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결론적 문답



1.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 믿음의 뜻을 수없이 말씀드렸지요

다시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참(진리, 진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나 진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음을 뜻한즉, 피조물 세계에는 참이 없습니다

 따라서 믿을 대상은 창조자요,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뿐이십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님이 일체로 계신데 무조건 믿으시면 됩니다

 하나님께는 거짓이 없으며, 따라서 그의 말씀이나 약속도 거짓이 없습니다.



2. 하나님의 존재와 진실을 믿지만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압니까?

: 그 내용은 하나님이 자기의 존재를 나타내 주신 계시에 의해서만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해 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추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다른 이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의 형상을 (어느 정도) 닮도록 지으시고 자기를 나타내 주신 방도가 있었으니

 그것이 곧 자연계시(만물의 존재와 움직이는 것)와 성경계시입니다

 여기에서 자연계시는 자연을 접하는 모든 인류에게 창조자 하나님을 나타내 주신 것이고

 성경계시는 타락한 인간을 (선택하신 자에 한하여) 구원하시고, 그들로 하나님을 더 알아서 경외하게 하시기 위하여 주신 계시 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만물의 존재는 알되 출처에는 연연하지 않으며, 성경을 역사책 처럼 아는 경우가 있지만

 만물을 하나님의 창조로, 또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진리) 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은 자연계시와 성경계시를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신 방도로 믿고, 연구하여 연구한 만큼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알수록 많은 믿음을 갖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부언할 것은 예수님이 역사적 인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나타내 주셨지요

 그러나 그 시대에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은 오직 성경으로만 예수님을 알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실제적 계시는 성경과 같은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3. 신앙생활의 표준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 자연계시, 성경계시에 두시고 중요한 것은 성경을 성령님의 지도하에서 모순되지 않게 깨닫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경해석이 통일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에 기본 원리에 빗나가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자녀들이 그 내용을 이해함에 있어서 부모의 뜻이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효도의 목적을 벗어나지 않는 상태로 이해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계시로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하나님의 능력과 건강이나 농업이나 자연과학 등에서 지혜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4. 성경을 믿고 해석함에 대한 방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 대단히 중요한 질문인데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기독교신앙백과 80과에 수록된 박윤선 박사의 성경관을 꼭 읽으시고

 158과의 성경의 바른 해석”, 그리고 7분설교 1659과에 수록된 성경 해석학 요약을 참고하십시오

 이 지식은 교역자만 알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님들이 다 자기의 지식을 삼으셔야 합니다.



5. 성경이 신앙생활의 표준이면 현실교회와 성도의 생활이 그 성경에 얼마나 부합하게 생활한다고 믿으십니까?

: 부합되는 것도 있고, 전혀 반대되는 것도 있으며, 목적과 지향하는 바는 같으나, 미흡한 것들도 있는 줄 압니다

 성경은 실천 가능하고도 최고다운 모범을 나타내신 것인데, 현실교회와 성도가 여기에 부합하지 못하는 면이 많다고 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처음부터 잘못한 전통을 비판하거나 고치지 못한 점이 있고, 지도자들도 잘못된 것을 비판없이 계승하여 가르친 점도 있으며

 문화적, 정치적 영향을 받으므로 정립하지 못한 것을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

 성경에 몇 %나 부합하는지는 좀 더 표준을 정립한 다음에 살펴야 할 것입니다.



6. 그러면 표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하여 그것이 야기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성경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활용과 실천이 서툰 상태에서 엉성한 교육을 시행해 온 점과,

2)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형식이나 의식에 치중한 점이 있는 것과,

3) 율법주의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점과,

4) 교회를 유지함에 있어서 교역자의 생활비나 예배당 유지비 등을 물질적 부담으로 짊어지게 만든 데서 비롯된 부작용을 초래한 점과,

5) 성직자의 권위를 지나치게 높여서 어떤 경우에는 성직자가 교회를 생활 수단의 기관 또는 명예적 발판으로 이용하게 된 것 등이

    진리의 순수성과 도덕적 결함을 해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개혁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7. 신앙생활을 좀 더 성경에 가깝도록 하려면 어떤 것들을 시정하여야 합니까?

: 문제되는 것을 억제하는 것과, 지도자들이 실력을 갖추고 모범으로 교육하는 일이 새롭게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경과 생활을 스스로 부합시키는 일에 익숙하지 않고, 대부분 목회자의 교육에 의존하는데, 이 경우에 목회자나 신앙의 지도자가 예수님의 모습을 바로 나타내 보이지 않을 때는 성경에서 빗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태가 역사적으로 비판없이 내려왔기 때문에 불합치 문제가 나타난 것인즉,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1) 우선 지도자가 예수님을 바로 나타내 보이는데 유력해져야 합니다. 이것은 지식과 경험과 연단을 속히 확보한 후에 사역을 하여야 하며, 성도들도 분발해야 할 것은 복음사역자를 믿고 따르기 전에 성경적 지도와 생활의 합치 여부를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전문가가 잘하는 것 같으나, 국민의 비판 여론이 따가운 것처럼 신앙생활도 그런 관계에서 이루어 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 답변은 지도자와 성도의 성숙함이 있어야 할 것을 말씀드린 것이요,


2) 어떤 신앙적 행사를 할 때 원리와 목적을 이해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배는 주보에 나타난 순서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예배의 진정한 의미는 잘 모르는 줄 압니다. 예배의 뜻이 의식과 순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 친교와 은혜에 대한 감사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예배 의식도 많이 변화 되겠지요. 따라서 원리와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조건 참여만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에서 원리 실천으로 변화되어야 하고,


3) 율법주의도 탈피해야 합니다. 예배당을 구약시대의 성전처럼 여기는 일, 구약의 성전 운영제도를 교회 운영과 동일시 한다든지, 성직자를 제사장 권위에 올린다든지, 또는 십일조 헌금을 법적으로 의무화 시키는 것 등이라 할 것입니다. 현실교회가 이런 것을 방치한다면 복음적 개혁이나 루터의 종교개혁의 의미가 무색해질 것입니다. 필요한 율법을 시행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요, 그것으로 복음적 은혜를 가리우거나 율법주의를 고수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4) 되도록 이면 교회의 운영비나 복음 사역의 비용을 쓰는 일에 대하여 물질 앞세우는 일을 자제, 축소, 근절 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의사 장로가 복음적 사명을 갖고 외국에 가서 큰 환영을 받으며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비용으로 의료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이 신학적 지식을 아울러 갖고 있다면 그곳에서 복음도 전하고 세례도 베풀면서 성직자의 일을 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은 사역자가 복음 사역 시작부터 교회의 헌금에 의존하여 가족 생활을 영위하려니까 원치 않는 부작용이 생기는 줄 압니다. 성직자가 성경적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빌미로 사역에 지장을 받거나, 억지로 사역을 하거나, 교인들과의 불합리한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5) 교역자가 예수님을 나타내고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무슨 인기가 필요하겠습니까? 교인들로 하여금 설교 잘 하는 사역자를 존경하고 받들도록 권장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따라서 교회나 신앙 세계에는 예수님 외에 높임을 받을 대상이 없다는 것을 알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성도의 모임에 가면 겸손이 부글부글 끓어야 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인기나 현세욕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세계가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물질 선호책을 과감하게 억제하면서 공적 헌금이 없어도 교회 생활이나 신앙 생활에 지장이 없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8. 신앙 생활과 세례와의 관계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 우선 세례의 뜻은 당사자가 믿음 가진 것을 인치는 의식으로 예수님의 제자이고, 하나님의 자녀(성도, 천국 시민)임을 나타내는 의식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특별한 표식이 없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간즉 교복과 모자와 이름표를 달고 등교한즉 제법 학생처럼 보여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할례를 받은 것이 세례와 같은 의미 이지만 출생 8일 만에 할례한 뜻은 택한 백성(선민)의 가족이란 의미를 인친 것인데,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예수님 영접에 대한 바른 신앙과 지식을 가져야 하므로 그 신앙을 인정하는 의미로 세례를 베풀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 받지 않은 상태라도 믿음을 가졌으면 개인적으로 신앙인의 사명을 갖습니다. 그러다가 세례를 받았으면 공적으로 증명을 받은 만큼 공인들(교회)을 상대로 빛의 사명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세례를 베푼 사람(목사)은 신앙의 질적 대변자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는 예수님의 명령인즉 고의로 피하면 안됩니다(28:19~20).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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