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송 (○)  (1)
준비찬송 (×)

흔히 예배 시작하기 전에 찬양 드리는 것을 “준비찬송”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하는 말입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지극히 소중하고 귀한 찬양이며 또 예배 의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처럼 귀한 찬송을 마치 어떠한 행사의 배경 음악이나  준비물, 분위기 조성용 따위로 세속화, 격하시키는 것은 찬송의 뜻에 대한 큰 모독입니다.


 일반적으로 “다같이 준비찬송하며 자리를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는데,

이런 경우 “먼저 자리를 정리하고 찬송하겠습니다” 라고 말해야 맞습니다.

모든 찬송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지 행사를 위한 준비용이 아닙니다. 
 
준비찬송 (×) / 찬송 (○)  (2)
 순서에 의한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찬송을 하는데 이것을 칭하여 대개 “준비찬송”이라고들 합니다.

찬송가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노래로 찬양하는 것이며 찬송가는 곡조 있는 기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찬송가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건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찬송가가 어떠한 절차의 준비물화 되어서는 안됩니다. 또 찬송가는 어디까지나 찬송가이지 행사의 앞, 뒤에 이용되는 장식물 같이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인도하시는 분들께서는 “준비찬송”이라고 하지말고 “찬송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시작하겠습니다

 크고 작은 모임(예배)에서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하는 사회자가 많이 실수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일 것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지금으로부터 제직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성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또는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직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성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렇게 시작하겠습니다’가 맞다. ‘무엇무엇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지금 목적하는 일을 진행하기 위한 준비 내지는 협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은 ‘회의를 진행하도록 한다’는 말이지 ‘지금 회의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묵도(默禱) (× )
묵상(默想), 조용한 기도(○)
 예배순서에서 대부분 “다 같이 묵도(默禱)함으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하는데 ‘묵도(默禱)’라는 말은 원래 기독교 예배순서에 없던 말이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말이다. 일본에서는 신사참배, 천왕숭배, 수백만개의 우상·잡신을 섬기며 그 앞에서 경배할 때 ‘묵도(默禱)’라는 말을 사용한다.
 일제침략 하에 있던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용어가 기독교 예배순서에까지 침투되어 사용되어 왔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말대로 ‘묵상(默想)’이나 ‘조용한 기도’라고 하는 것이 맞다. 
 
예배로의 부름(×) 예배의 부름(×)
예배로 부름(△) 예배로 부르심(○)
 ‘예배로의 부름’이나 ‘예배의 부름’이라는 뜻은 주님이 신자(성도)들을 예배로 인도하신 것을 교역자가 대신하여 “우리 다같이 뜻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합시다”라고 초청(부름)하는 말이다.
 하지만 ‘예배로의 부름’과 같은 말은 우리말에 어긋난 말이다.

 

찬송가를 부릅시다(×)
찬송가를 부르시겠습니다(○)
 말이나 글을 끝맺는 형식중에서 청유법(꾀임법)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말하는 이가 상대편에게 같이 행동하기를 요구(권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손아래 사람이나 동년배나 나이가 그리 많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같이 가자” “같이 감세” “같이 갑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손위 사람에게는 이같은 말을 할 수가 없다. 젊은 사람이 부모뻘 되는 성도들 앞에서 “찬송가를 부릅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럴 때는 “부릅시다” 대신에 “부르시겠습니다”가 더욱 좋은 표현이다.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X)  (1)
기도하겠습니다(○)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또는 “기도하시겠습니다” 이것은 합심기도나 통성기도를 하기위하여 인도자(사회자)가 권면적으로 말하는 것이다.“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기도하시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자기가 기도하는 인도자(사회자)가 비일비재한데, 이런 경우 언행이 맞지도 않거니와 자기자신을 높이는 실례다. 때문에 자기가 기도할 때는 아무말 없이 기도를 하던지 분위기(마음 집중)를 위해서라면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가 맞다.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기도하시겠습니다/기도하겠습니다  (2)
 ①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 합심기도 인도할 때
 ② 기도하시겠습니다 〓 정해진 사람이 기도할 때
 ③ 기도하겠습니다 〓 자기가 기도할 때

 예배나 행사 때 말씀을 끝낸 다음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또는 “기도하시겠습니다” 이렇게 “하시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기도는 자기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항상 보고 듣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기도하시겠다고 자기를 높이고 자기가 기도함은 하나님과 회중 앞에 큰 실례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기도할 때는 “기도하겠습니다”가 옳고 합심기도로 인도할 때는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가 맞고 순서에 따라 지명된 사람이 기도할 때는 “○○○이 기도하시겠습니다”가 맞습니다.
 우리들은 부지중에 잘못 전해 내려오는 틀린 말들을 습관적으로 그대로 사용하여 말의 뜻을 근본적으로 왜곡시킬 때가 많으니 특히 예배절차에 사용하는 말에 조심해야 합니다. 
 
말과 말씀
 예배 중에 “오늘 제가 하는 말씀에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여기에서 말씀은 지존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성경)을 말하는 것인데 인간인 “제가(내가)하는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의 말을 높이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런 경우 “제가 전하는 말씀”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성경에 근거)을 전하는 자가 자기의 말을 하는 것 같이 그것도 자기 말씀이라고 높이는 것은 큰 실례입니다.
 같은 밥이지만 어른이 잡수시는 밥은 진지라고 말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1)
목사님의 말씀(×)
 기독교 행사나 교회 예배 순서에서  설교 후 기도할 때 “목사님의 말씀으로 은혜 받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목사님 말씀에 많은 은혜 받았음을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렇게 ‘목사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 표현입니다. 성경을 기본으로 한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사자(목사)가 전함으로 성도들이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목사님을 통하여 주신 말씀” 또는 “목사님이 대언하신 말씀을 통하여”와 같이 반드시 “통하여”가 들어가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주의 사자(목사)가 전달하는 것이니까요. 
 
하나님의 말씀과 목사님의 말씀 (2)
 설교가 끝난 다음 순서에 따라 기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의 말씀에”, “목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받은 은혜가 감사하여···” 이렇게 기도를 하는데 설교는 성경에 의하여 하나님의 종(목사)이 대언하는 것이지 사람(설교자)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사람)의 말씀이라 하면 하나님의 말씀(성경)이 없고 사람의 말을 말하는 것임으로 큰 잘못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야 합니다.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대언하여 주셨으니까요.

    (○) 목사님을 통하여 받은 하나님의 은혜
    (×) 목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받은 하나님의 은혜 
 
 “아멘”을 대답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아멘”이란 말은 “확실하다” “확실히” “진실하다” “진실로” “참으로 옳다” “참으로 그렇게 될 지어다” 등의 뜻을 지닌 말입니다.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나 기도의 맨 끝에 “아멘”이라고 함으로써 그 설교의 내용이나 기도의 내용이 “그렇게 될지어다”라고 공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멘”을 일종의 대답으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출석부를 부를 때나 용무가 있어 호명하면 “아멘”으로 대답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예”라는 대답대신 “아멘”을 써서는 안됩니다. 기도끝에 “아멘”대신 “예”라고 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서약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송영  送迎(×)  頌詠(○)
 ‘어떤 한글세대 목회자가 시무하는 교회주보를 보았더니 예배순서 끝 부분에서 송영을 한문으로 송영(送迎)으로 써 있더라’ 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이 송영(送迎)이란 가는 이를 전송하고 오는 이를 영접할 때 부르는 찬송인 줄 잘못 안 모양입니다.
 물론 잘 못 쓴 말입니다. 송영이란 한자어로 송영(頌迎)입니다. 송영(頌詠)이란 말은 국어사전에도 없으며 일반인이 잘 안쓰는 교회 전문용어여서 어렵습니다. 그래서 경배송(敬拜頌), 영광송(榮光頌)이라고 하는 것도 좋습니다. 송영(頌詠)이란 ‘길이 칭송을 높이 읊어 노래한다’는 뜻입니다.

  頌(송) : 기릴 송
  詠(영) : 읊을 영

 

주여 ⇒ 주님 / 아버지시여 ⇒ 아버지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이렇게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주여”, “주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렇게 함은 어법상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말에서는 존칭은 2인칭 명사에 호격조사를 붙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나 선생님을 부를 때 “할아버지시여”라든가 “선생님이시여”라고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일상 언어에서 쓰이지 않는 “∼이시여”, “∼여”를 붙여서 “하나님이시여”라고 부른다면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신 분으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마땅히 “주여” 대신에 “주님”, “하나님 아버지시여” 대신에 “하나님 아버지”라고 해야 합니다. 
 
‘님’자를 붙이거나 뺐을 때의 차이
 사람들끼리도 상대방을 존경하거나 높혀서 말할 때 “아무개”님 이라고 “님”字를 붙혀서 말하고 낮추어 말할 때는 님자를 빼고 그저 “아무개”라고 부르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부르거나 말할때도 님字를 빼고 그냥 “예수”라고 부를 때가 많고 또 주님이라고 하지않고 “주”라고 할 때가 많은데 반듯이 “님”字를 붙여야 합니다.
 특히 기도할 때 “주여!” 하지말고 “주님!”이라고 불러야 하고 성령님을 부를때도 반듯이 “성령님!” 이렇게 님字를 붙혀서 불러야 합니다. 세상 부모의 이름을 부를때도 ○○○님, ○○○씨 이렇게 부르는데 성자 성령을 부를 때 끝에는 “님”字가 꼭 붙여져야 합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신 주님(×)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신 주님(○)
 회중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건지신 이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잘 못하는 기도입니다. 건진다는 것과 구원한다는 말은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비슷한 말같지만 우리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당치않은 말입니다.
 기독교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피)의 능력과 은혜(공로)만으로 영혼이 구원받는 종교이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원의 절차적 역사를 이룩하신 주님을 구주로 믿는 종교입니다. 주님은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지 그저 건져놓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건지시고 구원하신 주님” 이렇게 하면 뜻이 되겠지만 이것은 이중성이 있으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이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회중 앞에서 기도할 때는 경우와 사리와 뜻에 맞는 용어를 구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새겨서 들으시겠지만 듣는 사람들은 갈등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보혈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기독교의 지도자는 기도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준비를 많이 하고 기도에 임해야 하는데 회중을 대표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잘못하여 심지어 기독교의 교리에 위배되는 망발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은혜로....”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교리에 위배되는 말입니다. 만일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지 안하셨으면 세상에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쳔이라면 누구나 주님의 부활을 믿고 기독교는 유일한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 말고 세상 어디에 부활의 종교가 있습니까?
죽으신 주님 이라함은 이것은 영영 죽어 없어짐을 말하는 것이니 이런 무지하고 욕된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이렇게 “부활”이란말이 꼭 들어가야 합니다. 용어 하나가 잘못 구사되어 자칫 이단같은 말이 될 때가 있으니 기도자는 열심히 공부 좀 합시다.
 
간구의 기도에서 ‘시’ 字가 붙여질 때와 빠질 때의 엄청난 차이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은 유일신이시며 지존이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께 간구의 기도를 할 때 최고의 경어를 써야하는데 대개 습관적으로 “○○을 주옵소서”, “○○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주옵소서”라고 하는데 이것은 절대 경어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자식이 부모에게 “밥 좀 주오”, “학교에 가게 해주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에다 ‘시’ 字만 붙여지면 완전한 경어가 됩니다. “○○을 주시 옵소서”, “○○을 하여 주시 옵소서”
이렇게 우리들은 하나님께 최고의 경어로 기도해야 합니다.
         *  주오에서 온 말 = 주옵소서
         *  주시오에서 온 말 =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옵소서(×) 하시옵소서(○)
주옵소서(×) 주시옵소서(○)

 사람들 사이에도 지위가 높거나 연세가 많은 어른에게 부탁의 말을 할 때 최상의 존경하는 말씨(경어)로 하는 것이 예의이며 또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하물며 지존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의 기도를 할 때 “○○을 주옵소서”, “○○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최고의 경어가 아닌(이리 주오, 그렇게 하오 이런 말투에서 나온 말씨) 말로 하지말고 시字 한字만 더 넣어 “○○을 주시옵소서”, “○○하게 하시옵소서” 이렇게 하면 최고 경어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육친 외 부모에게 “○○을 주십시오”, “주세요” 이렇게 하지 않고 “○○을 주오”, “○○을 하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한시바삐 고쳐야 할 일입니다.
  
기도할 때 “이 한시간 ○○○”은 잘못
관례 관습에 따른 잘못된 말 고쳐 쓰기
 각종 행사나 예배시 기도하는 내용이 관습에 따라 “이 한시간 기도합니다”, “이 한시간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이 한시간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시간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등등 이 한시간이란 말은 정해진 시간 몇시에서 몇시까지 지금 이 시간 국한되어 있는 의미일진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관습에 따른 잘못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은혜 받고 응답 받고 감사하며 살 것인데 이 한시간으로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한시간은 60분입니다.
 
하나님께 보답(報答)해 달라는 기도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간구의 기도를 할 때나 예물을 드린 후에 이를 축복하는 기도중에 “드린 손길에 보답(報答)해 주시옵소서”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여기서 보답(報答)이란 말은 큰 잘못입니다.
 보답(報答)이란 말은 “남으로부터 받은 호의 또는 고마움이나 은혜를 갚는 것” 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물질중에서 은혜에 감사하여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가 보답(報答)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보답(報答)해 달라고 비는 것은 마치 육신의 부모에게 작은 용돈을 드리고 “아버지, 어머니, 저에게 보답해주세요”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드린 손길에 복을 주시옵소서” “더 많이 드릴수 있는 복을 주시옵소서” “만복으로 채워주시옵소서” 라고 해야 옳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는 있지만 보답 받을 자격은 없습니다.
 
- 기도할 때 바른용어 -


 예배 시 무심코 사용하는 우리말, 의외로 잘못 통용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도할 때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영광과 존귀,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라면 우리의 말도 최고로 높여드려야 할 것이다. 일례를 들어 “OO을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때가 있는데 이는 엄밀히 말해 경어가 아니다. 이때에는 시자(字)를 넣어 “OO을 하여 주시옵소서”가 지당한 표현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자주 오용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중복표현이다. “보혈의 피로 씻어 주시옵소서”라고 하면 언뜻 듣기에 맞는 말 같지만, 이는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또는 “보배로운 피로 씻어주시옵소서”가 맞는 말이다. 보혈은 보배로운 피를 의미하기에 말이다.


 셋째로 ‘몸된 교회’. 기도담당자가 무심코 한 이 말을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여기에서의 몸은 우리의 몸이 아닌 주님의 몸을 의미하기에 “주님의 몸된 교회”가 정확한 표현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 (○) 몸된 교회 (×) 우리들의 몸된 교회 (×)  (1)

 예배시간에 대표기도나 헌금기도할 때 “몸된 교회로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혹은 “우리들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라고 기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된 곳입니다. 이를 그냥  ‘몸된 교회’라거나 ‘우리들의 몸된 교회’라고 하는 것은 큰 망발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특히 예배시 대표기도나 헌금기도하는 분들은 명심하셔야 합니다.
 
우리 몸 된 교회 (×) 주님의 몸 된 교회 (○) (2)
 신년사에 어느 분이 쓰신 글 중에 “우리 몸 된 교회를 더욱 건강하고…” 이렇게 교회를 우리 몸 된 교회라고 한 것에 대하여 적지 않은 질문을 받아 공동질문에 공동 대답식으로 이 글을 씁니다. 우리들은 말씀을 전할 때나 기도할 때 웬만한 것은 생략하고 또는 빼놓고 하는 잘못을 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조각의 잘못이 큰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우리 몸 된 교회”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큰 잘못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 된 성전인데 우리의 몸 된 교회라 하면 우리가 주님이란 뜻으로 풀이되니 대단한 잘못이요 망발입니다. 또 “몸 된 교회”라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것도 분명히 “주님의 몸 된 교회”라고 해야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습관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변명도 있겠지만 이런 글과 말을 읽고 듣는 사람은 은혜는 고사하고 반발이 생기는 것이니 깨우치고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38선과 휴전선을 구별하여 기도해야 함
북한 구원과 남북통일을 위해 기도할 때
“38선을 없애 주십시오”, “38선을 무너뜨려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기도입니다.

38선이라함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연합군의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점유하기로 한 협정에서 북위(北緯) 38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점유 주둔하게 된 선이 소위 말하는 38선이고 6.25 사변(한국전쟁)이 시작되어 전쟁을 하다가 남북(연합군 포함)간에 휴전 협정이 이루어졌는데 이 시점에 남북이 각기 차지하고 있던 땅을 경계로 휴전한 것이 현재도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휴전선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휴전선을 없애 달라 무너뜨려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38선은 통일과 아무관계 없는 선입니다.
 
‘당신’이란 호칭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을 ‘당신’이라고 칭하여 시비를 겪는 일을 종종 볼 수 있다.

당신이라 일컬음은 나이나 신분이 동등한 친분 있는 처지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부모님께 “당신이 이렇게 저렇게 하셨습니까?” 라고 말한다면 당장 뺨을 맞을 일이다.

 

그런데 적지않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당신의 종이”, “당신에게” , “당신의 뜻대로” 등등 하나님 아버지를 감히 당신이라고 칭하는 때가 많다. 이것은 큰 망발이다. 3인칭으로 우리 아버지께서는 당신 스스로 당신의 일을 다 하신다. 이런 경우는 당신이라고 칭할 수 있다. 그러나 2인칭에서는 어른에게 더구나 절대주권자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당신이라 함은 적합하지 않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나님의 종’ 이렇게 해야 맞는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주님의 보혈의 은혜로(○)
주님의 피 공로로(×)              주님이 흘리신 피의 은혜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 받았다” “주님의 피 공로로 구원 하셨다”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흘리신 구원의 보혈을 “공로”라고 말함은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공로를 세우셨다는 말인데, 이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공로”라는 말은 한 사람이 소속한 단체나 기관, 사회와 국가를 위하여 세운 공적을 말하는 것인데 “예수님의 피공로” “보혈의 공로”라 함은 마치 우리 육의 부모가 우리를 생육하여 주신 것을 “우리 부모의 공로로 내가 잘 성장했다”라고 하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주님의 보혈의 은혜로” “주님이 흘리신 피의 은혜로” 라고 해야 맞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공로를 세워야지, 어떻게 주님이 우리들에게 공로를 세우십니까?
 
주님의 보혈(寶血) (○), 보배로운 피 (○)
보혈(血)의 피 (×)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우리의 죄를 “주님의 보혈의 피로 씻어 주시옵소서”, “보혈의 피로 덜어주시옵소서” 이렇게 습관적 기도를 하는데,

이것은 같은 말이 중복 사용되는 잘못입니다.
보혈(寶血)이란 “보배로운 피”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기도할 때 주님의 “보혈(寶血)로 씻어 주시옵소서”라고 하든지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씻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면 됩니다. 굳이 중복되게 “보혈의 피”라고 하는 것은 “교회 문전(門前)앞에서(서울 역전앞에서)”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보혈: 보배로운 피
  寶 = 보배 보
  血 = 피    혈 
 
하나님이 장중에 품어주심(X)   (1)
하나님이 장중(掌中)에 품어주심 (×)
하나님이 장중(掌中)에 잡아주심, 붙들어주심 (○)
하나님 품에 품어주심 (○)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품과 장중(掌中)을 구별하지 않고 “지난 한 주간도, 하나님 장중(掌中)에 품어 주셨다가” 또는 “하나님 장중(掌中)에 품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이 장중(掌中)이란 말은 손바닥 속이란 뜻입니다. 손바닥은 붙들 수는 있어도 품을 수는 없습니다. 품을 수 있는 곳은 품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품에 품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 맞습니다. 장중(掌中)이란 말을 사용한다면 “장중(掌中)에 잡아 주심” 또는 “붙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 맞습니다.
 掌  손바닥장  장 / 中  가운데중  중 
 
품(가슴)에 품어주시고(○)  (2)
장중(掌中)에 품어주시고(×)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 장중(掌中)에 품어 주시고” 이렇게 “장중(掌中)에 품는다고하는데 장중(掌中)이란 말은 손바닥안 이란 말입니다. 손바닥으로 붙들고 잡을 수는 있지만 품을 수는 없습니다. 품는다는 것은 암탉이 병아리를 품는 형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할 때 “하나님 품에 품어 주시고” 이렇게 해야 맞습니다.
 손바닥(장중)으로는 품을 수가 없고 품(가슴)만이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습관으로 하는 말을 들어온 용어중에 고쳐야 할 이런 용어들이 빨리 고쳐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롭고 넉넉하고 포근한 품에 안김이 얼마나 행복한가 생각만 해도 은혜가 되고 좋지요. 잘못된 말은 하루속히 바로 잡아야지요.
 
처음 시간이 아닌 처음 시간 (1)
예배 시간 대표 기도할 때 ‘지금은 처음 시간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 성령님께서…’ ‘처음 시간이 오니 마치는 시간까지 주님께서…’ 등 ‘

처음 시간’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없다.
예배가 시작되어 이미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였고 찬송가로 찬송을 하여 이미 예배는 진행 중에 있는데,

다시 ‘처음 시간’ 운운하는 것은 어폐가 있기 때문이다.
 정히 이런 말을 인용하고 싶으면 ‘지금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이렇게 하면 정확한 아뢰임 기도가 되는 것이다.
 필요 이상 좋은 말 좋은 표현을 하려고 하면 자칫 오류가 생긴다. 무엇보다 우리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순수하게 경어를 사용하면 된다.
 
때와 순서에 따라 사용해야 할 말 (2)
예배순서 중간에 기도할 때
“지금은 처음 시간입니다”(×)
 예배순서는 예배로의 부르심이 첫 시간이고 찬송이 두 번째 시간, 신앙고백이 세 번째 시간이고 찬송이 네 번째 시간이고 기도(대표기도)는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이 다섯 번째 시간에 기도를 하면서 “지금은 처음 시간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라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말입니다.
 처음시간은 이미 지나갔으니 “지금부터 마치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축복과 복의 엄청난 차이(1)
 많은 기도 중에 “하나님 ○○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는데,

이것은 언제부터인지 잘못 전해져온 습관이고 이 경우에 ‘축복’은 잘못 쓴 말이다.
 “하나님 ○○에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고쳐 써야 한다.
 국어사전에 보면 ‘축복’은 행복을 빎, 또는 신의 은혜를 구하여 빎으로 되어 있다. ‘축복(祝福)’은 복을 달라고, 주라고 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다. 복을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또 누구에게 복을 빈다는 말인가?
 복을 주시는 주체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단순히 누구를 위해 복을 빌어 주시는 분 정도로 전락시키고 말았으니 이는 잘못된 용어이다.
 
복(福)과 축복(祝福)의 뜻 구별 (2)
 ‘복’이라 함은 건강, 권세, 성공, 승리, 범사형통, 부귀영화가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구원, 성령충만, 기도응답 등이 포함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축복(祝福)해 달라”는 기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축복이란 ‘빌 축(祝) 복 복(福)’으로 ‘남을 위해 복을 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축복(祝福)을 주시옵소서”라고 하면 하나님이 누구에게 복을 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유일신이고 지존이신데 누구에게 복을 빌어달라는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복(福)을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복(福)과 축복(祝福)의 구별(3)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복(福)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장본인)이니까요.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할 때는 “축복(祝福)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해야 맞습니다.
 축복(祝福)이란 누구에게 복을 주라고 빈다는 뜻이므로 “즉, 예수님에게 아버지 하나님께 빌어 주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목사님 축복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지 “목사님 복 주세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 祝 = 빌 축, 福 = 복 복)

 

복을 놓고 (4)
하나님께 기도할때는 복주시옵소서
예수님께 기도할때는 축복해 주시옵소서

 축복(祝福)이란 복을 빈다는 뜻입니다. 한자로 쓰면 빌축(祝) 복복(福)이고, “축복해주시옵소서”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복을 빌어 달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누구한테 빌어달라는 말인데 우리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습관적으로 “축복해주시옵소서”이렇게 하는데 이것은 대단한 잘못입니다. 창조주이시며 지존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려면 “복을 주시옵소서”이렇게 해야지 하나님께 감히 누구에게 빌어달라는 말입니까
 예수님께 기도할때는 “축복해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위에 하나님이 계시니까 예수님! 하나님께 “빌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이치에 맞으니까요.
하나님께 축복해 달라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에게 빌란 말이냐? 하시면 대답이 없지요. 
 
덮는 것과 씻는 것
 많은 사람들이 아래와 같이 기도를 하는데 ①과 ②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①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 주시옵소서
 ②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①의 경우는 어떠한 물체를 보이지 않게 또한 안전하게 덮는 것을 의미하며

②의 경우는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씻어서 흔적 없이 깨끗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덮는 것은 덮어둔다는 것으로 없어진 것이 아니며 씻는다는 것은 빨고 닦아서 흔적 없이 깨끗함을 의미하는 것이니 보이지 않게 덮어놓는 것보다 흔적조차 없이 깨끗하게 씻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주의 종과 주의 사자
 주의 종과 주의 사자는 같은 뜻의 말이다.

둘 다 심부름을 맡아 하는 자, 전하는 자란 의미인데 ‘사자’란 말은 신분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이며 ‘종’이란 표현은 신분을 낮추어서 한 말이다.
그러므로 교인이 기도할 때는 일반적으로 신분을 지칭하여 주의 ‘사자’라고 할 것이며, 목사나 장로가 자기를 가리켜 표현할 때는 겸손한 뜻으로 ‘주의 종’ 또는 ‘부족한 종’ ‘비천한 종’으로 표하면 된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종’이니 ‘사자’라 하는 말을 잘 쓰지 않으므로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 구체적인 직분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더욱 좋겠다.                     
‘기도했습니다’와 ‘기도합니다’ (1)
 많은 경우 기도를 마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현재형의 사용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라는 현재완료형 또는 과거형으로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이는 바르지 못한 우리말 사용이다.
 기도(祈禱)는 글자 그대로 그 핵심이 하나님께 아뢰는 우리의 간구를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도는 우리의 소원이며, 소원은 미래에 이뤄질 일에 대한 바람을 담고 있기에 과거형 마무리가 적당치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기도하였습니다’로 끝내는 것은 어폐를 갖는다. 왜냐하면 간구는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영원한 현재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의 마무리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 “기도합니다”로 해야한다.
 
기도했습니다.(×)와 기도합니다.(○)  (2)
기도를 마칠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현재형을 써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했습니다”라고 과거형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관습에 젖은 잘못입니다.
기도(祈禱)는 하나님께 아뢰임이며  빌 꺼리를 가지고 간구하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이 간구의 대화내용은 대부분 소원이며 소원은 미래지향적인 것입니다.

 

지금 기도를 하면서 “기도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마치 지금 밥을 먹고 있으면서 “밥을 먹었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했습니다”는 지금 이전의 일이고 “합니다”는 바로 지금 일입니다.
우리들은 반듯이 “기도합니다”라고 해야 바른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했습니다/ 합니다/ 하겠습니다.
      했습니다.     합니다.     하겠습니다.
        過去          現在             未來
  지난 시간(날)     지금           앞으로
       어제             오늘             내일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무리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잘못입니다.

이것은 지금이 아니고 지금 이전에 기도했다는 보고 형식입니다. 지금 기도하는 것은 지금 현재 하는 것이니 “기도합니다”라고 해야 맞습니다. “기도했습니다”는 그 전에 했다는 뜻으로 사후에 보고하는 격이 되니까요. 우리 목사님(조용기 목사님)이 기도하시는 것을 듣고 배웁시다.

목사님은 분명히 “기도합니다”, “기도하옵나이다” 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강조하여도 과하지 않은 것이 바로 알고 바로 행하자는 것입니다. 현재 밥을 먹고 있으면서 “밥 먹었습니다”고 하면 말이 됩니까? 과거와 현재를 분명히 하여 기도합시다. 
 
헌금기도 할 때 - “말씀에 감사하여 물질드리기를 원합니다”는 잘못
헌금기도자가 기도할 때 “○○목사님을 통하여 주신 말씀에 감사하여 물질 드리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기도입니다.

예배 끝에 하나님께 각종 예물(십일조, 주일헌금, 감사헌금, 선교헌금, 건축헌금, 기타헌금)을 드리는 것은 교회의 제도이고, 성도의 의무인데 “주신 말씀에 감사하여” 라고 기도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께 조건부로 예물을 드린다는 것이 됩니다.
구원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어 항상 복된 삶에 감사하고 성도의 도리를 다하는 헌금을 “말씀에 감사하여”로 국한시킨 말은 잘못된 기도입니다.
성도의 도리를 다하여 믿음의 분량대로 드리는 것이 헌금이고, 감사하여 드리는 예물은 감사헌금이란 명목이 있습니다.
 
갚아 주시옵소서(×)
채워 주시옵소서,복을 내려 주시옵소서(O)
 구역예배나 모든 예배 끝에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여 각종 예물(헌금)을 바칩니다. 이 예물(헌금)을 축복하는 기도를 할 때 “드린 물질에 만 배로 갚아 주시옵소서” 또는 “30배, 60배, 100배로 갚아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하는데, 이처럼 “갚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만배로 복을 주시옵소서”, “100배로 채워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받아 갚아야 할 빚진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주옥(珠玉) 같은 말씀’이란 말의 잘못 사용
 예배에서 예물을 드리는 기도 때 많은 사람들이 “주옥(珠玉) 같은 말씀에 감사하여…”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의 주옥(珠玉)에 비하여 주옥(珠玉) 같다고 하는 말은 대단히 잘못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 만드신 주옥(珠玉)에 비교하여 말함은 하나님을 매우 모독하는 말입니다.
 주옥(珠玉)이란 쉽게 말해서 구슬이란 말이고 옛말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구슬이다”라는 말과 같이 꿰어야 일종의 노리게에 불과한 것을 주옥(珠玉)같다고 말함은 천부당 만부당한 말입니다.
 주옥(珠玉)이란 말을 쓰고 싶으면 “주옥(珠玉) 보다 더 귀한 말씀”이라고 하면 되겠지요.
 珠  : 구슬 (주)     玉 : 구슬 (옥) 
 
예배와 기도회때의 바른자세


대표기도할때의 자세
 ‘국가조찬기도회’는 각계 각층의 지도자급 크리스천들이 모여서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입니다. 이번 국가조찬기도회를 TV로 보면서 대표기도자와 각 기도제목의 담당기도자들이 한결같이 기도문을 써 가지고 나와 대중을 쳐다보고 읽는 모습을 보고 놀랬습니다. 이것은 마치 세상 행사에서 연사가 연설문을 읽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기도문을 읽으면서) 사람들을 왜 쳐다봅니까? 써 가지고 나왔으면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읽는 것이 바른 자세이며, 하나님께 아뢰는 자의 자세이지 자꾸 고개를 들어 왜 사람들을 봅니까?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자세(행위)입니다. 우리교회에서 하는 대표 기도자의 본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통일” 이란 잘못된 말
 우리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많은 기도를 하는데 이때 “남북이 복음통일 되기를 원합니다”,“복음통일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며 기도하는 것을 종종 듣습니다.
 그런데 ‘복음통일’이란 말 자체가 잘못된 말입니다. 이럴 경우 “복음으로 통일”, “복음 안에서 통일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 복음을 통일 운운함은 마치 복음이 몇 개로 갈라진 것 같은 인식을 주는 것임으로 대단히 잘못된 말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이치에 맞고 분명한 말로 똑똑히 해야합니다.


민족(民族)과 국민(國民)의 구별
국가(國家)와 민족(民族)을 위하여 기도할 때 민족(民族)과 국민(國民)을 구별하지 못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민족(民族)이란, 오랫동안 같은 지역에서 공통생활을 함으로써 언어나 풍습, 문화가 같고 조상전래의 역사가 같은 국내외에 존재하는 인간집단(겨레)을 말합니다. 또 국민(國民)이란, 한나라의 통치권 안에 결합하여 구성된 나라안에 살며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어 의무와 권리를 준행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들이 4500만 민족이라고 하는데, 우리 민족은 해외와 이북에 살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해야 하므로 대개 7500여 만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4500여 만이라 하면 우리나라안에 살고 있는 국민의 숫자를 말하는 것인데, 국민의 수와 민족의 수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면 넌센스가 되기 쉬운 것입니다. 외국인이 귀화하면 우리 국민이 되지만 민족은 못됩니다. 


잘 못 듣고 잘 못 배운 것을 고치고 바로잡기
 우리들은 초신자 때에 가까운 주위에 있는 가족이나 성도나 구역장의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성장하여 구역장-지역장,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목사의 직분을 가지고도 초신자 때 듣고 배운대로 기도를 하게 되고 뜻을 아는 식자들로 하여금 반발적 이의를 하게 됨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기도를 마칠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렇게 해야 할 것을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라고 하니 “합니다”는 현재(지금)이고 “했습니다”는 과거(지금 이전)를 뜻 합니다. 기도할 때는 지금에 해당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교회의 당회장 조용기 목사님은 우리들의 스승이요 영적 어버이시며 지도자 십니다.

이러한 목사님이 기도하실 때 “기도했습니다”라고 안하시고 반드시 “기도합니다” 또는 “기도드립니다”라고 하십니다.

목사님의 가르침을 배워 그전에 잘못 듣고 배운 것을 고쳐서 “기도했습니다”라고 하지말고 “기도합니다”로 바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지도자들은 “기도했습니다”와 “기도합니다”는 어떻게 다릅니까? 하는 성도들의 질문을 없이하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은 지도자의 기도하는 것을 배우니까요..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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