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유대인인가?


유대인(Jew, יהודי;예후디)

유대인(Jew)이란 말은 헬라어 ‘유다이오스(Ioudaios)’에서 파생되어 라틴어 ‘유대우스(Judaeus)’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은 영어로는 유대아(Iudea), 규(Gyu), 기우(Giu), 이우(Iuu), 이유...(Iuw), 유(Iew) 등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다가 유대인(Jew)이라는 단어로 발전하였다.


이 유대인(Jew)이란 단어는 히브리어 예후디(Yehudi)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본래 예후디는 유다 지파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다. 유다는 야곱의 네 번째 아들이었다. 예후디는 또한 유다 지파가 살았던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래서 훗날 다윗이 7년 6개월간 헤브론에서 나라를 다스렸을 때 그 나라를 유다라 불렀다(삼하 5:5). 르호보암 왕 통치 때에 왕국이 분열되었는데 남쪽은 유다 왕국, 북쪽은 이스라엘 왕국이 되었다. 유다 왕국은 베냐민 지파와 함께 했어도 유다 왕국으로 불려진 것이다(왕상 12:16~21). 이때부터 예후디(Yehudi)는 유다 왕국에 사는 백성들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유다 지파, 베냐민 지파, 시므온 지파의 구별없이 남쪽 유다 왕국 사람은 전부 예후디(Yehudi)라 불렸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는 유다만 남게되었다. 그리고 예후디(Yehudi)라는 말은 더 이상 남쪽과 관계된 말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 즉,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이후에는 예후디(Yehudi)는 모든 히브리인을 통칭하는 말로 바뀌어진다. 예를들면, 에스더 2:5, 5:13에 등장하는 모르드개를 베냐민 지파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예후디(Yehudi), 유다인, 유대사람(Jew)라고 부르고 있다. 이 시기에 유다인(Jew)이란 말이 유대교와 연관되어 사용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하만이 처형되고 난 이후에 많은 사람이 유대교로 개종하였다고 말할 때 미트야하딤, 즉 유대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유대인(Jew)이란 개념은 이 시기부터 종교적, 정치적, 국가적 실존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그 개념 사이에 아무런 구분 없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이라 명칭은 주로 이스라엘 외부에서 많이 사용되어진 말이다. 유대인이든지 유대인이 아니든지 상관없이 이스라엘이 아닌 곳에서 주로 유대인이란 말이 사용되었다. 또한 히브리어가 아닌 다른 언어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페르시아 왕국의 관료였던 느헤미야는 그의 ‘다이어리’에서 ‘유대인’들을 언급한 것이고, 이 말은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에 살지 않았었기 때문에 유대인이란 표현을 사용했다는 의미이다. 만약에 그가 이스라엘에 살았었다면 아마도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했었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기록도 누군가 페르시야 왕궁 내에 있었던 사람에 의해서 기록되어진 것이 거의 확실하다. 페르시야어에서 아람어 그리고 헬라어와 라틴어를 거치면서 형성된 단어가 유대인(Jew)이란 말이다.



그런데, 유대인(Jew)이란 말이 이스라엘 밖에 살던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된 일반적인 표현이지만, 이스라엘에 살았던 히브리어를 사용하던 유대인(Jew)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 사람들(Israelites)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자신들이 고대로부터 계속 이어온 종교적 가치들, 문학적 가치들을 표현하려한 것처럼 보여진다. 그리고 국가의 초기 역사와 일치를 강화시키려던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느헤미야와 입장이 정반대인 에스라의 경우를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전체 글에서 사용하고 있고, 심지어 아람어로 기록된 페르시야 왕의 편지에서 조차도 이스라엘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 이후부터 모든 히브리어 기록물들에는 ‘이스라엘’이 사용되어진다. 외경(Apocrypha)에 속한 히브리어 책들(유딛서, 토빗, 마카베오 상서 등), 유대 광야 사본들, 미쉬나와 탈무드의 히브리어 본문들 그리고 70년 반란 때 발행한 동전들과 바르코흐바 반란 때 발행된 동전들(“이스라엘의 자유”, “이스라엘의 구원”)에도 ‘이스라엘’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대표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예외가 있기도 하다.


예를들면, 마카비가의 시므온을 기념하기 위해서 시온산 위에 세워진 구리 기둥에 “유대인의 왕자”라고 새겨진 글(마케베오 상 14:47)과 그의 아들이었던 요하난이 발행한 동전에 새겨진 “유대인들의 그룹”이라는 표현들에 유대인이란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표현들은 정치적으로 유대(Judea) 지방을 지칭해서 사용된 말들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유대(Judea) 지방은 이방인들에게 알려져 있던 유대국 영토의 제한적 범위였다. 이 영토가 좀 더 확장되었을 때는 사실상 ‘이스라엘 땅’이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되게 되었다.


복음서 기록들에 보면 이 두 가지 입장의 차이가 분명하게 잘 반영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조롱할 때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반대로 이방인 총독 빌라도와 로마 군병들은 예수를 일컬어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하고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유대인”이라는 호칭은 전형적인 유대인이었던 가룟 유다의 이야기와 융합되어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어왔다.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는 사단과 연관된 인물이다(눅 22:4). 결과적으로 사단-유다-유대인 이라는 삼각관계 악의 축 개념이 형성된다. 그래서 유대인 그러면 “폭리를 취하는 고리대금업자”, 유대인 같다 그러면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같다는 식의 부정적 이미지로 문학작품에 반영되었다. 미국 사회에서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제거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착화된 편견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게 되자, 19세기에 이르러서 유대인들을 스스로 말할 때 “히브리인” “이스라엘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이름 조차도 “유대인”이라는 편견을 대체시키지는 못하였고, 홀로코스트 이후에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법률적 개념에서 누가 유대인인가?


할라카에 의하면 유대인이란,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 또는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을 유대인 이라고 정의한다. 국제 결혼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경우에는 미쉬나와 탈무드의 가르침에 따라서 어머니의 피를 이은 자를 유대인이라고 규정한다(Kid. 3:12; Yad Issurei Bi'모 15:3-4). “이스라엘 여인에게서 난 너의 아들은 너의 아들이다. 그러나 이방인의 여인에게서 난 너의 아들은 너의 아들이 아니다”(Kid 68b). 유대인 어머니가 아닌 사람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그 아버지가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종교적 개종을 해야한다(개종자 Proselytes를 참조). 이러한 할라카의 정의가 수세기 동안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 특별히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난 이후에, 이 정의에 대하여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고 또 제기되고 있다.


◦개종 절차는 종교적인 절차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개종을 하려면 유대교의 원리들(신조들)에 따를 것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모든 “규례들(미쯔보트 Mitsvot)”을 지켜야 한다(613가지 계명들). 이러한 것들이 대부분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대 유대인들은 따르고 있지 않는 것들이다.


나치에 의해서 학살된 유대인들은 할라카적 정의에 의해서 구별된 유대인들이 학살된 것이 아니라 단지 유대인 혈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처형되어졌고, 또한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 많은 2세들이 유대인 어머니가 아닌 경우에 태어났지만, 유대인 학교에 다니고, 유대 관습을 지키고, 이스라엘에 대한 애국심으로 군대에 가서 근무하고, 히브리어를 말하고, 유대의 역사와 문화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평생 가지고 다녀야하는 그들의 신분증에는 유대인이 아니라는 표시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심각한 문제이다.


실제적으로 일반적 개념으로 유대인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러한 시도는 명백하게 종교 정당들과 랍비들에의한 종교적 정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1958년 내각에 위기가 찾아왔는데 이유는 신분증에 표시하는 “국적” 표기 문제 때문 이었다. 히브리어의 “레옴”은 국적을 나타내는 혹은 국적신분을 표시하는 단어인데 그 정확한 개념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스라엘의 일반 정치적 정당들은 국가에 대한 개념에서 국적 부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였고, 종교 정당들은 할라카적 개념에서 국적 부여가 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당시 이스라엘 수상 다비드 벤 구리온은 이 문제에 대하여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 학자들과 디아스포라 유대인 학자와 랍비들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거의 모든 의견들이 이스라엘에서 국적을 줄때에는 반드시 개종의 절차를 따른 할라카적 개념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모아졌다. 1968년에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최절정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군대의 소대장, 베냐민 샬리트가 자신의 두 아들들, 물론 유대인이 아닌 여자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의 신분증에 “유대인”이라고 등록을 요구한 것이다. 내무부 장관은 이 요구를 거절했고, 샬리트는 대법원에 상고하여 왜 자신의 아이들이 유대인으로 등록될 수 없는지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이스라엘 대법원에서는 이 문제를 처음으로 법률 심사를 하게 되었고, 9명의 대법관들이 1970년 1월 23일 최초 결의를 하게 되었는데 5:4로 부결되었다. 샬리트의 두 아이들은 유대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어 놓았다. 이러한 결정은 강한 시민사회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유대인은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거나 개종을 해야한다는 법률적 판단이 내려졌지만, 개종이 반드시 엄격한 종교적 개종의 절차여야 한다는 결정이 없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밖에서 행해진 종교적 개종이 아닌 개종이 행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외국에서 살다가 들어오는 모든 유대인들에 대한 국적 부여가 개종 절차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바뀌게 되어졌다.

(오스왈트 루페이슨의 경우: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카톨릭으로 개종 후 수도사가 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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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유대인인가?

 종족이란 문화적, 혈연적 연관성이 긴밀한 공동체를 말한다.  여기에 한 가지 추가하여 언어적 동질성이 있어야 종족의 구성요소를 모두 갖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유대인이란 유대교라는 문화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집단으로 혈연적 연관성을 가진 집단이다.  혈연적 연관성을 가졌다는 것은 그들의 외모 속에서 피부색, 골격 등 그들만의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혈연적 연관성을 가진 유대인들의 모습을 상상하자면, 코는 매부리코이고, 눈은 움푹 들어가 있고, 키는 별로 크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막상 이스라엘에 가서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런 유대인은 전체의 1/3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스스로는 유대인이라고 하나 외모로 보면, 영락없는 러시아인, 영락없는 아프리카 흑인, 영락없는 중남미 라티노들이다.  전혀 외모를 통해 혈연적 공통분모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종족관념은 전통적인 종족의 정의를 가지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귀환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무려 2천 년 전에 이스라엘을 떠나 살던 유대인들을 귀환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2천 년 이상 타국에서 살면서 혈연적 순수성을 보존한 유대인은 거의 없다.  때문에 속된 말로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 사람”은 모두 유대인이라고 인정하고 이들을 귀환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안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이다.  불과 몇 백 만 명의 이스라엘이 10억이 넘는 아랍권과 맞서 국토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모아야 한다는 수적 절박성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실제로 유대교 전통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로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한다면 유대인으로 인정하고 귀환을 추진했다.  그러다보니 아주 드물지만 이스라엘에서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는 외모로 보면 중국인도 있고, 일본인도 있고, 영락없는 한국인도 있다.  안젤라 워니 북덜(사진)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한 유대교 랍비이다.  유대교 자체가 유대인들의 민족 종교적 성격이 강하지만, 랍비라는 직책은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안젤라는 1972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한국인이므로 혈통적으로 절반은 한국인이다.  참고로 그녀의 어머니는 불교신자였다고 한다.  반면 그녀의 아버지 프레드 워닉은 주한 미군에서 일하던 엔지니어이다.  그러므로 절반은 미국인인 셈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혈통적으로나마 희미하게 유대인의 피가 섞여 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유대인의 피가 섞여 있는 것은 희미하게나마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는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랍비를 꿈꾸었고, 예일대학에서 종교학을 공부하고, 뉴욕에서 히브리연합대학을 2001년에 졸업했다.  그리고 2003년에 랍비가 되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계로는 최초의 랍비이다.  안젤라의 어머니는 지금도 독실한 불교 신자이다.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랍비 안젤라는 한국음식을 즐겨 먹으며, 안젤라의 아들은 태권도를 배웠으며 간단한 한국어로 숫자를 셀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분명히 유대인이라고 말한다.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고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 기사를 게재했다.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 끝에 타임이 독자들에게 던져준 답은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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