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마다 수많은 교육프로그램으로 가득 차 있다.

외국 이름으로 범벅이 된 제자훈련을 말할 것도 없고 전도훈련도 주기적으로 열린다.

교인들에게 인기는 별로지만 성경공부 프로그램도 꾸준하게 등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기도훈련을 하는 프로그램은 눈에 띄지 않는다.

언젠가 권사직분을 가지고 있는 필자의 지인과 대화하다가, 기도훈련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자 기도훈련이

왜 필요하냐면서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열심히 기도회에 나와 기도하면 되지, 기도하는 데 무슨 훈련이 필요하냐는 식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필자가 기도훈련에 대해 별로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학생들이 학교에 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교사가 어떻게 공부하는 지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도서관이나 독서실에 가지 굳이 학교에 갈 필요가 있을까?

교회에서 성경적으로 기도하는 훈련이 없기 때문에 많은 크리스천이 기도습관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각종 기도회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쉼 없이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언감생심이다.

 

왜 기도훈련을 해야 하냐면,

첫째,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듣지 않는 기도는 상대방이 듣지 않는 전화기에 소리치고 있는 것과 같다.

혼자 떠든다고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여야 한다.

하나님이 듣고 있는 지 어떻게 아는가?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와 열매가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성경적으로 기도하는 방식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기도방식을 물어본 것이 주기도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기도문을 기도하는 내용으로 여겨

이를 따라하기보다 예배를 마칠 때 사용하는 구호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성 경에는 기도문도 적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방식을 말씀하신 곳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다.

설령 안다 하더라도 삶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삶에 적용하려면 훈련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셋째, 기도행위를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많 은 크리스천이 기도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도 없을 터이고, 기도하려도 숱하게 시도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터인데, 일상의 삶에서 쉼 없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는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자신의 의지로 시작하여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맛을 들여야 성경적인 기도의 습관을 들일 수 있다.

이는 기도의 강을 건너 하나님과 동행하는 습관을 들인 신앙의 선배들이 이끌어주어야 가능하다.

그 렇지만 안타깝게도 성경적인 기도의 습관을 들인 이들이 많지 많아서인지 교회에서 기도훈련 프로그램이 없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기도는 영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시작하면 악한 영들의 방해공작이 시작된다.

의지가 굳센 이들도 기도습관을 들이는 일에 실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도훈련이 없이는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

능력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도구의 삶을 살려면 먼저 기도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라.

성 령이 내주(內住)하는 기도라고요? “성령충만(充滿)한 기도와 같은 뜻인 듯싶은데 말만 바꿨네요.” 라고 꼬집어주고

싶은 독자가 많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성령충만이라는 말은 우리네 교회에서 수도 없이 듣는 말로서 성령이 내 안에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성령이 강하게 내주한다는 말과 같다.

 

그 런데 굳이 ‘충만’이라는 말을 ‘내주’라는 말로 바꾼 이유는 성령충만에 대한 고정관념을 불러들이고 싶지 않아서이다.

성령충만이라는 말에 대한 크리스천들의 생각은, 쿵쾅거리는 악기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뜨거운 찬양으로 마음을

격앙된 후에 마이크를 잡은 기도인도자의 거친 목소리와 함께 교회를 떠나갈 듯한 통성기도회의 분위기를 잘 아실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마음의 상태가 성령충만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문제는 교회 문을 나서기

무섭게 다시 싸늘하게 식은 마음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건조하게 가라앉는다.

성 령이 내주하셨다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식을 수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회의 뜨거운 분위기에 휩쓸려 격앙된

감정의 상태와 하나님이 내주하시는 성령충만한 상태는 다르다. 만약 그 때의 격앙된 감정이 성령충만한 상태였다면,

감정뿐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와 더불어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 아닌가?

 

감정이 격앙된 기분은 그런 통성기도회 뿐 아니라 나이트클럽이나 노래방에서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성령충만하다면 성령이 함께하시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뜨거운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흥분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성령충만한 상태의 기도는 통성기도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쿵쾅거리는 악기소리와 뜨거운 찬양이 없더라도

상관없다.

 

만약 당신이 골방에 틀어박혀 침묵으로 기도하면서 가슴이 벅차오르고 끝날 줄 모르는 전율 때문에 땀에 흠뻑 적셨다면

성령충만한 상태이다.

그러나 오직 그런 분위기에서만 그런 느낌을 얻고 있다면 당신은 성령충만한 상태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성령충만한 기도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성령이 오실 때까지 전념하여 간절히 기도하면 된다.

예수님이 승천하고 나서 사도들과 백이십명의 제자들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성령이 내려오실 때까지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행1:14)

 

아마 그 때도 웅장한 악기소리와 뜨거운 찬양이 없었을 것이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처음의 상태는 감정이 격앙되기도 한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온몸에 전율이 나기도 한다. 기쁜 마음과 평안한 마음이 교차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의 상태는 사람마다 다르고 항상 같은 상태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의 격변기가 지나면 나중에는 평안한 상태가 지속되지만 때에 따라서는 전율이 반복적으로 오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감정의 상태나 몸의 신호가 아니라 성령이 내주하시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증거는 성령충만한 상태는 마음이 언제나 평안함으로 넘쳐나며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찬양이 입에서 흘러나오며 영으로 기도하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몇 시간이고 지속되는 게 성령이 내주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태의 기도를 몇 개월에서 몇 년 이상 계속하다보면 성령의 열매가 맺어진다.

성 령의 열매란 신속한 기도응답과 문제의 해결은 물론 방언이나 예언, 귀신 쫒음, 치유 등의 다양한 은사와 능력,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 세속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중심으로 삶으로 바꿔지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감정의 격앙이라면 성령이 내주하시는 게 아니다.

 

어떤 이는 방언을 성령이 내주하시는 증거로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방언이 자신이 지어내는 방언인지 하나님이 주시는 방언인지 잘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방언은 기도를 시작하자마자가 아니라 기도에 몰입되어야 비로소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방언은 수시로 바뀐다. 즉 새 방언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같은 말을 반복하는 방언은 하나님이 주시는 게 아니라 자신이 입으로 지어내는 것이다.

자신이 지어내는 방언이라면 성령의 증거나 열매가 없다.

 

우리 주변의 적지 않은 크리스천이 방언을 말하며 성령충만한 기도를 하고 있는 듯 보여도 삶과 성품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유이다.

성령이 임재할 때까지 기다려라.

필자는 기도를 시작하면 성령이 충만해 질 때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며 찬양을 하고 감사를 한다.

다른 기도는 하지 않는다. 성령이 내주하셔서 듣지 않는 기도라면 이건 기도가 아니라 독백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내주하셨는지 아닌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를 들을 수도 없다.

매일 몇 시간씩 기도하는 사람들도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성령충만한 상태에서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방해받지 않는 데서 1시간 이상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까닭이다.

성령이 내주하신지 아는 것은 오랫동안 영적인 기도를 한 사람만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기도를 하나님이 듣고 계시지만 정작 성령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하는 것은 별개이다.

 

성령이 내주한지 아는 잣대는 감정의 상태를 자세하게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기도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감정의 상태를 살펴보는 일 없이, 오직 자신이 얻어낼 기도목록을 주구장창 소리치는

기도만 하는 사람들은 이를 알 수가 없다.

성령이 내주하는 것을 느끼려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뜨거워지는 상태가 될 때까지 오직 하나님의 내주를 간절히 찾으면서

찬양하고 감사를 반복해야 한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성령이 충만해질 때까지 몇 달 걸린다.

그러나 일단 성령충만한 기도를 하게 되면 할 때마다 2~30분간 간절히 부르면 성령충만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때는 5분만 간절히 불러도 충만하게 되지만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 정신이 멍한 상태나, 하루종일 온갖 세상일에

시달리고 난 밤에는 기도를 시작한다고 해도 쉽게 기도에 몰입되지 않는다.

성령충만한 상태는 기도에 몰입이 되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상태인 기도에 몰입이 되기 전까지는 다른 기도목록을 말하지 말고 오직 성령이 내주하기를

간절히 전념해서 기도해야 한다.

 

침묵기도에 훈련이 된 사람들은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작은 목소리로 통성으로 기도해도 된다.

침묵기도라고 해도 생각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말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이지 통성기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소리를 내지 않았더라도 마음속으로 기도해야지 생각에 맡기면 공상을 하면서 잡념이 들어오고 졸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기도훈련이 되지 않아서이다.

기도란 정신을 집중해서 하나님께 몰입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되어야 성령이 충만한 기도를 하게 된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려고 애써라.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원하지만 정작 이를 체험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성령세례 혹은 성령의 기름부음 은 성령이 내주하는 상태를 말한다.

어떤 이는 갑자기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이 임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성사가 된다.

필자뿐 아니라 이를 경험한 필자의 제자들에게 발견된 공통적인 조건은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것도 몇 달 걸리는 오랜 시간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시간을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갈급한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면 한달이 채 걸리지 않아서 성령세례를 체험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한번 성령세례를 체험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기도를 소홀히 하면 성령의 활동은 감소되다가

아예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살전 5:19)고 말씀했다.

이 때 ‘소멸하다’는 헬라어는 σβέννυτε(스벤뉘테)는 ‘불을 끄다’라는 단어이다.

말하자면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는 뜻인데, 성령의 불은 성령의 활동을 가리킨다.

성령이 내주하셔서 충만하여 왕성하게 활동을 하시더라도 자신이 끊임없는 기도를 소홀히 한다면 떠나가신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한때는 성령세례를 경험하고 성령충만한 삶을 살았더라도

현재 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영적인 습관을 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기도로서 성령이 내주한 경우는 그래도 낫지만, 성령의 강권적인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소멸되고 말았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다.

기도할 때마다 성령이 내주할 때까지 간절히 찾고 불러야 한다.

성령세례를 경험하지 못해 이를 소원하는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성령의 활동이 자신 안에서 왕성하게

일어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 분은 스스로 찾아오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간절히 찾고, 부르고, 구하고, 문을 두드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기꺼이 들어오시는 분이다.

즉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성령이 내주한 상태에서 기도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는 성령의 내주를 늘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만 정확한 상태를 분별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는 기도를 시작하면 성령을 간절히 찾고 부르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기도를 한다.

약 2~30분 정도 되면 마음 문이 활짝 열리고 평안해지기 시작하며 기도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하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에 이끌리는 기도가 되는데, 이때가 바로 성령에 의해 기도가 몰입되는 상태이다.

 

최근에는 귀신이 지배하는 어느 집안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기도하고 있는데,

성령이 내주하자마자 온몸이 강렬하게 진동이 온다.

이럴 때는 성령께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기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 현상이 없더라도 기도하다보면 성령에 의해 빨려 들어가는 기도를 하게 되는데,

이때가 바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게 되면 다양한 감정의 경험과 영적 현상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때에도 이런 감정에 연연하지 말고 기도에 열중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기도하는 것보다 감정의 상태에 대해 더 관심을 갖는데, 그러다보면 신비주의자가 되기 십상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는 것은 감정의 상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성령의 증거와 더불어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

귀신쫓음, 질병의 치유를 비롯해서 기도응답과 문제해결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적 능력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습관에 달려있다.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를 찾아라.

필자는 제자들에게 항상 성령이 내주할 때까지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원하는 크리스천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이를 경험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갈급함이 없어서이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전심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이내 풀어지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게 어렵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간절한 기도가 필수적인데, 성령이 임재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는 어떤 모습일까?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는 대부분 기도를 시작한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이다.

적어도 매일 1시간 넘게 기도해도 한 달 이상 걸리며, 어떤 이들은 여러 달 걸리기도 한다.

 

성령이 내주하는 가장 큰 증거는 감정에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성령이 임재하면 가슴이 벅차오르며 흥분되는 느낌이 든다.

기분 좋은 전율이 오며 몸 전체가 떨리는 진동을 동반한다.

또한 기쁨과 평안한 감정이 마음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폭과 느낌은 다양하다.

성령이 내주하면 성령에 이끌리는 기도를 하게 되는 데 이때부터 기도에 몰입된다.

성령에 몰입되는 기도의 특징은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잠깐 기도했어도 한 두시간 걸리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감정의 상태만 가지고 성령인 내주했다는 증거로 삼기는 뭔가 부족하다.

 

성령이 내주하면 기도가 끝나서도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있게 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찬양이 흘러나오고 영적으로 기도를 하게 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권면이나 항상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이 삶에서 실천하게 되는 원동력이다.

자신도 모르게 기도가 나오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할 때는 좋은 감정이었지만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면 성령이 내주했다고 보기 어렵다.

성령이 항상 내 안에 임재하면 성령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사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고 부르며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기도가 삶에 배인 사람이다.

그런 증거가 있어야 비로소 성령이 임재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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