥과 터로 만드심에서, 진리를 신자들의 마음과 생활에 유효하게 만드심에서 그리하셨다.

(2) 제사장의 사역
하늘 위의 그리스도는 또한 제사장의 사역을 수행하신다. 그는 멜기세댁의 반차를 이은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부르짖으신 것은 그의 능동적 수난이 종결되었다는 의미의 표현이요, 그의 제사적 사역에 그 종점에 도달하였다 하심이 아니었다. 그의 제사적 사역은 하나님 우편에서 계속된다는 것을 성경이 말한다.(슥6:13, 히4:4, 7:24, 25, 8:1-6, 9:11-5,24-26,10:19-22. 요일2:2). 거기서 그리스도는 자기의 완성된 제자를 하나님의 사죄적 은혜의 충족한 기초로 성부앞에 계속하여 제시하신다. 그는 자기의 제사적 사역을 죄인들의 칭의와 성화에 유효하도록 끊임없이 적용하신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기의 백성을 위하여 항상 간구하시면서 자기의 제사를 근거로하여 그들을 용납하시고, 세계에서 그들을 안전히 보호하시고, 그들의 기도 및 봉사가 하나님에게 상달 되기를 위하여 성부께 호소하신다.

(3) 王政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위를 자주 그의 왕정과 연결시켜 말한다. 그는 그의 성령으로 그의 교회를 통치하고 보호하시며 그의 임명하신 직원들을 통하여 이것을 관리하신다. 천상만군은 그의 휘하에 있으니 천사들은 그의 사자들로서 성도들에게 그의 주시는 복을 전달하며 그들을 주위의 위험에 대항하여 보호하기로 항상 준비되어 있다. 그는 자연의 세력 위에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모든 권력 위에 권위를 행사하시어 통치하시기를 그가 최종원수를 굴복시킬 때까지 하실 것이다.

4) 왕권의 보호와 그 역사상 의의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편에 재위하시는 기간의 세 사역중에서 왕직에 특별히 주목해보자. 먼저 그 왕권에 의한 교회의 보호를 살펴보기로 한다.

하이델벨그 요리문답(51)은 그리스도게서 그의 권세로 모든 원수들에 대항하여 우리를 보호하시며 보전하신다고 말한다. 그는 절대적 주장권을 가지신 主로서 또는 聖父 앞에 仲裁者로서 그의 권세와 권위에 의해 우리를 지키신다(요일2:1,롬8:34). 그러므로 교회는 하늘에 그의 주, 그의 머리를 가진 신도들의 단체다(골1:18,엡1:22,4:15,5:23).

교회의 모든 은사와 능력과 보호는 그것들의 실재를 오직 하늘에 계신주께로부터 인출하며, 교회의 자라남은 그에게까지 자라남이다(엡4:15). 그리스도의 재위에는 그의 권세, 우리의 구원을 확실케 한 그의 거룩한 희생의 권세가 움직이므로 우리는 그 안에서 죄의 세력의 편만과 혼란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아무 敵性勢力도 없다(롬 8:35,38,39). 지금 그 남자가 하나님께로 올라가셨다(계 12:5,6). 교회는 억압과 핍박의 흑암을 반드시 통과하여야 되나(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여 있은것 같이) 그리스도의 권세에 의한 구출은 확실하다. 수난의 흑암 중에 그의 약속들의 광명이 비추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 하며(히 12:15),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울 것(히 12:12)이 훈계되었다.

그리스도의 재위기간의 왕권은 우리가 신앙으로만 고백할 수 있는 사건이다. 이것은 우리의 실재의 분석에서 오는 결론이 아니니 신앙으로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천지의 모든 권세로 관쓰시고 교회의 머리로서 주장하심을 인식할 수 있다. 이 때에 세계와 교회에는 많은 혼란이 있으므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홀과 그의 구속사업으로 부터 발사하는 광명을 보지 못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에 입각하여 신앙으로 역사를 고찰하면 그것은 독자적인 진전과정을 달리는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진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과 세계역사 특별히 세계를 통치하는 권세들 사이에 連絡을 探索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최고권세를 가지신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식되었으나 그가 십자가의 길로 영광에 오신 사실이 세계를 위하여 어떤 특수한 의의를 가졌으며 어떤 결과들을 내었는가 질문하는 이가 많다. 이리하여 그리스도의 재위의 신앙고백은 현대신학적 논의들의 촛점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권세는 단순히 죄인들을 구원하는 사건만일 수 없고, 또한 그의 사역의 우주적 국면들에도 관계있을 것이라고 지적되었다.

비설트.훞트는 선언하되 전통적 프로테스탄트주의는 그리스도의 선지직과 제사직의 관념은 잘 발전시켰으나 그의 왕직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한다.

그의 의견에 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다른 직임보다 그의 왕직에 향하여 보류적 태도를 취하였으며 그 태도는 그들이 종말론적 통찰력을 갖지 못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 비평이 우리를 놀라게 함은 적어도 칼빈은 그리스도가 [메시야라 칭한 바 되심은 특별히 그의 왕직 때문이라]는 의견을 가졌다. 그는 그리스도의 선지직과 제사직에 대해서도 공정하였다. 그러나 비설트.훞트는 칼빈의 의견으로 만족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말하되 프로테스탄트 전통은 그리스도의 주관을 그의 교회의 영역에 너무 많이 관련시키고 [어떤 점에서 또는 어떤 양식으로 그리스도가 세계의 왕이신지]를 결정하지 아니하였다]한다. [사회위의 그리스도의 주관에 관한 명백한 설명이 없다]고 한다.

5) 在位와 근대 우주관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은, 시110의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한 말씀의 성취다. 신약교회는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의 實在性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문제가 일어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신즉 그의 하늘에 계심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되는가]하게 되었다. 이같은 문제들은 16세기의 루터파와 개혁파신도들 사이의 논쟁에 중요한 역사를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께서 올라가셨다는 데 동의하였으나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任在에 대하여 의견을 달리하였다. 후대에는 昇天의 傳道에 대한 비평이 일어났으니 그것은 우주가 땅 위에 [하늘]을 가질 수 없다는 근대개념에 기초한 것이었다. 후대비평은 승천을 믿기에 전연 불가능하게 만들려 한다. 결국 승천과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은 비신화화를 요한다고 말한다. 눌드만스는 선언하되 이 부딪치는 돌은 과거에 가졌던 것과 같은 의의를 다시 더 가지지 못한다 하였다. 교회의 신앙고백에서 위험에 빠지게 되려는 것은 역사적 전망, 그리스도의 중재,그의 성도들의 보전, 그의 다시 오심이다.

빠빙크는 성경이 그리스도의 재위를 명확히 가르친다는 것을 진술한 후에 매우 조심하여 추가하되 [하나님의 우편이 차례로 하늘에 한 특수한 처소를 지시하는지는 우리가 어떤 정도의 확실성을 가지고 말하기 불가능하다] 하였다. 하나님의 우편을 말하는 것이 잘못됨은 아니나 이것은 오히려 하나의 상징적 표현일 수 있다. [기독교회는 항상 이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승귀의 처소를 더 밝히기를 그만 두었다] 이같은 信經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구원론적 신앙고백이다. 그리스도가 천당에서 성부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교회에게 항상 위안의 원천으로 되어왔다. 승천과 재위를 [근대세계개념]에 배치한다고 부인하는데 대항하여 교회는 성경기초 위에서 이 사실들을 단순한 신앙으로 말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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