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얼마나 고통당하셨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부터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실때에 피땀을 흘리셨습니다.


이는 정서적 상태가 극에 달했거나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있는
사람들에게서 발생하는 혈한증(血汗症, hematidrosis) 으로,


사람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아주 심하게 받을때

땀샘에 있는 모세관을 파괴하는 화학성분이 몸에서 나옵니다.


그 결과로 땀샘으로 소량의 피가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땀을 흘리게되면 그 피가 땀과 함께 섞여서 나오게 됩니다.


그런 혈한증이 일어나면 피부가 매우 약해지며
바늘이 살을 찌르는 듯한 심한 고통을 수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날 예수께서 로마 군인들의 채찍으로 맞으셨을 때는
피부가 극도로 민감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눅 22:44)"

그리고 예수님은 체포되어 대제사장과 군병들에게

수차례 고문을 받으셨습니다.
밤새도록 예수님을 구타했는데 눈을 가리고 때렸습니다.


눈을 가리고 사람을 때리면 반사신경이 작용할 수 없어서
날아오는 주먹이나 손바닥을 피할수도 없고 스치듯 비껴가며
맞을 수도 없기 때문에 충격이 거의 2~3배 정도 더 크게 됩니다.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막 14:65)"

그래서 예수님의 얼굴은 얼굴 곳곳이 붓고 멍들고
찢어져서 피가흐르고 입술도 터져서 심하게 부어있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조롱하며 침을 뱉어서
그 상처난 얼굴에 뒤범벅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사 52:14)"

예수님께선 대부분의 죄수들이 기절하거나 미치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되는 태형(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예비형벌인 채찍질은 죄수의 옷을 벗겨 등을 들어 내고
허리를 굽게 하여 기둥에 묶든지 틀에 달아 맨 다음
금속조각이나 날카로운 뼈조각들 유리조각들이 달려있는
가죽채찍으로 사정없이 어깨를 시작으로 등, 엉덩이, 정강이까지
계속해서 내려치는 형벌입니다.


3세기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태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다."


당시에 로마의 예루살렘에는 유리공업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채찍에도 유리조각을 달았던거죠.


그 채찍으로 맞으면 채찍에 달려있던 것들이 살에 박혔다가
빠지면서 살점들이 같이 떨어져 나가고 핏줄들이 터지게 됩니다.


태형이 계속되면, 피부밑에있는 골격 근육까지 찢어지게되고,
찢겨진 살은 피범벅이 된채로 리본처럼 덜렁덜렁 매달려 있게 되며
심지어 척추뼈가 드러나기도 하고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기도 전에

태형만 당하고서도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죽지 않더라도 희생자는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되며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 상태에 빠집니다.


저혈량성 쇼크란 말은 많은 량의 피를 흘리고 나서

고통을 겪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피를 많이 흘리면 네 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첫째로, 심장이 더 이상 피를 퍼 올리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혈압이 떨어지게 되고 그 사람은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하게 됩니다.
세 번째로, 신장은 남아 있는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변을 만드는 일을 중단합니다.
네 번째로, 몸은 흘린 피를 보충하기 위해서 액체를 요구하기 때문에 매우 목이 마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중에 "내가 목이 마르다"라고 말씀하시게 됩니다.


예수님의 어깨와 등 허리와 옆구리에는 많은 피를 흘렸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39회의 채찍질만을 하는데

당시 로마 형벌에는 그런 제한이 없었습니다.


무자비한 군인들은 돌아가면서 예수님을 때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이 찢기는 극심한 고통과 출혈로 인한
쇼크를 받으셨을 것입니다.(마 27:26, 막 15:15)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홍포(자주색 옷 - 왕을 상징)를 입히셨습니다.
출혈이 멎지 않은상태에서 홍포에 예수님의 살이 닿아
피가 스며들어 지혈작용을 하면서 홍포가 살에 붙어 피와 함께 굳었습니다.


한 군인이 가시면류관을 예수님의 머리에 씌웠는데
그 가시가 머리와 얼굴부위를 찔러 피부가 찢기고
찔려서 피가 철철 흘렀을것입니다.


그런데도 군인이 조롱하며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쳤다고 합니다.
그 가시면류관을 갈대로 쳐서 그 가시가 피부속 깊이 찔리게 하고
더 상처가 깊게되며 얼굴은 완전히 피로 범벅이 되었을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입힌 홍포를 다시 벗겨내었습니다.
예수님의 상처난 살에 붙어 같이 굳은 홍포를 벗겨내자
굳었던 피들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마 27:28~31)"

이어서 예수님은 당시 로마의 관습에따라 양쪽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양팔이 묶인 채 처형 장소로 걸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되는데

이 때 예수님께서 진 십자가는 34~57㎏정도의 횡목(십자가의 가로축 나무)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수차례 고문을 당하신 예수님께는

그 나무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는 일은 무겁고 힘든일입니다.


'비아 돌로로싸'(via Dolorosa)의 좁은 길을 따라 골고다로 향하던
예수님은 몇 차례나 쓰러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면부족, 채찍질, 심적고통으로 그의 육체가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게 되자,

로마인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대신 십자가를 지웠습니다.(눅 23:26)


'골고다'(해골)에 다다른 후에 병사들은 예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지고 나서,

예수를 십자가 위에 눕혀 못을 박았습니다.


이 때가 대략 주후 30년경 니산월(3-4월) 14/15일
아침 9시경이었습니다.

약용 포도주를 예수께 드렸으나 입에 대기만 하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 포도주는 몰약이나 쓸개를 탄 포도주로 고통을 잊게 하는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죄수들에게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느끼라고
그런 포도주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고통을 다 받으시려고 드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때..
죄수에게 사용된 못은 길이 12.7~17.8㎝, 지름 1㎝ 정도의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인 요한난 벤하콜의 십자가 처형당시의 못 발견)
끝이 날카로운 녹이 슨 철대못으로 예수님의 손바닥이 아니라
팔뼈 끝 부분과 손목뼈 사이를 관통했습니다.


손바닥에 못을 박았다면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어

손바닥이 찢어져버려 십자가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손목에 못을 박은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언어는 손바닥과 손목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손목도 손바닥에 포함된 언어였습니다.


손목에 못이 박히는 곳은 중추신경이 지나가는 위치로

그 신경은 손으로 나가는 가장 큰 신경인데

못이 그곳을 내리칠 경우 그 신경이 완전히 파괴됩니다.


못이 손목에 박힐 경우의 고통은 펜치로 그 신경을 잡고 비틀어서
뭉개는 그런 고통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사람이 그 고통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합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그 단어가 바로 'excruciating(고문하다)' 이라는 말입니다.
문자적으로 excruciating은 '십자가로부터' 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있을 동안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 고통을
표현할 말이 없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했겠습니까?


또 예수님의 발은 겹쳐진채 십자가의 수직기둥 정면에 고정되었고,
못은 발 중앙의 둘째 뼈와 셋째 뼈 사이에 꽂혔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는 발의 주 신경들이 끊기는 고통,
양손과 같은 발이 잘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더욱이 십자가형으로 받은 채찍질로 인한 출혈과 쇼크,혈압저하 현상,

못을 박기 위해 땅에 눕혔을 때 채찍질 당한 등이
다시 찢겨지는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매 순간순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보다는 호흡곤란 상태로 더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리게되면 우선 팔이 15cm 정도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양쪽 어깨가 탈골이 됩니다.


못에 박혀 쭉 뻗은 팔과 어깨를 끌어내리는 몸무게는 근육에 충격을 주며
횡경막이 가슴의 상태를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숨을 들이쉬기보다 내쉬기를 훨씬 어렵게 만들고,
숨을 내쉬기 위해서는 십자가 위에서 발을 밀어올려서 발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근육이 잠시동안 이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못박힌 발에 몸무게 전체를 싣게 되므로
발에 박혀있는 못이 발을 점점 깊게 찌르게 됩니다.
결국에는 못이 발근육에 붙어있는 뼈를 직접 고정시키게 됩니다.


더욱이 팔꿈치를 구부려서 몸을 올리는 동작은 못에 박힌 손목을
돌리게 하고 팔의 신경을 손상시키게 되므로 고통이 가중됩니다.


간신히 숨을 내쉰 후에는, 세웠던 발을 내리고서 잠시 쉴 수 있었 을 겁니다.
그리고서는 다시 숨을 들이 마시게 되죠.


그러면 또 다시 숨을 내쉬기 위해 발을 세워야 하고 

동시에 십자가의 거친 나무결에 피 묻은 등이 긁히게 됩니다.


완전히 지칠 때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 되다가 결국
발을 세울 수 있는 힘조차 없어지면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됩니다.


살이 찢기는 아픔, 팔과 다리에 느껴지는 고통,

호흡곤란으로 점점 조여오는 가슴,
숨을 쉬기 위해 몸을 들어올리면서 느껴지는 손과 발의 극심한 통증 등
그런 고통들 때문에 같이 십자가에 달린 두 죄인들보다
예수님께선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안식일과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그 일을 끝내고 시체를 치워야 하는데
두 죄인은 죽지 않아서 다리를 꺽었다고 합니다.


다리를 꺽으면 숨을 쉬기 위해 몸을 끌어올릴 수 없으므로
숨을 쉴 수가 없어 몇 분안에 죽게 됩니다.
빨리 죽으라고 무릎부분을 커다란 망치로 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도 하려 했지만 예수님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한 군인이 옆구리에 창을 찔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몸에서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19:32~34)"

호흡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희생자는 소위
호흡 산독증(酸毒症) - (혈액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가 탄산으로 분해되면서
혈액의 산성이 증가하는 증상) 에 빠집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심장 박동이 불규칙적으로 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을 때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아셨을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니이다' 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리고서는 심장이 정지되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혈량성 쇼크는 심장 박동수를
지속적으로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이것도 심장을 정지시킨 원인 중에 하나였죠.
그렇게 되면 심장 주위에 있는 막 조직에 액체가 고이는,
심낭삼출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폐 주위에서도 액체가 고이는데 이것은 늑막삼출이라고 불리죠


로마 군인들이 와서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서,
예수님의 오른쪽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서 확인을 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성경의 묘사를 볼 때 아마도 오른쪽 옆구리,
갈비뼈 사이였을 겁니다.


창은 오른쪽 폐와 심장를 꿰뚫었습니다.
그래서 창을 뺄 때 물처럼 보이는 액체(심낭삼출과 늑말삼출)가 나왔습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물처럼 투명한 액체가
흘러 나온 다음에 많은 양의 피가 쏟아졌을 겁니다.


게다가 건조지역의 뜨거운 햇빛에 노출되어 몸의 수분이 다 빠지고..

벌레(파리,등에..)들도 피냄새를 맡아 몰려들어
예수님의 몸에 붙어서 예수님을 더 아프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높이 7-9피트의 십자가에 아침 9시부터 오후3시까지
6시간동안이나 이런 고통속에서 달려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십자가의 고통...
그러나 그런 육체적인 고통보다..
예수님께 가장 심한 고통은 심적인 고통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고통을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견뎌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 나를 위하여 이렇게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단순하게 예수님이 그저 돌아 가셨구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피조물들을 위하여
창조자이신 위대하신 신께서 이렇게 죽으셨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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