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 구원을 설명하려면


제1장. 왜 어린이들이 구원을 혼동하는가?

어린이들은 여러번 예수를 영접했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일곱번 구원받았어.", "나는 올해 여름성경학교에서 다시 한번 구원받았어!",

"나는 어제도 주님을 영접했는데 오늘 또 영접하고 싶어", "나는 내 동생과 싸워서 동생이 울었어.

그래서 지금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다시 모시고 싶어!"
이런 등등의 말들은 어린이들이 한 간증이다. 이와 같은 말들이 주일학교, 어린이 성경공부,

어린이 부흥회나 집회를 다녀온 어린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다.
왜 어린이들이 이같은 말을 할까? 도대체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린이들이 구원에 대해 혼동하지 않도록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좋을까?
진실로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어린이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는 교사라면,

어린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와 같은 말들을 들었을 때 이와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린이들이 여러번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가?

1. 어린이는 자기가 듣는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구원받아야 된다는 말과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셔들여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구원의 초청에 응하여 앞으로 나간다.

그러나 실상 그들이 설명한 내용과는 다르게 어린이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 소통이 안될 뿐더러 일방적인 요구에 의한 응낙일 뿐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2. 어린이는 두려울 때에 결단한다.

어떤 어린이가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하기 위해 거기로 나아갔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지옥에 가게 된다고 그러셨거든요.

나는 지옥에 가고 싶지 않아요. 또 불에 타고 싶지 않아요."
물론 어린이가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린이는 예수님이 지옥으로부터 자신을 구해 주시려고 돌아가셨을 뿐 아니라

현재 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시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 위한 동기부여의 방법으로 지옥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어린이에게나, 성경에, 또한 주님께도 온당하지 못하다.

어린이가 단지 두려움 때문에 결단하게 된다면, 그 두려움은 차츰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는 이 모든 경험이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

3. 어린이는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구세주에 대한 필요성과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는 대상에 자신을 첨가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죄를 깨닫도록 하지 못하면 십자가에 의한 대속의 의미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4. 어린이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서 단 한번만 결단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즉, 자신이 한번에 부모의 가족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단 한번에 의해서 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5. 어린이는 앞으로 나갈 때 말하자면, 자신이 행했던 어떤 특별한 '나쁜 짓'에 대한 죄의식

   을 느끼면서 나아갈 수 있다.

어린이는 구원에 대한 이러한 오해를 가지고 자기가 범한 어떤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 위해 나아간다.

그런 후 자신이 또다시 바쁜 행동을 하면, 또 다시 구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6. 어린이는 선물을 받고 싶어한다.

가끔 그리스도를 영접하러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선물이 약속되기도 한다.

어린이들은 그 선물을 원한다.

그래서 어린이는 의미도 모른 채 성경구절을 읽고 기도를 드리는 판에 박은 일을 따라하는 것이다.
"얘야, 네가 보고 있는 이 성경책 어디서 났지?"
"제가 어떤 집회에 참석했었는데 인도자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앞으로 나오는 모든 사람에게 성경책을 주겠다고 말하기에 나도 나갔죠."
그런데 이 어린이는 그 일이 있은 일년이 지나서야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을 알고 싶어했다고 한다.


7. 어린이는 군중심리에 의해 행동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초청이 있을 때 어떤 어린이가 손을 든다. 그러자 다른 어린이가 또 손을 든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어린이가, 또 다른 어린이가 계속 손을 든다. 손을 든 어린이 중 몇몇은 자기가 왜 손을 들고 있는지 조차 모를 것이다. 어린이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구원초청을 받았을 경우에도 손을 들어 놓고는 자신이 한 행동을 역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8. 어린이는 이야기에 매혹되어 결정한다.

구원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런 이야기들은 성경에는 거의 없는 내용이거나 혹은 성경에 있다해도 과장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린이는 혼동하게 된다. 어린이는 나중에 만들어진 이야기이며 성경이야기의 일부에 해당한다고 여길 때 자신이 또다시 구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9. 어린이는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한다.

"어린이 여러분, 선생님은 여러분 모두가 저와 함께 천국에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생각해서라도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모셔들이세요."
어린이들은 선생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렸다는 흐뭇한 감정이 구원을 받았다는 행복감을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 감정을 사라져버리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다' 혹은 '천국에 갈 것이다'라는 생각도 사라져 버릴 것이다.


10. 어린이는 앉아있는 것을 지루해 한다.

어떤 때는 공과공부 시간이 길다. 이같이 긴 공과공부를 마치고, 선생님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일어서도록 권면한다. 그러면 어린이는 일어선다. 교사는 이런 어린이를 회개한 것으로 간주한다.


11. 어린이는 감정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반응한다.

어린이는 감정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면 울려고 한다. 그때 어린이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채, 교사의 어떠한 질문에도 반응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어린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기분이 좀 괜찮아진다. 어린이는 이러한 감정을 '구원받았다'라고 말한다. 비록 어린이가 반응했을지라도, 어린이는 압박감에 반응했던 것이고, 따라고 그 경험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실제적인 경험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12. 어린이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어린이를 양육 지도하는 사람이 없다.

상당수의 어린이가 실제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다. 그러나 후에 그들은 더 이상의 지도나 가르침을 받지 못한 채로 방치되어진다. 어떻게 성경책을 읽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또한 성경책을 읽을 수 있는 어린이는 어떤 부분을 읽어야 할 지 잘 모른다. 물어 볼 것이 있어도 대답해 줄 사람이 없다.
그리스도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다. 기도하는 법도 가르쳐 주는 이가 없다. 얼마 되지 않아 어린이는 의심하게 되고, 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경험을 잊어 버리게 된다.


제 2 장.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도록 가르치는 기초 원리

어린이들이 구원에 대해 모두 혼동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린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할 수 있다. 그리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자랄 수도 있다.
어린이에게 혼동을 가져다주는 것은 구원에 관한 메시지 대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도 오히려 그 메시지가 표현되는 방법으로써 어린이들의 경험이나 이해의 범위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어휘, 상징적 의미, 경험들 때문에 그렇다.
그러면 어린이를 위해 사역하는 사람은 어린이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1. 당신은 어린이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분명하게 가르치기 위해서 알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두어야 한다.
이것은 간단명료하면서도 완전해야 한다. 아래 문항을 참조하라.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단다.
너는 죄를 지었어.
그리스도는 네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어.
너는 네가 죄인이라는 것을 그분께 아뢰고
용서함을 구해야 해.
그러면 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단다.


2. 당신은 성경에 익숙해 있어야 한다.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36)『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롬 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5: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3. 당신은 하나님 사랑의 위대한 면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구원의 진리말씀을 어린이들에게 반복적으로 말해 주여야 한다.

이것은 당신이 어린이의 결심을 강요하거나 잡다한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차라리 어린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4. 당신은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낱말을 설명할 때 주의해야 한다.

죄, 구원, 용서, 영원한 생명, 믿는다 등등 용어의 의미를 어린이에게 반드시 설명해 주어야 한다. 어떤 때는 이러한 설명을 공과공부나 성경공부 시간에 할 수 있다. 또 어떤 때는 어린이가 이해한 것을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해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5. 당신은 성령께 의존해야 한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면, 어린이는 영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어린이의 결단이 성령의 도우심이라기보다는 어떤 사람의 설득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어린이는 자신이 혼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어린이는 혼란과 불만족 속에서 살게 된다.


6. 당신은 구원의 메시지를 단순하게 설명해야 한다.

메시지가 수많은 상징 속에 숨겨져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나 공과공부를 선택할 때 도움이 되는 아래 질문을 스스로 해 보아야 한다.
용어들을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가?
이야기는 공상적인 요소가 있지 않은가?
이야기 중 얼마만큼이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인가?


7. 당신이 구원의 메시지를 전할 때 성경을 사용해야 한다.

죄와 구원에 대한 진리를 전하는 것은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른 많은 이야기들로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자체만큼 효과적이지 못하다.
성경이야기는, 너무나 자주 사용되어져 왔던 허구적이고 상징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보다, 더 직선적이며 또한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예를들면, 어린이를 사로잡기 위해 목도리를 사용하여 죄를 설명하는 것보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거듭나야 한다"(요 3:3)고 하신 말씀에 대한 니고데모의 혼동을 이해시키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다.


8. 당신은 어린이들이 많은 질문을 하도록 해야 한다.

한 반에서 삼분의 일 정도의 어린이들이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다음 과는 요나와 큰 물고기이다. 다음 과를 시작하기 앞서, 교사는 지난 두 과에서 하나님이 인간들을 매우 혹독하게 다루었음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질문했다.
"왜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벌주셨지요?" 어린이들은 대답했다. "죄 때문이어요."
그리고 교사와 어린이들은 아래의 것들을 가지고 토론했다.
죄란 무엇일까?
3학년 어린이들은 어떤 죄를 짓지요?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은 죄를 어떻게 다루셨나요?

어린이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왜 인간들은 죄를 짓나요?
왜 하나님은 마귀를 죽이지 않으셨나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어떻게 용서하시나요?
우리가 뭐라고 기도해야 되나요?

어린이의 질문을 통하여 교사는 어린이가 성경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감지해야 된다. 또한 어린이의 질문은 종종 교사로 하여금 구원에 관하여 설명할 수 있는 커다란 기회를 활짝 열어 준다. 그렇게 되면 메시지는 강압적이 되지 않는다. 메시지는 어린이들과의 토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다.

이같은 특별한 토론이 있은 후에 어린이들 중 4명이 교사에게 와서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한 사람씩 개인적으로 왔다. 한 어린이는 토론이 끝난 뒤 몇시간 후에 온 것이다. 결코 강제로 된 것이 아니었다.
교사와 어린이들은 하나님이 죄와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분 자신의 말씀으로써 역사하셨다. 그 결과 여러 명의 어린이들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였다.


9. 당신은 인간의 죄성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성도 가르쳐야 한다.

물론 우리 모두가 죄를 지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어린이가 인간의 죄성만을 받아들인다면, 어린이는 하나님이 매일매일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기를 촉구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다는 점만을 만족해하며 살 것이다.
어린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시며 순종을 요구하신다는 것도 배울 필요가 있다. 어린이는 자신의 신앙과 삶이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기대하시는지 배워야 한다.


제 3장 이야기의 적절한 사용법


구원에 대해 가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사용된다.

자, 어린이 여러, 제가 하는 것을 잘 보세요.
제 손가락이 여기 있지요. 제 손가락을 잘 보세요. 이제부터 제가 하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거예요. 자, 잘 보세요. 손가락을 이 잉크병 속에 넣겠어요. 어머나, 손가락이 까맣게 되었네요! 어떻게 하면 이 잉크를 뺄 수 있을까요?
이 물로 빼 보겠습니다. 아이구 어쩌나! 물로 안 빠지네요. 그러면 이 수건으로 문질러 보겠어요. 그래도 여전히 까맣네요. 꼭 잉크물을 빼내야 해요, 오! 손가락을 잘라내지 않고는 검정 잉크를 뺄 수 없네요. 그런데, 자 보세요. 잉크 지우개로 해 보겠어요!. 어머나, 보세요 지워지지요? 보세요, 다 없어졌군요!

여러분, 이와같이 잉크 자국과 같은 죄를 없앨 수 있는 한가지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어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랍니다. 예수님의 피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답니다. 우리는 죄를 물로 씻을 수 없어요! 문지를 수도 없어요! 잘라낼 수도 없어요! 단 한가지 방법뿐이랍니다.
여러분, 이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어요. 만약 여러분이 잉크 자국 같은 죄를 없애지 않는다면, 지옥에 갈 거예요. 잉크 자국과 같은 죄를 없애고 싶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 볼까요?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씻는 것을 다음 날로 미루지 마세요.

이 이야기가 다음에 주어진 세가지 물음에 의해 검증을 받는다면 어떻게 평가받겠는가? 한번 그것은 측정해 보자.


1. 이야기의 단어들이 진정 바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가?

죄는 잉크 자국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게 말함으로써 어린이를 혼동시키는가? 어떻게 자신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씻는가? 어린이가 무언가를 닦을 때 어린이는 어떻게 하는가? 어린이는 죄를 씻을 때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이상 말한 것들은 이야기 자체의 의미와 실제로 뜻하고자 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그 이야기로부터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구원의 메시지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상징적인 단어가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와같은 이야기는 사용하는 사람이 기대하는 것에 대하여 오히려 역반응을 나타낼 수 도 있다. 이야기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이야기에서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2. 이야기가 공상적인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았는가?

아마도 어떤 어린이에게는 얼룩진 손가락을 잘라낸다고 하는 생각이 약간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도 모른다. 어린이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3.
이야기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인가?

이 이야기에서는 죄를 씻어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대부분 성경에서 인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대부분 성경에서 인용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순전히 지어낸 것이다. 오히려 성경의 개념조차도 어린이가 이해하기 어렵도록 표현되어져 있다.

만일 어린이가 이같은 이야기 끝에 손을 들었다 할지라도, 그 어린이가 구원에 대하여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지 교사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문을 갖는 이유는 어린이가 구원을 이해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용된 이야기가 구원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마술을 사용한 사람의 이야기를 어떤 한 그룹의 어린이들이 듣고 있었다. 그 사람은 메시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을 믿고자 원하는 사람은 조용히 자기방으로 오라고 말했다. 몇명의 어린이들이 그방으로 찾아 왔다. 그런데 이 어린이들이 그 뒷방을 떠날 때, 이런 소리가 들렸다.
"쳇, 난 또 다른 마술을 보여주려는 줄 알았지."
이런 것을 볼 때 이러한 이야기를 사용하는 것은 더 심각한 의문만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며, 그 이야기가 아무런 교훈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상징적 이야기를 함으로써 성경의 진리를 가리워버리는 것보다는 간단하고 명백한 용어로써 성경의 상징을 설명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구원을 설명함에 있어서 특별히 효과적인 이야기가 몇 개 있다.

●니고데모와 대화하신 예수님(요 3장)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한 여인과 대화하신 예수님 (요 4장)
●이디오피아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해 준 빌립 (행 8장)
●간수에게 예수님을 전해 준 바울과 실라(행 16장)


예를 들어, 니고데모와 예수님이 나눈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들려 줄 수 있다.

때는 밤중이었어요.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나러 왔어요. 왜 니고데모가 밤중에 갔는지 성경에 나와 았지는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니고데모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밤중에 갔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성경은 그 이유를 우리들에게 말해주지 않고 있지요.

아마 어쩌면 니고데모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고 바빴기 때문에 밤중까지 갈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또 어쩌면 예수님이 하루 종일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시느라 바쁘셨기 때문에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과 얘기할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말했어요.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당신이 하시는 기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아무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하실 수 있었어요. 예수님이 하셨던 놀라운 일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 맞춰 보세요. 네, 그래요. 예수님은 아픈 사람을 낫게 해 주시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어요,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셨던 기적들을 알고 있었고, 또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것도 알았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니고데모에게 참으로 이상하게 들렸어요.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이 이상한 말들을 들어보세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때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말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너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 말은 니고데모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어요. 니고데모는 '아, 사람이 다시 조그만 갓난아이가 되어야 하는구나'하고 생각했어요. 니고데모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지 알지 못했어요.

니고데모는 공부를 아주 많이 한 사람이었어요. 아는 것도 많았어요.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알아듣지 못했어요.

오늘날에도 역시, 예수님께서 "너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일지 못하는 유식한 사람들도 많이 있을 거예요.
다시 말하면 이런 사람들이어요. 주님을 모르는 선생님, 의사, 혹은 변호사 같은 사람들 말이예요. 그러나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유식한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너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도록 해요. 모든 사람은 엄마, 아빠에 의해 아주 조그만 갓난아이로 태어나서 그들의 가족이 되지요. 아무도 큰 아이로 태어날 수 없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언젠가 다시 한번 태어나지요. 즉 그때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는 거예요. 이 말은 다시 조그만 갓난아이가 된다는 뜻이 아니예요.

이 말은 우리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뜻이예요. 어떤 사람은 네 살에 하나님의 가족이 되지요. 어떤 사람은 여섯 살에, 또 어떤 사람은 아홉 살에, 열 여섯 살에 또 어떤 사람은 서른 살에 또는 그보다 더 나이 들어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도 하지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를 원하셔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죽게 하신 이유예요. 성경에 이렇게 쓰여있어요.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가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나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예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예요. 그 대답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어린이조차도 죄가 있답니다. 어떤 어린이는 상스러운 말을 하지요. 또 어떤 어린이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요. 또 어떤 어린이는 자기 것이 아닌 물건을 가져오지요. 이런 일들이 모두 잘못된 거예요. 또한 마음속에도 죄가 있어요.

하나님은 이렇게 잘못된 일들을 죄라고 부르셔요. 그리고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셔요.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고 하나님은 죄를 보고는 참지 않으셔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요. 하지만 죄는 반드시 그 대가로 벌을 받아야 되지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왜 예수님을 보내어 십자가에서 죄 때문에 죽게 하셨는가 하는 이유예요.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고 싶다면 예수님께 "우리가 죄 지은 것은 잘못된 것이니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려야 해요. 또한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해요.
이것이 예수님이 "너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니고데모가 이상하게 생각한 말씀의 뜻이예요.

위에서 실례로 주어진 두 종류의 이야기를 비교하여 볼 때, 잉크자국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는 진리를 명료하게 하기보다는 뜻이 숨겨진 상징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감소시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예화인 니고데모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혹시 어린이가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은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실례를 들어 설명해 주어야 한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신다. 교사는 어린이들이 진심으로 우러나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결심을 하기를 바란다. 이런 교사는 인간이 만들어낸 뒤죽박죽의 이야기가 아닌, 어린이의 경험 안에 있는 간단한 예화를 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예화에 대해서는 다음의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화는 메시지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성경의 이야기의 요점과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는 것에 사용되어져야 한다. 즉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니고데모의 이야기에서 예화로 사용된 경우와도 같다. 그런데 마치 예화가 메시지인 것처럼 예화만을 사용한다면, 선반 위에 성경을 올려놓고 구경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린이는 성경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다. 또한 어린이가 완전한 사람-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엡4:13)-으로 자라기를 원한다면 성경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계속 이어서 어떤 어린이가 중생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강조하는 니고데모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또 다른 때에는 어린이에게 영생의 의미를 배우는 우물가의 여인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빌립과 내시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어야 한다. 도 어떤 때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강조해서 말하기도 해야 한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는 어린이들이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어린이가 실제로 자신의 구주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만큼 구원에 관한 메시지를 아주 명백하게 언제 포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어떤 어린이는 하나의 이야기만 듣고도 영접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다른 상황에서 영접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교사는 언제든지 어린이가 준비되었을 때에 도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또 어떤 어린이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며 기꺼이 기다려야 한다. 만약 교사가 그런 어린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고 있다면, 교사는 성령께서 바로 그 말씀을 통하여 확신을 주시도록 기도하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 사역은 어린이로 하여금 손을 들게 한다거나 혹은 앞으로 나오게 하는 등의 주제를 고안해 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어린이에 대해 연구하며 또 나아가서는 성경을 잘 이해하도록 어린이를 돕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다음 몇가지 사항들은 어린이가 잘 이해하도록 돕는 방법을 결정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1. 기도하라.

당신의 어린이의 필요와 능력을 간파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은 당신이 가르치고 있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자세히 알고 계신다. 왜 당신은 어린이들에 대해 주님께 기도하지 못하는가? 당신은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즉,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어떤 낱말이나 개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예민한 감각을 갖게 해 달라고, 당신은 준비된 심령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어린이의 마음 뿐 아니라 교사 자신의 마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많은 교사들이 어린이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면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곤 한다. 또 교재준비와 학과공부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였을 때에도, 성령의 역사하심이 부족함을 다소 경험하게 하곤 한다.
이와 같은 사역을 인도하시는 분은 마음속으로 역사하시는 주님 자신이다. 당신은 결코 이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


2. 어린이가 사용하는 어휘를 잘 들어두라.

어린이들이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는가? 어떤 단어들을 사용하는가? 어린이들이 죄의 짐이라든가? 죄의 사슬, 안전한 방주, 또는 생수의 강에 대해 말하며 다니는가? 어린이들이 사용하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낱말로 그것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한 과에서 새로운 어휘를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도록 하라. 새로운 개념이나 단어 혹은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번 반복하고 쉬운 뜻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3. 성경공부 이야기를 어린이의 말로 만들어 다시 써 보라.

이야기의 문맥이나 의도를 준수하되, 하나의 진리를 가르치는 이야기에도 또 다른 진리를 부언하여 설명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약 이야기가 순종을 강조하는 것이면 순종이 강조되어야 한다.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기도가 강조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의 경우(눅 10:29-37)는 자비를, 반석 위에 또는 모래 위에 지은 집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강조(마 7:24-29)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이야기와 또 많은 다른 이야기들은 구원을 가르치려는 뜻이 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교훈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이야기를 어린이의 언어로 다시 쓸 때에, 성경의 말씀을 알기 쉽게 이해하고 또 발췌한 말씀의 주된 가르침을 발견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훨씬 덜 오용하게 될 것이다.
어떤 교사들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구원을 강조하는 데만 급급해 한다. 물론 구원의 필요에 대하여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구원을 설명하는 성경의 인용구절 속에 내포되어 있는 교훈을 기초로 하는 것 역시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나타날 때,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졌다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데살로니가 전서 2장을 보라. 특히 3-5절). 만약 어떤 어린이가 충분히 고려된 어떤 인용구절의 주된 교훈을 알고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다면, 그 어린이는 성경 전체의 뜻을 잘 이해함과 동시에 잘 훈련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정말 그래도만 한다면 그 어린이는 보다 나은 그리스도인 사역자, 어쩌면 훌륭한 목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 어린이가 진정한 성경진리 속에서 자라났다면, 그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양육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가지 개념만을 가르치고, 그것과 관계된 성구나 인용구 몇 절만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어쩌면 얄팍하고 위험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성경을 가르칠 때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은 성경과 함께 시작하여 성경과 함께 쉬며, 성경과 함께 마치고, 그리고 성경을 설명한다.
이 말은 전혀 예화를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예화는 좋은 것이며, 가끔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예화로 어린이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려면 인용한 성경구절의 주된 교훈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4. 이야기의 구성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매 공과마다 성경에 있는 주인공, 갈등, 도입, 클라이막스, 종결 등의 모든 것을 다 이야기 할 필요는 없다. 만약 이야기의 구성에 얽매인다면 다음 두가지 중 한가지 사건이 발생할 것이다.
(a)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어린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빠져버릴 수도 있다.
(b) 이러한 설명은 구성된 이야기 중심으로만 전개될 수 있다.

1편 115편은 어린이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은 구성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사실 전혀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어린이들은 스스로 어떤 부분들, 특히 4-5절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시 115:4-8) 『<4>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8>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요한복음 1:1-14 말씀과 요한복음 10:1-21말씀도 구성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말씀들은 빠져서는 안되고 구성된 이야기로 만들어져서도 안된다.
이런 류의 인용구절들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읽혀질 수 있으며, 어린이들과 여러분 이야기할 수 있는 말씀이다. 어린이들에게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어린이들이 이와 같은 말씀의 요지와 의미를 배우는 가운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제5장 어린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원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1. 가능하다면 어린이와 단 둘이서만 이야기하라.

믿는 가정, 불신 가정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믿는 가정의 어린이일지라도, 어린이마다 각각 다른 의문점을 갖고 있을 것이다. 어린이와 단 둘이 대화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어린이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리고 후에라도 어린이의 생각 속에 어떤 개념이 분명하게 기억되도록 배우게 될 것이다.

2. 어린이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하라.

예수님을 너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에 대해 전에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해 분 적이 있니? 죄가 무엇이니? 왜 예수님은 죽으셨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성경구절에서 무어라고 말하고 있지? 그 뜻이 무엇이니? 등등의 질문들이 필요할 것이다. 질문을 통해 어린이와의 깊이 있는 대화,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 어린이 사고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고, 진리를 알고 있는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3.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라.

느긋하게 이야기하면서 어린이의 말을 듣고, 질문하고, 대답해 주는 시간을 여유롭게 가져라. 교사는 가능하면 어린이로 하여금 기도문을 한 번에 한 줄씩 따라하도록 시켜라. 그리고 나서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말해주라. 그러면 어린이는 잠시나마 그것이 자기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한 것의 목표는 어린이가 시늉만 해 보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실제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4. 성경을 사용하라.

어린이가 가지고 잇는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또 글을 읽을 줄 안다면, 어린이 자신이 성경을 읽도록 하라.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하면, 선생님이 대신 읽어주라. 한번에 한구절씩 읽고 설명해 주라. 만약 어린이가. 가지고 잇는 성경이 그 아이의 것이라면, 성경구절에 표시를 해 놓든지 아니면 앞 뒤 간지여백에 성경요절을 써 놓으라. 다른 방법으로는, 색종이를 작당한 곳에 붙여 그곳에 성경구절을 적어 놓고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라.

5. 성경구절을 짤막하게 사용하라.

너무 많은 성경구절을 사용하면, 어린이는 혼동하게 된다. 당신은 각 어린이에게 가장 적합한 말씀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이 외에도 여러 구절의 말씀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36)『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롬 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5: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6. 어린이에게 기도할 것을 권하라.

만약 어린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해도 당황하지 말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면서 어린이와 함께 기도에 관하여 이야기하라.
-너는 '내 죄 때문에 미안해요'하고 예수님께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용서해 주세요'하고 예수님께 말씀 드리지 않겠니?
-너는 예수님께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하고 이야기하고 싶니?
이런 몇가지 질문을 마치면, 어린이는 기도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린이에게 한줄씩 따라 기도하게 하라. 만일 당신이 어린이와 충분히 대화하였다면, 그 어린이가 한줄 한줄 선생님을 따라서 말할지라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도하는 내용을 어린이 자신이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러 경우를 보아 어린이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후에는 기도하는 것이 쉽다고 느끼게 될 것이며, 어린이 스스로 기도하게 될 것이다.

7. 어린이와 신앙에 대한 더 깊은 대화를 나누라.

어린이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하라.
-지금 너는 무엇을 했지?
-예수님께서 너의 죄를 용서해 주셨니?
-그걸 어떻게 알지?
-누가 만약 '너는 그리스도인이니?'라고 물으면 무어라고 말할 거지?
만약 다른 어린이가 "어떻게 그것을 알지?"하고 물으면 어떻게 하겠니?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대답할 때 성경을 사용하여 대답하도록 지도하라. 어린이는 성경을 가지고 다닐 수는 있어도 선생님을 모시고 다닐 수는 없다. 또 어린이가 언제나 대답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

8. 예수님을 영접한 어린이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

어린이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고 해서 선생님의 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중요한 일은 지금부터이다. 어린이는 계속 교육받아야 한다. 심방도 해야 한다. 기도, 성경읽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방법 등을 배워야 한다. 많은 어린이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자, 너는 그리스도인이 죄었단다. 너는 매일 기도하고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한다"라는 말과 함께 방치되어져 있다.
사도 바울은 어른들을 인도한 후에도 다른 사람을 보내거나 자신이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빌립보서 1:4, 2:12-23)

어린이는 성경구절을 암송하고, 함께 기도하며, 때로는 '오늘 성경에서 무엇을 읽었니'라든가 '네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 드렸니?'하고 당신이 물어주어야 할 필요성을 갖고 있다. 당신이 그 어린이에게 성경에 대해 어떻게,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돌봐주어야 한다. 처음에는 어린이가 좋아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말씀을 읽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하여 필요한 지식을 미리 설명해 준다면 어린이가 그 말씀을 읽을 때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은 또한 그리스도를 영접한 어린이를 이하여 기도해야 한다. 어린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위하여 같이 기도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또한 어린이 스스로 해야 할 후속조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만약 골로새서 2:6의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라는 말씀을 준행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 사역자는 골로새서 2:7에 함축된 의무도 지켜야 한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으로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만약 새신자가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겠는가? 교육받지 않고서 어떻게 감사함을 넘치게 할 수 있겠는가? 배우지 않고서 어떻게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구별할 수 있겠는가? 교육받지 않고서 어떻게 자신의 행동, 말, 생각이 그리스도를 좇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누가이것을 교육할 것인가? 신약성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그들을 구원시키고는 그들을 떠나는" 식의 전도가 아니었음을 볼 수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르셨다. 하나님이 주신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능력의 근원은 성령이시다.
어린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이 깨달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깨닫게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며, 그리스도께 봉사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해야 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