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대화하는 것이다.

 

기도란 우리 주이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와 공로를 통해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얻으리라는 겸손한 확신을 가지고,

합당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해 하나님께 우리의 원하는 바를 알리는 것이다.


닥터 H. W. Forst는 “기도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드리는 경배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마귀가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기도하는데 몇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그 중에서 중요한 기도의 열 두 가지 원리를 뽑아 말씀대로 실행해 응답받는 생활로 주님께 부끄럽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하겠다.


사도행전 9:11은『그때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곧은 길이라고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사울이라 하는 타소 사람을 찾으라. 보라, 그가 기도하고 있느니라.』


옛날이나 지금도 기도하는 생활이 승리하는 삶의 시작임을 자각해야 하겠다. 내가 주님께 순종할 때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순종된 몸 안에서 다스리시고 계속적인 승리를 얻으신다. 나의 몸 안의 보좌에는 언제나 한 사람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의 보좌를 다스리시거나 아니면 내가 다스리거나 둘 중 하나다. 내가 보좌에 있으면 그분은 보좌 아래에 있다. 그가 보좌에 있으면 나는 보좌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누가 보좌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라. 당신은 여전히 죽을 육체에 죄를 가지고 있으며, 죄와 허물로 죽은 채 태어났고, 육체는 썩어서 벌레의 차지가 되며, 죄의 법에 매여 있기 때문에 당신이 보좌에 있으면 죄가 통치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주관하다면 벌레에게 먹힐 독재자가 마음의 보좌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삶을 주관하신다면 그가 왕좌에 있고 우리는 그 아래 있는 것이다.



2. 전개되는 말
중요한 기도의 열 두 가지 원리를 뽑아 말씀대로 실행해 응답받는 생활로 주님께 부끄럽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하겠다.

1)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 (약 1:6-8).
(1)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롬 1:17, 갈 3:11, 히 10:38)
하나님의 영이 어떤 말씀을 거듭 강조하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사실에 대하여 특별한 주의를 요구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그렇듯 자주 언명하시고 주장하신 점으로 보아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를 끊임없이 가르쳐야 하고, 또 이 말씀을 듣는 자 개개인은 이를 주저함 없이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 가르침은 분명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이다. 영생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며, 우리는 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사망의 형벌과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온전히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삶이 다시 시작된다. 다시 말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즉시,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남으로써 비로소 영생의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말이다. 죄사함을 받아 영생을 얻는 사람은,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과 같이 믿음으로 살아간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꿋꿋이 살아간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유할 때, 힘 있을 때나 약할 때, 일할 때나 쇠약해졌을 때 사나 죽으나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비록 어떤 일에 있어서 믿음 때문에 쓰라린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만, 믿음이 가장 클 때 그의 삶도 최상이 되며, 가장 열심히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 가장 복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 성취되지는 않았지만 평안하고 겸손하게 그 약속을 기다리는 믿음이 있다 (합 2:4) 약속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산다. 그러므로 악인이 세상에서 승리하여도 참아낼 수 있다. 그리고 약속이 비록 더디게 성취되더라도 조바심을 갖지 않게 된다.

(2)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첫 단계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소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 말씀을 자신의 삶속에 실행한다. 믿는자의 행동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곧 우리 안에 거하는 성령에게서 비롯된다. 우리의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이기적이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과 상치된 행동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거나, 혹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을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그들이 아직도 믿음과 은총 안에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한다. “너희가 믿음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겠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고후 13:5).

(3)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바라는 것들은 무엇이나 받은 것으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 것이 되리라』(막 11:24).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으니 그 사람은 주께로부터 어떤 것이든 받으리라 생각하지 말라』(약 1:6-7).

2) 상고하라 (요 14:6).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죄인들에게 열어 주신다. 야곱은 벧엘에서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사다리를 꿈에 보았다(창 28:12).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야곱이 본 것과 같은 사다리시다. 그래서 요한복음 1:15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이 그에 관하여 증거하며 외쳐 말하기를 "이분이 내가 말한 그분이라. 내 뒤에 오시는 그가 나보다 앞선 것은 그분이 나보다 먼저 계셨음이라."고 하더라.』야곱이 꿈에 본 사다리 역시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다리를 통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사다리를 만들어 하늘에 오를 수는 절대로 없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늘에 오르려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마귀에게 속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절대로 스스로가 하늘에 오를 수 없다. 구래서 하나님께서 몸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것이다. 그분이야말로 우리를 하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시다. 하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에 들어서지 않으면아무도 구원을 받을 구 없고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

3) 먼저 화해하라 (마 5:24, 6:12).
이것은 이웃과의 관계가 하나님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웃과의 자그마한 문제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엄격한 법이다. 그래서 그와 화해를 해야한다.

4) 주님께 자백해야 한다 (요일 1:9, 롬 3:24-26)).
구원과 교제는 별개의 것이다. 교제는 자백이 있을 때 지속되지만, 구원은 자백이 필요없다. 구원에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시인하는 것이지(롬 10:9-10),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지은 죄들을 자백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죄를 자백하여 용서받기 이전에 먼저 그 기준이 만족되어야 한다.

5) 그의 뜻대로 구해야한다 (요일 5:14).
먼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눅 22:42)라고 예수께서 하신 기도를 주의해서 살펴보라. 물론 성경을 연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결코 발견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이 말씀에 근거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용납해야 한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만일 어떤 사람과 적대 관계에 있다면 그를 용서하라.』고(막 11:25)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일을 행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가서 십일조를 하고 성경을 읽고 “체험을 나누면”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는 우스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요한일서 3:22에 따르면 응답받는 기도의 조건은 『그의 목전에 기쁨이 되는 일들을 행함이라.』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뭔가를 당신이 행하고 있을 때 어떻게 기도의 응답을 기대할 수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뭔가를 알고 있다.

6)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요 16:24).
기도에 관한 다른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면서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라.』(요 16:24)고 하셨다.


(1)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내 이름으로...구하라"는 말씀은 지금의 교회시대를 일컫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23절의 "그날"이란 다음에 이어지는 "내 이름으로 ..구하라"는 말씀으로 보아 분명하다. 우리는 지금 주님께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뿐 그분께 묻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성경을 읽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 그분께 묻지 않는다. 알고 싶은게 있고 궁금한 게 많지만,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존할 뿐이다. 【13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분은 자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 14 그분이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이 내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임이라.】(요 16:13,14)


(2) 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시리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리라』(26절).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어야 할 말씀이다. 우리에게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는 분이 다른 분이 아니라 성령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사도”라든가, “선지자”라든가, “목사”라든가, 또 “교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어 왔지만, 기술적으로 말했을 때, “사람”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아무것도 가르칠 수가 없고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성령이시라는 말씀이다.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던 에디오피아인 내시가 빌립에게 이런 고백을 한다. 『나를 지도하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요?』(행 8:31) 이 말을 듣고 빌립이 내시의 마차에 함께 앉아 내시에게 그가 읽고 있던 성경 구절들에 대해 진리를 설명해 주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지도하는』(guide) 것이었지 “가르친”(teach)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지도한다.”는 것은 “안내한다”(guide), “인도한다.” 등의 뜻이다. 말하자면, “사람”이 성경에 대해 가르쳐 준다는 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어떤 구절이 성경의 다른 어떤 구절과 연관되는가를 “안내”하는 것이다.


(3) 요한복음 16:13을 보라.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진리의 영이시며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guide)고 말씀하신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성경 말씀들에 대해 가르쳐 주실 때, 어떤 구절이 다른 어떤 구절들과 관련되는가를 이리저리 “인도”하셔서 그 구절의 말씀을 다른 구절들의 말씀들로 해석해 주시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깨달아 알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다. 성령께서도 이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치시기 때문에 목사나 성경 교사 역시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인도하는” 사람이다. 다만, 성령께서는 성경의 저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인도”가 사람으로서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정확하고, 따라서 그분의 인도를 받다보면 궁극적으로 그분의 “가르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생각으로 말씀들을 해석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이시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이신 『하나님의 영』(고전 2:11,12)이시다. 따라서 이 “영”(the Spirit)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그 말씀들이 전하는 진리를 올바로 깨달을 수가 있다.

7) 말씀에 복종하는 생활 (막 13:35-36).
성도들은 주인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 대문에 "깨어 있으라"하면 우리는 깨어 있어서 주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믿고 실행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고 성별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한 그들은 마태복음 25;4처럼 기름을 준비하고 있어야한다. 주님은 그 시기에 도둑이 오는 것처럼 갑작스럽게 오신다고 말씀하신다(마 24:43).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44절).

8) 그분의 뜻을 행하는 성도 (요 9:31).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신약적인 개념으로 보더라도 하나님의 특별한 호의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면 이 말은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더구나 신약 성도들의 경우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요일 3:22은『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의 목전에 기쁨이 되는 일들을 행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9) 주 안에 거함 (요 15:7, 요일 3:14).
우리는 전에 죽은 자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율법과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는 우리는 전혀 무감각한 자들이었다. 구원받고 의롭게 된 후에야 다시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게 되었다. 전에는 하나님께 회개하지도 않았고, 자백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던 삶이었다. 기도의 호흡도 없었고 주님을 향한 열망이 고동치지도 않았다.


우리들 각자는 개인적으로 변화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 나머지 우리들의 본성이 나약함을 깨닫고는 낙담하며 슬픔에 잠기게 된다. 또한 우리들의 나약함을 깨달을 때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나타난다. 그 믿음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정결케 되도록 역사한다. 죄사함을 받은 가운데 정결한 삶을 계속 유지해 간다. 마침내 영원토록 충만한 기쁨이 넘친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일어난 기간을 후일에 영원히 감사의 찬양을 하면서 회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명의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됨은 우리가 사랑, 곧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를 위하여 형제들을 사랑한다 진리를 위하여 형제들을 사랑한다, 형제들 각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을 사랑한다. 그들과의 교제와, 그 가운데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범과 권면을 사랑한다. 또한 그들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약점이 있더라도 그들을 사랑한다.

10) 요동하지 말라 (약 1:6 후반 절).

11) 끈기를 가지고 기도하라 (눅 1:1,5).
이 구절들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께 항상 기도할 것과 이 기도가 즉각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망하지 말 것을 의미한다. 기도가 즉각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일 개월, 일 년 후 그리고 수 년 후 언젠가는 이루워지는 것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끈기있게 기도하며 기달리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복된 소망도 곧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기도하지 않은가!

12) 인내심을 가져라 (갈 6:9).
우리는 종종 "선을 행하다 낙심"을 하지만, 마귀는 늘 "선을 행하는 것"이 "악을 행하는 것"보다 더 지루한 것처럼 만든다.
선을 행하는 길에는 낙심케 하는 시험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시험에 넘어지지 말고 계속 선을 행하기 위해서 주님께 기도하면서 노력해야 한다.

지속적인 선을 행하지 않으면 때가 되어도 걷을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구령하지 않으면,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누가 거듭날 수 있겠느가?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해야 한다 (딤후 4:1-4).

우리는 심지 않은다면(전 11:1-6), 결국 거두지 못할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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