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일삼는 '수호전'·기만술 대결 '삼국지'가 중국인 망쳤다"

 

"수호전과 삼국지는 '대재난의 책'이다. 폭력과 권모술수를 숭배하기 때문이다." "500여 년간 중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광범위하게 해악을 끼친 문학작품은 바로 이 두 경전이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이들 작품이 과거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여전히 영향을 미쳐 사람들의 마음을 파괴하며 잠재의식을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1989년 천안문 사건으로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문학평론가 류짜이푸(劉再復·71)는 중국의 표적 고전문학인 '수호전'과 '삼국지'에 칼을 들이댄다. 예술적 가치는 인정하지만, 두 소설이 중국인들을 지옥의 문에 들어서게 한 주범이라는 것이다.

류짜이푸는 "5·4운동이 공자를 주요 타격대상으로 삼는 대신, '수호전'과 '삼국지'를 주요 비판대상으로 삼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5·4운동은 '사람'을 발견하는 운동이었는데, '수호전'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호전'의 등장인물은 사람을 짐승 때려잡듯 도륙하는가 하면, 사람 고기를 먹기까지 한다. 두 소설 모두 남성적 폭력을 숭상하면서 여성적인 것을 멸시하고, 여성을 적대시하거나 이용했다. 5·4운동이 내건 기치와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고전인 셈이다.

'수호전'의 폭력숭배

'수호전'의 호걸 무송이 원앙루에서 열다섯 명을 살육한 사건은 피투성이 폭력의 대표적 사례다. 무송은 자신을 해꼬지하려는 원수들에게 복수한다며 칼날이 뒤틀리도록, 그래서 시체가 쌓이도록 베었다. 무고한 어린 하녀와 마부, 몸종들까지 포함됐다. 살육을 마친 무송은 흰 벽에 커다랗게 글을 썼다. "살인자는 호랑이 잡는 무송이다." 그러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제 겨우 좀 만족스럽군. 가서 쉬자." 명말청초(明末淸初) 문인 김성탄은 무송의 말에 '절묘하게 멋진 말'이라며 맞장구쳤다. "기묘한 문장이요, 기묘한 붓이요, 기묘한 먹이요, 기묘한 종이로다."

류짜이푸는 한쪽에서는 사람을 죽여서 만족해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것을 칭찬하면서 만족해한다고 꼬집는다. 이렇듯 살인사건을 즐기는 문화적 변태행위가 이미 집단 무의식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류짜이푸는 루쉰의 말을 인용한다. "중국인들은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이는 것을 좋아한다. 뼛속 깊숙한 곳까지 피비린내 나는 이기주의와 무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 더욱 애석한 것은 그런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란은 정당하다"는 논리의 해악

류짜이푸는 "반란은 정당하다"는 '수호전'의 논리가 폭력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한다. 양산박의 '호걸'들은 "하늘을 대신해서 도를 행한다"는 기치를 내걸었기에 모든 악행까지 정당하다고 믿었다. 예컨대 주동(朱仝)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가 돌보던 지방관의 네 살배기 아이를 죽여버린다. 어쩔 수 없이 양산박에 가담하도록 내몬 것이다. 송강이 병에 걸리자, 의사 안도전을 데리고 오기 위해 하룻밤에 무고한 사람을 네 명이나 죽이기도 했다.

양산박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하지 않고, 강제적인 '개조'를 추진했다는 비판은 고전에서 현재의 문제를 포착해내는 류짜이푸의 통찰이 빛나는 대목이다. "송강의 봉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는 줄곧 제3의 공간이 없었다." 타인을 핍박하여 자기들의 생각과 입장, 방식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권모술수

류짜이푸에게 '삼국지'는 '수호전'보다 더 심각한 지옥의 문이다. '삼국지'는 권모술수와 음모를 집대성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유비·제갈량·손권·조조·사마의 등 주요인물은 모두 가면을 썼다. 겉으로는 전쟁터에서 역량을 겨루는 것 같지만, 실은 사기술과 권모술수, 기만술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유비(劉備)는 위장술의 달인이었다. 한때 조조 휘하에 있었던 유비는 조조를 제거하는 정치적 음모에 가담하면서도 아무 일 없는 듯 위장하고, 조조의 초대에 응했다. 조조가 "이 시대의 영웅은 오직 당신과 나뿐이오"라고 하자 놀라서 혼이 빠진 척하며 젓가락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조조(曹操)의 기만술은 한 술 더 뜬다. 조조 군대가 원정을 갔는데 식량이 바닥났다. 양식을 관리하던 부하 왕후(王厚)가 대책을 논의하자 그가 식량을 빼돌렸다는 죄목을 붙여 목을 벴다. 죄 없는 부하의 머리를 빌려 병사들의 분노를 잠재운 것이다. "정치적인 권모술수의 게임에서 생명은 이렇다 할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삼국지' 최고의 모사 제갈량의 지혜도 위선이었다. 맞수 주유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기뻐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는 그였지만 주유의 영전에서 "마음이 참으로 애통하다"며 대성통곡을 했다. 적들까지 그간 제갈량을 오해했다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방통이 제갈량의 위선을 꿰뚫었다. "자네가 주유를 죽게 만들고, 오히려 조문을 왔구먼. 분명히 오나라를 속여서 현인들을 없애려고 하는 게 아닌가." 제갈량 역시 본심을 숨기지 않고 크게 웃었다.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사나이들의 의리를 뜻하는 상징으로 신화화됐다. 그러나 저자는 도원결의 또한 패거리의 의리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이런 '결의'는 패거리에 속하지 않는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배타성을 갖고, 집단 내부의 작은 '의(義)'가 집단 외부의 사회적 대의(大義)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류짜이푸는 "중국 사회의 악질화는 이런 배타성에서부터 출발한다"고까지 했다.

'삼국지'와 '수호전'의 권모술수와 폭력, 여성 멸시는 이 작품들이 배경으로 삼은, 또는 쓰인 시대의 한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래서 류짜이푸의 비판은 균형감각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쌍전(雙典·삼국지와 수호전)'은 고전이 무조건적 숭배 대상이 아니라 긴장을 늦추지 않고 비판적 시각으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

 

 

(웹사이트에서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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