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가 오히려 몸에 해롭다고?…뭘 먹어야 하나


2018/06/27 16:12



"피틴산, 렉틴 등 유해물질 함유" vs "일상 섭취량으로는 문제 안 돼"

현미 (이종백=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건강식으로 알려진 현미가 오히려 몸에 해롭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면서

주부들을 중심으로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책 '플랜트 패러독스'는

현미를 먹지 말아야 할 음식으로 중 하나로 분류해 놨다.


현미 등 통곡물의 섬유로 된 껍질과 겉껍질,

겨 안에는 미네랄의 흡수를 방해하는 피틴산(Phytic acid, 피트산 혹은 파이테이트),

소화 효소의 작용을 막아 성장을 방해하는 트립신 억제 인자,

장 내벽에 틈새를 만드는 장누수증후군을 일으키는

렉틴 등 해로운 화학물질이 들어있어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저자인 스티븐 R. 건드리 박사의 주장이다.


미국 출신 심장 전문의인 건드리 박사는 로마 린다 의과대학에서

외과·소아 흉부외과 과장으로 16년간 재직한 뒤

식이요법의 중요성을 깨닫고 복원의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2년여 전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라는 일명

 '현미 괴담'이 인터넷에 퍼진 적도 있다.

   

현미에 함유된 피틴산이 철분이나 칼슘 등 몸에 좋은 미네랄 성분을 흡착해

 몸 밖으로 배출시키기 때문에 빈혈과 골다공증 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현미만 먹은 그룹에서

변을 통해 배출된 칼슘과 인 등의 미네랄량이 백미만 먹은 그룹에 비해 많았다는

실험 결과가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현미가 오히려 몸에 해롭다는 이런 일각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모든 식품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기 마련인데,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일부 단점만을 부각해 해로운 식품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미를 비롯한 통곡물에는 몸 안에 들어온 수많은 독성물질,

그중에서도 체외로 잘 빠져나가기 힘든 지용성 화학물질과

중금속을 흡착해 대변을 통해 체외로 배출하는 데

효과적인 특별한 식이섬유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

리그닌이라는 이 물질은 대장 안에서도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지 않기 때문에

유해물질을 흡착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대변으로 배출된다.


이외에도 현미가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를 끌어내리고

당뇨병 발생 위험을 낮춘다는 등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연구결과는 다수 축적돼 있다.

이에 비해 현미의 피틴산이나 렉틴 등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오란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피틴산의 부작용에 대한 실험 결과들은

피틴산을 과도하게 먹인 동물 모델을 사용한 것으로,

사람이 일상에서 섭취하는 정도로 문제가 된다는 연구결과는 없다"며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현미를 통해 얻는 이득이 더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현미의 독성물질로 지목된 피틴산이나 렉틴 등도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피틴산은 현미뿐 아니라 콩류, 아마씨, 들깨, 참깨 등

다양한 곡물과 대부분의 콩류에 함유되어 있다.

칼슘이나 철분 등 미네랄의 흡수를 방해한다는 부정적인 연구결과도 있지만,

몸에 해로운 중금속을 배출하며,

혈전을 예방해 동맥경화 등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낮춘다는 등

긍정적인 연구결과들도 있다.


렉틴은 동식물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복합체로,

세포막의 당 분자와 결합해 세포의 응집, 분열,

기능 활성화 등에 관여하는 물질을 총칭한다.

강낭콩의 PHA(피토헤마글루티닌), 밀의 WGA(wheat germ agglutin)나

글루텐 등 수천 종이 존재한다.


식물 속 렉틴 역시 질병과 염증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항암, 에이즈 바이러스(HIV) 감염 차단,

면역증강 등 렉틴의 긍정적 기능에 대한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피틴산, 렉틴뿐만 아니라 식물 속에 함유된 다양한 화학물질은

과다하게 섭취하면 독이 될 수 있지만

적절한 양이라면 오히려 유익하다는

'호르메시스'(hormesis, 자극이라는 뜻의 그리스말)의 원리로 설명되기도 한다.


식물 속 화학물질 중 상당수는

식물이 자신을 공격하는 다른 생명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독성 성분이지만,

식물과 그 식물을 먹으면서 생존한 인간 간 오랜 상호과정을 통해

그런 성분들이 오히려 인체에 유리한 스트레스로 사용될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것이 호르메시스의 기본 개념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온 특정 렉틴이나 피틴산은 위에서 위산에 의해 분해되며,

입안과 장내 박테리아들도 이들의 위험성을 약화하도록 진화했다.

인간은 다양한 조리방법을 통해서도 이런 물질을 줄여왔다.

가령, 콩 속의 렉틴은 익히거나 발효시키는 과정을 통해 10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하며,

피틴산, 트립신 억제 인자도 이런 과정을 통해 대폭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호르메시스의 원리를 역으로 해석하면,

특정 음식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고 지나치게 많이 먹을 경우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음식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된 식단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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