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영감론 

  

Ⅰ. 서 론

 

성경의 계시적 교리는 많은 논란의 여지를 가져왔다. 성경이 특별계시로써의 계시적 말씀인지에 대한 반문들과 함께 과연 성경이 하나님에 의해 쓰여 진 것인지 사람의 영적 사상의 글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 하나님에 의해 쓰여 졌다.

 

하나님은 자기 계시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다. 창조 질서와 자연 만물의 모든 만상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자연 계시이다. 이에 반해 특별계시는 곧 말씀이다. 우리가 늘 상고하고 있는 성경이 바로 이러한 특별계시를 통해 이루어 진 것이다.

 

그러나 온전히 하나님의 의해 쓰여 진 하나님의 말씀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점점 인간의 이성적 지식으로 말미암아 성경의 근원을 찾으려 하고 있다. 문제는 그 근원을 사람에 두거나 성경의 부분적 이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 하나님의 영적 감동으로 말미암아 쓰여 졌다. 이를 성경의 영감이라 한다. 이는 분명한 진리요 사실인 것이다.

 

문제시 되고 있는 이러한 영감설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올바른 성경의 영감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학자들은 여러 가지 견해를 통해 성경의 영감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 견해들 가운데 잘못된 견해를 알아보고 우리가 취해야 할 입장은 어떤 것인지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Ⅱ. 이론적 배경

 

1. 영감의 정의

 

영감(inspiration)이란 ‘하나님의 영이 안으로 들어옴’ 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이 성경 기록자들의 안으로 들어와 저들을 감동함으로 저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기록하였다는 말이다.

 

또한 찰스 하지는 영감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정신과 뜻의 무오한 전달을 위한 그분의 기관들로 간주하는 어떤 선택된 사람들의 지성에 미치는 성령의 감동이라고 정의하였다.

 

헤르만 바빙크는 영감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찾고자 하였다. 성경에서 다만 디모데 후서 3장 16절 에서만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감’이란 낱말이 두 가지로, 즉 능동적으로 그리고 수동적으로 파악될 수 있고, 따라서 ‘하나님이 숨 쉬고 있다’ 와 ‘하나님에 의해서 감동되다’ 는 의미들을 갖는다. 왜냐하면 첫 번째로 ‘하나님께 알려진 바 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여진’,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등의 경우들과 같이 ‘데오스’ 와 결합된 객관적 동사형은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부분의 경우 수동적인 의미를 갖는다. 둘째, 수동적인 의미는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에 의해서 보낸바 된 자들로서 언급된 베드로후서 1장 21절 에 의해서 지지받고 있다.

 

2. 영감의 성격

 

하나님의 특별 계시의 사건과 진리는 그 발생 당시의 관계 인물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를 걸쳐 하나님의 백성을 상대로 한 것이다. 그러니 만큼 그 사건들과 진리는 기록될 필요가 있었고, 또 기록은 영감으로 되었다(롬 15:4; 딤후 3:16). 영감으로 된 것은 정확무오하고 또 그 기록 자체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독자에게 영적 감동을 전달한다.

 

바빙크는 “영감 행위는 성령이 몰고 이끄시는 것으로서, 그러나 특별히 종종 성령이 받아쓰게 하시는 것으로 표상되고 있다. 그들은 저자들이 아니라 단지 기록자들이요 대필자들이다. 성경의 저자는 오직 하나님만이다. 성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에게 보내신 편지이다. 거기에는 무관심할 만한 것이나 피상적인 것은 없고 모든 것이 신적인 지혜로 충만 되어 있다” 고 말하였다.

 

3. 영감의 성경적 증거

 

영감교리는 다른 모든 교리와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유래한다. 성경 자체가 성경의 영감성을 풍부하게 증거하며, 심지어 합리주의자들조차 기꺼이 인정하듯이, 가장 엄격한 영감에 대한 견해도 지지한다.

 

1) 구약의 증거 

구약 성경 저자들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기록하도록 거듭 명령을 받는다(출17:14; 34:27; 민 33:2; 사 8:1; 30:8; 렘 25:13; 30:2; 겔 24:1이하; 단 12:4; 히2:2). 선지자들은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으며, 그로써 “주께서 일러 가라사대”,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으니”, “주 여호와가 내게 보이셨으니” 같은 문구들을 서두에 놓고서 글을 써 내려 갔다. 이사야는 심지어 자신이 기록한 예언을 가리켜 “여호와의 책”이라고 했다(34:16).

 

이는 또한 선지자들을 통해 증명 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입 곧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하나님 대신 말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선지자가 성별되었을 때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렘 1:9; 사51:16)고 말한다. 이것이 선지자에 관한 성경적 개념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형식 곧 그의 의무와 사명과 관련되어 끊임없이 반복되는 형식으로부터 더 명확하게 증거 된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했다. “여호와가 이 같이 말씀하시기를” 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그의 입술에 있었다. “여호와의 말씀” 이 이 선지자에게 임했다고 말한다. 또 “성령이 임하사” “하나님이 권능 또는 손이 그에게 임하사” 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기관이었다는 것, 그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권위로 말하게 된 것이라는 것을 모두 함의하고 있다.

 

2) 신약의 증거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다. 성경은 그들에게 모든 사실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가르칠 때 그들을 무오하게 하신다. 말씀하시는 분은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 계시는 내 아버지의 영이라고 그리스도는 말씀하신다. 너희를 들으시는 분은 곧 나를 들으신다. 그리스도는 사도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을 부여 받을 때 까지 교사로서의 직분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셨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구약성경의 단락들을 자주 하나님의 말씀 혹은 성령의 말씀으로 인용한다(마 15:4; 히 1:5 이하; 3:7; 4:3; 5:6; 7:21등). 바울은 자신의 말을 성령께서 가르치신 말씀으로 말하며(고전 2:13),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서 말씀하고 계신다고 주장한다(고후 13:3).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살·전 2:13). 마지막으로 바울은 다음과 같은 영감에 관한 고전적 진술을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사도 베드로는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0,21)고 말할 때, 이를 증거하고 있다.

 

 

Ⅲ. 성경 영감설의 여러 가지 견해

 

1. 영감의 성질에 따른 견해(성경 기록자에 대하여)

 

1) 기계적 영감

이 견해는 마치 하나님께서 단순히 성경 각권들의 인간 저자들에게 자신들의 저작들에 넣어야 할 내용을 불러 주어 받아 적게 하셨다는 것이다. 인간 저자들은 성령의 생각을 성령께서 선별하신 단어들로 기록한 서기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들의 정신 활동이 그 순간은 중단 되었고,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저작 내용이나 형태에 기여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문체조차 성령의 문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기록 내용에 부합하지 않는 이론이다. 성경의 각 부분은 저자들의 특성에 따라서 그 양상이 다르다. 만일 성경 저자들이 단순히 기계처럼 사용되었다면, 바울서신의 양상이 베드로 서신의 그것과 같아야 할 것이다.

 

성경 저자들은 저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다만 피동적인 도구로 사용되지 아니하고, 자신들 스스로 자신이 기록해야 할 내용에 대해서 자료를 조사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무엘, 열왕기, 역대기 등의 여러 책을 기록할 때 역사적 사료를 참고하여 기록하였음을 기술하였고(대상 29:29, 30, 히 7:1-3), 시편이나 예언서, 사도행전이나 서간서 등에서는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하기도 하였다.(시 51:1-9, 욘1:1-4:11, 고·후12:1-4). 그러므로 기계적 영감설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2) 동력적 영감

동력적 영감은 기계적 영감설에 반대하여 그들 스스로가 역동적 영감설이라는 주장과 함께 이론을 펼치고 있다.

동력적 영감설은 성경의 저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성령의 직접적인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조명을 받은 인간의 자유로운 통찰력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동력적 영감설의 주장은 성경을 완전히 인간적인 산물로 만들어 버리므로 성경을 문학작품의 수준까지 격하시켜 버리고 말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에서의 오류의 가능성을 용인하게 되었다.

 

래드는 말한다. “일반적인 영감 개념은 바람같이 또는 액체 같이 인간의 영혼으로 들어와 거기서 변형을 만들어 내는 신적인 영향력이라는 개념이다.” 배너만은,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에서는 영감이 “인간의 합리적인 또는 영적인 의식을 비추는 하나님의 자연적인 또는 잘해야 은혜적인 작용으로써 인간이 자기 자신의 기독교적 이해 및 감정의 충만함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종교적 삶과 신념의 산물들을 말하거나 기록하는 것”이라 주장한다고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이 관점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으로서, 성경을 순전히 인간적인 산물로 만들어 버리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류의 가능성을 용인하고 있다. 성령의 초자연적 활동은 그들의 기록에서 보다는 기록자들에게서 끝났다. 그것이 그들의 기록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겠지만 똑같은 정도의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는 입장이다.

 

3). 유기적 영감

유기적 영감은 하나님께서 인간 기자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고자 할 때에 성경의 기록자들을 있는 그대로, 즉 그들이 지닌 인격과 기질, 은사와 재능, 교육과 교양, 어휘, 말투, 문체 등을 최대한 사용하셨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성령 충만함을 입혀서 모든 것이 아름답게 조화되는 중에 글을 쓰게 하시되, 죄의 영향이 그들의 집필 행위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제어하시고, 그들이 언어를 선택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일을 자신의 특성에 따라 적절한 단어와 어휘를 골라 표현하도록 유기적인 방법으로 인도 하셨다.

 

그럼에도 성령은 한 순간이라도 인간 저자의 능력을 자유롭게 내버려두시거나 기계처럼 강제로 하지 아니하시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하여 성경 기록자의 모든 인격을 최대한 사용하면서 성경을 기록케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면서도 성경 기록자 자신의 역사적 탐구의 결과가 함께 기록되어져 있으며, 기록자의 개인적 체험에 대한 기록과 각 저자의 문학적 소양이 발휘된 문체와 개인의 특성, 그들이 살던 시대적인 특성과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어 각 권별로 개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기록자들이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었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는데 이를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등의 저자들은 자기들의 자료에 대해 거듭 언급하고 있음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상황에 의해 결정되고 있으며, 신약 서신서들도 구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시편 기자들은 종종 자기들의 개인적인 범죄 및 사죄의 경험(시 32편, 51편), 둘러싼 위험과 은혜의 구원(시 48편, 116편) 등을 노래하고 있다. 각 저자마다 자기 나름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 시인들과 선지자들의 고상한 시나 정치적 언어가 있는가 하면 역사가들의 평범한 산문도 있으며, 이사야의 순수한 히브리어가 있는가 하면 아람어가 섞인 다니엘의 히브리어도 있다. 이러한 사실이 유기적 영감론을 증거하고 있다.

 

또한 바빙크는 하나님의 계시는 추상적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 인물들과 환경들, 형식들과 인습들, 역사와 삶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위에 높이 떠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상황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것이 육체와 피가 되었고 죄를 제외한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와 같은 것이 되었고 유기적 영감을 증거하고 있다.

 

 

2. 영감의 범위에 따른 견해(성경자체에 대하여)

 

1) 부분 영감

부분 영감설은 모든 성경의 영감설을 부정하고 부분적 영감설을 주장하는 견해이다. 그리하여 성경의 역사서들의 영감성을 부정하고 교리서들로 국한하는 가운데 교리서들도 특별한 영적 조명으로 구성된 순전히 자연적 과정으로 이해하고 말았다.

 

성경의 일부분만 성령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고 믿는 견해는 18세기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영감관에 의해 출발되었다. 이들은 성경에서 초자연성을 배제하고 부분 영감을 받아들였다.

 

이 견해는 저자들을 도덕적, 영적 문제에 대한 신뢰성 있는 증인들로 인정하는 효과를 냈지만, 온갖 종류의 역사적, 연대기적, 과학적 오류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증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진영에는 영감의 정확한 범위에 대해 일치된 의견이 없다. 더러는 그 범위를 교리 문제들에 국한하고, 더러는 신약성경에 국한하며, 또 더러는 예수의 말씀에 국한하며, 마지막으로 오직 산상수훈만 영감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2) 사상 영감 

사상 영감설은 단어 영감보다 생각 영감을 말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생각은 신적으로 영감되었지만, 단어는 단순히 인간 저자들의 선택에 맡겨졌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사상은 분명히 신적으로 영감 되었으나, 그 사상이 옷 입은 언어는 인간 저자들이 하나님의 인도 없이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영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성경에 나오는 불완전함과 오류들을 설명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사상은 언어가 없이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오르 박사는 “필연적인 사상은 언어의 모양을 띠고 언어로 표현된다. 만약 영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상뿐만 아니라 언어까지 관통해야 하고, 표현을 형성해야 하며, 채택된 언어로 하여금 전달되는 사상을 위한 살아있는 매체가 되게 하여야 한다.” 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지극히 옳은 말이다.

 

성경에 의하면 영감은 하나님의 말씀 모든 부분에 똑같이 미친다. 율법이나 역사서나, 시편이나 선지서나, 복음서나 서신서나, 모두가 성령의 인도 아래 기록되었다. 성경 어느 부분에서 호소하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호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직접 호소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말해 주고 있다. 바울의 서신서들은 예수와 사도들이 영감 되고 권위 있는 것으로 분명히 인정한 구약성경의 기록과 같은 수준에 놓여 있다. 신약 성경은 구약성경의 스물 다섯 권에서 나온 인용구를 담고 있으며 이것들 가운데는 어떤 이들이 가장 적게 영감되어 있다고 보는 역사적인 성격의 것들도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주님 자신과 신약 성경의 기록자들은 이 책들 각 권에 신적 권위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3)  완전 축자 영감

 (1) 완전 축자 영감의 정의

완전 축자 영감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이루리라”(마5:1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3:16) 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영감이 성경의 개념이나 사상뿐만이 아니라 그 낱말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는 견해가 축자영감설이고, 영감이 상경의 어떤 부분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부분에까지 확대되었다는 견해가 완전영감설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부분, 심지어 글자 한 자 한 자까지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단어들을 불러 적게 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성경 저자들의 어휘를 무시하시거나 그 단어들과 표현들을 선택하도록 인도하시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막아주셨다는 것이다. 이 견해를 기계적 영감설과 동일시하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 완전축자 영감설이라고 부른다.

 

 (2) 완전축자 영감의 증거

완전 축자 영감은 성경에 의해 그 증거를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는 여러 경우에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정확히 기록할 내용을 말씀하셨다(출 3장, 4장; 6:2; 7:1; 레 4:1; 6:1; 7:22, 28; 수 1:1; 4:1; 6:2).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자기들의 입에 말씀을 넣어 주셨다고 말하며 (렘 1:9), 그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도록 자기들을 인도하셨다고 말한다(겔 3:4, 10, 11).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사야는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사1:2) 이라고 그의 예언을 시작하였고, 그와 다른 선지자들은 잘 알려진 선지자적 공식인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등을 끊임없이 사용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렘1:9) 고 말하기까지 했다.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말을 성령계서 가르쳐 주신 말씀이라고 하며(고전 2:13), 바울과 예수님은 한 단어의 용례를 토대로 논리를 이끌어 가신다(마 22:43-45; 요 10:35 갈 3:15).

 

사도들은 구약성경의 말씀과 자기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다. 바울 자신은 교훈을 함에 있어서 자기가 선택한 말이 아닌 성령께서 가르치신 말로 한다고 분명히 말해주고 있으며(고전 2:13),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서 말씀하신다고 주장하고 있다(고후 13:3). 또 히브리서는 구약성경 여러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는 성령의 말씀으로 인용하도 있다(히3:7, 4:4, 5, 7, 8:8, 10:15-17).

 

Ⅴ. 결 론

 

근본주의는 유기적, 완전축자 영감설을 주장하는 반면, 신정통주의는 부분영감과 사상영감을, 그리고 복음주의는 유기적 또는 역동적 영감설을 주장한다. 보수적 복음주의가 근본주의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다면 진보적 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의 입장을 상당 부분 도입하여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하고 오류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박윤선 목사는 옛날부터 성경과 과학이 상충되는 여러 가지 난제에서 성경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을 뿐 성경이 역사적, 과학적으로 틀렸다고 확실히 판명된 적은 한 건도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세속 과학의 학설들은 100년을 지속하기 힘들지만, 성경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 진리임을 밝혔다.

 

이러한 주장과 같이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은 분명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것이 진리요, 또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나타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기 계시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의해 영감 되어졌고 그것이 바로 성경의 영감설 임을 우리는 기억하고 진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의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과학 문명이 발달 하면서 인류의 모든 근원을 인간의 의지 속에서 찾으려 한다. 그것은 이성적 한계를 넘어 신적 존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본 연구자는 이러한 시대의 잘못된 성경의 영감론에 대해 설명하였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 즉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 진 성경을 단지 인간의 사상으로 쓰여졌다고 하는 견해나 혹은 집필자의 사상을 무시하는 기계적 영감론의 주장으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입장을 비판하며 올바른 개혁주의적 입장을 표명하는데 초점을 두고 전개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집필자들의 사상과 습관, 관습 등을 무시하지 않은 채 오류 없이 성경을 쓰고자 영적 감동으로 계시하셨던 유기적 영감설과 부분적 영감이 아닌 완전 축자 영감이라는 견해를 지지 한다.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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