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상급이란 무엇인가?
천국 상급”에 대해서 다루기 전에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보통의 용법에서 성도가 죽어서 가는 곳을 “천국”이라고 부르는데,
“낙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한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43).
따라서 지금 성도가 죽어서 가는 곳을 “낙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성경적인 용법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에서 “천국(혹은 하나님의 나라)”은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이 땅에 이미 임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은 장차 완성될 것입니다. 그 “완성될 천국”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부릅니다(벧후 3:13, 계 21:1; 사 65:17, 66:22 참조).1)
상급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차등이 있는 물질적 상급을 주장한 사람들도 교회사에서 많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차등이 없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지요.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자가 받는 구원이 상급이라고 했습니다(『요한서간 강해』, 3.11, 5.12).
잘못된 상급론이 가진 폐해들 때문에 상급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상급(혹은 보상)에 대한 언급들이 많이 나옵니다.2) 따라서 로마 가톨릭이나 일부 부흥사나 목사들이 말하는 잘못된 보상주의는 경계해야 하겠지만, 상급이라는 개념 자체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칼빈도 역시 하나님은 신실한 자들에게 상급을 약속하셨다고 가르칩니다(신명기 6:15-19 설교).3) 하나님은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언약 백성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선물들을 주십니다. 칼빈은 현세에서는 하나님께서 신자의 삶속에 허락하신 다양한 “영적인 축복”을 상급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보상들은 우리의 선행이 완벽해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열과 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신실한 백성들은 다른 이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언약적 축복을 풍성하게 누립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만족, 평안과 감사가 있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더욱 감사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4)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상급은 무엇일까요? 그것도 역시 이러한 영적인 측면을 더욱 부각시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에 상급을 순전히 물질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만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상급이 물질적이라면 거기서도 차별과 차등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곳이 온전한 지복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상급은 순전히 영적인 것이라 주장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서로를 섬길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8절에서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이들을 더욱 기쁘게 헌신적으로 섬길 수 있는 은혜가 바로 상급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어떤 이가 이런 상급을 더 많이 받을수록 곁에 있는 자들 역시 기쁠 것입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저는 성도들을 섬기도록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완성시켜 주시는 것이 천국의 상급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5)
한편, 어떤 이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 땅에서 성화를 많이 이룬 신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그 상태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고, 성화를 덜 이룬 신자는 그 상태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을 닮아간다고 보기도 합니다.6)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시간적으로, 질적으로 보더라도 “완성의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차별을 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이 되십니다(창 15:1).7) 하나님보다 더 큰 상급이 있을 수 없으며, 하나님과 온전히 함께 하는 자는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상급으로 여길 수도,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을 상급으로 여기는 모든 성도들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큰 기쁨과 감사 속에서 고백할 것입니다(시 23:5).8) 비록 성도들이 들고 있는 잔의 크기와 모양은 다를지 모르나, 모든 사람의 잔이 끝없이 흘러넘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서로 비교하여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이토록 우리의 상상과 한계를 초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완성된 천국과 “천국 상급”에 대한 큰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기쁘게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참된 종말론이 올바른 윤리적 삶을 결정하는 것이 그런 까닭입니다.
2) 상, 상급, 보상에 대한 본문은 대표적으로 아래 본문들이 있습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3) Corpus Reformatorum XXVI, 481. 『칼빈의 신명기 강해 1』(곽홍석 번역, 서로사랑출판사, 2009)에 나온 번역을 참조하세요.
4) 우병훈, 『예정과 언약으로 읽는 그리스도의 구원』(SFC, 2013), 85-86쪽을 참조하세요.
7) (창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8) 네덜란드 신학자인 클라스 스킬더도 이런 관점을 취합니다.
우병훈 교수/고신대 신학과
상, 보상, 삯, 상급이란 무엇인가?
1. 천국에 상급이 있는가?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요즈음 천국에 상급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신실한 성도들조차도 과연 천국에 상급이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의문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성도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과연 천국에 가면 상급이 있는 것이며 또 상급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상급의 차이?
천국의 상급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만일 그런 차별이 존재한다면 그런 곳을 과연 천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한다. 천국에는 차별도 없고 시기심도 없고 위화감도 없는 곳, 완전히 평등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천국에 가서도 그런 차별이 존재한다면 천국은 천국답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성경에서 ‘상’이란 말은 모든 성도들이 공평하게 받는 ‘구원 자체’ 또는 ‘천국 자체’를 의미하며, 성도 각자가 다르게 받는 ‘차등 상급’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금 면류관’을 받고, 다른 사람은 ‘개털 모자’를 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얼핏 듣기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 세상에서 차별받고 서러움 받으며 한평생을 살았는데 천국에 가서 또 다시 차별을 받는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금 면류관’과 ‘개털 모자’ 이야기도 우습고, ‘맨션’과 ‘초가집’ 이야기도 우습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그렇게 감정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다. 성경을 펴서 차근차근히 살펴보고 성경을 따라 생각해야 한다. 과연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늘에 상이 많다
신약 성경에 보면 ‘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절들이 많다. 예수님 때문에 욕을 얻어먹고 핍박을 당하는 천국백성을 향해 예수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 너희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신다(마 5:12). 여기서 ‘상’(misthos, 미스또스)은 원래 노동자에게 노동의 대가로 지급하는 ‘임금, 삯’(pay, wages)이란 뜻인데, 또한 어떤 일에 대한 대가로 갚아주는 ‘보상’(reward, recompense)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이 구체화될 때에는 보상(報償)으로 갚아주는 ‘상’(賞, a reward)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상’을 모든 성도들이 동등하게 받는 ‘구원’이나 ‘영생’의 의미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크다’(polus, 폴뤼스)는 말은 원래 ‘많다’는 뜻이다. 상이 ‘많다’는 것은 ‘적다’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즉, 상을 많이 받는 사람도 있고 적게 받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의 주장처럼 ‘천국 자체’를 ‘상’(보상)이라고 했다면 ‘많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약속된 ‘많은 상’은 예수님 때문에 욕을 얻어먹고 핍박을 당할 때에 주어지는 보상이다. 이것을 ‘천국 자체’로 본다면 우리의 ‘행위’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행위구원이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마 10:41-42) 여기에 보면 각자 자기가 행한 대로 받는 ‘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냉수 한 그릇으로 얻는 ‘상’은 ‘구원’이나 ‘영생’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자기의 ‘선한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상’은 각자의 선행에 대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보상으로서의 ‘상’이란 뜻이다. ‘구원’과는 구별되는 별도의 ‘상급’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
그 외에도 성경에는 ‘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절들이 아주 많다. 그 중에는 물론 천국에 들어가는 것, 영생 얻는 것 자체를 ‘상’ 또는 ‘보응’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계 11:18, 롬 2:6-7). 이 경우의 ‘상’ 또는 ‘보응’은 구원이나 영생과 동일시할 수 있다. ‘영생’ 또는 ‘구원’은 모든 성도들이 받는 ‘기본적인 상’이며 ‘제일 큰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 외에 구원받은 자가 각자 행함에 따라 받게 될 ‘상’ 또는 ‘보상’에 대해서도 많이 말하고 있다(마 6:1, 눅 6:35, 고전 3:8, 14-15, 9:17,18, 고후 5:10, 빌 3:14, 히 10:35, 11:26, 계 22:12; 또한 마 16:27, 막 10:40, 롬 14:10-12 등). 이 ‘상’ 또는 ‘보상’은 사람마다 다르며, 각자의 행함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다.
이렇게 상급에 차이가 나는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며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한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다 똑같으며 상급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을 따른 것이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 마치 공(功)을 많이 세운 신하에게 임금이 상을 내리려 할 때, 신하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이유로 상을 반대하는 것과 같다. 그런 신하는 임금의 호의와 기쁜 뜻을 무시하는 대죄를 짓게 된다.
영광에 있어서의 차이
그러나 우리가 선한 일을 했으니 마치 마땅히 상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것은 가톨릭의 공로사상이다. 상은 ‘권리’(權利)가 아니라 주는 자의 ‘호의’(好意)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다 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고백하여야 한다(눅 17:10). 마치 상을 받는 신하가 “성은이 망극합니다. 신은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상’은 어디까지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에서 받게 될 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성경은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 자는 모두 다 천국에서 영생과 구원을 누리고 또 천국의 기쁨과 주님과의 복된 교제를 누릴 것이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이 다 받는 공통의 상이다. 그러나 그 외에 각자 행한 대로 받는 상(보상)이 또 있다.
이 상에 대해서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며 또 굳이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이에 대해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그의 「개혁교의학」 제4권 제일 마지막에서 각자 ‘영광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그러나 빛남과 영광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par. 580)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아 다 천국에 가지만, 각자 행한 일을 따라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과 영광이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족하며 이에서 지나치는 것은 인간의 사변이며 교만이다
성도의 상급이란 무엇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이없는 사랑이 유재홍님과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성경에는 어느부분만 보면 상급을 강요할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그래서 혼돈들을 하지요 한번 차근차근 생각하며 정리해보겠습니다.
1. 성경은 상급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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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상급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교회에서 상급을 위해 열심을 내라고 강조하는것이지요
심지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무엇인가를 응답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것도 알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허다한 교회들이 성도의 상급을 강조하는것일까요 성경의 바로 이런 내용 때문입니다.
>>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5:46)<<
위구절을 보시면 성경은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급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며,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되는 의인이라면 하나님의 상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급을 강조하고, 천국을 다녀오셨다는 분들은 "개털 모자를 쓴 사람이 있고 면류관 쓴사람이 있더라 하고 알려주는 실정입니다.
저도 그것 압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할 때 상급이 있을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라 의로운자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온전한 것 처럼 온전한 사람의 공로 무시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얻을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이며 이세상 만사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아들이라는 칭함은 어떤 면류관보다. 어떤 권세보다.
어떤 재물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놀라운 상급입니다.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면 받을수 있습니다.
2. 상급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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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을 받을 자격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사단의 종으로 태어나 욕심과 비열함과 잔인함으로 살고, 무능하여 사단의 권세도 물리치지 못하고 종노릇하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불의, 탐욕, 정욕이 가득한자요 형제를 미워하며 수군거리며 불의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상급 받기는 커녕 불같은 심판이 있을것입니다.
하나님의 댓가 지불은 분명합니다.
의로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함을 주거니와 불의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드러내실것입니다.
그런데 상급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 또 있습니다.
죄 가운데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남의 덕에 겨우겨우 벗어난 사람입니다.
죄값으로 확실한 심판을 받고 불못에 버려질것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세주가 나타나 아무런 요구도 아무런 댓가도 없이 꽁짜로 구원해낸 사람입니다.
예수라는 분이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신 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원수를 사랑하시고, 죄인 사랑하심을 베푸신것입니다.
무능하고 불의한 사람을 구하신것입니다. 구원 얻은 사람들은 이분을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믿습니다.
이분들은 더럽고 추한 가운데 뜻하지도 못한 구원을 꽁짜로 얻다보니 아무런 공로도 없으며 공로가 없다보니 상급을 바랄 입장도 못됩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가 죄 가운데 자신을 불러주심에 감사하고,
무능한 자에게 능력주심에 기쁘고, 마른 막대기 사용하듯 도구로 사용하심이 고마울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러주신것이 상급이고 구원해주신것이 상급이며,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 함께하심을 상급이라 생각합니다.
3. 뜻하지 않은 상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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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격 없는 사람이 뜻하지 않던 상급 받은 예가 있습니다.
아브람이라는 사람은 바벨탑을 건축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지 않았다면 그곳의 사람들과 아웅다웅하며 살다가 죽었을것입니다. 뜻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부르기만 한것이 아니라 종 부리듯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전능자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할 만큼 아브람은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치 종 부리듯 아브람을 부르고 가나안에 가라고 하시는 전능자 하나님의 능력을 거부할 입장이 못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람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더니 이 땅을 꽁짜로 아브람과 아직 낳지도 않은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이방인이 터 잡고 사는 가나안 땅, 이방 족속이 힘을 쓰는 가나안 땅,
그곳에 아무런 능력도 없이 아내와 조카만 데리고 나타난 나그네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입니다.
그런데 또다시 이런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한것입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가나안 땅을 주시는 정도를 넘어 하나님 자신이 아브람의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브람의 방패 곧 모든것을 보호하고 방어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세상의 상급 중에 하나님 보다 더 크거나 높거나 귀하거나 보배로운 상급 있습니까?
아브람은 그 상급을 받은것입니다. 또 방패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과연 무슨 공로를 세웠기에 이런 상급 받았을까요? 그는 단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라는 분이 상급으로 또 방패로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 아브람이 받은 상급과 동일하게 뜻하지 않았던 상급을 받은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그리스도를 상급으로 받고 구원 얻은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지체를 이루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며 그리스도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 중 그리스도 보다 더 큰 상급이 무엇인지 혹시 알고 계신분 있습니까?
그래도 혹자들은 물어볼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아는 세상의 상급이고 성도가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무엇입니까? 라고요
그리스도를 상급으로 받았다는 의미는 하늘이나 땅이나 만사만물을 초월하는 상급입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상급으로 받은 그것이 곧 영원한 상급입니다.
**조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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