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무라비법전과 성경

마태복음 5장38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예수님은 소위 “동형보복법”에 대해서 구약의 율법을 재해석하여 사랑과 관용의 무저항주의를 주장하고 계신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 뺨을 돌려대며, 속옷을 가지려고 하면 겉옷까지 갖게하며,

오 리를 가게하면 십 리를 동행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는 것이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동형보복법을 지키지 말라고 부정하시는 것일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구절은 구약성경에서 세 번 등장한다.
즉 출 21:22∼25, 레 24:19∼22, 신 19:16∼21이다.
이것을 “렉스 탈리오니스”(Lex Talionis)라고 부르며, 한글로는 동형복수법, 혹은 동형보복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약성경보다 전에 이 동형복수법을 기록된 하무라비법전이 발견되고 있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특히 자유주의 신학자를 포함한 사람들이 성경이 그것(하무라비 법전)을 인용하거나

그대로 모방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BC 2285년부터 2242년까지 바벨론을 통치한 하무라비왕의 법전에 그것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레위기와 출애굽기의 연대는 BC 1450-1400년경으로 본다)

그렇다면 하무라비 법전과 성경이 어떻게 다른지 자세하게 살펴보고,

구약에서의 렉스 탈리오니스와 예수님의 재해석에 대해서 살펴보자.

먼저 출애굽기의 말씀을 읽어보자.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낼 것이니라” (출 21:22).
 
아이를 밴 임산부를 쳐서 낙태한 경우,

그 여인에게 다른 신체적 손상이 없는 경우에는, 가해자는 벌금으로 배상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즉 이 말씀의 문맥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하는 경우를 말씀하고 있다.

이 규정은 이렇게 계속된다.
 
“다른 해(害)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3-25).
 
문제는 임산부에게 신체적 손상이 있는 경우이다. 이때는 벌금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준 만큼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갚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갚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탄”(natan)으로, “준다” (give)는 뜻이다.
즉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해를 끼친 만큼 똑같은 형태로 `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동형보복법이 된다.
그러나 이 성경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해를 받은 만큼

“복수”하라는 “복수”에 대해 중점을 준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가해자는 피해자에 해를 끼친 만큼 같은 형태로 “배상”하라는 말씀이다.


즉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상할 범위를 규정한 법이다.
하무라비 법전은 피해자의 “복수”를 규정하고 있는데 반해서,

출애굽기의 규정은 가해자의 “배상”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다음 레위기 24장의 말씀을 보자.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라” (레 24:18).
 
양이든 염소이든, 짐승을 쳐서 죽인 경우는, 가해자는 피해를 입힌 만큼 짐승으로 배상해 주면 된다.

그러나 사람의 몸에 손상을 입힌 경우는 다르다.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니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라”(레 24:19-20).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규정이 적용되는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다.
분명히 이 말씀이 주어진 대상은 가해자이다.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 해를 가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해 주어야 할 바를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레위기의 말씀도, 피해자에게 “복수”를 규정한 “복수법”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배상을 규정한 “배상법”이다.

이 말씀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가해자가 짐승을 죽인 경우는, 짐승으로 갚으면 되지만,

사람의 육체에 손상을 입힌 경우는, 돈이나, 다른 짐승으로 배상될 수 없고, 반드시 가해자 자신의 몸으로 갚으라는 말씀이다.
 
즉 구약의 Lex Talionis 규정의 중요요점은 피해자의 “복수”가 아니라, 가해자의 “보상”에 대해서 규정한 것이다.

이것이 하무라비 법전의 규정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피해를 당한 경우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복수”하라고 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복수는 나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신다.(레19:18, 잠20:22)

즉 구약에서 말하는 렉스 탈리오니스 규정은 다음과 같은 취지와 목적이 그 근본이 되는 것이다.

(1) 구약의 렉스 탈리오니스 규정은

그 근본이 야만적이고 잔인한 다른 법과 거리가 먼 동형복수법이 아니라 실상 자비의 시작이 된다.
그 법은 원래 무제한의 복수를 제한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상대방이 가한 것보다 더 심한 복수를 하지 못하게 하기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만일 이러한 규정이 없다면 보복과 복수의 악순환을 계속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이 법은 원래 개인에게 보복할 권리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재판관에게 처벌하기 위한 지침과 표준으로 제정된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개인의 복수를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몇 가지 하무라비 법전의 규정을 예로 들어 본다.

* 양반이 귀족의 눈을 다치게 한 경우, 가해자의 눈을 다치게 해야 한다' (196조).
* 양반이 다른 양반의 뼈를 부러뜨린 경우, 가해자의 뼈를 부러뜨려야 한다' (197조).  `
* 양반이 다른 양반의 이를 부러져 빠지게 한 경우, 가해자의 이빨을 부러뜨려 빼야 한다'(200조).
 
이들은 피해자는 피해를 입은 만큼, 가해자에게 똑같은 형태로 “보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신분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 양반이 평민의 눈을 다치게 했거나, 평민의 뼈를 부러뜨린 경우, 양반(가해자)은 은(銀) 한 `미나' (mina)를 물어 주어라(198조).  
* 양반이 평민의 이를 부러뜨려 빠지게 했을 경우, 양반(가해자)은 은 3분의 1 “미나”를 물어 주어라(201조).  
* 양반이 종의 눈을 다치게 했거나, 종의 뼈를 부러뜨린 경우, 양반(가해자)은 종의 가치(價値)의 반(半)을 물어 주라](199조).

하무라비 법전은 Lex Talionis 법이 적용되는 경우와, 적용하지 않는 경우를 사회적 신분과 지위로 구분했던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신분이 동등하거나, 피해자가 더 높은 신분인 경우에는, “동형복수법”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가해자의 신분이 피해자보다 높은 경우에는 돈으로 배상해주면, 문제는 끝나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즉 양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법으로 그들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들은 절대 보복당하거나 복수를 당하지 않도록 제정된 악법이다.
즉 성경이 말하는 “배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으며, 개인의 보복을 금하기 위한 재판정의 법적인 공정한 목적으로 제정된 취지도 아니다.
다시 말하여 하무라비 법전은 성경과 유사할지라도,

그 취지와 근본이 전혀 다른 것으로서 성경이 하무라비 법전을 인용하였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동형복수법을 인용하시며, 관용과 용서의 사랑을 말씀하고 계신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구약의 렉스 탈리오니스는 자비와 사랑을 그 근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을 동형보복으로 해석하여 개인적인 보복과 분풀이를 정당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성경은 하무라비 법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약에서 구약의 근본적인 취지, 즉 사랑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예수님은 구약의 성경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취지와 근본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 김구원


함무라비 법전은 1901-1902년에 걸처 페르시아의 고대 도시인 수사(Susa)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고대 바빌론의 유물이 고대 엘람(Elam) 국의 수도인 수사에서 발견된 것은

수사의 왕이 바벨론을 침공했을 때, 함무라비 법전을 약탈해 갔기 때문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높이 2.25 미터이며 위에서 60 센티미터 가량은

정의의 신인 샤마쉬 (Shamash)가 함무라비 왕에게 정의의 홀을 주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이 부조 아래에는 수백개의 쐐기문자로 된 법전들이 기록되어 있다.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아카드어를 공부한 사람은 박물관에 서서 대충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여러 면에서 모세 율법과 비교되어 왔다.

다음은 대표적인 유사 법조항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치면, 그의 손을 자를 자를 것이라. (함무라비 법전 19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찌니라. (출 21:15) 


남의 자녀를 후리면, 반드시 죽일 지니라. (함무라비 법전 14)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 지니라. (출 21:16) 


이 외에도 많은 유사 조항이 있다.

이 법전을 제정한 함무라비는 모세보다 적어도 수백년 앞서 바빌론을 통치한 왕이었다. 

모세 율법과 함무라비 법전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었다 할지라도

그 두 법 사이의 유사성은 모세 율법이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당시에 널리 알려진 전통에 기초에 제작된 것임을 말해 준다. 

이 사실은 모세율법이 함무라비 법전 이외에도 다른 법전,

예를 들면 에슈눈나 (Eshnunna)법전과도 유사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이런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모세 율법은 함무라비 법전과 중요한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바빌론의 법이 사람과 사물을 동등하게 취급하여

대인에 대한 법죄나 대물에 대한 범죄과 똑같이 다루어 지고 있다면,

모세 율법은 보다 인간을 존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도둑이 만약 훔친 물건을 보상할 수 없을 때,

그에대한 함무라비 법전의 형벌은 죽음이었다(함무라비 법전 8).

하지만, 출애굽기 22장 1-4절은 같은 경우에 사형이 아닌 노예로 팔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모세 율법이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관습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함무라비 법전의 원본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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