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장례식서 15분만에 박차고 나간 '웬수'

 

휘트니 휴스턴의 장례식은 매우 슬펐다. 그녀가 어린 시절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던 교회에서 장례식이 열린다는 사실부터가 그랬다. 지금도 동영상 사이트를 뒤져보면 장례식이 열린 바로 그 자리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어린 시절 그녀 모습이 있다. 그렇게 풋풋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가수로나, 배우로나 승승장구했던 그녀가 끝 모를 추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가수 바비 브라운과 결혼하면서부터다. 브라운은 마약을 상습 복용했으며 음주운전, 가정폭력 등으로 징역을 살기도 했다. 휴스턴이 약물에 손을 댄 것도 남편 때문이라고 한다. 질긴 인연이었다. 1992년 결혼해 2007년에야 이혼했다.
사실 휴스턴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어머니가 가스펠 가수였고 본인도 성가대 활동을 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후에도 그녀는 늘 성실하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 주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던 그녀가 브라운을 만나고 난 뒤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생방송 직전에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펑크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녀의 불행은 모순적이게도 영화 ‘보디가드’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 시작됐다. 남편은 그런 그녀의 유명세를 몹시 시기하고 질투했다고 한다. 휴스턴은 어떻게든 자신을 낮추느라 전전긍긍했다. 스스로를 휘트니 휴스턴이 아닌 “미세스 브라운”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2009년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심지어 남편이 자신에게 침을 뱉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녀는 “나는 남편을 그토록 사랑하는데 남편은 왜 나를 그토록 미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브라운은 여러 번 외도를 하며 휴스턴을 배신했지만 휴스턴은 무려 15년 동안이나 그의 곁을 지켰다. 휴스턴은 “결혼의 신성성은 내게 매우 중요했다. 나는 혼인서약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나는 한 번도 외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록 형편없는 남자와 맺은 약속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 한 그녀의 순수한 마음이 개인적으로 너무 가슴아팠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마침내 이혼했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망가진 목소리뿐이었다. 그녀의 재기를 도왔던 보컬 트레이너는 휴스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목소리가 아예 안 나오고 거친 숨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2009년 어렵게 새 앨범을 취입하고 활동에 나섰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야심차게 월드투어에 나섰지만 사람들은 전성기 시절에 비해 형편없어진 그녀의 노래 실력에 실망해 공연 중간에 대거 퇴장해버리기까지 했다.

프로의 세계에선 자기관리 역시 실력이라고 하니, 휴스턴의 인생이 망가진 것을 전적으로 그녀의 남편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좀 더 좋은 동반자와 함께였더라면, 그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을 지금도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휴스턴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마돈나는 여전히 수퍼보울 하프타임 공연을 하지 않는가.

휴스턴 유족들은 브라운이 장례식 참석 의사를 밝혀오자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평화로운 장례식이 되길 바란다”며 참석을 허락했다. 그런데 브라운은 장례식 당일 자신을 맨 앞줄에 앉혀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15분 만에 식장을 떠났다고 한다. 정말 악연이라는 게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휴스턴이 지금쯤 아픔 없는 곳에서 편히 쉬길 기도한다.

[중앙선데이]

  201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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