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와 도요히코의 생애
그가 열두살 되던 해 길 모퉁이에 서 있는데 구세군이 나팔을 불면서 노방전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예수를 믿으세요.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하고 소리치며 지나갑니다. 어린 소년은 가까이 다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자도 사랑하십니까?” “그럼요. 저 감옥에 있는 죄수도 사랑하십니다.” 이 때 가가와 토요히코는 즉시 그 대열에 따라 나섰고 전도 대원이 되었고 예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학년 담임선생님으로 크리스챤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담임선생님을 통하여 선교사 두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 선교사가 독일 선교사인데 더럽고 지저분한 움막에서 누추한 음식을 나누어주며 기도해주는 선교사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온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가랑이라면 나도 믿어야지 하고 결심하였습니다.
거기서부터 성서를 읽기 시작했고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서 공부를 하는 데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청소년 사춘기 때에 왜 교회교육이 필요한가를 알려주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는 불교를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선교사로부터 건네 받은 성경책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의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가가와는 거기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가와는 성서를 읽고 배우는 동안에 인생의 새로운 길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저로하여금 그리스도와 같게 하여주소서. 이때에 그의 마음속에 우울의 구름이 사라지고 떠오르는 햇빛이 그를 두루 덮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나까오 목사님이 쓴 <세계를 움직인 기도>라는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쓰고 있습니다.나까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했는데 교인들이 통 모이지 않았습니다.매주일 부인을 앞에 놓고 설교를 하며 두 사람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거지들이 모여왔습니다. 나까오 목사님은 그 거지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몸도 씻어주며 이야기도 들려주고 알뜰히 보살폈습니다. 그 거지들이 주일에는 오지를 않아서 애태우며 계속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3년이 지났는데 어느 주일에 다 죽어가는 결핵환자가 찾아왔습니다. 나까오 목사님은 그 사람을 씻기고 먹이고 치료해주며 주일예배를 같이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일이면 세 사람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정성을 쏟고 열심히 가르쳤는데 그가 바로 나중에 세계적인 신학자가 된 가가와 도요히코입니다.
그는 불교에서 그리스도교에로 개종을 했다는 소식이 그의 친척들과 가족들에게 알려지자 숙부는 미친 듯이 반대했고 그의 받을 가족의 유산을 받지를 못한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강하고, 조용하게 비취어 오는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입고 있던 단벌 옷으로 집에서 붸겨 나오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가 안질에 걸려서 눈이 거의 실명상태에 이르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수술을 하고 실명을 했다가 눈을 뜨게 되었는데 처음에 눈을 떴을 때 바늘 구멍만큼 희미하게 뭔가 아물아물하게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좀 더 윤곽이 드러나자 부엌에서 조그마한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황홀 감에 젖었습니다.
어둠 속에서만 살았던 그 소경이 시력을 회복하면서 자기가 시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격했던 것이었습니다.
대학 2학년 때에는 그는 폐병이 급격히 악화되어, 각혈을 하게 되었고, 그는 사선을 몇 차례나 넘는 극렬한 투병 속에서도 그는 성경이 손에서 떨어진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고 합니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결핵말기 임에도 불구하고 고오베의 빈민굴에서 전도하다 피를 토하고 쓰러졌습니다. 치료 안 하면 죽는다는 의사의 충고에도 오히려 죽음으로 주님을 증거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의식을 회복해보니 사선을 넘고 기적적으로 결핵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읽었던 헌 잡지에다가 글을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사선을 넘어서 라는 제목으로 출판을 하게 되었는데 단번에 25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된 것입니다.
다음해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살아났고, 가가와는 고오베신학교에 들어갔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1960년 그가 죽기까지 일흔살이 넘도록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빈민굴에서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증거 한 20세기의 기적을 만든 일본의 성자가 되었던 것입니다.어떤 사람이 가가와에게 “돈과 어떻게 대결하십니까?” 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의 대답은 “애당초부터 돈을 멸시하고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청빈을 살자” 라고 말하였습니다.
태평양 전쟁 중 일본정부에 대해 반전평화사상을 주장하다 옥고를 치루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는 인생 끝에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땅 끝까지 전한 자 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고통을 보석으로 삼는다” “고난은 축대를 쌓는 것과 같다” “기도는 하나님의 고막을 울리는 소리이다” “나는 영원히 새벽의 아들이 되고싶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서자의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천대 받는 서자가 아니라 사랑 받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 때부터 그는 삶의 의욕을 얻었습니다. 그 얼굴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그는 이 같은 깨달음에서 새로운 출발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알든 모르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 8) 자기 존재를 사랑 받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 이 한 사건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존재를 보면서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 받기 위해서 산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고베 시에 위치한 생협(생산자 협의회)은 창시자가 정치가.문학가.사상가인 동시에 사회 사업과 평화를 위해 힘쓰다가 돌아가신 가가와 도요히코 입니다.
자료실에는 그가 평소에 주장했던 평화협동 사랑의 실천방침과 일곱가지 지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곳 생협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 이익은 전 조합원에게 배당한다.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경제다.
- 모든 자본은 조합원이 출자를 한다.
- 강자가 약자의 것을 탈취해서는 안된다.
- 한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하지 않는다.
- 어느 정당을 지지하거나 가입하지 않는다.
- 조합원 교육으로 시작해서 교육으로 끝난다.
하천풍언 목사와 같이 철저한 이념과 실천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나 자신과 우리모두에게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920년대 중반 경부터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사회주의자 가가와 도요히코의 <애와 노동> . <기독교사회주의론> 등의 글이 번역되어 <기도신보> . <청년> . <진생> . <신생> 등의 기독교 언론매체에 게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글은 당시의 기독교 사회운동 방법론을 논의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하여 1930년대 초반에 한 사회주의자가 농촌운동을 전개하던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가가와 도요히코를 따르는 기독교사회주의자”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가가와 도요히코의 사상이 당시 기독교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음은 백 영희 집사가 본 가가와 도요히코입니다.
분위기를 몰아가는 가가와 도요히코.
일본의 유명한 성자였다.
슈바이처, 간디, 가가와 도요히코를 20세기 3대 성자라고 불리울남큼 유명한 목사요 사회개혁가 이다.
빈민굴에서 생활한 그 전기로 세계 사람들에 감화를 끼친 이로서 미국에 방문했을 때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그가 단에서 손 흔드는 모습에만도 은혜가 넘쳤다고 한다.
백 집사는 <사선을 넘어서><태양을 쏜다>들을 읽은 적이 있다.
1939년 초순의 일이었다.가가와 도요히코의 봉사에 놀랐다. 감사했다.
그러나
역시 그는 신앙 보다는 도덕과 인간의 사람이었다.
즉 신앙은 아니었다는 것이 확신됬다.
그 책을 그렇게 감명 깊게 읽기는 했으나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이는 신앙은 아니다는 것이다. 기독교 사회주의, 도덕주의는 될지라도 신앙주의는 될 수 없다고 단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현재 닥치는 일본군국주의의 압박에 도덕주의로는 이기지 못할 것이고 결국정치에 앞장설 정치주의 기독교가 될 것이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가가와 도요히코가 한국교회의 화합과 화평을 위하여 파송되어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속으로 놀랐다.
신사참배문제가 이렇게 심한데도 감옥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 이렇게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돌아다닐 수 있다니, 그가 김천으로 지나간다는 소식이 있어서 만나보려고 갈려고 했었다. 그런데 신문에 나타나기를 내선일치운동을 위해서 온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신사참배를 벌써 했겠다. 정부에 벌써 삼켰구나! 옛날 가가와 도요히코는 죽고 이는 딴 사람이라’ 해서 안가고 말았다.
그 사람은 참 신앙의 사람이다 하고 우러러 봤는데 알고 보니 내선일치를 주장하고 신사참배가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가 의식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완전히 세상 정치주의자요 땅에 속한 사람이요 하늘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는 것을 판정 지었다. 뒤에 들으니까 그가 인도의 간디에게 갔다가 면접을 청했으나 가가와 도요히코가 왔다는 말을 등은 간디가 ‘나하고 친한 그 가가와 도요히코는 옥에 갇혔던지 죽었고 가가와 도요히코가 왔으면 지금 온 사람은 내가 아는 가가와 도요히코가 아닐 것이라’ 안 만나줘서 못 보고 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에 그에 대하여 물으니 한부선 목사님이 말하기를 “그분이 만주에 와서 신사참배 문제로 왔었는데 십자가의 대속을 설교하면서 “예수님의 피는 살아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역사해야 된다. 그래야 구원이 된다”는 것을 강조했고 이에 한부선 선교사는 예수님의 피가 완전히 죽었고 그래서 대속이 된 것이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된다.
신앙위주의 신앙과 인본주의 신앙이 결국은 이런 깊은 본질에서 작은 차이가 나게 되고 그 뒷모습에서는 정치주의와 신앙주의로 크게 표시가 나게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걷는 하루
가가와 도요히코(신과 걷는 하루)
나와 동행하시는 주여,
나의 사랑과 진실을
나의 것으로 만드시어
오늘도 내일도 걷게 하여 주십시오.
나와 동행하시는 주여,
당신의 기도와 염려를
나의 것으로 만드시어
오늘도 내일도 걷게 하여 두십시오.
나와 동행하시는 주여,
당신의 부르짖음과 기도를
나의 것으로 만드시어
오늘도 내일도 걷게 하여 주십시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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