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약성서의 형성사

 

구약성서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장로회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한 바 있고 현재 한일신학대학교 객원교수로 있는 박창환 교수의 <성경의 형성사>의 내용을 요약, 소개하고자 한다.

《 유대인 역사학자인 요세푸스(Josephus, 100A.D)는 구약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며 일정한 계시의 기간에만 기록된 것이고 그 내용 자료의 거룩한 성격 때문에 세속적 문헌과는 구별되는 것이며, 그것을 다치기만 해도 손이 부정을 타고, 단어 하나도 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루살렘 함락 후 30년이 되는 해에 에스라가 기도의 응답으로 구약성서를 40일간에 걸쳐서 다섯 명의 조수에게 불러 주어 받아쓰게 했다는 것이다. 즉, 에스라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약 전체를 암송하여 불러 주었다는 것이다. 구약경전이 이렇게 해서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2세기 그리스도인에게까지 번졌고, 에스라 때에 구약 정경이 단번에 다 완성됐다는 설은 계속 유대교와 기독교에 유행되고, 개신교에서도 채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 이런 설을 부인하고 있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 얼마 안 돼서, 곧 느헤미야 시대에, 국가적 분열이 생겨서 사마리아인들이 따로 나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사마리안인들은 구약의 첫 다섯 권, 곧 5경만을 성서로 인정한다. 그것은 그들이 분열하던 시대에 경전으로 간주되던 것이 5경뿐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에 다른 책들도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가졌다면 사마리아인들이 5경만을 경전으로 가지고 나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구약성서(히브리어)를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율법서 5권(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예언서 8권(전기예언서 - 여호수아,사사기,사무엘,열왕기 후기예언서 - 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12소선지), 성문서 11권(시편, 잠언, 욥기, 전도서, 솔로몬의 아가, 룻기, 예레미야의 애가, 에스더,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 다니엘)의 도합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개신교도들이 사용하는 성서(39권)의 구약 부분은,

'70인역'(LXX,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서)과 거기에 근거한 라틴어역 불가타(Vulgata)의 배열순서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기원후 90년에 얌니아(Jamnia)회의에서 유대인학자들이 39권으로 된 구약성서를 정경으로 결정하고 선포했을 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유대인들은 이의를 제기했다. 구약성서에다가 외경까지 다 넣어 가지고 그것이 정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들의 헬라어 번역 구약성서(70인역)는 배열을 다르게 했다.

 

첫 부분인 율법서를 제외하고는, 순서를 많이 바꾸어 버렸다. 유대인은 율법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성서라면 우선 율법을 생각하게끔 되었었다. 율법은 온통 그리고 완전하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준 것이고, 따라서 율법의 한 글자라도 모세 자신이 창안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죄를 받는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율법서를 자세히 검토해 보면 그것은 하나의 합성문서이고 오랫동안 자라고 발전되어서 이루어진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증거는 율법서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신명기 34장는 모세가 죽은 후의 일을 말하고 있고, 5경에 여러 번 블레셋 사람들이 언급되어 있지만(창21:34, 26:14-18, 출13:17) 실은 기원전 1200년 경(모세의 출애굽시대는 기원전 1300-1200년경)까지는 그들이 팔레스틴에 나타나지 않았었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정설이다. 그러므로 모세 시대보다 훨씬 이후에 된 부분들을 5경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뿐 아니라 5경에는 같은 사건에 대하여 서로 다르게 묘사하는 기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창조이야기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브엘세바가 어떻게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사이에 맺은 계약에서, 또하나는 이삭과 아비멜렉 사이에 일어난 사건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창 21:31 , 26:33). 또 벧엘이란 이름의 기원도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는 길에 환상을 보는 이야기에, 또 하나는 야곱이 몇 해 후에 밧단아람에서 돌아올 때의 사건에 나타난다(창28:19, 35:15). 하갈이 추방되는 이야기도 둘이 있는데, 하나는 그녀가 이스마엘을 낳기 전에 추방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마엘이 커서 소년이 되었을 때에 추방되는 이야기이다(창16:6이하, 21:9이하) 창조설화도 역시 뚜렷하게 다른 두 가지로 나타난다. 창세기 1장에는 세상 만물과 동물까지 창조된 후에 남자와 여자로 사람이 창조된다. 그러나 2장에는 남자가 먼저 창조되고 다음에 동물, 그리고 마지막에 여자가 창조된다. 홍수에 대한 기사도 두 가지다. 하나는 노아가 모든 짐승을 한 쌍씩 방주 속에 넣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고(창6:19), 또 하나는 정결한 동물은 일곱씩, 부정한 동물은 한 쌍씩 넣으라고 명령을 받는다(창 7:2).

 

이와 같이 이야기가 중복된 것은 5경을 오늘의 형태로 작성한 사람들(편집자들)이 그 사건들에 대한 두 가지 기사들을 앞에 놓고 그 자료들을 정직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취급하는 의미에서 그 두 가지를 다 나열한 것이라고 보인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볼 때, 5경은 유대인의 전통적 견해처럼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아쓴 책이 아니라는 것과, 따라서 5경은 하나 이상의 문서의 편집으로 형성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러 문서들(J문서-야훼이스트 사료층, E문서-엘로히스트 사료층, D-신명기 사료층, H문서-Holiness Code, P문서-제사적 사료층 등) 중에서 P문서를 골격으로 하여 다른 부분들이 거기에 맞추어졌다고 본다.

 

이리하여 기원전 400년경에 창세기,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이렇게 다섯 권이 제일 먼저 성서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구약성서의 둘째 부분인 예언서는 기원전 2세기 초에 성서로 채택되었으며 성문서가 공식적으로 유대인의 성서로 채택되기까지에는 역시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성문서는 우선 일반 백성이 널리 알고 읽던 인기 있는 책들이었다. 율법이나 예언서처럼 전체적으로 또는 공식적 결정에 의해서 성서 정경에 들어오게 된 것이 아니었다. 히브리 백성들의 일반 종교문학으로 간주되어 전해 오다가, 익명의 책들이어서 그 저작자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과거의 어떤 위대한 인물(다윗, 솔로몬, 에스라 등)이 쓴 책으로 돌려 정경에 넣었다. 이렇게 전승된 성서들이 정경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주후 90년 경얌니야에서 유대 랍비들과 학자들의 회의가 열렸고, 그 회의에서 구약성서의 책들이 최종적으로 낙착되어 그 수가 오늘날 우리의 구약성서의 그것과 꼭 같은 것으로 결정된 것이다. 》

 

이상이 개신교의 구약 39권의 형성사이며, 천주교의 구약은 이와 달리 46권으로 되어 있다.

 

☞ 구약성서의 여러 가지 사료들

학자들은 구약성서의 5권(토라, 흔히 모세 5경이라고 한다.)이 다음의 여러 갈래의 구두전승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에 대해서 보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 야훼계(J문서) :

창세기에서 하느님을 야훼(Yahweh)라 부르는 전승. 신을 인격화하여 표현.

 

* 엘로힘계(E문서) :

하느님을 엘로힘(Elohim)이라고 부르고 있는 전승.

신을 인격화하지 않음. 야훼계는 교리에 밝지 못하지만 엘로힘계는 교리에 밝은 사람들이 수집한 것임.

 

* 신명계(D문서) :

주로 신명기에 수집된 법률과 관습을 담고 있음.

 

* 제관계(P문서) :

제사장들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레위기의 나머지 제사법과 5경의 나머지 역사 부분들을 포함함.

 

 

2. 신약성서의 형성사

 

구약성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성서도 여러 저자에 의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 기록된 책들이 오래고 또 복잡한 역사를 통해서 집성되어 이루어졌다. 신약성서 역시 고스란히 하늘에서 기록되어 사람에게 떨어진 것이 아니고, 또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불러 주어 기록하게 하신 것도 아니다.

교회는 신약성서의 어느 부분도 가지지 않은 채 오랫동안 발전하여 나갔다. 신약 정경이 곧 나타나지 않은 것은 여러 원인이 있는데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는 사도 교회가 종말적 기대를 강하게 가졌다는 데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곧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고 새 세계를 완성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긴 앞날을 계획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가 요구될 뿐이었다. 문서로 된 정경이 있어야겠다는 욕구가 생기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그들이 기대가 수정되고, 급박한 하나님 나라 실현의 희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그들이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은 영구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문서운동 같은 것은 생각할 여기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복음이 구두로 전달되던 시대가 적어도 30년 이상 흘렀다. 제일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도 그 저술 연대를 기원후 60년 이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고 보면, 구전시대가 한 세대 이상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당시 크고 작은 많은 복음서들이 나돌아 다니고 교회에 혼잡을 조성하였었는데 어떻게 해서 4복음서만이 남아 승자의 관을 쓰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교회가 어째서 네 개의 복음을 그냥 가지고 있었을까? 그 수를 줄이거나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의도는 없었는가? 서로 약간씩 다른 네 개의 복음서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곤란을 가져다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족보가 각각 다르다. 요한복음서는 성전을 정화한 사건을 예수 생애의 초기에 두었고, 반면에 다른 세 복음서는 그 말기에 두었다. 첫 세 복음서는 예수가 유월절 후에 십자가에 달린 것으로 기술하였는데, 요한복음서에는 유월절 전에 십자가에 달린 것으로 기록했다. 예수님의 부활설화도 복음서마다 차이점을 지닌다.

 

이런 것들을 아는 교회가 네 개의 복음서를 하나로 만들어 조화시켜 보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았을까? 기원후 180년경에 타시안(Tatian)이라는 사람이 소위 디아테사론(Diatessaron)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4복음서를 종합한 것이었다. 얼마 동안 이것이 매우 영향이 매우 컸고, 4복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결국은 실패하고, 얼마 후에는 그 책이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공동서신이 한 그룹으로 모인 것은 상당히 후대의 일이었고 그 과정은 퍽 느렸다. 2세기말까지도 베드로 전서와 요한1서만이 보편적으로 수락되었을 정도이다. 계시록은 처음에 널리 알려졌고 인정되었다. 1세기 때에는 비단 요한 계시록만이 아니라 헤르마스의 목자와 베드로 계시록도 널리 사용되고, 상당히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2세기 후반경에 이르러서는 이 묵시서들이 인기를 많이 잃게 되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마지막이 임박했다고 하는 약속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만 요한 계시록만이 교회의 광범한 인정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일부의 반대를 받아왔다. 그리하여 이 책이 정경으로 채택되어 상당히 견고한 위치를 얻기까지는 200년 이상이나 싸움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실상 그 싸움은 그 후까지 계속되었고, 현대 교회에서도 그 책을 정경에 완전히 넣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말이 떠돌고 있다.

교회사상 처음으로 나타난 신약성서 목록인 무라토리 정경목록(AD170)에는 현재의 신약 27서 중에서 베드로 전,후서 , 야고보서, 요한3서, 히브리서가 빠져 있다. 베드로 전서를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어려운 투쟁을 거쳐서 정경으로 채택된 것이다.

유세비우스(270~340)는 정경을 호모레고메나(Homolegomena)-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진 책, 안티레고메나(Antilegomena)-일부의 반대가 있었던 책, 노타(Nota)-가짜책의 세 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 후서, 요한2·3서를 안티레고메나에 분류했고, 요한 계시록은 호모레고메나에 분류했지만 노타에 넣어야 된다고 자기의 의견을 덧붙였다.

논란의 대상의 되었던 책들이 가졌던 문제점은 사도 저작성의 문제, 즉 그 책들의 저작자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을 정경에 넣기 위해서 히브리서는 바울의 저술로, 야고보서를 주의 동생에게, 유다서를 예수님의 또 다른 동생에게, 베드로 후서를 베드로에게, 요한2,3서를 요한에게 돌려 그 사도의 이름을 빌렸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키릴(AD315~386)은 신약성서의 강의목록에서 계시록을 제외한 모든 책을 소개하였고, AD367년에 와서야 아타나시우스가 지금의 신약성서와 똑같은 목록을 제시하였다. 이 신약성서 27권을 393년에 힙포 레기우스에서, 397년에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각각 정식 채택하였고 어거스틴도 이 정경을 지지하였다. 그것이 마침내 제롬의 라틴어 번역(Vulgata)을 통하여 전 서방 교회에 유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신약 27권 중에서 베드로후서, 요한2,3서, 유다서, 계시록을 제외한 정경이 5세기 초에 수리아 말로 번역, 발표되어 표준성서의 구실을 하였는데 그 성서를 페쉬타(Peshitta)라고 부른다. 동방 수리아교회는 지금까지도 계속 22권짜리 신약성서를 정경으로 가지고 있다.

 

3. 서로 다른 정경

 

구약성서는 몇 권일까? 천주교(46권)와 개신교(39권) 사이에 차이가 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주해 살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보다도 당시 국제어인 그리스(희랍)어가 더 익숙했다.

그래서 기원 전 3세기 중엽에 그리스어에 정통한 72인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는데, 100여 년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를 '칠십인역'(셉튜어진트 희랍어판)이라 하며, '알렉산드리아 정경'(Alexandrian Canon)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에는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구약성서'의 정경 39권(제1경전) 외에도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권 일곱권과 다니엘서 일부(3,24~90;13~14장), 에스델서 일부(10,4~16,24)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제2경전 혹은, 외경이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얌니야 회의'에서 유대인 랍비들이 결정한 것은 결국 이들 제2경전들은 정경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고, 이들을 정경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따라서 '히브리어 구약성서'전통의 입장에서는 제2경전들은 정경 밖의 책, 즉 외경이 되는 것이다.

'얌니야 회의' 이후부터 구약성경의 정경은 두 가지 전승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즉 본래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서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외경들을 제외시키는 '히브리어 구약성서' 전승과 외경들을 포함시키는 '희랍어 구약성서' 전승이다. 초기 기독교회에서는 희랍어로 번역된 '희랍어 구약성서'를 읽었다. 즉 기독교회는 구약성서에 있어서 '희랍어 구약성서' 전통을 채택한 것이고, 이것은 로마 카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에 의해 계속해서 유지되어 내려왔다. 즉 로마 카톨릭교회는 '희랍어 구약성서' 전승을 받아들여 온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정경전승은 마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에 의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루터는 정경문제에 관해서 히브리어 구약성서 전승을 취하였다. 그리하여 제2경전들을 외경으로서 정경의 범위에서 제외시켰다. 그리하여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Protestant Church)에서는 외경을 제외한 39권의 책만을 구약의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트렌트 종교회의(Trent Council, 1545-1563)가 소집되었고, 정경문제에 대해 제2경전들 중에서 몇 권을 정경에서 제외한 외에는 종래의 '희랍어 구약성서'의 기본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로마 카톨릭교회에서 사용하는 구약성서는 개신교회보다 7권의 책이 더 많은 구약성경을 사용해 오고 있다.

개신교는 외경을 일체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반해 천주교는 구약외경들 중에서 7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신교의 성서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도합 66권이나 천주교의 성서는 구약 46권과 신약 27권으로 도합 73권인 것이다.

 

외경을 넣느냐 빼느냐의 차이는 결국 교리의 차이로까지 이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지금 기독교인들이 공통적으로 쓰고 있는 한글개역판 성경, 공동번역판 등의 신약성서에 인용된 거의 대부분의 인용문은 '70인역'이라고 주(注)가 달려 있어 70인역에서 인용되었음을 알 수 있고, 70인역에는 외경이 포함되어 있으니 개신교에서 외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고 본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는 언제라도 외경을 빠뜨린 적도 없으며 더구나 집회서 같은 것은 교회의 전도에 아주 널리 쓰인 경전이라는 것이다. 개신교의 구약성경(39권)은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서 정한 것일 뿐이고 기독교 전통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천주교회에서는 예수시대, 사도시대, 교부시대를 통해서 지금까지 그리스어로 된 칠십인역[제1경전(정경 39권)과 제2경전(외경 7권과 다니엘서 일부, 에스델서 일부) 46권을 모두 성서로 인정해 왔다. 특히 가장 오래된 성서 사본인 쿰란동굴의 구약성서 사본도 칠십인역과 일치하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성서를 인용할 때 칠십인역에서 300구절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서 다음의 구절들을 제시하고 있다.  

 

마태 6,14 / 집회 28,2 마르코 6,15 / 집회 48,9~10

루가 13,27 / 1마카 3,6 루가 24,4 / 2마카 3,26

요한 3,12 / 지혜 9,16  로마 1,20~32 / 지혜 13,10~19  1베드 1,6~7 / 지혜 3,5~7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일체의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1) 외경의 어느 책도 스스로 영감 받았음을 주장하지 않는다

2) 유다인들이 정경으로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다.

3) 외경의 많은 책들이 역사적, 지리적, 연대기적 실수들을 포함하고 있다.

4) 외경의 많은 책이 성경 말씀과 모순이 된다 등등이다.

 

이러한 외경들로 인해 개신교와 다른 교리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1) 연옥: 마카베오하서 12장 39-45절

2) 구제(즉 자선 행위)에 의한 구원: 집회서 3장 30절

이외에도 자살을 인정한다든지(마카베오하서 14장 43-46절), 비참한 노예제도를 인정한다든지 (집회서 33장 24-28절), 윤회(솔로몬의 지혜서 8장 19,20절)를 인정하는 구절들이 있으며,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몰래 죽이거나 마술을 통해 신비주의를 행하는 것 등을 인정하는 구절들이 있어, 우리 개신교인들이 믿는 성경과 상치된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개신교 정경만 가지고도 그 안에서 서로 모순되는 말씀들, 비과학적인 내용들, 노예제도와 윤회를 인정하는 말씀구절 등은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모두 언급해 나갈 것이다.

에라스무스(Erasmus)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후서, 요한2,3서, 유다서, 계시록 등이 옛날부터 계속 의심을 받아왔다고 지적하였으나, 그는 충성된 로마 카톨릭교회 교인으로서 자기 주장을 고집하려고는 하지 않았다고 하며, 루터는 에라스무스가 상기시킨 7권의 이의서(異議書) 중에서 넷만을 문제 삼았다.

히브리서에 대해서는 배교자(背敎者)들에게 두 번째 사죄를 허락지 않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야고보서에 대해서는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것보다 행위를 더 고조하는 것같이 보인다고 비난하였고, 유다서는 베드로 후서에서부터 생겨난 것으로 보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증언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으며, 계시록은 애매하여 그리스도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들을 자기의 번역에서 신약성서의 맨 끝에 두었다. 먼저 그가 완전히 수락한 23권을 열거하고 그 번호를 적어 넣었으며, 다음에 약간 여백을 남겨 놓았다. 그리하여 그 다음에 오는 책들은 질적으로 낮은 수준의 것임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그 열등함을 나타내는 의미에서 번호도 붙여놓지 않았으니 결국 일군(一群)의 신약 외경과도 같은 취급을 한 셈이다.

정경과 외경의 구분은 여호와신이 한 것도, 예수가 한 것도 아니다.사람들,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주교는 구약에 7권의 정경을 추가한 데 반해 동방수리아 교회는 오히려 신약에서 5권을 줄여서 정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경을 다르게 사용하는 이들은 서로를 각각 이단시하고 있다. 정경은 과연 몇 권이 되야 맞는 것일까?

 

4. 성서의 사본과 역본들의 문제

 

성서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5,000개가 넘는 필사본들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필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문제, 수많은 사본들의 취사선택의 문제 등등......

 

1) 필사과정에서의 문제

《 옛날에 이 필사본들은 만드는 방법은 흔히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한 개인이 한 자 한 자 옮겨 써서 만드는 법인데,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알파벳에는 유사한 글자들이 여럿 있어서 아주 성실한 사사일지라도 종종 혼동을 일으켜서 잘못 옮겨 쓰는 일이 생기곤 하였고 더구나 옛날에는 원어 성서에서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필사할 때 여러 가지 종류의 과오를 일으켰던 것이다.

또 한가지 방법은 한 사람은 읽어 주고 여러 서사들이 받아쓰기하는 방식으로 단 번에 서사의 수만큼 많은 사본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서사들이 그 문서내용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 자연히 잘못 듣고 쓰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글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경우 등에는 많은 착오가 생기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후대 헬라어에서는 '우리'라는 말과 '너희'라는 말의 발음이 거의 구별할 수 없으리 만큼 같았다. 그러므로 신약성서의 서신들에서 사본마다 각각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본래 어떤 인칭이 사용되었는지 결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때로는 이러한 차이가 고의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데 마태복음의 가장 오랜 사본에는 주기도문(마 6:6~13)이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라는 말로 끝난다. 그런데 후대 사본에는 그 끝에 의식(儀式)에 사용하기 알맞은 송영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라는 두 마디 송영이 되었지만, 후에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라는 세 마디 송영이 되었다. 이와 같이 교회 의식의 발전과정을 통해 약간의 고의적 첨삭이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때로는 금욕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성서 사본이 변하는 경우도 생겼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 9:29에 본래는 "기도하지 않고는 이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고 되었던 것이 후에 금욕적 사상의 영향을 받아 "기도하고 금식하지 않고는...."으로 변하였으며, 사도행전 10:30과 고린도 전서 7:5 등도 그러한 예다. 또 때로는 필사자가 다른 책에 있는 병행 구절들과 조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보충 삽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골로새서 1:14은 "우리는 그의 아들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라고 되어 있는 것인데, 후대의 어떤 사본에는 에베소서 1장 7절과 조화시키기 위해서 '그의 피로'라는 말을 첨가했다.

이와 같이 실수로, 또는 고의로 사본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차이가 생긴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내용이 바뀌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어쨌든 원문 비평학자들의 피땀어린 노력에 의하여 오늘 우리는 성서 원본에 거의 가까운 것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여기까지가 신학대학 교수가 말한 내용이다.

 

"근본적으로 내용이 바뀌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고 지금 성서원본에 거의 가까운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뒤에서 좀 더 솔직한 신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필사과정에서 너무나 오류와 변개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 성서의 사본들

현재까지 구약에 대해서 알 수 있는 텍스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마소라 원문(the Hebrew Masoretic Text) : 10세기 말

 

1) 벤 하임 편집본 --> BHK1(Biblia Hebraica Kittel1,1906)

BHK2(1912)

벤 하임이 편집했던 본문은 어떤 한 히브리어 사본만을 따른 것이 아니라 입수 가능한 모든 사본을 참조하여 만든 절충 본문으로, 대부분 14-16세기에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후대의 사본들이다.

2) 벤 아세르 편집본 --> BHK3(1937),

 

BHS(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1977)

 

BHK3 와 BHS는 레닌그라드 사본(B19a 또는 "L")을 기초로 해서 편집되었는데, 그것은 레닌그라드 사본이 완전한 히브리어 성서의 가장 오래된 사본이라는 점과, 그것이 10세기에 인정받았던 벤 아세르 본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BHK3 와 BHS는 대부분의 현대 영어성경의 번역의 기초가 되고 있는데, BHK1 이나 BHK2 에 비교해 볼 때 20,000에서 30,000 군데 차이가 있다. 현재는 히브리 대학에서 레닌그라드 사본보다 그 이전인 A.D. 930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알렙포 사본에 근거한 히브리어 성경인 HUB를 발간하고 있는 중이다. KJV, ASV, RSV 등이 초기 맛소라 본문을 사용했으며, NEB, NASV, GNB, NIV 등은 BHK3을 사용했고 NKJV는 BHS를 사용했다.

▷ 쿰란의 사해문서(BC1~AD1세기)

 

이 고대 사본은 1947년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사해 근처 쿰란의 동굴에서 구약의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책의 사본이 발견되었다. 이 사본이 유태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의 고문서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종교의 창시자는 '이스라엘의 구세주' '정의의 교사' '이사야의 고뇌에 찬 종' '하나님의 아들' 등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괴로운 죽음을 맞을 운명에 처했다. 그는 고문을 받았으며 흉악한 제사장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힌다. 그러나 그는 다시 부활해 세계를 구원하고 최후의 심판을 기다린다. 그는 인내와 인간성과 형제애, 자선과 빈곤을 가르치며 새로운 계율과 정의와 세례, 그리고 성찬(聖餐)을 만든다. 동굴에서 발견된 비밀사본의 이 사람이 누구냐고 퀴즈에 낸다면 거의 모두 '예수'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사해사본'에 적혀 있는 이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록돼 있지 않다. 오직 '구세주'라고만 표기돼 있으며, 천국을 만들기 위해 최후 심판의 날까지 고민하는 사람을 구원해주는 인물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 사람을 예수라고 단정한다면 간단한 일이지만 문제는 이 구세주가 예수보다 1백50년 전에 살았다고 추정된다는 점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크리스찬이 믿는 예수는 오직 단 한사람의 인물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가르침은 이미 그 이전에 다른 사람에 의해 설교된 것을 예수가 되풀이한 것이란 말인가?

 

구약 삼경(三經:율법서, 예언서, 성문서)의 완전한 정본은 오늘날까지도 유동적이다. 금세기만 해도 영국에서 긴스버그의 히브리성경(1894, 1908, 1926)이 마소라텍스트에 의거하여 고대 수사본들을 정밀히 대조하여 새로 나왔고, 또 독일의 구약학자 키텔과 카아레에 의한 『비브라이카 헤브라이카』(1906, 1912)가 있다. 현존하는 최고사본(最高寫本)보다 일 천년이나 앞선 사해두루마리가 1947년에 다시 발굴됨으로써 70년대에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팀들이 새로운 성경을 준비중에 있었다.

다음은 신약의 사본들이다

▷ 시나이 사본(4세기경) 구약이 199개, 신약 147.5개의 양피지에 기록되어 있는 헬라어 성서 사본이며, 신약 성경 본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물 중 하나이다. 이 사본에서 마가복음은 16:8절에서 끝나고 요한복음 7:52-8:11의 간음한 여자의 기사는 빠져 있다.

▷ 바티칸 사본(4세기초) 외경의 므낫세 기도서, 마카베오서를 제외한 희랍어 성경 전체를 수록하였으나 현재는 상당 부분이 파손되어 있다.

▷ 알렉산드리아 사본(5세기초) 원래는 외경을 포함한 희랍어 성경 전체를 담고 있었으나 현재는 구약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신약도 일부가 빠져 있다.

구약은 2명, 신약은 3명에 의해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 워싱톤 사본(4세기말~5세기초), 에프라임 사본(5세기초), 베자 사본(5, 6세기) 등등

19세기 이래 많은 성서 사본들이 발견되고 성서원문 비평학의 발달에 따라 다음과 같은 "현대 비평판 헬라어 신약 성서"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바흐(1812), 라흐만(1851), 트레겔레스(1872), 티쉔돌프(1874),웨스트코트와 홀트(1881), 네슬(Nestle)판 헬라어 성경(1-26판, 1898-1979)

3) 고대 역본(譯本)

 

▷ 셉츄아진트(Septuagint, 70인역, 구약 헬라어[그리스어] 번역본 )

셉츄아진트는 기원전 280년 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헬라어를 하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성서로 '70인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셉츄아진트와 마소라텍스트는 체제와 내용이 많이 다르다. 마소라 텍스트는 토라, 네비임, 케투빔의 삼경(三經)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반하여 셉츄아진트는 율법, 역사, 시, 예언의 네 부분으로 나뉘고 많은 외경(外經)들이 사이사이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쓴 구약은 희랍어 번역본인 셉츄아진트(Septuagint,70인역,알렉산드리아 번역판)이며 지금 신약에 인용되고 있는 구약의 구절들도 모두 셉츄아진트에서 온 것이다.

70인역 구약성서(LXX)와 유대교 성서(타낙)가 따르고 있는 마소라텍스트(MT)는 서로 다른 독법(讀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두 성서의 원본이 다르거나 필사과정에서 수정 및 삭제 혹은 보충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 것이다

▷ 탈굼(Targum, 아람어 번역본): 기원전

▷ 페쉬타(Peshitta, 시리아 번역본): 2세기에 신약의 일부 번역, 4세기에 신약 22권 번역, 6세기에 27권 전체 번역

▷ 라틴 벌케이트(Latin Vulgate, 라틴어 번역본): 4세기말 제롬이 번역한, 오늘날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식 성서. 이 성서가 1,000년이나 내려오면서 그 내용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고 수정되고 첨가되면서 복잡한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13세기에 스테판 랑튼이 이 라틴 번역에다 장(章)을 구분해 놓았고 많은 교정을 붙였고 우리는 오늘날까지 그 때의 장 구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라틴어 성서는 그 사본이 약 8,000개나 된다고 하며, 그것들을 모두 대조하여 제롬의 원 벌게이트 성서를 찾아내는 작업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역시 원본이 없는 상태이고 또 그 내용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고 수정되고 첨가된 것이라는 말이다.

4) 서로 다른 텍스트(사본)와 번역본들

다음의 도표는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말씀보존학회'의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것이며, 제목은 <한글KJV성경>對<개역한글판성경>,대조표 이다. 원래는 "㉮보존된 성경: 하나님께서 기록 --> 최조의 원문 ⓐ히브리 맛소라 원문 ㉯변개된 성경 : 사탄이 변개 --> 바빌론-그리스-로마의 신비종교---> ⒜오리겐" 과 같이 적혀있었으나 필자가 중립의 입장에서 다루기 위해 " ㉮KJV,한글킹제임스 성경 ㉯ NIV ,개역한글판성경"라고 고쳐서 사용하고자 한다.

 

㉮KJV(영어),한글 킹제임스 성경

㉯ NIV(영어), 한글 개역판,

  ⓐ히브리 맛소라 원문(Hebrew Massoretic Text)

  ⓑ코이네 헬라어 표준원문(Koine Greek Textus Receptus)

  ⓒ구 시리아 역본(The Old Syriac, A.D.120)

  ⓓ구 라틴 역본(Old Latin, A.D.150)

  ⓔ이태리 교회에서 사용한 성경(A.D.157-A.D.180)

  ⓕ골 교회에서 사용한 성경(A.D.177-A.D.200)

  ⓖ켈트 교회에서 사용한 성경(A.D.300)

  ⓗ발칸과 독일 지역에서 사용한 성경(A.D.400)

  ⓘ비잔틴 제국 기간 동안 희랍 교회들에서 사용한 성경(A.D.312-1453)

  ⓙ헬라어 표준원문(Textus Receptus)

  ⓚ에라스무스 성경(1522),

  ⓛ콜리네우스 성경(1534),

  ⓜ스테파누스 성경(1550),

  ⓝ베자 성경(1604),

  ⓞ엘지버 성경(1633)

  ⓟ틴데일 성경(1525)

  ⓠ루터 성경(1543)

  ⓡ킹 제임스 성경(Authorized King James Bible, 1611)

  ⓢ새성경 사복음서(1998)

      새성경 1판(신약, 1990)

      새성경 2판(신약, 1990)

      새성경 3판(한영판 신약, 1991)

      새성경 4판(신약, 1992)

  ⓣ한글 킹 제임스 성경(신구약 합본, 1994)

  ⓤ한영대역 한글 킹 제임스 성경(1995)

⒜오리겐(A.D.184-254)의 헥사플라(Hexapla)제 5란-70인역(LXX, Septuagint)

⒝유세비우스의 50권의 복사본

⒞바티칸사본(Vaticanus, A.D.350),

⒟시내사본(Sinaiticus,A.D.350) : "외경"포함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Latin Vulgate, A.D.415)

⒡예수회의 림즈 듀웨이 성경(Rheims Douay, 1582)

    여러 비평가들이 편집한 헬라어 성경들

⒢그리스바흐(1812), ⒣라흐만(1851),

⒤트레겔레스(1872),⒥ 티쉔돌프(1874)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헬라어 성경(1881)

⒧영어 개역본(RV, 1884)

⒨네슬(Nestle)판 헬라어 성경(1-26판, 1898-1979)

⒩연합성서공회(United Bible Societies)의 헬라어 성경 1,2,3판(1966-1975)

⒪개역표준역본(RSV, 1952),

⒫여호와의 증인 - 신세계역본(NWT, 1957)

⒬새미국표준역본(NASV, 1959),

⒭새개역표준역본(NRSV, 1970)

⒮새국제표준역본(NIV, 1978),

⒯뉴킹제임스역본(NKJV, 1982)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1956) - 첨가와 삭제가 임의로 이루어짐

⒱공동번역 성서(1977)

⒲현대인의 성경(1986)

⒳현대어 성경(1991)

⒴표준새번역(1993)

㉮성경을 사용하는 기독교인들은, 한국을 비롯하여 기독교인들의 절대다수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을 사탄이 변개한 성경이라고까지 비난하고 있다. ㉮성경과 ㉯성경은 그 텍스트를 서로 달리함에 따라 무려 30,000군데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루터와 칼빈이 읽던 성경과 지금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읽는 ㉯성경이 30,000군데가 다르다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대본으로 ㉮성경은 벤 하임 마소라 원문(봄 베르그 편집본)을 사용한 데 반해 ㉯성경은 벤 아세르 맛소라 원문을 기초로 한 키텔의 히브리어성경(BHK3)과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스튜트가르텐시아"(BHS) 외에 70인역(LXX), 시리아 역본(페쉬타), 사해 사본, 사마리아 오경, 소수의 히브리어 필사본들, 아퀼라 역본, 심마쿠스 역본, 테오도티안 역본, 벌게이트(라틴어 역본), 탈굼, 제롬의 적스타 헤브라이카(Juxta Hebraica) 등의 원문을 혼용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신약성서의 대본으로 ㉮성경은 전통원문(다수필사본, 비잔틴 원문, 시리아 원문)을 대표하는 헬라어 공인 원문<표준원문, Textus Receptus>를 사용한 데 반해 ㉯성경은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헬라어성경, 네슬&알랜드의 헬라어성경 등의 현대 비평판 성서를 주로 사용하였다.

㉮성경을 주장하는 측은 ㉯성경의 대본으로 사용된 70인역을 엉터리 번역판이고 변개된 의역판이라고 혹평하고 있으며 또 현대 비평판 성서에 대해서도 표준원문을 5,600군데 이상 변개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대본으로 사용된 ⓚ에라스무스 성경에 대해 박창환 교수는 에라스무스가 참고한 사본들 중에는 10세기 이전 것이 하나도 없었고 계시록을 위해서는 12세기 사본 하나만을 사용하였고, 마지막 장이 없어진 사본이었던 까닭에 거기에 있어야 할 여섯 절은 라틴 벌게이트에서 거꾸로 헬라어로 번역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너무도 서둘러서 출판하였고 아주 후대의 열등한 사본들을 자료로 했기 때문에 헬라어 신약성서의 공인 원문(Textus Receptus)의 조상이 되기에는 전혀 무가치한 것이라고 에라스무스 자신도 고백하였다고 한다. 사실 그는 계시록의 마지막 여섯 절만 아니라 다른 부분도 벌게이트를 기초로 해서 헬라어 본문으로 고쳐 놓은 것이라 한다.

박창환 교수는 오히려 최초의 한글번역성서는 공인원문을 대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그 내용에 잘못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며 성서 원문 비평학의 발달에 따라 최신 비평판 성서를 대본으로 번역되는 새번역 성서들은 원본에 가까운 원문을 대본으로 삼은 번역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결론은 서로가 서로의 대본들을 부정확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박창환 교수의 말 중에 "원본에 가까운 원문을 대본으로 삼은 번역"이라는 구절에 대해서이다. 여기서 "원본"은 신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예수가 말한 '아람어'에서 희랍어(그리스어)로 번역된 성경을 말한다. 물론 이 원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5000개가 넘는 사본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람어 --> 희랍어 --> 영어의 번역과정에서 아람어는 예수의 목소리와 함께 증발해 버렸고 무수히 많은 희랍어 번역사본들 중에서 심혈을 기울여 예수가 말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원문을 추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평학이 고도로 발달되어 거의 원본(희랍어)에 가까운 희랍어 원문이 만들어진 것이 소위 현대 비평판 헬라어(희랍어) 성경이고 그 헬라어 성경의 원문을 대본으로 번역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본도 문제가 있지만 또 번역의 과정에서 얼마나 본래의 뜻이 왜곡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가 말한 메시지가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물론 '하나님의 감동' 운운하는 것이겠지만 현재의 성서번역에 수많은 오류가 발생하고 이 번역판은 못 믿겠으니 새로운 번역판을 만들자는 식으로 해서 발행된 새로운 번역판은 미국만 해도 100여 종류가 넘는다. 그리고 번역의 오류뿐 아니라 복음서끼리 서로 모순이 발생하는 것으로 볼 때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증거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성경 구절을 임의로 삭제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있다.

5) 삭제 당한 성경 구절

개역 한글판(1956), 공동번역 성서(1977), 현대인의 성경(1986), 현대어 성경(1991), 표준새번역(1993) 등의 성경에는 "없음"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구절이 13군데나 있는데 이 구절들이 한글 킹제임스성경에는 그대로 실려 있다. 그 중에서 일곱 개의 구절은 예수가 직접 말한 내용인데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 예수는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말하였지만 무려 일곱 군데나 삭제를 당한 것이다.

지금 "없음"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구절은 다음과 같으며, 이 중에서 [ ]안의 구절들은 예수가 직접 말한 구절이다.

마태복음 [17:21], [18:11], [23:14]

마가복음 [9:44], [9:46], [11:26] 15:28

누가복음 [17:36] 23:17

사도행전 8:37 15:34 28:29

로마서 16:24

이런 구절들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전달되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믿음과 맞지 않기 때문에 고의로 삭제해 버렸다고 한다.

한글개역판 등의 성경과 한글킹제임스 성경은 서로 다른 텍스트를 기반으로 번역한 까닭에 많은 부분에서 서로 상이한 구절들이 많고 결국에는 교리까지 완전히 틀려지게 되어 버린다. 따라서 '한글개역판' '공동번역판'등의 성경을 고집하는 기득권 세력은 한글 '킹제임스'성경(1994)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킹제임스'성경측은 '한글개역판' 등의 성경을 사탄이 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누가 옳을까? 어차피 '원전'이 없는 까닭에 이 번역판이 옳니 저 번역판이 옳니 하며 싸울 수밖에 없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일 것이니 중세시대 천주교의 종교재판이나 장로교의 창시자 칼뱅(Jean Calvin)이 그와 교리를 다르게 주장하던 세르베투스 등을 모조리 처형한 것처럼 교리를 다르게 주장하는 자들을 모조리 죽여 없앨 수 없는 작금에 와서는 그 시시비비를 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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