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계 블랙홀 수색대
SIGNALS FROM THE VOID

희망의 빛
66개의 안테나로 구성된 칠레의 ‘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어레이(ALMA)’. 이곳은 우리은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을 관측하는 국제 전파망원경 네트워크의 중심부가 될 것이다.
김치~이
우리은하의 중심[가운데]은 대부분이 먼지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전파망원경은 은하의 핵[위]을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궁수자리 A* 블랙홀의 그림자가 사상 수평선 망원경(EHT)에 어떻게 보일지를 표현한 가상 일러스트다.
과학자들은 현재 우리은하의 한복판에 있는 블랙홀을 직접 관찰하려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블랙홀의 실체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까.

STORY BY SETH FLETCHER



해발 4,205m의 하와이 북동부 마우나케아산 정상. 이곳에 가면 망원경 없이도 수십㎞ 밖의 광대한 열대우림이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풍경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산 아래의 사람들은 폭포 하이킹과 서핑, 일광욕을 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여기는 따뜻하지도 않고, 열대 식물도 없으며, 대기 밀도가 낮아 조깅조차 부담스럽다. 바로 이곳에 서브밀리파 관측용 망원경 '서브밀리미터 어레이(SMA)' 천문대가 위치해 있다.

SMA 천문대의 일과는 대형 알루미늄 접시안테나 위로 해가 저물면서 시작된다. 필자가 방문한 날의 실험 책임자는 45세의 MIT 연구자 셰퍼드 도엘만 박사로 전파망원경 부품을 손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든 연구자들의 바람대로 이 전파망원경이 제대로 작동해준다면 캘리포니아주와 애리조나주에 있는 다른 전파망원경들과 연동,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의 물체를 관측할 수 있을 것이다.

도엘만 박사와 미 본토에 있는 그의 동료들은 이를 위해 '초장기선 간섭 관측법'이라는 기술로 거대한 블랙홀 관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들은 이를 '사상 수평선 망원경(EHT)'이라 부른다. 기선이 길수록 해상도도 높아지기 때문에 전 세계 오지에서 고가의 수제작 정밀장비를 보유하고 있던 천문학자들은 지난 10여년간 각 장비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연동시키기 위해 애를 써왔다.

SMA 통제실 밖에는 녹지 않은 눈이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며칠 전의 눈보라 폭풍이 남긴 흔적이었다. 이 폭풍으로 인해 캘리포니아주에서의 모든 관측활동이 중단됐었고, 이는 전체 EHT 관측의 중단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도엘만 박사는 오늘은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최소한 시작은 했네요. 보세요. 뭔가가 기록되고 있어요."

그때 대만 중앙연구원 산하 천문?천체물리연구소(ASIAA)에서 온 박사후 과정 연구자인 니콜라스 프라델이 말했다.

"마크 5B가 기록을 하고 있어요. 마크 5C는 아무 움직임이 없구요."

마크 5B는 직경 15m의 접시안테나를 이용해 인근의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 망원경(JCMT)과 연결돼 있는 기록장치들이며 마크 5C는 SMA에 연결된 최신 광대역 기록장치들이다.

이 소리에 도엘만 박사는 통제실에서 뛰어나가 마크 5C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몇분 후 숨을 헐떡이며 돌아온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가 부서질 듯 눌러댔 다. 그리고 뭔가 기술적인 용어들을 내뱉고는 주변의 연구자들과 망원경 조작 엔지니어들을 안심시켰다. 대충 들어보니 기록장치가 정상 작동되는 듯 했다.

SMA의 어레이 3개는 이제 막 작동을 시작했다. 도엘만 박사팀은 어레이를 우리은하의 중심부로 조준, '사상수평선 등급 구조(event-horizon-scale structure)'를 발견했던 2007년부터 이를 운용해왔다. 사상수평선 등급 구조란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400만 태양질량 크기의 초거대 블랙홀인 '궁수자리 에이스타(Sagittarius A*)'와 크기가 일치하는 어두운 부분을 말한다. 쉽게 말해 궁수자리 A*일 것으로 추정되 는 지점이다. 우리은하의 중심부를 더 깊게, 더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궁수자리 A*의 경계면을 사진 촬영하겠다는 게 도엘만 박사의 포부다.

얼핏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이는 분명 타당한 도전이다. 탐지장치는 매년 민감해지고 있고, 데이터의 저장과 처리에 드는 비용도 계속 저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적의 망원경들로 SMA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면 궁수자리 A*의 사진 촬영도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앞으로 수년 동안 세상에서 가장 정밀한 성능의 전파천문대들을 하나로 통합,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파망원경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이 계획이 성사되면 지구 크기의 접시안테나를 보유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어요. 해상도가 허블우주망원경의 2,000배나 될 겁니다. 4,800㎞ 밖에 떨어진 동전의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수준이죠."

물론 다른 EHT 소속 연구자들은 도엘만 박사보다는 조금 작은 목표, 즉 궁수자리 A*에서 가급적 많은 빛을 받아들여 분극(polarization) 현상을 연구함으로써 블랙홀의 자기장에 대해 파악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이들은 언젠가 완벽한 크기와 성능의 EHT를 이용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블랙홀의 윤곽선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초장기선 간섭 관측법 (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 VLBL) 수백~수천㎞ 떨어진 지구상의 전파망원경들을 상호 연동시켜 천체에서 발사되는 전파를 간섭 관측하는 방법. 관측 오차가 수㎝에 불과할 만큼 정확하다.

사상 수평선 (Event Horizon)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가 되는 부분으로 우주와 블랙홀의 경계가 되는 수평선이다.

태양질량 (solar mass) 태양 한 개의 질량. 항성과 은하의 질량의 표시하는 기본 단위로 지구 33만2,950개의 질량과 같다.


"블랙홀도 그림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이론물리학자들의 판단입니다. 그 그림자를 촬영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에요."

* * * * *
지난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직후 물리학자들 은 이 이론을 통해 우주의 실제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독일의 천체물리학자인 카를 슈바르츠실트 박사도 있었다. 군인 복무 시절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싸우던 그는 현대에 이르러 완벽한 구(球)를 이룬 항성 주변의 시공간곡률을 계산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는 이 공식을 아인슈타인에게 보냈고, 아인슈타인은 1916년 1월 베를린의 한 학회에서 슈바르츠실트를 대신해 공식을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공식에 매료됐지만 그가 내세운 한 가지 전제, 즉 항성의 밀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자신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쭈그러들어 무한히 작아지며, 그로 인해 밀도는 무한히 높아진다는 주장은 부인했다. 블랙홀의 존재를 부인한 셈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연계의 어떤 힘이 이 같은 내파(implosion) 현상을 막는다고 봤고, 당대의 걸출한 물리학자들도 이 주장에 동의했다.

사실 블랙홀은 우주의 작동 원리에 관한 여러 직관적 관념에 어긋나는 존재다. 그러나 수십년이 흘러 물리학자들은 슈바르츠실트의 판단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1939년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로버트 오펜 하이머는 슈바르츠실트의 연구를 기초로 일반 상대성 이론을 20년 이상 연구한 끝에 특정 항성은 핵연료를 소진하면 자체 중력으로 쪼그라든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설득력 있게 증명했다. 또한 1950년대 미국과 소련의 물리학자들은 수소폭탄을 시뮬레이션 하기 위한 컴퓨터 모델을 활용, 일정한 크기 이상의 항성이 사멸할 때 내파 현상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수학적 계산을 해냈다.

특히 1960년대부터 천문학자들은 블랙홀이 단순한 수학적 구조물이 아닌 실존하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간접적 증거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퀘이사(Quasar)의 발견도 그중 하나다. 이는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집어 삼키는 에너지에 의해 형성되는 거대 발광체인 퀘이사는 밝기가 우리은하의 수백 배에 달한다. 이와 관련 1990년대 천문학계는 은하의 중심부 근처에 위치한 항성들이 시속 수백만 ㎞의 속도로 특정 궤도를 선회하고 있음을 밝혀냈는데 그 중심에 블랙홀이 있지 않고서는 이만한 속도가 나올 수 없다. 이에 현대 물리학자들은 극강의 중력과 극강의 밀도를 지녀 시간이 정지되고 빛조차 가둬버리는 블랙홀의 존재를 인정한다.

블랙홀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항성이 내부 중력에 의해 붕괴하며 생성되는 '항성 블랙홀'과 현재 과학자들이 모든 은하의 중심에 있다고 추정하는 '초질량 블랙홀'이 그것이다. 이러한 블랙홀의 중심은 인류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특이점의 공간이다. 도엘만 박사에 의하면 블랙홀과 우주의 경계면인 사상 수평선만 해도 시공간을 한쪽으로만 이동시켜 우리가 있는 곳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일종의 편도 여행 경계선이다.

"사상 수평선은 한번 나가면 영원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우주의 출구에요."

그러나 지금껏 누구도 사상 수평선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반드시 보여야 한다. 사상 수평선 근처에는 시공간이 극도로 뒤틀리면서 절대로 숨길 수 없는 그림자가 나타나야 한다는 게 이론물리학자들의 예측이기 때문이다. 일출 직전의 수평선처럼 눈부신 빛의 테두리로 둘러싸인 짙은 검은색 원이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EHT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가 바로 이 그림자의 촬영이다.

만일 촬영에 성공한다면 우리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 우주에서 가장 혹독한 장소인 블랙홀의 언저리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블랙홀의 존재는 더 이상 논란의 소지 없이 확실해진다. 그동안 블랙홀은 존재가 '인정'돼 왔을 뿐 '입증'된 바는 없기 때문이다. EHT에 참여하고 있는 캐나다워털루대학의 이론물리학자 에이버리 브로데릭 박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블랙홀을 보지도 못했는데 블랙홀이 몇 개나 될 지에 대한 질문은 의미가 없어요. 블랙홀의 존재가 확증되면 진지한 토론을 벌일 많은 질문들이 던져질 거예요."


사상 수평선 근처에는 시공간이 극도로 뒤틀리면서 그림자가 보여야 한다. 일출 직전의 수평선처럼 빛이 테두리를 둘러싼 검은색 원이 보이면 그것이 바로 블랙홀이다.

* * * * *
지구에서 2만6,000광년 떨어진 궁수자리 A*는 온 우주로 전파를 내뿜고 있다. 한때 우주 먼지 구름과 항성에 속해있었던 전자와 이온들이 2억 2,400만㎞나 되는 블랙홀의 둘레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24분당 한 바퀴씩 회전하면 전자기장의 스펙트럼 전체를 커버하는 전파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2만6,000년전 궁수자리 A*의 사상 수평선으로 들어가던 빛이 매일 지구에 도착할 것이며 그 중 일부는 마우나케 아산에도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그중 다시 극히 일부가 SMA 의 접시안테나에 포착될 수 있다.

SMA의 접시안테나는 포착한 전파를 영하 269℃의 초저온 액체헬륨에 의해 냉각되는 수신기로 보낸다. 또 수신기는 광섬유 케이블을 통해 전파를 제어실로 넘긴다. 여기서 오차가 1천만년에 단 1초에 지나지 않는 에어컨 크기의 30만 달러짜리 원자시계인 수소메이저 (hydrogen maser)에 의해 전파의 신호가 증폭되고, 디지털화되며, 전파 포착 시간이 기록된다.

이후 이 신호는 8테라바이트급 하드드라이브 팩에 저장되고, 천문학자들은 이를 보스턴 외곽에 있는 MIT 헤이스택 천문대로 보내진다. 바로 이곳에서 슈퍼컴퓨터로 가동되는 상관기를 통해 전파의 잡음이 제거한 뒤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간다. 이 헤이스택 천문대에서는 SMA뿐만 아니라 JCMT, 캘리포니아주 CARMA 전파천문대, 애리조나주 SMTO 전 파천문대의 데이터 팩을 취합해 노이즈를 제거하고 궁수자리 A*가 보낸 전파를 찾게 된다.

EHT의 기기장치 책임자이자 천문학자, 전기공학자인 조나단 바인트 로브 박사의 설명을 빌자면 초저온 냉각에도 불구하고 망원경의 수신기는 원래의 신호보다 10만배나 강한 노이즈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 같은 잡음제거 과정이 꼭 필요하다.

"노이즈들 사이에 극소수의 전파 신호가 들어있습니다. 잡음을 제거하면 각 천문대의 데이터 팩에서 공통된 신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게 바로 관측 대상, 다시 말해 궁수자리 A*의 전파인 셈이죠."

오후 7시를 조금 넘긴 시간. 소프트웨어의 교차 검증을 마친 후 안테나들이 단계적으로 일어서고 기록 장치들이 작동을 시작하면서 12시간 일정의 관측이 본격 개시됐다.

필자가 방문한 날의 저녁 날씨는 운이 좋게도 매우 청명했다. 전파천문학자들의 용어로 말하자면 타우(tau)값이 0.028이었다. 타우값은 대기 중의 수증기에 의해 차폐되는 전파의 정도를 표시하는 단위다. 타우값이 낮기로 유명한 이곳에서도 이정도로 낮은 수치가 나오는 경우는 1년에 10~15차례 밖에 없다고 한다. 도엘만 박사는 오늘 같은 날씨를 '우주에 있는 듯한 날씨'라고 표현했다.

안타깝게도 다른 천문대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CARMA의 타우값은 짜증 날 만큼 높았고, SMTO는 타우값은 좋았지만 녹지 않은 눈들이 공기 중에 얼음 결정들을 날려 보내면서 돔을 열어 접시형 위성전파 수신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물론 눈보라로 인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지난 3일 보다는 분명 나은 상황이다. 그러나 오늘이 지나면 올해 EHT가 전파를 탐지할 수 있는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는다. 각 천문대가 도엘만 박사팀에게 올해 3일의 시간을 배정했기 때문이다. 1분 1초 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1년에 몇 차례고 계속 관측할 수는 없는 걸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려면 훨씬 많은 돈이 들고, 지금보다 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고가야 한다. 그만큼 연구자들, 천문대들과의 의견조율도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바인트로브 박사의 말이다.

"도엘만 박사는 매일 정오 3개 천문대의 일기예보를 듣고, 저녁 무렵 각 천문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관측 진행여부를 조율해요. 이 일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갈 때가 다반사죠."

그래서 현재 연구팀은 관측결정을 지금보다 용이하게 내릴 방법을 모색 중이다. EHT 전용 디지털 장비를 각 천문대에 영구 설치해 날씨를 자동 분석해 알려주면 원격으로 접시안테나를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다만 이는 천문대 관리위원회와의 확고한 협력관계 구축, 장비 설치 비용의 마련, 그리고 무엇보다 정확한 일기예보가 뒷받침돼야 한다. 마우나케아산에는 11개의 천문대가 있고, 그중 대부분이 고성능 기상관측장비를 갖춰 날씨 예측에 별 문제가 없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못한 탓이다.


상관기 (correlator) 잡음 중에서 약한 정보 신호의 분리에 활용되는 전자장치.


* * * * *
지정 무렵 SMA는 M87 은하의 중심으로 접시 안테나를 겨눴다. 이곳의 초질량 블랙홀은 궁수자리 A*보다 4시간 먼저 관측이 가능하다. 도엘만 박사는 SMTO의 망원경 조작 엔지니어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쯤이면 돔을 열 수 있을지를 물었다. 전화를 끊은 그의 표정이 밝았다.

"잘됐네요. 지금 SMTO에서 돔을 열고 있어요. 30분 이내에 관측이 개시될 거랍니다."

그러자 SMT의 안테나 상태를 체크하고 있던 MIT 대학원생 루릭 프리미아니가 화답했다.

"M87을 두 번 정도 탐색할 시간이 있겠네요."

희소식을 들어서인지 도엘만 박사는 말이 많아졌다. 자신이 대학원생이던 15~20년전 초장기선 간섭 관측을 처음 시작했을 때 겪었던 기술적 난제들을 박사후 과정 연구원들에게 이야기했다. 또한 자신이 천문학에 흥미를 가진 것은 현장 중심 연구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는 MIT 대학원 재학 중 초장기선 간섭 관측을 가장 좋아했는데 관측을 위해서는 춥고 건조한 오지의 산 속에서 여러 주를 보내야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어쨌든 SMTO와 연락을 취한지 30여분이 지나면서 그는 다시 전화를 걸어 현 상황을 확인했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이렇게 내뱉었다. "제발 거짓말이라고 말해줘요. 제발요."

바인트로브 박사가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가 상황을 설명했다. SMTO가 아직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한 이유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SMA는 오늘 밤에만 벌써 12번째 탐색을 하고 있었고 SMTO의 타우값은 0.05까지 내려갔음에도 공동작업이 무산될 수 있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도엘만 박사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뭐라고요? 미쳐 버리겠다고요? 그게 기술자가 쓸 말입니까?"

연구원들이 그의 눈치를 보며 큭큭 거렸지만 도엘만 박사는 몸이 달았다. 앞으로 2시간 뒷면 궁수자리 A*가 관측 가능 위치에 들어오는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 더 중요하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X선 관측위성 '찬드라(Chandra)'가 탐색에 합세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찬드라 위성은 궁수자리 A*의 X선 플레어를 관측, EHT의 데이터와 취합함으로써 블랙홀의 시간별 변화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 정도의 발견만 하더라도 주요 학회지에 실릴 자격이 충분하며 관측에 투입된 적지 않은 돈과 인력, 시간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엘만 박사는 가용한 모든 방법을 동원, 오늘의 관측을 성공시켜야 한다. 그는 SMA의 망원경 조작 엔지니어에게 애리조나대학 수석 교수를 찾아내 즉시 자신에게 전화하도록 전하라고 지시했다.

"교수에게 이렇게 말해. 도엘만 박사가 지금 당장 전화를 안 걸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한다고 말이야."

30분 후 그는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오늘 밤 SMTO가 가동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직 밤이 남아 있으니 다른 연구팀에게 관측시간을 양보해야 할지, SMTO를 제외하고 관측을 강행할지 말이다. 바인트로브 박사가 노트북에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지금 찬드라 위성이 서비스 범위에 들어왔습니다."

도엘만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SMTO는 잃었지만 CARMA는 관측을 개시했고, 위성 서비스 범위를 낭비할 수도 없었다.

"찬드라가 플레어를 감지만 해준다면 분명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연구를 할 수 있을 거야. 오전 2시5분에 궁수자리 A*의 1차 관측을 시도하기로 하지. 그동안은 지금 하고 있는 관측을 계속 하도록."

결정을 내린 그는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 필자에게 말했다.

"보셨죠. 이게 이렇게 힘든 연구랍니다."


"파장이 2㎜ 이상의 전파로 관측하면 우리은하의 중심은 습기 찬 창문으로 보는 듯 뿌옇게 보입니다. 하지만 1㎜ 이하라면 그 습기가 모두 사라지죠."



과거의 빛
우리은하의 중심에 위치한 궁수자리 A* 블랙홀과 지구는 무려 2만6,000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지구에서 관찰하는 궁수자리 A*의 빛은 2만,6,000년 전의 것이라는 얘기다.


* * * * *
지구상에서는 아무리 날씨가 청명한 밤이라도 은하의 중심부와 그 주변 의 밀도 높은 성단을 육안으로 볼 수 없다. 가시광선은 은하수 중심의 빛 덩어리를 가로막고 있는 우주 먼지와 플라즈마 구름을 관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파라면 가능하다.

이 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것은 1932년이다. 당시 벨 연구소의 물리학자였던 카를 잰스키는 은하면이 지평선 위로 떠오를 때마다 온 하늘이 전파로 가득 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전파천문학자들은 은하의 중심을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찾아냈다. EHT에서 사용 중인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다수의 전파망원경을 하나로 연결한 간섭계를 이용한 관측기술, 즉 VLBL도 이때 알게 됐다.

이윽고 1960년대 초반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린 뱅크에 미 국립전파천문대(NRAO)가 완공되면서 천문학자들은 두 곳의 천문대를 동원한 간섭계로 은하의 중심부를 관측할 능력을 가졌다. 그리고 NRAO는 1966년 궁수자리 A*의 존재 징후를 알리는 첫 저주파 전파를 감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신호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해상도가 너무 낮았지만 8년 뒤 NRAO는 고주파 전파의 수신이 가능한 한층 향상된 간섭계를 동원, 우리은하의 중심에 매우 밀도가 높고 밝은 것이 있음을 알아낸다.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은하는 그것을 중심으로 주변을 돌고 있었다.

다시 8년이 지나 천문학계는 그것에 이름을 지어줬다. 지구에서 볼 때 궁수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여 궁수자리 A*가 됐다.

정밀해지는 탐지 장비와 강력한 컴퓨팅 능력에 힘입어 전파천문학자들은 현재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고주파수로 우리은하의 중심을 더욱 선명히 볼 수 있게 됐다. 주파수가 높으면 파장이 짧아져 해상도가 높아진다. 특히 우리은하의 사상 수평선에서 날아오는 전파는 초고주파인 경우가 많다. 도엘만 박사에 따르면 파장의 길이가 2㎜ 이상인 전파로 관측하면 우리은하의 중심은 습기가 찬 욕실의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것처럼 흐리게 보인다. 반면 파장 1㎜ 이하에서는 습기가 사라져 놀랄만치 투명하게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밀리미터파를 포착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최적의 전파망 원경 설치 장소를 찾아 세계 각지를 헤매야 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대기 중의 수분이 밀리미터파를 차폐하는 역할을 하는 탓에 마우나케아산이나 해발고도 5,100m의 고원에 자리 잡은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과 같이 공기밀도와 습도가 매우 낮은 장소가 필요하다.

현재 아타카마 사막에는 '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어레이 (ALMA)'가 건설 중에 있는데 완공되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전파 망원경 어레이에 등극한다. 2015년이면 EHT에도 합류, 전체 프로젝트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다만 그 이후에도 최소한 2~3곳의 전파 망원경을 추가로 네트워크화 해야 궁수자리 A*의 사상 수평선 관측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 능력에 근접하게 된다.

관측 능력 제고를 위해 EHT의 연구자들은 각 전파망원경에 최첨단 장비 설치에도 나서야 한다. 현재 MIT 헤이스택 천문대가 개발 중인 신형 기록장치가 그런 장비다. 이 장치는 기록 속도가 현 장치의 8배에 달한다. 모든 작업이 문제없이 진행될 경우 EHT 프로젝트팀은 궁수자리 A* 및 그 사상 수평선의 이미지 제작에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물리학자들은 슈퍼컴퓨터를 사용해 블랙홀의 모습이 어떨지 예측한 바 있다. 궁수자리 A* 블랙홀에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일식 때의 모습과 비슷할 전망이다. 그러나 뭔가를 먹어치우고 있는 중이라면 이 녀석은 마치 불덩어리처럼 보일 수 있다. 도엘만 박사가 더 많은 망원경을 네트워크화 할수록 우리는 블랙홀을 더 세밀하게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일부 학자들의 경우 과학적 관점에서 이미지의 확보 자체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브로데릭 박사도 여기에 동의한다.

"이미지 제작이 이 연구의 전부가 아닙니다.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연구가 끝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이미지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을 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런 관점에서 보면 EHT 프로젝트가 마치 사람들에게 보여줄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 조직된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어요."


은하면 (galactic plane) 은하계 원반부의 중심면.


"블랙홀의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연구가 끝나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만으로는 블랙홀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는 없죠."


* * * * *
현지시간 오전 2시 30분. EHT에 동원된 망원경들의 3분의 2가 궁수자리 A*에서 도달한 전파를 기록하고 있다. 단말기 위를 지나가는 데이터를 읽고 있던 프리미아니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오늘 궁수자리 A*는 아주 밝네요."

이는 도엘만 박사에게 기분 좋고도, 가슴 아픈 소식이었다. 오늘 EHT와 찬드라 위성이 확보하게 될 데이터들이 예상보다 괜찮을 수 있다는 의미였지만 SMTO 불참의 아쉬움은 더 커졌다. 그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바인트로브 박사는 아예 바닥에 누워 쪽잠을 청했다. 나머지 모든 연구진은 컴퓨터의 스크린을 주시했다.

기대와 달리 두 시간 반이 지나도록 별다른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리처드 프레스턴은 1987년 출간한 저서 '최초의 빛'에서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들과 함께 캘리포니아주 팔로마산의 천문대에서 예전에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수십개의 은하들이 스크린을 스쳐 지나는 모습을 묘사했지만 여기서는 그런 식으로 일이 풀려주지 않았다. 아직 EHT는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물건이라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해주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사실 연구팀은 원래 이럴 것을 익히 예상하고 있었다. 전파천문학계에서 지루함은 일상이자 즐거움이기도 하다.

오전 5시. 모든 사람들이 깨어 있었다. 관측 종료시간이 다가오면서 모니터 앞의 프리미아니는 조금씩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런 그를 도엘만 박사가 위로했다.

"중요한 건 데이터를 얻는지 못 얻는지 일 뿐 우리가 얻어야 하는 건 아니야. CARMA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가 알겠어."

주변이 곧 다시 고요해졌다. 한밤중의 기분 탓이었는지 필자는 도엘만 박사에게 예전에도 했었던 질문을 다시 한 번 했다.

"왜 블랙홀을 연구하시죠?"

그는 대답했다.

"이론상 아주 튼튼한 우주선을 만들면 태양의 중심에 들어갔다가 살아 나올 수도 있어요. 심지어 중성자별의 중심에도 들어갈 수 있죠. 하지만 블랙홀은 달라요.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우주 유일의 장소에요. 빨려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오싹해지죠. 정말 압도적일 정도로 매력적이지 않나요?"

오전 6시가 지나면서 도엘만 박사는 연구원들과 장비의 전원을 내리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동안 필자는 바인트로브 박사와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다. 산 정상까지 이어진 포장도로를 차를 타고 올라가면서 그는 정말 실망스럽다고 얘기했다. 준비를 철저히 했고, 기후도 완벽했지만 SMTO의 고장으로 관측이 엉망이 된 것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그래도 오늘 중으로 SMTO측 엔지니어들이 망원경 수리를 끝내고, 천문대 세 곳의 기상 조건이 계속 완벽하다면 내일 밤에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단 하룻밤만 기상이 좋아도 이 모든 고생을 감내할 가치가 있죠."

과학자들은 우리은하에만 수백만 개의 블랙홀이 존재할 거라고 추산한다. 파괴적이고 조화를 모르며 이해하기조차 힘든 블랙홀이 그렇게나 많다고 생각하면 인류의 안위가 무척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철학자들이 수세기에 걸쳐 일깨워 왔듯 인간은 세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그 그림자만을 인식할 뿐이다. 블랙홀 역시 그 점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나중에 도엘만 박사가 전해준 바에 의하면 다음날 밤은 모든 것이 잘 굴러갔다고 한다. SMTO의 기술자들은 고장난 모터를 수리해냈고 날씨도 좋았다. 그래서 블랙홀에 대해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몇 주가 지난 뒤 필자는 EHT의 성공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궁수자리 A*의 초기 탐사에도 참여했던 미 국립전파천문대의 프레드로 명예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도엘만 박사팀의 연구는 매우 어렵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냉전 시대에 미국 천문학자들이 소련 천문학자들과 협력, 초장기선 간섭계로 관측을 한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도엘만 박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은 산적돼 있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냉전 시대와 같은 철의 장막은 없다.

"그들은 학계에서 누군가 항상 해왔던 연구를 이어받은 것으로 보면 맞습니다. 이런 노력들은 언젠가 반드시 성공하고 말 겁니다."


중성자별 (neutron star) 항성 진화의 최종 단계에 있는 초고밀도의 항성.

 

(웹사이트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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