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성서 히브리어와 관련된 문자는 언제부터 정식으로 사용이 되었는가?

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모세에 의해 기록된 모세 오경은 어떠한 문자로, 어떠한 방법에 의해 기록되었는가?


지난 세기까지 성서 비평 학자들은 어느 누구도 성서 히브리어 문자 체제가 히브리인 들이나 셈족에 의해 모세 시대부터 사용 되었다고는 믿지 않았다. 반면, 어떤 유대인 학자는 창세기 4:26의 기록 중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라는 구절을 마치 문자가 셋의 아들 에녹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지나친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출 17:14의 기록이다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들리라--'. 또한 삿 8:14의 기록은 이미 기드온 시대(주전 11-12세기)에 문자의사용이 대중화 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신문하매 숙곳 방백과 장로 칠십 칠 인을 그를 위하여 기록한지라?.


이 외에도 성서 시대에는 수 많은 책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안다. 이를테면 야살의 책(수10:13), 여호와의 전쟁기(민21:14), 유다왕 역대지략 (왕상14:29),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왕상16:5), 솔로몬의 행장(왕상11:41),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대상29:29), 선지자 잇도의 주석 책(대하13:22)등이 그것이다. 성서 시대와 관련된 책들이 자연스럽게 언급된 것을  볼때 이런 책들은 그 당시 백성들 사이에 두루 사용이 되었으며 문자의 사용이 이미 대중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앞에서 언급한 여러 기록물 들이 오늘날우리에게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며 고대 이스라엘의 여러 비문들 중 많은 부분들이 소실 되었기 때문에 모세 시대부터 문자가 사용되었다는 심증은 충분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확증할 만한 물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많은 비평 학자들은 바사 시대 이전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알파? 문자가 널리 사용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료의 결핍과 장문의 비문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성서 히브리어의 역사는 여러가지 뛰어난 방법으로 점차 밝혀지고 있다. 유명한 유대계 이탈리아 석학 아자리아 드로시(Azaria de'Rossi)는 성서의기록을 포함하는 탈무드 문학을 기초로 하여 성서는 본래 초기 히브리어 서체로 기록 되었다고 처음으로 주장했다. 비록 소수 이기는 하나 초기 히브리어 서체로 기록된 기록물 들이 발견됨으로 그러한 주장은 더욱 많은 학자들에게 받아 들여지고 있다.


초기 히브리어 알파벳과 그 기원


초기 히브리어라는 말은 우리가 보고 있는 성서 히브리어 서체이며 현재 이스라엘에서 사용하고 있는 현대 히브리어 문자인 '정방형의 히브리어'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초기 히브리어는 출애굽 전 시대에서 주전 6세기 까지 이스라엘인 들에 의해 사용이 된 문자를 말한다. 현대 히브리어와 같이 초기 히브리어 알파?도 22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 이름들도 현재와 같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아인, 짜데, 쉰 등의 정확한 발음은 사라졌다.초기 히브리어 알파?은 다른 북부 셈어 알파?, 특히 초기 페니키아와 초기 아람어와 관련이 되어있다. 모압, 암몬의 알파?은 초기 알파?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며 사마리아 알파?과 주전 2세기 부터 주후 2세기 까지의 유대 동전의 서체는 그것의 방언으로 본다.


초기 히브리어 알파벳은 아마도 히브리 민족의 출생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할 것이다. 가장 초창기 시대에 초기 히브리어 알파?은 북부 셈어 알파?과 동일했다. 그러므로 초기 히브리어 알파?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북부셈어 알파?의 기원에 관한 문제와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초기 가나안 서체는 초기 히브리어 알파?의 원형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알파?은 이미 족장시대에 사용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유다의 도장(창38:18,25)은 초기 가나안 문자였을까, 아니면 초기 히브리어 알파?의 다른 원형이었을까? 분명 한것은 출28:21, 36을 볼때 인장에 새기는 것은 아주 초기 시대부터 존재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서 시대에 문자가 사용이 되었으며 그것이 알파? 이라는견해는 게젤의 농사력과 라기스 문헌이 더욱 뒤받침 해 준다. 1938년 라기스에서 발견된 비문(주전 11-12세기)은 초기 히브리어 문자의 기록물이다. 사울 혹은다윗 시대(주전 1,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게젤의 달력은 1908년 게젤에서 발견된 것인데 부드러운 돌판에 기록된 것이며 10월에 시작되어 8개월의 목록이 있는 것으로 농사를 위한 달력임을 알 수 있다. 학자들에 따라 어떤 이는 그것이농부의 작품으로 보는 이도 있고 학생의 연습용 작품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어쨌든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통일 왕국 시대 즉, 주전 1,000년 경에 이미 중앙 행정 체제가 있었을 때 초기 히브리어 알파?은 존재하고 있었으며 자체적으로 발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초기 히브리어 알파벳의 발전 및 고대 문헌


문자들의 발전은 페니키아와 초기 아람어 알파?과 같이 외형적인 것이었다. 초기 히브리어 문자가 차용되는 시기에 약 1,000년 동안 그 수와 음가는 동일하였다. 초기 히브리어 문자의 외형적인 발전은 다른 서체와 같이 명백한 것은 아니다. 초기 히브리어 알파?의 발전은 지속적이었으나 일반인들이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급진적인 것은 아니었다.

1938년 라기스에서 발굴된 비문은 궁전의 계단에서 발견되었다.중요한 점은 그 비문에서 초기 히브리어 알파?의 5 문자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발굴자들은 그것이 학생들의 알파? 연습을 위한 것임을 알았다. 이것은 알파?순서를 위한 가장 초초의 고고학적 증거가 된다. 단어들의 분리는 점이나 조그만 선을 긋는 것으로 이루어졌다(몇몇의 예외를 제외). 게젤 달력에서는 단어를 분리하는 표시가 없었다. 그러나 보다 긴 선을 이용하여 절들을 분리했다.


메사(Mesha)의 기념비(모압의 비석)는 1868년 디본(Dibin,사해 동쪽 40km)에서 발견되었는데 승리에 대한 자축이 그 내용이며 주전 9세기중엽의 작품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데 특히 성경과 관련 되었다는점에서 그렇다(왕하 3:4-27). 주전 9세기의 모압의 언어와 문화는 히브리 민족의 것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에 모압어는 히브리어의 방언으로 간주된다. 또한 모압 비석의 서체는 초기 히브리어와 연관이 되어있다.


사마리아에서 발견된 약 80개의 오스트라카(깨어진 자기위에잉크로 씌여진 기록물)를 볼때 북왕국에서는 주전 8,9세기까지의 변형이 거의 완벽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오스트라카의 대 다수는 한 도시의 왕의 관료들에게지불된 기름 및 포도주의 조세와 함께 제출된 송장(送狀)이었다. 주전 700년경의실로암 비문은 유다 방언을 나타내주는 반면에 사마리아 오스트라카는 우리에게 이스라엘 방언의 서체의 본보기를 나타내 준다.


실로암 비문은 1880년 6월 몇몇의 학생들에 의해 발견되어 이스탐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록 6줄 밖에 없지만 그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중요한 기념비 비문이다. 그것은 수로를 만든 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왕하 20:20, 대하 32:3,30, 33:14과 관련되어 히스기야가 만든 것으로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주전 700년 경의 작품이다. 이것과 모압의 비석을 비교함으로서 초기 히브리어 기념비 문체가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발전 했음을알 수 있다. 실로암 비문의 문자들은 초기 히브리어 기념비 문자의 대표적 역할을한다.


유명한 라기스 편지(18편)는 1935년 텔 에트 두웨어(ed-Duweir)에서발굴이 된 것이다. 불에 탄 파편에서 오스트라카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시드기야 말기에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의해 도시가 파괴 될때(주전 586년경)의 것으로 추정한다.



초기 히브리어 문헌의 중요성


비록 대 다수가 하나 혹은 두개의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초기 히브리어에 대한 기록물의 특성은 주목할 만하다. 대부분의 기록물은 위대한 사건이나 인물의 역사에 대한 기록물이기 보다는 일상생활에 대한 것들이다.가장 간단한 기록물 조차도 성경 및 고대 이스라엘의 생활과 관습에 대한 우리의지식을 보충해 주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


예를들면 사마리아 오스트라카는 사마리아의 궁전에 내는 세금과 관련된 기록물인데 포도주와 정제된 기름에 관한 여러가지 자료를 포함하고 있으며 언어, 종교 및 주전 8세기 북왕국에 거주했던 주민들이 이름들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형 및 지방 혹은 국가 행정에 관한 자료들을 제공해 준다. 언어학적으로는 그것이북 왕국의 히브리어 방언으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사마리아 오스트라카는 우리에게 북 왕국 이스라엘의 방언과 서체에 관한 예를 제공해 주는 한편 다른 대부분의 기록들은 남 왕국 유다의 것들을 보여주는데 예를 들면 실로암 비문, 라기스 편지 등이 그것이다. 유대 기록물들은 새로운 단어와 흥미로운 형태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 스타일은 순수하며 관용구적이고 마치 성서 히브리어의 산문 형태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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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표는 http://hebrew.about.com 에서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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