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 8장. 노울런,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11-76. 

 

1. 복음서들은 예수의 전기(biography)를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 것은 예수라는 한 독특한 인격을 만남으로 삶이 변화된 사람들의 공동체 속에서의 고백적 증언이다.

 

“복음서들은 역사라는 형식을 빌려 자기네 신앙을 증언하고 있으며 이 신앙에 비추어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 (월터 카스퍼, 예수 그리스도, 104).

 

2. 따라서 복음서에 근거하여 예수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재구성할 수는 없다.

ex) 마태와 누가의 예수의 유년기 이야기: 구약의 모세이야기를 본 따 유형적으로 묘사한다. 그 것은 예수가 구약의 완성자임을 보여주려는 신학적 의도에서 기록된 것이다.

 

-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 대해서도 복음서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

공관복음서: 예수는 예루살렘에 한 번만 상경했고 거기 체류 중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따라서 공관 복음서만 있으면 예수의 공적 활동기간은 대략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예수의 공적 활동 무대는 주로 갈릴리와 갈릴리 호수 주변의 몇 촌마을이었다.

 

요한복음서: 예수는 세 차례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월절을 지냈다(요2:13, 6:4, 11:55). 곧 예수는 갈릴리와 예루살렘 사이를 모두 네 차례 내왕한 것으로 나타난다(2:13, 5:1, 7:10, 12:12). 따라서 예수의 공생애는 약 3년 정도가 된다. 또한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의 주요한 활동은 주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난다.

 

물론 공관 복음서에도 예루살렘에서 충돌과 분쟁이 있었다는 암시가 있다(마23:37 이하). 따라서 이 두 가지를 종합해 보면 예수는 초기에 갈릴리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한동안 성공을 거두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당대 유대교의 대표자들이 자기를 미워하고 죽이려 하는 것을 알게 되자 공적 무대에서 몸을 감추고 가까운 몇몇 제자들하고만 지내다가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체류하고 있던 때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처형되었던 것 같다.

 

3.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학자들 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우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 다음의 것들을 상당한 확실성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1) 예수는 대략 기원전 7년부터 30년까지 팔레스틴 땅에서 살았다. 곧 예수는 로마 제국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년-기원후 14년)때 탄생하였고(눅 2:1 참조), 티베리우스 황제(기원후 14년 -37년) 사이에 활동하였다. 예수가 ‘여우’라고 부른 (눅13:32) 헤롯은 당시 갈릴리의 분봉왕 이었다 (기원전 4 년-기원후 39년, 눅 3:1 참조).

 

2) 사복음서는 모두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 것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근거 있는 것 같다. 이는 초대 교회의 공동체 신학이기에는 너무 부담이 되는 (즉 세례 요한이 예수 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3) 예수 선포의 중심은 하나님의 나라였다(마3:2).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셨고 그 것을 가르쳤고 그 가운데 십자가 죽음에 이르셨다. 그런데 요한은 하나님 나라를 심판의 날로 선언하는데 예수는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날로 선언한다. 즉 예수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는 기쁜 소식이며 하나님의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은혜에로의 초청이다.

 

4)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태를 보였다. 그는 죄인들 및 종교 의식적으로 부정한 사람들과 사귀고(막2:16 등), 유대교의 안식일 계명을 어기고(막2:23 등), 정결법을 폐기했다(막7:1). 또한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여인들과 아이들을 대하였다.

그는 가난과 질병으로 시달린 사람들을 먹이고 고쳐 주셨으니 그에게는 가난과 질병이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생각처럼) 하나님의 처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사랑과 긍휼이 필요하다는 표식이었다.

또한 예수는 당시의 지배계층들을 비판하였지만 그 것은 결코 정치적인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예수의 활동에서는 계획적이라든가 조직적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전혀 없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뜻을 그가 깨닫는 대로 실천에 옮겼다. 그는 그 밖의 모든 것을 그저 어린 아이처럼 아무런 걱정 없이 자기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맡겨 드렸다. 예수는 자주 깊은 기도에 침잠하곤 했고 이런 기도를 통해서 그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생각처럼) 하나님이 두렵고 거룩한 분이기보다 무한히 자비로우시며 사랑이신 분임을 깊이 체험했다. 그리고 이 체험 속에서 예수는 하나님은 죄인들도 사랑하며 그들에게도 자비롭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었다.

 

질문: 어이하여 예수는 이런 하나님 이해를 가지게 되었는가? - 그 것은 그가 ‘다른’존재였기 때문에. . . .

 

5) 하지만 예수의 이런 철저한 ‘사랑의 하나님 나라’의 삶과 메시지는 정결법에 근거하여 당시 사회를 인도해 가던 사두개파, 바리새파, 서기관등의 종교지도자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에 그들은 예수를 로마에 대한 정치 반역자로 몰아 붙여서 로마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처형했다.

 

6) 그런데 예수는 그 자신을 메시야로 이해하였고 또 그렇게 가르쳤는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메시야 상이 다양한데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예수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수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특별한 부르심을 입은 사람 곧 예언자로 이해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그런데 당시 유대교는 하나님의 영은 예언자들의 시대 이후 꺼져 버렸고 하나님은 오랫동안 침묵하고 계시며 역사의 마지막이 이르러서야 하나님의 영은 다시 활동할 터인데 그 징조는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던 예언자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 점에서 예수는 자기 자신을 종말의 때에 나타날 그 예언자 (the eschatological prophet)로 이해했다. 그리고 예수는 점점 자기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하나님에 대한 순종으로 받아들였다. 아마 예수는 자기의 운명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가운데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간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예언자의 운명과 같은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7) 역사적인 예수는 복음서가 말하듯이 사흘 후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한 사실로 알면서 죽음을 맞았는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한 초대 교회가 예수의 입에 넣어서 한 말이다) 하지만 예수는 하나님은 그 의인을 고난과 죽음 속에서도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곧 그에게 있어서 부활이란 하나의 명확한 사실이 아니라 긴장과 불안 그리고 의심을 수반하는 믿음이었다.

 

8) 역사적 예수는 자기 죽음을 만인의 죄를 사하는 죽음으로 인식했는가? 또한 그는 자신을 요한복음이 말하는 대로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삼위일체의 두 번째 인격으로 이해했는가? 그 것은 전혀 그럴 법하지 않다. 그 것들은 예수의 부활을 체험한 초대 교회 공동체가 예수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숙고하면서 나온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신학적 해석이며 신앙 고백이다.

 

하지만 그 것은 또한 오늘의 우리 교회가 받아야 하고 고백해야 하는 믿음의 내용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오늘 우리가 가진 성경이 성령의 역사 속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수 당시의 사회 상황 (The social world of Jesus)

 

읽을거리: 마가복음 9장- 16장, 노울런,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77-152

 

1.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식민지: 이스라엘은 주전 63년 로마의 점령지가 됨. 주전 4년까지 대 헤롯에 의해 다스려지다가 그의 사후 그의 삼등분 되어 세 아들이 각각 한 부분씩 다스렸다. 이중 헤롯 아켈라오가 다스리던 유대(judea)는 주후 6년부터 빌라도와 같은 로마의 총독들에 의해 다스려졌다.

 

2. 팔레스틴 땅은 대부분이 조그만 마을들로 이루어진 농촌 지대였다. 농촌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조그만 땅을 직접 경작하는 자영농들로 이들은 곡식, 채소, 과일, 포도, 올리브, 또한 양, 소, 염소 등을 길렀으나 무척 가난했다. 농촌지대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으나 예루살렘 같은 대도시에는 이방인들도 같이 살았고 이 점에서 도시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metropolitan city였다.

 

3. 예수 당시의 1 세기 팔레스타인은 위기의 세계였다. 사두개파, 바리새파, 열심당들 사이에는 아주 심각한 내적 갈등과 외적 위협이 있었다. 이들이 그나마 겉으로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로마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곧 로마의 강력한 군사력에 의해 겉으로는 평화와 질서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것은 언제나 불안한 평화였으며 마침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중심한 이스라엘은 주후 70년의 로마 군대의 침공으로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4. 예수 당시의1 세기 유대 사회는 "성결 전통(sacred tradition)"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였다. 유대 사회는 종교적, 도덕적 법뿐 아니라 형법, 민사법, 가정법, 심지어 조세법의 모든 일반법까지 곧 사회의 모든 법과 관습과 규칙을 여호와 하나님을 정점으로 한 성결 전통에 근거해서 형성했다. 즉 유대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들의 사회를 움직이는 통상적인 삶의 지혜(conventional wisdom)에 근거해서 살았다.

이 지혜는,

1) 모세 오경(토라)에 대한 해석에 근거해 있었고

2) 보상과 처벌의 원칙에 근거해 있었으며

3) 그 자체가 사회적 신분을 구성하고 있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1 세기 유대인들에게 가장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고백이었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선민으로 뽑힌 유대 민족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 거룩한 삶은 구체적으로 율법(정결법/ purity system)을 잘 지키는 데 있다.

즉 613 가지의 율법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따라 지상에서의 축복과 내세에서의 운명이 정해진다.

유대 사회는 이 정결법에 근거해서 그 구성원들의 사회 속의 계급을 정해놓았다.

 

정결법은 그 것이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기본 원칙이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었다.

정결법은 사회에 속한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정결과 불결의 정도에 따라 나누고 거기에 질서를 부여했다.

 

- 출생에 의해 정결의 정도가 정해짐:

  첫째 제사장과 레위인들, 둘째 일반 '이스라엘 사람' 셋째, 이방인 중 개종한 이, 서자, 첩이나 기생의 자식, 마지막은 불알이 없거나

  상한 자. 

- 행동에 의해 정해짐: 율법을 잘 지키는 자-대충 지키는 자- 전혀 지키지 않는 자(죄인들). 

- 신체의 손상유무에 의해 정해짐: 신체 일부가 손상된 자는 정결치 않음 

- 경제 수준에 의해 정해짐: 부자라고다 정결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으나 (물질적 부요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지고

  있었기에) 극빈은 거의 틀림없이 불결한 것으로 여겨짐 

- 성에 의해 정해짐: 남성이라고 무조건 정결하지는 않으나 여성은 모두 그 생리적 특성상-월경/ 임신/해산/양육(피와 분비물)- 불결하게 여겨짐. 

-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에 따라 정해짐: 유대인이라고 다 정결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으나 이방인은 무조건 불결하게 여겨짐. 

- 성전은 이 정결법의 중심이며 성전세 (수입의 십일조)는 얼마나 사람들이 정결법을 지키느냐와 관계되어 있었다. 

- 결국 예수 당시 유대교의 정결법은 그 사회를 규정하고 질서 잡으며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이었다.

 

5. 하지만 예수님은 정결법에 의해 사람들을 구별하고 신분을 규정하며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철저히 거부했다.

대신 그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긍휼(compassion)에 기초한 사회 건설을 꿈꾸었다.

 

"Be holy as God is holy" vs. "Be compassionate as God is compassionate"

 

예수에게 있어서 정결은 외적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 곧 마음의 문제였다.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ex 1)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정결법을 대변하는 제사장, 레위인 vs 가장 부정한 사마리아 사람의 대비- 누가 진실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ex 2) 죄인들과의 식사 공동체- 유대 사회에서는 누구와 식사 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이 모두 정결법과 연결되어 있었다.

         식사란 유대 사회에 있어서 사회 체제의 축소판이었다. 곧 식탁 교제는 사회적 비전의 구현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들과 버젓이 식사를

         함으로 이 정결법을 거부해 버린다. (어떻게 예수가 이럴 수 있는가? 그래서 푹스 등은 여기에서 예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찾는다).

 

ex 3) 예수 공동체에서의 여인들의 역할 : 유대 사회에서 여성들은 한 마디로 nobody였다. 그러나 예수의 공동체에서 여인들은 모든 면에서 남성과

          동등했다. 이 점에서 예수의 공동체는 여성을 억압/소외시키던 당시 유대 사회 및 그리스-로마 세계권에 대한 하나의 큰 도전이었다.

 

결국 정결법이 사람들 사이를 나누고 또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데 비해 예수의 "동정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한다. 예수는 그의 가르침과 식탁의 교제에서 정결법에 기초한 사회를 비판 극복하시며 하나님의 사랑과 동정에 근거한 전혀 새로운 사회를 제시한다. 정결법의 정치는 동정의 정치로 대치되었다(The politics of purity was replaced by a politics of compassion).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는가?

 

교회가 따라야 할 예수의 길

읽을거리: 앨버트 노울런,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153-234.

(혹은) 한스 큉, 왜 그리스도인인가? 85-132.

 

예수님의 일생을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선포한 이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당시의 여러 종파들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예수 당시의 여러 종파들

 

1) 헤롯당

당시 갈릴리 지역의 총독이었던 헤롯을 추종하던 사람들// 일반 백성들에게는 원한의 대상// 정치적 힘을 소유함.

* 헤롯(37-4년 B.C 동안 팔레스틴의 왕으로 다스림): 이두메(에돔) 사람-이스라엘 백성의 원수. 바빌론에 의해 남 유다가 멸망할 때 이두메 사람들이 도망치는 유대 백성들을 잡아 인신매매를 함으로 결정적인 원수가 되었다. 그에게는 세 아들- 헤롯 아켈라오(예수 탄생 때- 동방박사와 만난 그 헤롯, 마2:20-23), 헤롯 안티파스,(마 14:1-12, 세례 요한을 죽이고 예수를 심문했던 그 헤롯, 눅23:6-12) 그리고 분봉왕 필립이 있었다.

 

2) 사두개파

성전을 중심한 종교 귀족들- 제사장 가문( 다윗 시대 제사장 사독의 후예들) 성전 제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계속 유지할 수 있고 축복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쳤다. 정치적으로는 친 로마, 문화적으로는 친 그리스(친 헬라)적이었다. 이들은 성전 제사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고 이를 다시 비옥한 갈릴리 지역에 재투자함으로 경제적 힘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소작농으로 전락해 버린 갈릴리 사람들과의 빈번한 분쟁: (ex/ 막12:1-9,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그러나 주후 70년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는 급격하게 사라져버렸다.

 

3) 바리새파

회당 중심의 성직자들// 종교적 힘을 소유하고 있음.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지배와 타협- 로마와 싸워서 좋을 것이 없다. 무관심이 최선이다. 우리가 할 것은 오직 종교적인 열심 뿐.. - 당시 약 5000 여명밖에 안되던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철저한 율법 준수로 인해 약 50만 명쯤 되는 당시 유대인 전체에게 존경과 부러움을 받았다(물론 절망감도). 특별히 이들은 정결법과 안식일 준수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했다.

 

* 바리새파의 구원관: 율법 구원관( 613가지의 각종 규례-248 가지의 해야 할 것과 365가지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얼마나 지키느냐에 따라 구원이 결정된다.

ex)매주 두 번( 월, 목)의 자발적 단식, 꼿꼿이 서서 드리는 삼일 기도, 안식일 날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불을 피워서도 안 되고 약 1080 m 이상 걸어서도 안 된다. 손을 씻을 때는 반드시 손목까지 씻고 손을 똑바로 내려서 물은 두 번 부어야한다. 한 번은 씻기 위해 한 번은 헹구기 위해) :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원의 길에서 배제되었다.

* 예수와 바리새파의 결정적 차이점: 구원관 "은총의 구원과 율법의 구원" - 당시 정치, 경제, 종교적으로 짓눌려 있던 그 땅의 평민들에게 예수는 그 자체로 복음이었다.

 

4) 쿰란 공동체(에세네파?)

이들은 이 세상을 악하다 하여 떠나버렸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정치, 사회 구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와 필로에 따르면 이들은 한 때 적어도 4000 명 이상 되었다. 특히 사해 북서쪽 석회암 동굴 지대로 피신하여 임박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림. 역사적 배경: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박해( 주전 200년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3세는 이집트의 프톨레미 5세의 군대를 파네온에서 격파하고 셀류시드 왕조를 열면서 팔레스틴 땅을 지배하게 된다. 그 아들인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시대에 유대인들은 엄청난 박해를 당하게 된다. 곧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할례를 해 준 제사장과 그 아이의 가족들을 모두 죽이며 성전 뜰에서 돼지를 잡아 그 피를 성전에 뿌리고 또 지성소에 제우스신을 상징하는 금 독수리를 세워 모두 거기에 절하게 했다. 이로 인해 이 악한 땅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다).

 

5) 열심당(눅 6:15, 행 1:13 등)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로마에 대한 무력 항쟁으로 표현함. 민중들 곁에 있었던 유사 메시야들.

구약의 엘리야(갈멜 산상에서의 이교 신앙과의 대결-왕상18장 :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왕상19; 10) 와 비느하스를 모델로 삼음// * 열심당 운동이 시작된 유래: 대 헤롯이 독수리 금신상을 세워두고 유대인들로 하여금 절하게 함/ 많은 유대인들이 이를 대충 묵인하는 중에 두 명의 랍비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밤중에 이 독수리 상을 끌어내려 부수어 버리고 잡혀 죽자 그 아들인 유다( 갈릴리 유다 )가 무력 혁명 운동을 시작. (주전 4년경: 행 5:36-37). 처음에는 그 수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주로 게릴라 전 혹은 암살행위를 했다(이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명절에 칼로 암살을 단행하였다(시카리: 칼잡이). 이 열심당 운동은 빌라도의 포악한 통치 아래 더 강력해 져서 마침내 큰 무리를 이루었고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유대 독립 운동 - 마사다: 3년을 버티다가 장렬하게 자살해서 죽은 곳)

그런데 예수님 당시는 타락하였다.- 좋은 지도자들이 나오지 않자 거짓 메시야들로 바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이래서 유대는 산적 떼가 득실거리게 되었으니 누구든지 폭도들을 한 무리씩 모으기만 하면 스스로 왕이 되어 온 사회를 파경에 몰아넣고 별로 피해를 입히지는 못한 채 도리어 로마인의 화만 돋우어 동족들에게 더 큰 사상과 학살을 자초하고 있었다"// 바라바(막15:7)와 가룟 유다 역시 열심당의 일원으로 추측해 봄.

 

2. 예수님이 걸어간 길

 

1) 예수님은 달랐다

a) 헤롯당의 권력 지향적인 모습이 예수에게는 없다.

b) 사두개파의 종교적 예식에 대한 강조와 그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모습이 예수에게는 없다.

c) 예수님에게는 에세네파와 같이 이 세상을 저버리고 도피하려는 모습이 없고 또 에세네파에서 보이는 이원론적인 사고가 없다.

d) 예수님에게는 바리새파와 같은 현실 타협이 없다. 또한 율법 구원관이 전혀 없다.

   예수는 열심당과 같이 철두철미 기성 체제를 거부할 뿐 아니라 그 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보려고 했다.

e) 그러나 열심당들이 무력과 증오의 힘으로 원수들을 이기려고 했다면 예수는 철저히 "용서"와 "사랑"의 힘으로 이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고 했다. 곧 예수는 철저한 비폭력 저항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근거한 비폭력적

   방식에 의한 세계 변화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2)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셨고 죽으셨다.

예수는 헤롯당처럼 기존 질서에 순응하라고 말씀하지 않았고 사두개인과 달리 종교 예식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바리새인과 달리 종교적 계율을 지키는 것이 그 자체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에세네파처럼 이 세상을 악하다고 하여 이 세상에서 도피하려고 하지 않았고 열심당처럼 미움과 폭력으로 세상을 뒤집어 보려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 혼자의 길을 가셨다. 그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였다. 바로 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가운데 예수님의 삶은 그 누구 보다 혁명적이었고 변혁적이었다.

 

가. 예수님 선포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이다.(마4:17, 23, 막1:14-15, 눅 4: 42, 43/

공관 복음에만 약 50 회 정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과 비유가 나타난다) 마태의 "하늘 나라-천국'는 하나님 나라와 동의어이다.

 

나. 그럼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는 구약 성경에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이 왕이시다,'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다스리신다' 라는 말의 추상적 표현이다.

따라서 그 뜻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다. 하나님의 뜻은 온 세계를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만드시는 데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고 그 가운데 사람을 만드셨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갔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곧 이어 가인의 형제 살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점점 죄악의 역사는 깊어져서 마침내 온 세상은 노아 홍수 심판으로 멸망한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들 역시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 죄악 속에 있다. 그러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 "우리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불안의 표현으로서의 자기 과시).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불순종 속에서도 믿음의 한 인물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한 민족을 만드신다(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계보).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백성'이 된다.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삶의 원리는 율법이었다. 따라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기 삶을 찾아가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 사랑/ 자비/ 나눔/ 평등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방편이 율법이었다. 이 점에서 율법은 거룩하고 자유의 말씀이었다(시편 119편- 여기에서 바울의 율법이해-율법은 죽이는 것이요 기껏해야 몽학선생이라는 바울의 율법 이해와 진실한 구약의 신앙인들의 율법 이해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신약적 개념을 구약에 그냥 적용시킬 때는 성경 본문에 대한 폭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 불순종한다. 사사 시대 말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에게 부탁한다. "우리에게도 왕을 주시오"(삼상8장4-7). 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진실로 이스라엘의 왕이시기 때문이요 또한 왕 제도를 두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등과 사랑의 공동체는 쉽게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삼상8:10-22).

마침내 하나님은 마지못해 왕정을 허락하시면서 조건을 단다. "왕은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그럴 때 그 왕정을 축복해 주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그 가문은 멸망하고 이스라엘은 많은 고생을 할 것이다. . .선지자들은 바로 이 왕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도록 계속 견제하는 사람들이었다(참고 사무엘 하 12:1-13). 즉 이스라엘 왕정의 독특성은 왕이 절대 권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정 왕이시고 왕은 그 대리인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실패의 역사를 거듭하고 결국 그 만큼 예언자들의 예언 활동도 치열해 지다가 마침내 멸망의 예언자들의 나타난다. 그러면서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점점 종말론적으로 된다. 이제 오실 메시야는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 . . 이 가운데 예수님이 오신다.

 

라.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무조건적인 기쁨과 구원의 나라이다.

특별히 가난하고 불쌍한, 그 사회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은총으로 다가 오시는 나라이다.

 

*눅4:16-21: 귀머거리가 듣고, 소경이 보며, 절름발이가 걷고, 벙어리가 노래하며 --- 주의 은혜의 해가 선포되는 곳. - cf) 눅 6:20-21.

* 죄인-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영접하며 그들과 식탁 공동체를 만드신 예수님.

 

바. 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나라는 기존의 모든, 사람들이 만든 나라- 사람들이 만들고 유지시켜 가는 권위주의적인 정치적, 종교적 체제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며 부정한다. 바로 이 때문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에게 분노하고 결국 그를 십자가 죽음에 까지 이르게 했다.

 

사.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적 신분이나 위신을 기초로 한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수님이 살던 유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신(사회적 신분)이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은 없어진다(마18:1-4, 마23:5-7, 막 12:38-40. 누가10: 38-42. 등등). 특히 당시 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와 여성들은 아무런 사회적 신분이 없었다. 이런 이들을 영접하므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큰 특징인 평등과 사랑을 보이신다.

 

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독점할 수 없다.

눅 6:20-26, 눅 16:19-31의 부자와 나사로, 마6:19-21, -행2:44-46등등.

- 예수님은 가난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부유하게 사는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웃이 굶고 있는 데 자기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이 세상 나라의 법칙이지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아니다-- 라고 보셨다. 예수님은 빈자도 부자도 없이 모두가 사랑 때문에 넉넉한 그런 공동체를 꿈꾸셨다.

이 점에 대해서 오늘날의 청부론을 중심한 논쟁을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김동호 목사의 청부론 vs 김영봉 교수의 낙타 귀를 통과한 부자

 

자.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곳이다: 모든 파당에 대한 거부/ 보편적인 공동체의 지향: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족, 부족, 민족을 일종의 집단 인격으로 생각했다. - 그래서 조상의 이름을 그냥 따르기도 하고 야곱은 한 개인의 이름이면서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기도 한다. 또한 가족이나 친척에게 피해를 입힌 것은 곧 '나'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어서 '내'가 복수할 권리를 가진다./ - cf) 한국 사람들이 가지는 '우리' 정신. // 그러나 이 같은 집단 의식은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거부하고 더 적대적이 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보편적인 사랑의 공동체로 묘사한다.(마5:43-44, 눅6:27-28, 눅 6:32, 10:29-37)

 

차.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일 뿐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하나님 나라라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바로 이 같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 하나님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며 이 나라의 특징인 무조건적인 용납과 이로 인한 기쁨, 감사, 자유, 평화 그리고 사회 정치적인 평등과 사랑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이 것을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 이라 부르며 요한의 글은 영생(죠에, 하나님 안의 생명)이란 말로 표현한다.

 

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성경은 그저 한 가지 '회개'를 말한다. 회개(메타노이아)란 'turn back' 곧 방향을 바꾸고 돌아서는 것이다.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는 것/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위해서는 내 나라가 사라져야 한다.

- 우리에게는 얼마나 우리의 나라가 깊이 들어 있는가?

 

타. 이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대안 공동체(alternative community)이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대안 공동체로 이해해 왔다(신명기7:6-8, 7:11, 레위기 20:26---고후 5:17, 엡 5:8, 디도서 3:3-6, 골로새서 3:8-14.) 이 세상의 질서가 힘의 질서라면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사랑과 섬김의 질서이며, 이 세상이 경쟁의 질서라면 하나님의 나라는 협력의 질서이며 세상이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면 교회는 이웃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바로 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름 받았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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