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웨슬리의 교훈과 실천

 

찰스 E. 화이트(Charles Edward White)


편집실 譯

한국기독교연구소 제공


요한 웨슬리가 18세기의 영국을 부흥시키고 감리교회를 창설하는 데에 하느님의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를 위대한 설교자요 위대한 조직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웨슬리가 설교와 저술을 통하여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책을 써서 영국의 가장 부유한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독신 남자 한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으려면 연간 30파운드이면 되던 시절에, 웨슬리의 연간 수입은 1,400파운드에 달했다. 그만한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옮길 기회가 있었다. 그는 돈에 대해 무엇이라 말했는가?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소득으로 무엇을 했는가?

 

요한 웨슬리는 어린 시절에 이미 쪼들리는 가난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아버지인 사무엘 웨슬리는 영국에서 가장 월급을 적게 받는 교구 가운데 하나에서 사역하는 영국 성공회 목사였다.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자녀들이 아홉 명이나 있었고, 언제나 빚에 짓눌려 있었다. 요한은 자기 아버지가 빚을 갚지 못해서 감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으며, 따라서 자신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를 시작하였을 때, 재정적인 보상에 대해서는 어떠한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요한 웨슬리를 부르시어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도록 하셨지만, 그의 아버지처럼 그를 가난하게 살도록 부르시지 않은 것에 대하여 아마도 웨슬리 자신도 놀라움을 느꼈을 것이다. 요한은 교구 목사가 되는 대신에,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가르치라고 하느님께서 인도하신다고 느꼈다. 그곳에서 그는 링컨 대학교의 교직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따라서 그의 재정 형편은 엄청나게 변하였다. 그의 직장에서는 보통 그에게 최소한 연간 30파운드를 지불하였으며, 그 돈은 남자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돈이었다. 요한은 자신의 상대적인 부를 즐겼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카드 놀이와 담배와 브랜디를 사는 데 돈을 다 썼다.

 

그러나 그가 옥스포드 대학에 있는 동안에 돈에 관한 그의 관점을 바꾸어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그가 자신의 방에 걸기 위한 그림의 값을 막 치르고 난 다음에, 하녀들 가운데 하나가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날은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그 하녀는 아주 얇은 마직으로 된 겉옷 외에는 자신의 몸을 추위로부터 막아 줄 아무 것도 입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게 되었다. 웨슬리는 그 하녀에게 코트를 하나 사 주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으나, 자신의 주머니에 남아 있는 돈이 너무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각적으로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는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가 돈을 쓰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주님께서 과연 나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실 것인가? 그대는 이 가난한 여인을 추위로부터 막아 줄 수 있었을 돈으로 그대의 벽을 장식하였구나. 오, 정의여! 오, 자비여! 이 그림들은 이 가난한 하녀의 고혈이 아니던가!”

 

웨슬리가 자신의 경비를 제한하고, 그럼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돈을 더 많이 얻고자 하게 된 것은 바로 1731년에 있었던 이 사건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어느 해에, 그는 연간 소득이 30파운드였으며, 자신의 생활비는 28파운드였고, 나머지 2파운드는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고 기록했다. 그 다음해, 그의 소득은 두 배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28파운드의 지출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나머지 32파운드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었다. 3년째 되던 해, 그의 소득은 90파운드로 껑충 뛰었다.

 

소득이 오른 만큼 자신의 지출 경비도 올리는 대신에 그는 28파운드의 생활비를 계속 유지하였으며, 그 결과 62파운드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다. 4년째 되던 해, 그는 120파운드를 받았으나 이전처럼 그의 지출 경비는 여전히 28파운드였다. 그래서 그의 구제금은 92파운드로 올라갔다.

 

기독교인들은 단순히 십일조를 바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도 돌보고, 빚을 갚기만 하면 나머지 부수입은 모두 다 남에게 주어야 한다고 웨슬리는 느꼈던 것이다. 웨슬리는 소득이 증가할 때 함께 올라가야 하는 것은 신앙인들의 생활 수준이 아니라, 남에게 주는 헌금의 수준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옥스포드에 있을 때 시작된 이 실천 행위는 그의 전 생애를 걸쳐서 이어졌다. 심지어 그의 수입이 수천 파운드로 올라갔을 때에도 그는 검소하게 살았고, 재빠르게 잉여금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다. 어느 해, 그의 소득은 1,400파운드가 약간 넘었다. 그는 30파운드로 살았으며, 거의 1,400파운드 전체를 남을 위해 주었다. 그는 이 땅에 보물을 쌓을까 봐 두려워하였으므로, 돈은 들어오는 즉시 구제 기금으로 나갔다. 그는 단 한 번도 100파운드 이상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고 기록했다.

 

웨슬리는 자신과 같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남자로서는 꼭 필요한 물건들도 사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지출 경비를 제한하였다. 1776년에 영국 세무 관리들은 그의 세금 보고서를 조사하고 난 후에 다음과 같이 그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당신이 지금까지 등록하지 않은 그릇들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이 뛰어난 인물의 집에는 분명히 은그릇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웨슬리가 그 그릇들에 대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고소하려 했던 것이다. 웨슬리는 세무 관리들에게 이렇게 답장을 썼다. “나는 런던에 은수저 두 벌을 가지고 있으며, 브리스톨에 또 두 벌의 은수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은 식기의 전부입니다.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빵을 필요로 하는 동안은 더 이상 은 식기를 사지 않을 것입니다.”

 

돈에 대한 요한 웨슬리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실제적인 지침들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돈에 관한 그의 첫 번째 법칙은 “벌 수 있는 만큼 모두 벌어라” (Gain all you can)이다.

돈은 잘못 쓰일 수 있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 자체는 좋은 것이다. 돈이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에는 끝이 없다. “하느님의 자녀들의 손 안에서, 돈은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 되며, 헐벗은 자들의 의복이 됩니다. 돈은 여행자들과 나그네들에게 머리를 눕힐 곳을 제공해 줍니다. 우리는 돈으로, 과부들에게는 남편의 자리를 채워 줄 수도 있으며,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에게는 아버지가 되어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방어자가 되어 주고, 아픈 자들에게 건강의 도구가 되어 주고,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해 줄 수도 있습니다. 돈은 맹인들에게는 눈과 같고, 절름발이들에게는 발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돈은 사망의 문으로부터 사람들을 들어올려 주는 존재입니다.”

 

웨슬리는, 돈을 할 수 있는 만큼 버는 데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영혼과 정신, 혹은 육체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의 영혼과 정신과 육체에도 해를 입히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래서 그는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근로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산업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을 금지시켰다.

 

돈의 올바른 사용에 관한 웨슬리의 두 번째 법칙은 “할 수 있는 만큼 저축하라”(Save all you can)이다. 그는 그의 청중들에게 단순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인생의 자랑을 만족시키기 위해 돈을 쓰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그는 비싼 음식과 멋진 옷, 그리고 우아한 가구들을 사지 말라고 외쳤다. “화려하고 정교한 것들을 경멸하고 수수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웨슬리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필수품만을 사야 된다고 가르쳤다. 첫 번째 이유는 물론 명백하게 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함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욕망을 키우지 않기 위함이다. 이 노장의 설교자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정말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사기 위해 돈을 쓰면, 그들은 그들이 꼭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을 점점 더 원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혜롭게 지적해 주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대신에 그들은 오히려 욕망을 점점 더 크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웨슬리의 세 번째 법칙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라”(Give all you can)이다. 헌금은 십일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는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의심할 여지없이 당신의 마음을 황금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황금은 당신의 육체를 불처럼 살라 버릴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헌금은 십일조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기독교인들의 돈은 첫 십분의 일뿐 아니라, 모든 돈이 하느님께 속해 있는 것이다. 신자들은 자신의 소득의 100퍼센트를 하느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써야만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수입을 어떻게 쓰라고 말씀하셨는가? 이에 관하여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성서적 원칙들을 제시해 놓고 있다.

 

첫째, 당신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라(딤전 5:8).

신자들은 그의 가족들이 “소박하고 건강한 음식을 충분히 먹으며,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게 해야 할뿐 아니라 살 장소를 마련하고,

 그리고 만일 생업에 어떤 일이 생겼을 경우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

“누구든지 충분한 음식과 입을 의복, 그리고 머리를 누일 장소가 있으며, 그 위에 무언가 더 있다면 그는 부자이다.”

 

셋째, “모든 사람 앞에서 정직하게 공급하라”(롬 12:17).

그리고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마라”(롬 12:17). 웨슬리는 채권자들의 돈 사용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며,

덧붙이기를,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도구나 주식, 혹은 자산이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넷째, 기독교인들이 가정을 운영하고, 채권자들의 돈을 갚고,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쓰고 나면,

그 다음의 의무는 자신들에게 남아 있는 어떤 돈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이 네 가지 성서적 원칙들을 제시하면서 웨슬리는 그러나 분명히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는 어떤 상황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방법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질문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이 돈을 씀에 있어서, 나는 나 자신이 이 돈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의 돈을 맡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는가? 

둘째, 이 돈을 이렇게 사용하라고 허용해 주는 성서적 근거는 무엇인가? 

셋째, 나는 지금 내가 사는 이 물건을 주님께 드리는 봉헌물로 바칠 수 있는가? 

넷째, 하느님께서는 의의 부활 때에 내가 쓰는 이 돈으로 인해 나에게 상을 주실 것인가?

 

1774년에 웨슬리는 이렇게 썼다.

“내가 만일 10파운드를 내 뒤에 남겨 놓고 죽는다면....

당신과 모든 인류는 나를 대적하여, 나는 도둑과 강도처럼 살고 죽었다는 증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1791년에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유서에 언급되어 있는 돈은 그의 주머니와 옷장 서랍에 남겨져 있는 동전들 뿐이었다.

웨슬리 자신이 말했듯이,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면, 나는 언제라도 내 책들을 뒤에 남겨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책 이외에 다른 것들을 남겨 놓는다면, 나 자신의 두 손이 나를 고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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